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09화
강철방패 프리드웬.
상체를 가리는 크기의 금속제 사각 방패가 내 손에 쥐어졌다.
그 크고 거대했던 배 한 척이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진 것이다.
‘무겁다. 하지만……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크기는 작아졌어도 배의 질량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오히려 원래도 단단했던 그 배가 더욱 작게 압축되면서 훨씬 더 견고해진 느낌이었다.
무거우니 안정감도 높다.
그런데 원래는 내 힘으로 들지도 못했던 무게의 철 덩어리가, 지금은 어째서인지 아주 쉽게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여졌다.
무게감은 그대로임에도 말이다.
이건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도와 방패를 떠받쳐주고 있는 듯한 느낌.
프리드웬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내 팔의 움직임을 따라오는 것 같았다.
“저, 저건!”
“쏴라! 놈이 움직이지 않는 지금!”
피피피핑!
큐웅!
그때, 협곡 위에서 나를 발견한 엘프들이 내 쪽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두께와 형상이 각기 다른 온갖 종류의 마력화기가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갑옷을 입은 보병들이 쏘는 황금 지팡이는 그리 무섭지 않지만, 내가 경계해야 할 것은 거신과 전차처럼 보이는 기갑차량의 주포.
저런 건 내 용비늘 갑주의 자체적인 방어력만으로는 견뎌내기 힘들다.
‘방패를 시험할 기회다.’
그래서 난 프리드웬을 앞으로 내밀어 방어를 했다.
상체를 가리는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 이 방패로는 새어 들어오는 공격을 전부 막을 수 없을 것 같으나.
{<강철방패 프리드웬>의 반사 역장이 전개됩니다.}
그 안에 마력을 주입하자, 공간을 일렁이게 만드는 투명한 벽이 방패 앞에 생겨났다.
그리고 적의 공격이 접근한 순간.
후웅.
모든 투사체가 일제히 방향을 바꿔 원래 날아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콰콰쾅! 콰쾅!
엘프들이 서 있던 곳에 자신들이 날린 공격이 그대로 쏟아졌다.
땅 위에 무수한 크레이터가 생길 만큼 강한 화력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은 것이다.
‘안 되지. 넌 그냥 죽으면 안 돼.’
난 거기서 추가타를 날리는 대신 한 엘프를 바라보면서 지상으로 강하했다.
이 무지막지한 무게의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다가가는 질량 돌진.
투쾅!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아까 전의 포격을 반사한 것보다 더 강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졌다.
어떤 마법적인 힘을 방출하거나 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폭발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의 무게만으로 일으킨 충격이었다.
엘프들이 서 있던 지반이 다시 한 번 더 무너져 내리면서 마치 거대한 괴물이 땅을 한 입 베어 문 듯 큰 반원형의 만이 생기고 말았다.
그렇게 무너져 내린 흙과 바위 더미는 아래쪽의 용암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미처 피하지 못한 엘프들과 함께 말이다.
“으…… 으으.”
난 그 와중에도 단 한 명만은 살렸다.
다름 아닌 듀엔데.
지면에 방패를 내리치기 직전, 내 앞에 서 있던 그를 오른손으로 낚아챈 것이었다.
“너는 계속 살아서 날 도와줘야지.”
질호른은 미련 없이 깔끔하게 죽였다.
그는 워낙 교활한 자였기에 살려 두면 어떤 후환이 생길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듀엔데는 다르다.
난 지금 그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거신의 동력원에 적용된 기술 문서는 아직도 여전히 내 손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엘프들의 마법 기술로 만든 문서였기에 빼도 박도 못 하는 증거였다.
게다가 이 녀석은 자신의 안위와 이득을 위해 종족에 해가 되는 선택을 서슴지 않고 하는 녀석이다.
그러니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날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이번의 뒤통수 사건은 나름대로 질호른 쪽을 선택하는 게 더 옳은 판단이라 생각한 거였겠지.
결국 잘못된 판단이었지만 말이다.
“……집정관님은…… 어떻게…….”
“죽었다.”
“…….”
그는 ‘역시’라는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 이 시점에서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거란 생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난 그를 안심시켰다.
“넌 걱정하지 마.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너만큼은 살려둘 테니까.”
“……왜지?”
“왜긴, 그래도 여전히 쓸모가 있으니까 살리려는 거지. 아직은 너희 종족이 내게 등을 돌리면 안 되거든.”
엘프는 여전히 강하다.
집정관도 죽었고, 테세우스의 배도 침몰했지만.
저들이 살고 있는 원래 세계에서 진짜 마음먹고 이쪽 세계를 침공해 온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특히나 저쪽엔 나도 모르는 정보를 꿰뚫어 보는 능력자가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저들에게서 뭔가를 더 가져올 수 있다면 가져와야 한다.
그 미지의 능력자 덕에 프리드웬을 얻은 것처럼, 이 세상에는 아직 내가 존재조차 모르는 비밀들이 여럿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등을 돌리면 안 된다고? 이제 와서?”
내 말을 들은 듀엔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엉망으로 파괴된 엘프 기갑차량들과 나뒹구는 동족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날 살린다 하더라도, 본국에서 이걸 알면 너희 인간들은…….”
“그러니까 네가 잘해줘야지.”
스윽.
난 그를 바닥에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그러고는 어깨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돌아가서 높으신 분들을 잘 설득해 보라고. 이쪽 세계의 어떤 알 수 없는 존재 때문에 병력이 몰살당하고 집정관도 잃었다는 얘길 말이야. 차원 이동은 내가 시켜줄 테니, 넌 그냥 돌아가서 말만 잘하면 돼.”
“……내가 왜 너를 따라야 하지?”
반문하는 듀엔데의 눈동자는 크게 흔들렸다.
이미 그것만으로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선 나에게 붙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돌아가서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나은지 수지타산을 가늠하는 것이다.
“안 들으면 별수 있나. 너한테 받았던 걸 다 까발리는 수밖에. 적에게 핵심 군사 기술을 넘겨준 죄는 그쪽 세계에서도 절대 만만한 게 아닐 텐데 말이지. 그렇지 않나?”
“큭.”
듀엔데는 절대 질호른이 내게 살해당했다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진심으로 엘프 종족을 위한다면야 사실대로 말하고 적법한 처벌을 받는 게 좋겠지만.
결국 개인의 관점에선 자신이 없으면 종족의 번영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렇게 거창한 민족적 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애초에 내게 이런 약점을 잡히지도 않았겠지.
스스로의 출세를 위해 자국의 기밀정보를 빼돌린 이 녀석은, 결국 내 앞에서 길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선 나를 속인 죄로 벌을 주고 싶은데 말이야. 어차피 넌 바로 옆에 있는 상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을 테고. 이번엔 그냥 너그럽게 용서해 주도록 할게.”
“……젠장.”
듀엔데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신이 살길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모습 때문에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이었다.
* * *
{차원 엔진 가동 완료. 대상 영역을 <제2 엘프계>로 전이합니다.}
다시 배 형태로 돌아온 프리드웬에서, 나는 차원 엔진을 가동시켜 듀엔데를 원래 자신의 세계로 보낼 준비를 완료했다.
바벨탑에서 보여줬던, 테세우스의 배를 위시한 그 웅장한 황금 함대는 진작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에 와서 홀로 남아버린 그는 극히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종족들은 포탈을 타고 손쉽게 드나드는 이면세계를, 엘프들은 이런 장치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군요.”
“그러게 자존심 세우지 말고 진작 영지 점령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테세우스의 배까지 침몰당하는 일이 생길 줄은 저들도 몰랐을 테니까요.”
“결국 시스템이 만드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건가.”
유메미와 레아가 차원 이동이 진행되는 장면을 쳐다보면서 말을 주고받았다.
레아가 한 마지막 말은 어쩐지 나에겐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현시점, 이 세상 누구보다도 시스템의 규칙을 마음대로 어기고 다니는 나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범주를 벗어난 엘프들의 독자적인 기술력. 숨겨진 비밀을 꿰뚫어 보는 능력자. 나와는 적이 될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내겐 꼭 필요한……. 모순적이군.’
그녀가 말한 ‘불이익’은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것이다.
그렇기에 더 확실하게 대비해야만 한다.
“이봐.”
한편, 묵묵히 떠날 채비를 하던 듀엔데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정말…… 이걸로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거지?”
그의 손에는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큼 작은 나무 상자가 쥐어져 있었다.
그건 유메미가 만든 마법 도구였다.
“네. 그쪽에 있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돼요.”
“이런 걸로…….”
듀엔데는 영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나무 상자는 다름 아닌 신호 전달 마법 스크롤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아티팩트.
신호 전달 마법 스크롤은 던전 안과 밖에서 서로 통할 수 있을 정도로 전달력이 매우 높은데.
그 말인즉 그 신호는 본세계(던전 안)와 이면세계(지구) 사이의 차원의 벽을 뛰어넘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또 다른 이면세계인 엘프계에도 통할 테고, 듀엔데는 이걸 사용해 나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내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러면 난 프리드웬에서 차원 엔진을 가동해 그를 이쪽 세상으로 불러내고, 이걸로 상호 간의 연락망을 유지하는 것이다.
“……정말 되는 건가?”
듀엔데가 재차 그 장치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자, 유메미가 발끈했다.
“그 정도는 아주 쉬운 마법이라서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알았다.”
듀엔데는 못내 시원찮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의 그 대단한 테크놀로지가 담긴 물건만 보다가, 좀 더 원초적인 마법에 가까운, 인간이 만든 아티팩트를 보니 믿을 수 없었던 모양.
그래도 별달리 수는 없었다.
그도 내게 의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연락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사용하도록. 물론 되도록이면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용하는 게 좋겠지.”
“반대로 당신이 우리 세계로 넘어올 수도 있나?”
“그거야, 뭐.”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듀엔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것만은 참아줬으면 좋겠군. 그런 일이 생기면 난 정말 입장이 난처해질지도 몰라.”
그는 끝까지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타 종족의 엘프계 침공이라는 큰 사건을 놓고도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그를 더 좋게 보는 거지만 말이다.
“네가 난처해지지 않도록, 일을 잘 처리하기만 한다면 말이지.”
“……알았다. 알겠어.”
그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절대 오늘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번 일로 괜히 섣불리 나를 뒤통수치려다간 훨씬 더 크게 당할 거란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럼……. 이만.”
더 이상 이런 이야기에 질렸다는 듯, 그는 빠르게 인사를 하고는 얼른 발뺌하려 했다.
그러고는 차원 이동이 발동되는 작은 영역 위로 올라섰다.
{지정 영역의 <제2 엘프계> 전이가 시작됩니다. 10……9……8…….}
나 역시 그를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 프리드웬에 명령을 내렸을 뿐.
파앗.
{전이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본세계로 넘어왔던 엘프 황금함대는 완전히 몰락하고 그중 단 한 명의 생존자만이 남아서 돌아가는 것으로 이 일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일단은 끝맺음을 맺었다고, 듀엔데는 생각하고 있겠지.
‘아몬.’
-때마침 지겨운 참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은 대악마 아몬을 불렀다.
그와는 격멸의 업화로 인해 정신이 연결되어 있던 상태.
‘준비해. 네가 원하는 파괴 공작을 벌일 시간이 곧 올 테니까.’
-파괴 공작? 그런 걸론 시시한데. 난 겨우 지정한 대상 몇 개를 부수는 일보다는…….
‘목표물은 한 행성 전체다.’
-……그런 거라면 말이 달라지지.
이번엔 내 차례였다.
내가 저들의 뒤통수를 칠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