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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21화 (221/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21화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우리 앞을 가로막았던 무모한 해커가 남긴 마지막 말.

몸이 완전히 분쇄되고 얼굴도 반쯤 날아간 채 기계로 된 발성 장치만으로 한 말이었다.

즉,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자신을 희생해 내 발목을 붙잡고선 마하넷의 증원과 조우하도록 만들었다는 뜻이다.

‘증원의 도착 루트도 완전히 달라……. 이건 저 녀석의 개인 일탈이 아니군.’

난 이 함정이 이 해커 혼자서 계획하고 실행한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왜냐하면 원래 이쪽 구역은 마하넷의 증원이 오기로 한 루트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의 루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로킹 차량 역시 이쪽에 주차해 두기도 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 다크엘프들이 나타났다는 건, 이 작전이 수립될 당시부터 저 루트 정보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뜻.

즉, 기반이 되는 정보를 가져온 주체인 츠쿠요미 선에서 이런 함정을 파놓았다는 것이다.

‘나를 제거하려고?’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왜 그가 굳이 이런 귀찮은 방법을 써서 날 제거하려 들려고 했느냐는 것이다.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직접 손을 써서 날 제거할 수 있었을 터.

물론 그랬다간 아마테라스로부터 신임을 잃을 수도 있고, 나 역시 멸절 파슈파타를 꺼내 들어 놈에게 공멸의 위협을 각인시켜 줬을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후자는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만 아는 사실이고, 전자는 그의 정보전 능력으로 어떻게든 사실을 감출 수 있었을 터이기에 문제는 없었을 거다.

구태여 이런 식으로 위험천만한 함정을 파 놓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어도 숨겨둔 클로킹 차량이 발각되었을지도 모르는 이런 함정을 말이다.

‘어쩌면…… 날 시험하려는 건가?’

난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것이 츠쿠요미의 의도인지, 아니면 아마테라스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마하넷의 간부와 싸움을 붙여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를 파악하려는 것.

그게 아니고서야 굳이 이런 독무대를 만들어 줄 이유가 없다.

날 없앨 거라면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최윤아도 함께 휘말리게 만들었을 테니 말이다.

“죽어!”

눈앞에 나타난 다크엘프, ‘쿠베라’가 나를 향해 손톱을 세우고선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좌우로 뻗친 구레나룻과 터질 듯한 근육질 몸매 덕에 다크엘프임에도 야성 넘치는 외모를 가진 그가, 우악스럽게 나를 몰아붙였다.

{마검 <파슈파타> 소환}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금강염사’ 전개}

나 역시 물러서지 않고 검을 소환해 그 녀석을 향해 정면으로 검기를 쏘아냈다.

거기에 용격을 붙이지는 않았다.

초장부터 전력을 발휘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게 최선이긴 하나,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 뒤의 다크엘프들……. 이 녀석에게 소속된 부대원들이군.’

우릴 치러 온 것은 쿠베라 혼자가 아니다.

그가 이끌고 온 다수의 다크엘프들.

그들 역시 쿠베라의 뒤에서 맨손을 사용해 야수처럼 달려오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 능력을 나눠 받은 부대원으로 보였다.

그러니 단번에 이들 전체를 전멸시키는 게 가능하지 않은 한, 용격을 구사하는 건 무력하게 의식을 잃은 채로 공격에 노출되는 자충수일 뿐이다.

그래서 그자의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한 견제 목적으로 일반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콰우우우!

파캉!

금강염사가 녀석의 손톱과 맞부딪혔다.

기세 좋게 달려든 검은 화염의 사자가 순식간에 찢겨 사라지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저렇게 손쉽게?’

아무리 용격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중근거리에서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화력기가 바로 금강염사였다.

그걸 피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정면으로 찢어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저자의 손톱 공격은 단순한 근접기가 아닌 듯하다.

“호오! 사자라!”

쿠베라는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돌진의 기세를 더욱 끌어올리며 다가왔다.

“타앗!”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흑화륜’ 전개}

그 앞을 아델이 막아섰지만.

“넌 저리 꺼져.”

퍼엉!

“아악!”

“아델!”

마치 귀찮은 벌레를 쳐 내듯, 몸 바깥쪽으로 휘두른 손짓 한 번에 빠르게 회전하며 차륜 공격을 행하던 아델이 튕겨 나갔다.

그러곤 그 뒤를 쫓던 다크엘프 부대원들이 마치 좀비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와라! 사자 인간! 날 즐겁게 만들어 봐라!”

곧이어 쿠베라는 돌진해 오면서 전신으로부터 강한 마력을 발산했다.

이건 위험하다.

또다시 본능이 내 뇌리에 경종을 울렸다.

{<강철방패 프리드웬> 장착}

난 이 빠른 돌진 공격을 절대 피하지 못하리라 판단했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저 맹렬한 기세의 추격은 떨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마치 예전 오딘이 사용하던 궁니르와도 같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공격은 그보다 훨씬 더 매섭다는 것.

쩌렁!

쿠베라의 손톱이, 아니, 앞발이 내 방패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는 순식간에 네 발로 뛰는 범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야차……. 마수화하는 능력을 가진 다크엘프들.’

다크엘프는 흔히 엘프와 동족 취급을 받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고한 이미지를 가진 그들과는 전혀 상반된 특징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엘프와 악마의 경계선에 위치한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다크엘프 내에서도 특별한 혈통을 가진 자들.’

야차와 나찰, 그리고 수라.

이 세 분류에 속하는 다크엘프는 사실상 지옥의 악마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자들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분류에 속하는 신들이 데바-로카 신계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하나가 바로 야차들의 왕 쿠베라.

범의 힘을 구사하는 그가,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이자였던 것이다.

투쾅!

프리드웬의 표면에 야수화한 쿠베라의 앞발이 닿는 순간,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주변의 드넓은 반경 내에 있는 지표면을 뒤집어엎었다.

대량의 흙먼지가 하늘 높이 치솟았고,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던 도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공격을 정면으로 막아낸 나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튕겨 나와 하늘 높이 띄워 올려졌다.

이 모든 게 마력 폭발 같은 특수한 마법이나 권능을 사용한 게 아니라.

순수한 물리 공격에 의해 벌어진 것이었다.

“으…… 젠장.”

난 하늘에서 날개를 펼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프리드웬 본체의 가공할 방어력 덕에 내 몸에 직접적인 타격이 들어오진 않았다.

방패를 든 왼팔이 조금 저리긴 하지만, 큰 무리는 없을 정도.

역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그 프리드웬의 자체적인 충격 흡수마저 뚫고 팔을 저리게 만든 쿠베라의 공격이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승리자의 사고체계> 발동}

난 여기서 다음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대처와 그 결과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시간이 정지한다.

나 역시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이 멈춘 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오직 나의 인식뿐.

다음 순간, 미래에 벌어질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지가 아닌, 합리적 예측에 의한 장면 구현이 이어진다.

쿠베라는 공중에 떠 있는 나를 쫓아 추격타를 먹이려 할 것이고, 거기에 검으로 대응한다면 난…….

‘죽는다.’

산산이 찢어 발겨지는 모습이 보인다.

이번엔 창으로 대응해 본다.

트리슈라를 꺼내 들고 날카롭고 섬세한 찌르기를 구사한다.

그 역시 실패.

난 또 한 번 죽었다.

한 손에는 프리드웬, 다른 한 손에는 창을 들고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행한다면?

그 역시 틀렸다.

쿠베라의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연속 공격을 내 반응속도로는 전부 막아낼 수 없다.

그 역시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틀렸다. 근접전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어.’

난 근본적인 전제부터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쿠베라.

저 녀석을 무구로 이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야차 중의 야차인 그와 몸을 부대끼며 싸우는 건, 그냥 지겠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근접전의 대가인 그에겐, 내가 내지르는 모든 검의 궤적이 빤히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을 바꾼다.

강자에 대항하기 위해 강공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다른 수단을 사용한다.

파앙! 파앙! 파앙!

“역시, 사자는 호랑이를 이길 수 없는 건가!”

쿠베라는 허공을 지그재그로 박차면서 눈으로도 쫓기 힘들 만큼 빠르게 상승해 왔다.

저 멀리 아래쪽 먼지구름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던 그는, 어느샌가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환영마검 폭풍’ 전개}

촤아악!

난 주저하지 않고 생각한 대로 환영마검들을 불러냈다.

백 수십 개에 달하는 작은 화염검들이 내 주변 허공을 가득 메웠다.

‘회전.’

난 그것들을 아까처럼 전방으로 발사하는 대신, 나를 중심으로 주변을 돌게끔 만들었다.

곧 환영마검들은 검은 화염의 소용돌이를 자아냈다.

“쓸데없는 짓!”

콰앙!

쿠베라는 그에도 아랑곳 않고 내게 앞발을 내질렀다.

몇 개의 환영마검들이 그의 몸에 틀어박혔지만, 그 정도 위력의 공격으로는 생채기를 내는 데에 그쳤을 뿐.

난 다시 프리드웬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내며 멀리 튕겨 나갔다.

‘절대 방패를 놓쳐선 안 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의 공격을 받아내는 데에 집중한다.

한 손에 무기를 들고 정면으로 맞서는 건 어렵지만,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며 공격을 받아내고 튕겨 나가길 반복할 뿐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집중력만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놈에겐 직접 공격 외에 어떠한 공격수단도 없다.’

야차들은 야수화하면 누구보다도 강력한 육체를 가지지만, 그 반대급부로 어떠한 마법적 현상도 구현하지 못한다.

즉, 저 정면에서 달려드는 공격만 잘 막아내면 다른 위협은 없다는 뜻이다.

쐐애액! 콰앙!

또다시 놈의 발톱이 방패에 작렬한다.

동시에 내 주변을 회전하는 환영마검 몇몇이 또 그에게 생채기를 냈다.

“언제까지 방패 뒤에 숨어 있을 테냐! 남자답게 덤벼라!”

그는 내게 윽박지르며 도발했다.

하지만 난 저런 것에 넘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더욱 내게 확신을 줬다.

‘통한다. 환영마검이.’

바로 가랑비에 젖는 듯한 피해의 축적이 그에게 영향을 가하고 있다는 확신 말이다.

개개의 공격력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쌓이면 쌓일수록 무시하기 어려운 피해.

본체인 나는 오로지 방어에만 전념하며 빈틈을 내주지 않고, 주변을 회전하는 환영마검에 공격하러 오는 쿠베라만이 피해를 입는다.

쾅! 쾅!

물론 그것만으로는 치명타를 입힐 수 없지만, 그럼에도 피해는 조금씩 쌓인다.

그것이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움찔.

저 단단해 보이는 접근전의 성벽에 균열이 생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통증에 의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작은 빈틈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지금이다.’

{<격룡창 트리슈라> 소환}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창을 틀어쥐고 놈을 향해 돌진했다.

{<청류 폭발> 발동}

퍼엉!

창 자루 뒷부분에서 푸른 물길이 분사되며 내 몸을 고속으로 밀어냈다.

아래에서 위로.

나보다 더 고공에 떠 있는 저 범의 뒷다리를 향해 창날을 내지른다.

“큭……! 멍청한!”

그 순간.

쿠베라는 기다렸다는 듯 변신을 풀고 내게 발을 뻗었다.

야수화 상태에서는 대응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각도에서.

인간형으로 변해 가까이 다가오는 나를 걷어차려는 것이다.

후웅.

“……엇……?”

“멍청한 건 내가 아닐걸.”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왜냐면 애초에 난 놈을 맞출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트리슈라는 한참 벗어난 각도로 날아들었고.

쿠베라의 다리는 애꿎은 공기만 갈랐을 뿐이다.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환영마검 유성’ 전개}

그 대신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화염검 한 자루가 내리꽂혔다.

그것은 홍랑귀가 사용하던 곡사 마력탄 능력으로부터 재정립된 환영마검의 변형식이었다.

“공격을 앞으로밖에 내지르지 못하는 바보의 비극이지.”

다각도에서 쇄도하는 다양한 공격 수단의 중요성을, 이젠 그도 깨달았을 것이다.

물론 이미 죽었지만 말이다.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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