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24화
야차왕 쿠베라의 영혼은 내게 있어서 다른 신들의 그것들과는 결이 달랐다.
파슈파타가 직접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모자라, 아예 날 심상세계로 끌고 들어가 시험을 치르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난 그 시험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고, 결국 그 녀석이 가진 유일한 권능을 습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야차 소환}
검붉은 피부에 이마에 난 뿔, 비대한 송곳니와 흰자위 없는 눈.
쿠베라의 영혼을 사용해 소환된 야차들은 전형적인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큰 키에 뾰족한 귀를 보아 그 기반이 되는 육체는 다크엘프인 듯하지만 말이다.
오늘 마주쳤던 그 야차 다크엘프들의 타락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다른 능력들과는 확실히 달라.’
어쨌든 그것들의 외형보다도 중요한 건 이 능력의 본질이었다.
데바-로카 신계에 소속된 두 신인 시바와 쿠베라.
이들은 단순한 동일 신계 출신이라는 걸 넘어서, 인간으로 치면 하나의 혈통이라 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초기 불멸자들의 시대에서 데바-로카 신계의 삼신이었던 비슈누, 브라흐마, 시바는 세대 교체 이후 각각 서로 다른 여러 명의 신과 종족들로 분화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신과 악마의 경계선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야차, 나찰, 수라가 바로 시바의 후손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즉, 쿠베라의 힘과 권능을 빼앗는다는 것은 곧, 파슈파타의 소유자인 나로서는 시바의 일부를 되찾아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야차의 원기가 <격멸의 업화>로 대체된다.}
{야차의 원기가 <환란의 빙정>으로 대체된다.}
그런 덕분인지, 이 야차들은 단순한 소환물과는 확실히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불과 얼음, 두 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격멸의 업화가 부여되면 공격적인 기운을 발산하고, 환란의 빙정이 부여되면 방어적인 기운을 발산한다. 꽤나 직관적이군.’
다행히 이 힘이 야차에 적용되는 메커니즘은 본래의 힘만큼 난해하지는 않았다.
공격과 방어.
어떤 것을 본질로 삼느냐에 따라 그 두 가지 태세를 오가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꽤나 다양한 상황에 야차를 이용할 수 있을 터다.
‘잠깐…… 이건?’
그런데 이 야차의 활용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난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존재하는 ‘시바의 지식’을 발견했다.
‘프라나?’
그것의 이름은 <프라나>였다.
시바의 마검, 파슈파타에 새겨진 기억.
마나도, 에테르도 아닌, 직접 세상에 영향을 가하는 원리 그 자체라고 할까.
트리슈라의 프라나가 이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파슈파타가 그것으로 변형될 수 있다.
마치 영혼처럼 살아 있는 정보 그 자체가 바로, ‘프라나’인 것이다.
{트리슈라의 프라나를 야차에 주입한다.}
그리고 그 프라나는 내게 종속된 야차에게 부여할 수 있었다.
아니, 단순히 부여하는 것을 넘어서, 두 가지 원기인 격멸의 업화 또는 환란의 빙정과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해 냈다.
{<환란의 빙정>과 <트리슈라의 프라나>를 조합}
{야차가 <달 사냥개 야차>로 강화된다.}
범의 모습을 하고 있던 야차는 모습을 완전히 바꿔 개의 형태로 변했다.
앞발과 겨드랑이 사이에는 날개막이 연결되어 있고, 네 발 끝에는 마치 분사구 같은 관이 연결된 모습.
‘설마…….’
그걸 본 나는 곧바로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격멸의 업화>와 <트리슈라의 프라나>를 조합}
바로 원기를 격멸의 업화로 교체시키는 것이다.
{야차가 <검은 매 야차>로 강화된다.}
그러자 야차는 또다시 완전히 형태가 변형되어 새카만 깃털을 가진 매로 변화했다.
‘파슈파타에 내재된 ‘프라나’와 근원 에너지를 조합해서 변형시키는 건가.’
단순히 강한 힘을 내세워 달려드는 짐승 소환물을 넘어, 내가 가진 근본적인 힘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도구.
상황에 따라 형태를 자유롭게 변형시키고, 그에 맞춰서 용도도 변화한다.
앞으로 얻게 될, 트리슈라를 비롯한 다섯 가지 파슈파타의 변형과 두 가지 원기의 조합으로 그 가능성은 무한히 확장되는 것이다.
이 모든 건 야차왕의 영혼을 흡수하는 것으로 얻은 능력이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 어딘가엔 분명 나찰왕과 수라왕도 있을 터.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다크엘프 종족의 일원이겠지.
‘야차가 아닌 나찰과 수라 종족에도 이런 게 적용된다면…….’
아무래도 드워프들을 좀 더 이용해야 할 것 같다.
* * *
파괴신 시바의 재림으로 향하는 길은 훨씬 더 멀지만, 그럼에도 순조로웠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목표를 향해 한 발씩은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서 대륙으로 넘어온 첫 번째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상당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옹구스의 위치는 파악됐나?”
“……아뇨.”
유메미가 자신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전혀 보이질 않아요. 그자의 영혼이.”
“하아.”
우린 분명 제대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유메미는 바리공주의 영체를 투영할 수 있게 되면서 [유계의 심도]를 통해 다른 차원의 영혼은 물론, 신의 영혼인 수호령의 위치까지, 대략적인 수준에 그치기는 해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내가 찾고 있는 아발론의 제사장, 옹구스가 서 대륙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쪽에 온 뒤로 어째선지 그녀의 영혼 추적은 먹히질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영혼 추적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유독 옹구스의 영혼만이 시야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는 것이다.
“아마테라스, 츠쿠요미, 스사노오. 그리고 신우 씨가 말했던 데바-로카 신계의 신들과 곤륜 신계의 신들. 모두 이곳에 그 존재가 있다는 게 느껴져요. 몇몇 인간 신들도요. 그런데 유독…… 그자의 모습만이 보이지 않아요.”
“분명 여기로 넘어오기 직전까지는 확실하게 봤었다고 했지?”
“네.”
“혹시 우리가 아공간을 뛰어넘는 사이에 그 수호령을 소유한 각성자가 사망했을 가능성은?”
“물론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흔적은 남게 되어 있어요. 주변 환경이 변화할 정도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는 한,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어야 한다구요.”
“흔적마저 사라졌다…….”
이 대목에서 난 이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후라 마즈다.
레아와 함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고, 죽이는 데까지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그.
영혼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갑자기 사라진 건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거지?’
그 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상존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실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온갖 변수와 사고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일들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유독 야드가르와 관련된 것들만은 도무지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그렇게 알고 있을게. 조급해하지 말고 다른 일들부터 천천히 진행하자고.”
“네.”
결국 이 부분은 뒤로 미뤄 두고, 당장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 * *
“사상자는 츠쿠요미조의 사망한 해커 한 명, 나머지는 모두 ‘신우조’의 경상자들뿐이군.”
츠쿠요미와 라이진, 내가 참석한 자리에서, 일전의 공작에 관한 사후강평이 이뤄졌다.
아마테라스는 여기서 나와 내 클랜원들을 ‘신우조’라는, 자기들식의 명칭으로 지칭했다.
그건 나를 자신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탈출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나?”
한편, 아마테라스는 츠쿠요미조의 해커가 사망한 일에 대해 내게 설명을 요구했다.
아무래도 그 자리에서 살아 돌아온 자가 나와 아델뿐이었으니,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차량 은닉처에 도착한 직후, 마하넷의 증원 병력과 조우했습니다. 탈출에 꼭 필요한 차량이 파괴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오토 파일럿으로 먼저 보내놓고 그 자들에게 맞섰는데, 그 과정에서 해커가 사망했습니다.”
난 적당히 사실과 거짓을 섞어서 대답했다.
츠쿠요미조의 해커가 의도적으로 나를 함정에 몰아넣었다는 식의 언급은 일부러 뺐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이 모든 수작을 계획한 츠쿠요미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행동일 테니 말이다.
“흠.”
이야기를 들은 아마테라스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턱을 괴었다.
“굳이 차를 오토 파일럿으로 보낼 필요가 있었나? 해커가 직접 운전했으면 차도 그 녀석도 멀쩡했을 텐데.”
그녀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의 허점을 짚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 해커가 굳이 현장에 남을 필요는 없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단 하나, 내 발목을 조금이라도 잡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자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죽은 사람을 불러내서 다시 물어볼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쪽 조직의 방침이 그런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넘기긴 했습니다만.”
여기서는 이 화살의 방향을 츠쿠요미에게 돌렸다.
그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배신행위를 인정할 리는 없고, 그렇다면 결국 자기 부하가 공연히 바보 같은 행동으로 개죽음을 당했다고 말하는 수밖에.
“…….”
“할 말 없나? 츠쿠요미.”
“다음엔 전투 상황에서도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교육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다가 아닐 텐데. 애초에 적의 증원군 투입 경로도 너희 쪽에서 알아낸 게 아닌가?”
“……그렇습니다. 정보 조사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다음부터는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군.”
“죄송합니다.”
이걸로 그는 아마테라스에게 좀 더 무능해 보이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내 뒤를 잡으려 하던 게 도리어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안 그래도 입지가 좁아져 있는 상황에서, 더욱 난처한 상황이 된 셈이다.
“아무튼, 잡음이 조금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작은 성공했으니 됐다. 가지고 온 데이터도 멀쩡하고, 저쪽에서 우리 신원을 알 수 있는 증거도 남기지 않았으니. 이건 전적으로 신우조의 분전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이견 없습니다.”
라이진이 대답했다.
그 역시 나를 인정했다.
원래대로라면 맞서지 못하고 도망쳐야 할 적의 증원을 상대로, 정면으로 싸워 이긴 덕이었다.
“그러니 그에 걸맞은 보상을 줘야겠지. 약속한 보상에 2할 추가해서 60억. 이 정도면 되겠지?”
{상대방이 당신에게 6,000,000,000골드를 전달하려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그에 대한 보상은 아마테라스가 말했던 대로 돈.
단 한 번의 임무에 이 정도 금액이면 여기서도 굉장히 큰 액수다.
그만큼 가지고 온 성과가 컸다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20억, 투자한 보람이 있군요.”
나는 라이진을 쳐다보곤 웃으면서 말했다.
일전에 그에게 골드를 건넸던 일을 상기시키면서.
“그래, 앞으로도 이런 일이 많이 있을 테니까, 잘 지내자고, 파트너.”
아마테라스는 어느새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처음의 ‘쓸 만한 녀석’을 넘어서 ‘믿어볼 만한 녀석’으로 지위가 상승한 것이다.
“그럼.”
나는 돈을 건네받고는 전보다 더 깍듯하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아마테라스를 ‘물주’로 인정한다는 제스처였다.
그리곤 곧장 바깥으로 나가 이곳에서 얻은 홀로그램 PC를 꺼냈다.
‘이까짓 푼돈.’
60억 골드.
사실 이건 내게 한 줌의 먼지만큼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보상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하면, 돈보다 차라리 직접 물건으로 받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서 만족하고 물러선 건, 이들에게 내가 ‘누구나와 똑같이, 돈에 대한 적당한 탐욕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였다.
[“스사노오 조장” 님에게 메시지를 전송합니다.]
파악은 끝났다.
이제 돈을 뿌릴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