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18화
“그럼 이제 각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
아마테라스는 본격적으로 내게 맡길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린 마하넷의 공장을 습격할 예정이야.”
그녀는 대뜸 다른 회사의 이름을 꺼냈다.
물론 난 이미 A&A의 주식을 사기 위해 정보를 수집할 때에 이쪽 세상의 환경에 대해 조사를 거쳤으므로, 지금 언급된 기업이 어떤 기업인지는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마하넷. 마하바라타 네트워크.’
세부적인 생산 품목은 다르지만 A&A와 사업 영역이 겹치는 다종족 초국적 기업.
두 회사 다 주력 사업이 군수이므로 경쟁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실제로는 기업이 국가를 대신하고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고 있으므로, 그건 기업 간의 경쟁이라기보단 적성국 사이의 군사적 대립이라 보는 게 더 옳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마테라스는 내게 그런 집단을 상대로 싸우라는 주문을 한 것이다.
“전쟁을 하라는 겁니까?”
“아아, 그렇게 받아들이면 안 되지. 이건 어디까지나 공작이야. 이쪽이나 저쪽이나, 서로 그렇게 일이 커지는 걸 바라진 않거든.”
“그런 것치고는 꽤 본격적인 것처럼 보입니다만.”
나는 츠쿠요미를 힐끗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츠쿠요미조(組)의 수장인 츠쿠요미.
그는 A&A 산하의 가장 큰 두 세력 중 하나의 리더다.
그러니까 아마테라스가 그를 이 자리에 불렀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휘하의 핵심 세력을 이 일에 개입시키기 위함이라는 뜻이었다.
“그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거든.”
“자세한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난 그녀가 도대체 머릿속으로 무엇을 구상하고 있는 건지 들어보고자 했다.
“네가 할 일은 간단해. 여기. 91번 외곽도로에 위치한 공장을 습격하는 거다. 그러는 동안 뒤에서 츠쿠요미가 일을 처리하는 거지. 그게 끝이야.”
“한마디로 저를 미끼로 쓰겠다는 거군요.”
“맞아. 왜냐면 넌 인간이라서 그렇게 습격을 가해도 표면적으로 저쪽이 우릴 의심할 명분이 없거든.”
종족 자체가 다른 나와 내 클랜원들을 전면에 내세워 자신들의 신분을 감춘 채 적대 행위를 하겠다는 아마테라스의 말.
듣는 입장에서는 꽤나 기분 나쁠 법도 한 이야기이지만, 그녀는 굉장히 태연하게 그런 소릴 내뱉었다.
그만큼 나를 움직이기에 충분한 보상을 내밀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분에 굳이 더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실질적인 내용을 파고들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하는 건?”
“신형 마나링크(manalink) 송수신기의 핵심 부품 설계도.”
마나링크는 쉽게 말해 마나를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이다.
예전 지구의 환경에 묘사하자면 마나를 소유한 모든 사람이 걸어 다니는 와이파이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
마하넷이 개발한 송수신 장치만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제약도 없이 오로지 개인 혹은 배터리에 저장된 마나로 무선통신을 할 수 있다.
……라고, 유메미에게 설명을 들었었다. 마하넷에 관해 조사하던 당시에 말이다.
“마나링크라면 마하넷의 주력 사업 아닙니까?”
“호오, 이쪽 세상에 넘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방인이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건가? 꽤나 열심히 공부했나 보군.”
“그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면 보안이 꽤 삼엄한 곳이겠군요.”
“맞아. 그래서 각오하고 움직여야 할 거다. 물론 우리도 지원을 해주겠지만, 알다시피 이쪽의 습격임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제약이 있어서 말이야. 그것도 티 나지 않는 한에서만 가능할 거야.”
그렇게 크고 중대한 일을 처음부터 맡긴다니, 대체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했다.
애초에 이 일은 내가 들은 것을 다른 곳에서 발설하기만 해도 위험한 이야기.
사실 여부의 검증을 떠나, 마하넷에서 아마테라스가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만 해도, 그녀가 준비한 일에 대해 중대한 차질을 빚게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다.
역으로 말하자면, 내 앞에서 대놓고 이런 논의를 한다는 건 내가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끔 철저히 감시하고 구속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아마테라스……. 조심해야겠어.’
물론 당장은 나 역시 그녀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할 계획이 없다.
당분간은 이 장단에 충분히 맞춰주는 것이 상책.
난 이 일견 무모해 보이는 습격 작전에 진심으로 뛰어들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도록 하죠.”
그때부터 우리는 습격 목표인 마나링크 부품 공장의 디테일한 사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 *
회의가 끝난 후, 나는 유메미와 함께 예의 그 비행 차량을 타고서 호텔로 돌아왔다.
나와 그녀가 객실에 들어오자마자 한 일은 바로, 방 안을 마력과 감각으로 탐지하는 것.
{<신화 사냥꾼의 본능> 발동}
유메미는 자신에게 더 익숙한 마나 탐지로 방 안을 훑어보았고, 난 오감을 극대화하는 특성을 사용했다.
힐끗.
이쪽 세상의 기계장치들은 모두 마력을 사용하기 때문일까.
수상한 물건을 발견한 건 유메미 쪽이 먼저였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고는 눈짓으로 침대 아래에 무언가 있다는 걸 암시했다.
난 곧바로 손바닥을 펼쳐 그녀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그리고는 빙정술식을 사용했다.
{진원진기가 <환란의 빙정>으로 대체된다.}
{공명기 <빙정술식> 파생형 ‘강성차단빙벽’ 전개}
쩌저적.
침대 전체가 하얀 얼음의 벽으로 빈틈없이 뒤덮인다.
아공간 속에서 프리드웬의 찢겨나간 선체를 보수하는 데 사용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빙벽.
이건 강도가 매우 높으면서도 동시에 외부로의 노출을 완전히 차단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즉, 이 방 안에서 나와 유메미 사이의 대화가 저 빙벽 안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도청장치…… 맞죠?”
“응. 아마테라스가 날 감시하려고 달아둔 모양이야.”
“도청이라……. 왠지 옛날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유메미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마법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자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 역시 한때는 세상의 뒤에서 암약하던 기업가의 각성자 대표들 중 하나였다.
당연히 얼마든지 이런 도청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아까 너도 봤지?”
“네.”
한편, 난 아까 아마테라스와의 만남에서 보았던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칠지도.
이쪽 세계의 보스가 머무는 방에는 으레 있을 법한 칼 장식으로 위장해 있던, 그 전설의 마법 무구를 말이다.
“두 자루 중 위쪽에 있던 물건……. 그게 신우 씨가 말했던 그 물건 맞죠? 칠지도.”
“맞아.”
일본인인 유메미에게는 더욱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드워프 종족의 신화는 그들 역사상의 전설로서 구전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음?”
“저건 왜 수호령의 투영무구로 구현되지 않은 걸까요?”
그녀는 각성자로서 당연히 가질 법한 의문을 내게 물었다.
엑스칼리버, 묠니르, 용광검 같은 전설적인 무구들은 다 수호령 자체가 가진 권능인 무구 투영으로 구현되어 있다.
각성자들이 직접 갖고 다니는 실물 무기는 바로 그 무구를 투영할 매개체로서만 존재하고 말이다.
하지만 칠지도는 전설의 무구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수호령의 권능이 아니라 실물 무구로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메미는 그걸 궁금해한 것이다.
우웅.
그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강한 마력의 파장이 퍼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마력에 대한 감응 능력으로 바라본 그 파장의 진원지엔 성질 더러워 보이는 여성의 형상이 희미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건 바리공주였다.
“……아. 주인 없이 봉인된 신화 속 무구는 실물로…….”
바리공주가 나를 대신해 그녀에게 대답을 해준 모양이었다.
“우리가 타고 온 배인 프리드웬과 같은 케이스군요.”
“맞았어. 그래서 더 중요한 물건이지.”
유메미가 바리공주에게 들은 대로, 칠지도는 프리드웬처럼 아주 먼 옛날 신화시대에 실제로 존재하던 실물 검 그대로 현재에 전해져 온 무구였다.
시스템에 의해 특정 수호령에 종속되고 그 위력과 효과가 해당 수호령을 보유한 각성자의 능력치에 따라 보정되는, 투영무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신물(神物)인 셈이다.
“차원을 넘나드는 테세우스의 배나, 막강한 방어 능력을 지닌 프리드웬처럼, 칠지도 역시 고대의 신화적인 힘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녀석이지.”
프리드웬은 적어도 방어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본 그 어떤 방어구에 비할 데 없으리만큼 강력한 물건이었다.
무겁고 단단한 강철 선체는 그 매서운 전설급 정예 마물의 공격도 거뜬히 막아냈고, 그것을 방패 형태로 변환하면 인벤토리에 넣어 다닐 수도 있으니 휴대성도 매우 뛰어나다.
원한다면 직접 손에 들고 방패로서 사용해도 충분했고 말이다.
지금은 엔진이 망가져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게 고쳐진다면 그 엘프들의 화력집중마저 정면에서 튕겨내는 ‘반사 역장’도 전개하는 게 가능하다.
하물며 테세우스의 배는 어떤가.
마음껏 차원을 뛰어넘는 건 물론이고, 그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코어는 대량의 마력을 무한히 생산하고 저장해 냈다.
맨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질호른에게 내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 배였던 것이다.
이처럼 신화시대에서 직접 전해 내려온 신물들은 사용자의 능력치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압도적인 위력을 이미 보유한 아티팩트였다.
칠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겉보기엔 수호령들이 사용하는 흔한 무구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고, 또 실제로도 그보다 격이 높은 무구들은 흔하지만.
바로 지금, 과거의 불멸자들이 도달했던 영역에 아직까지 닿지 못한 나에게 있어 그 시대의 힘을 고스란히 간직한 칠지도는 상대적으로 막강한 도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걸 우리가 빼앗는다……. 가능한 일일까요?”
“어렵지.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아.”
“무슨 수로요?”
“우선 네가 할 일부터 얘기해 보자. 거기에 걸려 있던 봉인 마법, 너도 확인했겠지?”
“네.”
“풀 수 있겠나?”
“꽤나 복잡해 보이긴 했지만, 머릿속에 술식을 다 기억해 놨어요. 아마 조금 시간을 들이면 해금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나와 아마테라스가 대화를 하는 사이, 유메미는 그 방에 장식되어 있던 칠지도의 봉인 마법 술식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렇게 귀중한 물건에는 필연적으로 보안 조치를 취해두었을 거란 판단하에, 그 자리에 유메미를 데려가 검을 살펴보도록 하게 한 것이다.
“마법적인 방해물이야 그렇게 풀어내면 되는데……. 문제는 그걸 가지고 와야 된다는 거죠.”
봉인마법 쪽에 별문제가 없다면, 이제 남은 건 실물을 탈취해 오는 것.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아마테라스와 그녀 휘하의 조직 전체를 상대로 정면 대결을 펼쳐 빼앗아오는 건 불가능하다.
개개인의 무력의 질로 보나, 양으로 보나 우린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둘 중 한 가지 방법을 써야 한다.
‘훔치거나, 혹은 타인을 통해 내 손에 들어오게 만들거나.’
“난 드워프들의 내부 세력 투쟁에 관여할 거야.”
“내부 세력 투쟁이라면……?”
“아마테라스 휘하에서 가장 위세가 큰 두 세력. 츠쿠요미와 스사노오의 경쟁 구도에 개입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