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34화
하늘 위에서 나타난 펜리르는 곧 거대한 늑대 형상에서 인간형으로 변화해 지상에 착지했다.
예의 악마들과 비슷하게, 털가죽을 두르고 얼굴에는 전투 문신을 새긴 인간 사냥꾼의 모습.
인간형이 소년의 모습이었던 요르문간드와는 달리, 펜리르는 체구가 크고 우락부락한 성인 남성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단순히 성인 남성의 모습을 넘어, 그 주변의 다른 악마의 인간형보다도 훨씬 더 큰, 키가 2미터 50센티미터는 될 정도의 거인이었다.
“하계의 인간이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온 것인지는 둘째 치고, 어째서 네가 내 동생의 ‘손님’이라는 건지 매우 궁금하군.”
그는 곧장 나와 요르문간드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 말에서 강한 적의가 느껴졌다.
“난 그 녀석과 거래 관계다.”
“거래 관계?”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난 이게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언젠간 펜리르의 힘도 얻어낼 참이었는데, 차라리 잘된 걸지도.’
지옥에 떨어진 불멸자들은 누구든지 모두 한 마음으로 바깥세상, 각 신계의 신들을 증오할 것이다.
풍요롭고 살기 좋은 땅들을 빼앗은 것으로도 모자라, 이토록 척박한 환경에 자신들을 가둬놓은 주적들을 말이다.
요르문간드가 그랬고, 펜리르 역시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그를 요르문간드를 꾀어낼 때와 같은 논리로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말하자면, 너희들이 원하는 복수를 대신 집행해 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는 거다.”
“어떤 복수를 집행한다는 거지?”
“너희 형제들을 이곳, 니플헤임에 가둬버린 신들에 대한 복수.”
그 순간 펜리르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쓱 올리며 되물었다.
“네가?”
“물론.”
당연히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듣도 보도 못한 인간이 영체로 나타나 자신들도 하지 못한 신들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말하니 말이다.
의심이라기보다는 황당함에 더 가깝겠지.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다르게 돌변한 세상의 법칙에 의해, 어느 때보다도 하계에서 활동하는 나야말로 신들에게 복수할 권한을 가진 시기다.
무엇보다도 내게는 그들을 영구적으로 가둬놓을 수 있는 ‘악의의 오른쪽 눈’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시스템의 제약을 넘어서 신들을 잡아들일 수 있는 건 이 세상 모든 악마들 중에서도 오직 나뿐이라는 것이다.
“난 잘 모르겠는데.”
“현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시스템의 경계 안에 속해 있는 각성자가…….”
“그런 말이 아니다.”
그런데 펜리르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부분을 지적했다.
그의 의구심은 ‘방법’에 대한 게 아니었다.
“지금 네 정도의 실력으로 그 하계에 있는 ‘각성자’들을 정말로 이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음?”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각성자란 녀석들은 긴 시간 동안 힘을 축적해 거의 과거의 신들에 필적할 정도로 강해졌다.”
그 말을 듣고 내 머릿속엔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 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사실상의 동 대륙 최강자인 나조차 그들 앞에서는 한 수 접어야 할 정도였다.
그만큼 서 대륙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는 뜻이었다.
‘긴 시간 동안? ……역시 서 대륙은 동 대륙보다 훨씬 일찍 세계통합이 이뤄진 모양이군.’
그렇게 된 데에는 역시나 ‘시간’이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동 대륙에서 시스템이 발동되고 각성자들이 나타난 지는 기껏해야 겨우 6년.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수히 진행될 세계 변화 과정의 극히 초창기일 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서 대륙은 그와는 달리 이미 굉장히 발전된 데다 각성자들은 물론이고 마물들의 수준도 매우 높다.
실제로도 이면세계의 종족들이 본세계로 이주해 온 후 최소 100년 이상이 흘렀다는 정황이 있었고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성자도, 마물들도, 함께 강해지며 계속 ‘상향 평준화’가 이뤄진 결과가 바로 지금의 서 대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펜리르가 자신의 입으로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거기서 네 정도의 힘으로 우리들의 ‘복수’를 운운하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이냐는 것이다, 내 말은.”
“……그렇지. 확실히 네 말이 맞아.”
물론 나와 요르문간드 간의 관계에서 그런 건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들과의 ‘거래’가 더 의미가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그 강자들을 꺾고 수호령으로서 존재하는 신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그리고 펜리르에게 설득력을 어필하기 위해 내가 가진 힘을 보여줬다.
화아악.
{정령마술 <정령 소환> 발동}
{오른쪽 눈에 감금된 영혼을 꺼낸다.}
{<아마테라스> 소환}
{<츠쿠요미> 소환}
가장 최근에 흡수한 영혼.
타카마가하라 신계에서 가장 격이 높은 두 신들을 불러낸 것이다.
“호오.”
펜리르의 두 눈이 흥미로움으로 빛났다.
그가 내 능력에 강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원한다면 네가 원하는 누구든 잡아들여서 이렇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이곳 니플헤임의 불멸자들은 오크 종족의 신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서 대륙에서의 일을 끝마친 후 언제든지 동 대륙으로 돌아가 오크 각성자들로부터 수호령을 빼앗으면 된다.
펜리르는 마치 노예처럼 내 말에 따르는 두 격 높은 신들을 보며, 굉장히 즐거워했다.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됐다.’
난 이로써 그가 내 말에 넘어왔음을 확신했다.
요르문간드에 이어 펜리르.
니플헤임을 지배하는 마신 삼남매 중 둘의 지원을 얻어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 몸속에 있는 환란의 빙정은 더욱 강해지고, 격멸의 업화와 결합하며 만들어내는 증폭 효과는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받아라. 이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힘이다.”
펜리르는 손을 뻗어 마력을 방출했다.
콰우우.
그 순간에 이 일대를 뒤덮은 눈보라는 훨씬 더 거세졌다.
단순히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발생하는 기상이변.
그런 자가 전해주는 힘이라면, 당연히 그 크기는 나를 압도하는 수준일 것이다.
난 큰 기대를 품고 펜리르의 힘을 받아들이려 했다.
쿠구구궁.
‘잠깐.’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이건…… 내게 주려는 게 아니야.’
그의 손에서 뻗어나온 마력이, 나를 휘감듯이 주위를 둘러싸고 다가온다.
생각대로라면 이것이 그대로 내 영체의 일부가 되어 나를 강화시켜줘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마력에서 느껴지는 힘은 나와 동화되려는 온건함이 아니라 적의.
지금 펜리르는, 이걸로 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큭큭큭.”
놈은 나를 바라보며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악의가 저 얼굴 위에 떠올라 있었다.
‘그런 건가.’
그 순간 난 깨달았다.
펜리르가 이렇게 다짜고짜 날 공격한 건, 내 말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는 내 말을 믿었다.
그리고 내가 사용한 능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더 큰 흥미를 가졌다.
그래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었다.
{특성 <악의의 오른쪽 눈> 발동}
{세계의 비밀을 꿰뚫어본다.}
{펜리르의 권능 <세계 포식>이 당신을 덮쳐온다.}
나를 포식함으로써, 내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수작을 말이다.
‘멍청한.’
그의 행동은 바보 같은 짓일 뿐이다.
어차피 이 특성을 가지고 있어 봐야 지옥을 벗어날 수 없는 건 마찬가지고, 시스템 때문에라도 지옥의 존재인 그는 신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단순히 내 힘을 빼앗겠다는 욕심으로 나를 공격한 것이다.
‘유메미. 나를 꺼내줘. 지금 당장.’
결국 난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로 했다.
-알겠어요.
내 영혼이 펜리르의 포식에 당하기 전에, 난 다시 원래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 * *
‘일이 꼬여버렸군.’
펜리르를 설득시키려 했던 내 시도는 도리어 그로 하여금 나를 적대하게 만드는 악수가 되어버렸다.
특히 이게 단순히 내 말의 진위여부를 믿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놈이 내가 가진 힘을 탐낸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이러면 무슨 수를 써도 마음을 돌릴 수가 없어.’
불과 얼음의 두 근원을 완전하게 깨우치기 위해서는 니플헤임의 삼남매의 힘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그 셋 중 가장 강자인 펜리르가 저렇게 나와버린다면, 내 계획은 큰 차질을 빚게 되는 셈이다.
요르문간드와 헬의 힘만으로는 빙정을 최대치로 강화하는 게 불가능하니 말이다.
‘다른 지옥의 불멸자들과 접촉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빙정을 그만큼이나 강화시킬 만한 존재가 또 있을까.’
현 시점에서 환란의 빙정을 빠르게 극한까지 끌어올릴 방법은 니플헤임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차가움을 관장하는 불멸자가 더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신계의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계의 존재들은 모두 수호령으로 치환되어 버렸으므로, 고대의 능력을 고스란히 가지고서 현재까지 살아온 지옥의 악마들에 비하면 훨씬 약한 편이었다.
물론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각성자들의 능력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그들의 육체를 토대로 한 신화시대의 재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지만.
‘그때가 되면 너무 늦어.’
난 그보다 더 빠르게 환란의 빙정을 완성시켜야 했다.
그러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니플헤임의 삼남매를 내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유메미. 날 다시 보내줘.”
“네? 정말 괜찮으세요?”
그녀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지만, 내 의지는 확고했다.
“부탁한다.”
“……알겠어요. 하지만 너무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마세요. 영체가 손상되면 오색꽃으로도 부활시킬 수 없으니까.”
“알겠어.”
그녀의 주의를 들은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더 니플헤임에 진입했다.
이윽고 아까와 같은 광경이 다시금 내 주변에 펼쳐졌다.
삭막한 푸른 사막 위, 어느 샌가 형성된 망자들의 마을.
‘요르문간드의 위치를 찾아낸다.’
난 그곳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 주변의 정세를 파악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라면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을 요르문간드의 궁전에, 펜리르와 그의 파수꾼들이 길을 막는 이유.
그리고 현재 요르문간드의 진짜 소재는 어디인지.
그걸 알아내, 그 녀석과 접촉해서 마지막 힘을 얻어낼 작정이다.
‘그리고 그걸로 펜리르를 잡는다.’
이후엔 나 역시 무력으로 쟁취하는 방법을 쓸 것이다.
요르문간드와 만나 그의 힘을 얻어내고 나면, 펜리르를 이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난 점점 더 필멸자의 한계를 넘어 불멸자의 영역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다.
* * *
달칵. 끼이이익.
허름한 주점으로 보이는 건물의 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했다.
안쪽에는 망자와 악마들이 있었고, 내가 들어간 순간 모두가 내 쪽을 쳐다봤다.
다행히 바닥에 버려진 누더기로 몸을 싸매 최대한 위장한 나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그 안에서 나는 대충 적당히 아무 술이나 시키고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주위의 대화에 집중하며, 정보를 얻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특성 <신화 사냥꾼의 본능> 발동}
“……어제 마고스가 다른 남자랑…….”
“……누가 술이 약하다는…….”
“……어차피 우린 다 병자들…….”
망자와 악마들 사이에서 온갖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 풍경만 보고 있자면, 인간 세상과도 그리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지옥에 추방된 불멸자와 신들이 다를 바 없는 존재이듯, 이곳의 주민들도 하계의 필멸자나 천상인과 같다는 뜻이다.
“쯧. 차라리 요르문간드 님이 통치할 때가 더 나았지.”
한참 동안 주변 이야기를 훔쳐 듣던 도중, 드디어 내가 원하는 주제의 이야기를 하는 망자들이 나타났다.
난 다른 감각을 모두 차단하고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요르문간드? 쓸데없는 얘길 하는군.”
“내가 틀린 말을 했나? 솔직히 너도 맞다고 생각하잖아? 펜리르가 이 영토를 차지하고 나서 뭐 하나 나아진 게 있긴 한가?”
‘요르문간드는 펜리르 때문에 자기 성역에서 쫓겨난 모양이군.’
이건 어느 정도는 짐작한 내용이었다.
전에는 보지 못한 마을이 생겨나고, 펜리르의 파수꾼들이 지역을 통제하던 걸 보면, 내가 이곳에 오지 않은 사이 모종의 이유로 헤게모니가 변화했던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나온 말이었다.
“쯧. 벌써 200년도 더 된 얘길 이제 와서 한들, 뭐가 달라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