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16화
라이진이 클랜 마스터라며 소개시켜 준 자는 드워프 종족의 중년 여성이었다.
체형은 어린아이 같지만 짙은 주름과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깎여나간 강렬한 눈매의 소유자.
다다미가 깔린 좌식 사무실의 끝에, 모피 코트를 입고 파이프 모양 전자 담배를 물고서 두 자루의 카타나와 함께 앉아 있는 그 모습은…….
‘야쿠자 같군.’
……범죄 집단의 수장 같은 냄새를 물씬 풍겼다.
그녀뿐만 아니라 주변의 인물들도 마찬가지.
양쪽으로 주욱 길게 늘어서 있는 남자들은 모두 시커먼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저마다 라이진처럼 옷매무새 사이로 기계 신체가 빼꼼 드러나 보였다.
특이한 것은 그 기계 신체 위에도 문신을 새기고 있다는 사실.
용, 호랑이, 잉어 등.
물론 그건 문신이 아니라 그냥 페인트를 칠했다고 하는 게 더 옳아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공간 안에 있는 온갖 사물과 인물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암시를 보내고 있었다.
바로 저 ‘아마테라스’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하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암시를 말이다.
‘……타카마가하라의 주신 아마테라스.’
물론 나 역시 뼈가 시릴 정도로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저 자그마한 덩치의 여자는 다름 아닌 지상에 현신한 신 그 자체다.
그러니까…… 신화급 각성자의 몸에 신의 인격이 덧씌워진 그런 게 아니라.
먼 옛날 신화시대에 내가 마주쳤던 그 진짜 신.
그 드높은 격은 굳이 직접 검을 맞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그럴듯한 이방인이로군.”
그녀는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코트 안의 내 몸을 뒤덮은 용비늘 갑주 위로 시선이 타고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 눈빛은 마치 칼로 내 피부를 도려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그건 단순히 나를 겁주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꿰뚫어 보기 위함이었다.
“용의 피가 흐르는 인간……. 이런 걸물이 내 손에 들어올 줄이야.”
그녀는 벌써부터 날 자신의 소유물 취급하고 있다.
물론 제아무리 강한 무력을 가졌다고 해 봐야 어차피 가지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한데 참으로 기묘하군. 두 가지 상반된 속성의 마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니. 그것도 전혀 다른 존재들의 힘을 말이야.”
어쨌든 그녀는 꽤나 정확하게 내가 가진 힘의 본질을 파악했다.
‘거기까진 괜찮은데…….’
그러나 진짜 문제는 내 정체가 모든 신들의 적인 앙그라 마이뉴라는 것도 알고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점.
환란의 빙정은 요르문간드의 힘이고, 격멸의 업화는 본래 아지다하카의 불꽃이었으나 지금은 그보다 아몬의 불꽃이 더 짙게 섞여 있는 상태다.
그 덕에 아마테라스가 내 힘의 근원을 요르문간드와 아몬으로 봤다면 다행이지만, 그보다 더 깊이 숨어 있는 앙그라 마이뉴로서의 정체성을 알아봤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말로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서도 모른 척하는 건지…….’
저 비릿한 미소 속에 감춰진 진의는, 나조차도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다.
“아무튼, 통성명부터 해야겠군. 난 아마테라스다.”
그녀는 숨길 것 없이 자신의 이름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신화시대에 불렸던 이름 그대로.
신계가 아닌, 하계에 자리 잡은 신으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확실하게 한 것이었다.
아무튼 나 역시 일단은 통성명에 대한 대답을 했다.
“유신우.”
“말이 짧군. 예의를 차려야지.”
턱.
그런데, 내 단답에 근처에 서 있던 양복 입은 드워프 하나가 내게 다가와 나를 제압하려 했다.
종족 특성상 팔도 다리도 짧아 동작이 무언가 어중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힘이 타 종족에 비해 약한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작은 체구 때문에 무게중심이 안쪽으로 모여 있는 덕분인지 근력 자체는 인간보다 더 강한 편인 게 바로 이들 드워프.
그래서 그 양복 입은 남자는 키가 월등히 큰 나를 자신감 있게 제압하려 했다.
어깨를 붙잡고 도가니를 차 내 상체를 아래쪽으로 끌어내리려 한 것이다.
“으읍!?”
콰당.
하지만 바닥에 나뒹군 건 도리어 내가 아니라 그쪽이었다.
난 내 어깨에 올라온 손을 붙잡아 간단히 꺾어 뿌리쳤을 뿐이지만, 그는 꼴사납게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이, 이런!”
스릉!
내게 굴욕을 당한 그는 곧장 허리춤에서 짧은 칼, 와키자시를 꺼내 들었지만.
치익.
“어……? 아……!”
퍼억!
그 순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거울 하나가 허공에 뜬 채로 그에게 백색광을 비추더니, 그 즉시 드워프는 몸 전체가 부풀어 오르며 폭발하고 말았고.
시체에서 튀어나온 뼛조각들과 살점들이 사방에 튀면서, 다다미와 양쪽에 서 있던 양복 입은 드워프들이 그걸 고스란히 뒤집어써야만 했다.
난 그 순간에 역장을 펼쳐 파편을 전부 막아냈지만, 그 너머로 전해져 오는 폭발의 후폭풍은 복부가 묵직해질 정도로 강렬했다.
‘숨 쉬는 것도 힘들군. 역시 이건…….’
“쯧. 누가 감히 손님에게 함부로 손을 대라고 했나.”
예상대로 그 거울의 주인은 아마테라스였다.
안 그래도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더욱 구겨지면서 험악함을 풀풀 풍겨댔다.
신경이 바짝 곤두서며 온몸에 위험 신호가 울린다.
“실례했군. 그럼 계속 하던 이야길 하도록 하지.”
하지만 아마테라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와 자신의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대는 우리 도시에서 보호받고 싶은 거겠지?”
“그렇습니다.”
“이걸 받아라.”
탓.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 하나를 내게 던졌다.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VIP’라는 글씨가 새겨진 카드였다.
“그거면 이 도시 안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거다. 네 친구들이 머무를 장소도 포함해서 말이야.”
“아마테라스 님, 어째서 이런 처음 보는 자에게……!”
보기만 해도 특별해 보이는 그 카드는 정말 대단한 게 맞았던 모양이다.
이 난장판에도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던 몇몇 드워프들이 아마테라스의 행동에 딴지를 건 것이다.
“내가 말했잖아. 이 친구는 아주 특별한 친구라고. 그럼 당연히 특별 대우를 해줘야지.”
“하지만……!”
드워프는 끝내 그녀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한순간 스쳐 지나간 살기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잔말 말고 호텔로 안내나 해.”
“알겠습니다.”
그리곤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서 날 바깥으로 내보내려 했다.
난 그런 그녀에게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궁금증을 드러냈다.
“제겐 아무런 요구도 않으십니까?”
당연히 이런 호의를 받을 때에는 뭔가를 요구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아마테라스는 다짜고짜 VIP 카드를 던져 주고는 우릴 보호해 주겠다고 했다.
보통 이런 건 생각보다 더 큰 대가를 숨기고 있게 마련.
“대가? 있지.”
“그게 뭡니까?”
“돈.”
“……음?”
“간단한 논리야. 이 도시에선 돈이 전부지.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내가 너에게 해준 만큼, 그에 상응하는 돈을 가져오면 된다는 뜻이야.”
생각 외로 간편한 대답에 난 잠시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건 적어도 내게는 아주 좋은 의미의 백치 상태였다.
“너라면 돈이 될 만한 일을 많이 맡길 수 있을 것 같거든. 데리고 있는 부하도 많겠다, 나랑 같이 사업하면 딱일 것 같아서.”
“……그렇습니까.”
“거봐. 역시 거절 안 할 거잖아? 이런 얘긴 좋은 곳에서 푹 쉬고 난 다음에 해도 충분했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마테라스의 말은 ‘나랑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었다.
그걸 이렇게 막무가내로 카드부터 들이밀면서 건넨 것이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온 이상 나에겐 거부권도 없었기에, 중간 과정을 다 생략하고 이렇게 뜬금없이 얘기가 흘러간 거겠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호의는 잘 받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거절할 이유가 없는 건 내 쪽의 유인이 더 컸다.
‘이 도시에선 돈이 전부라고?’
아까도 라이진이라는 자가 돈 얘기를 꺼내기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건 단순한 운이 아니었다.
‘그럼 나야말로 땡큐지.’
무수한 강자들이 득시글거리는 바로 이곳.
여기선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객실 안에 위치한 인공 온천에서 희뿌연 김이 올라온다.
난 그 뜨끈한 물속에 용비늘 갑주도 해제한 맨몸을 담갔다.
‘오랜만이군.’
정말 오래간만에 이런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깨끗하고 정갈한 현대식 숙소에서 머무는 호사 말이다.
지구로부터의 대규모 엑소더스 이후로, 그동안은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고 해봐야 재래식에 그치는 곳만을 이용해야만 했다.
골드와 다이아로 영지의 발전을 극대화시켰다곤 하지만, 그럼에도 현대 지구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수백 년 이상 후퇴한 문명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서 대륙에는 이미 지구만큼, 아니, 지구보다 더 발전해 있다고 해도 좋을 만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 곳의 최고급 호텔에 들어와 있으니, 갑자기 숙식 환경이 몇십 배 이상 좋아진 셈이다.
‘여긴 확실히 서 대륙이 맞는 것 같긴 한데…….’
난 전면 유리로 되어 있는 한쪽 벽면 바깥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해가 진 도시는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으로 가득했다.
날아다니는 차량들은 건물 사이를 오가고, 그 차량들이 드나드는 사무용 빌딩들은 밤을 모르고 환히 불빛을 뿜고 있다.
‘대체 왜 두 대륙 사이에 이런 격차가 발생한 거지?’
이곳 사람들은 ‘서 대륙’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내린 결론은 여기가 서 대륙이 맞다는 것이었다.
드워프, 트롤, 다크엘프, 그리고 인간.
이 땅에 사는 저 네 주요 종족들이, 예전의 내가 방문했던 신화시대의 서 대륙 지배자들과 그대로 일치했기 때문이다.
인간, 오크, 엘프, 렙틸리언들이 과거와 동일하게 동 대륙에 이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저들 역시 시스템의 기획에 따라 적당한 시점에 각자의 이면세계에서 이쪽으로 건너왔을 터.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땅의 구성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에 살아온 것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 그러했다.
‘암흑기 이후로 100년이 지났다고 했지.’
듣기로는 100년 전, 이곳에 갑작스레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마물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종족이 거의 멸망 직전까지 가면서 모든 기술과 역사를 소실한 ‘암흑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인즉,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종족들은 그 100년보다도 훨씬 더 전에 여기에 건너왔다는 뜻인 것이다.
동 대륙의 주민들은 기껏 해봐야 각성자가 나타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좀 더 정보를 얻어봐야겠어.’
여러 가지 정황들을 살펴보고 나니, 난 계획을 크게 수정했다.
처음엔 여기서 옹구스를 만나 야드가르가 갇힌 거울 세계에 대한 정보만 얻고 빠르게 돌아가려 했으나.
이젠 여기서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야드가르를 구출하고 난 뒤엔 모든 신들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한다……. 시바의 힘을 되찾음으로써.’
강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이곳.
여기서 난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작정이다.
‘돈이면 다 된다고 했지……. 우선 시험 삼아 그것부터 해볼까.’
내가 손짓하자, 객실 안에 비치된 컴퓨터의 홀로그램 모니터가 욕조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모니터 내엔 무수한 숫자와 물결치는 그래프가 가득히 담겨 있었다.
난 그 위에 손가락을 휘적거렸다.
[주식회사 아리사카 앤 아마테라스]
[매수 주식 수: 200,000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