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07화 (207/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07화

아델과 레아를 비롯한 용기사 일행과, 엘프들은 협곡을 사이에 두고 대치 상황을 이어갔다.

“젠장…….”

“큭큭.”

같은 장소에, 같은 목적을 두고서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희비가 교차한다.

쿠쿵. 콰르릉.

그러다 어느 순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지각이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비좁은 협곡의 경사면이 무너져 내려 아래쪽의 용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양 측의 인원들은 거기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조금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나오는군. 드디어.”

질호른이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정말 돌무더기가 쓸려 내려간 용암 안쪽이 위로 불룩하게 솟기 시작한 것이다.

쿠구구궁.

곧이어 그 안쪽에서 금속으로 된 물체의 일부분이 튀어나왔다.

뾰족하게 치솟아 있는 돛에서 시작해, 넓고 거대한 갑판과 선체 하부에 이르기까지.

용암 아래로부터 프리드웬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게 그 강철선 프리드웬?”

듀엔데는 말로만 듣던 인간의 배를 보고서 갸우뚱했다.

자신이 기대한 것에 비해 외견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강철로 만들어졌을 뿐, 외견은 한참 구식인 것 같은데……?”

프리드웬의 외양은,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먼 과거의 범선과 똑같았다.

엘프 종족의 기준으로는 중세 시대도 아닌 고대 시대 정도는 되어야 볼 수 있는 수준의 후진적인 기술력을 갖춘 배.

다만 재질이 나무가 아닌 매끈한 금속이라는 특이한 점이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높게 뻗어 있는 마스트와 거기에 붙어 있는 돛은 영락없는 풍력으로 움직이는 배의 모습이었다.

“신경 쓸 것 없다. 차원 엔진 코어를 달기만 하면 외견 따위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확실히 인간의 물건은 엘프의 것에 비하면 많이 뒤처지는 것 같습니다.”

“타고난 종의 우열이지.”

질호른은 종족 우월론을 들먹이며 프리드웬을 더 깎아내렸다.

엘프계에서는 흔하디흔한 태도.

그의 관점이 이렇다 보니 테세우스의 배를 잃고 인간에게 도움을 부탁할 때 얼마나 비참함을 느꼈을지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유신우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여야 하는 타이밍에도 자존심을 꺾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차원 엔진을 가져와라. 곧바로 프리드웬을 테세우스의 배로 만든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입니까?”

듀엔데의 물음에 질호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군말 없이 부하들에게 테세우스의 배의 코어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우우웅.

잠시 후, 황금색 소형함 안쪽에 고이 보관해 두었던 차원 엔진 코어가 호버크래프트에 실려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 마법 문자가 빙 둘러 적혀 있는 형태의 사람 몸통만 한 크기의 원기둥.

각 문자에선 끊임없이 푸른빛이 발하고 있고 그와 함께 다량의 마나 역시 방출되고 있었다.

그건 그 자체만으로 근처에 있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고압의 마력 발생기였기에.

황금 갑옷을 입지 않은 맨몸으로는 아마도 질식사할지도 모른다.

“가자. 내가 직접 간다.”

질호른은 병사들이 타고 있는 호버크래프트에 탑승했다.

자신이 직접 차원 엔진 코어를 장착하기 위함이었다.

“저는…….”

“너는 여기서 저 녀석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감시해. 코어 설치는 내가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는 듀엔데를 이곳에 남겨둔 채, 공중 이동 모드로 변형된 호버크래프트를 타고 협곡의 위쪽으로 날아올라 공중에 떠 있는 프리드웬으로 접근했다.

* * *

갑판에 도달한 질호른은 오른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호버크래프트에 실려 있던 차원 엔진 코어가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그의 근처로 날아왔다.

황금 갑옷에 장착된 역장 발생 장치로 일종의 텔레키네시스 마법과도 같은 효과를 낸 것이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기다려라.”

질호른은 같이 올라온 호버크래프트 조종사와 승무원들도 이곳에 내버려둔 채 자기 혼자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시 안쪽에 위험한 존재라도 있으면…….”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나 혼자서 전부 해결할 수 있으니까.”

병사들의 걱정은 합리적이었다.

그들도 이 아래에 그 인간 종족의 최강자, 유신우가 내려갔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그가 살아서 프리드웬 안에 타고 있다면 그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된다.

만에 하나 그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질호른 혼자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다.

자신들이 뒤통수를 쳤다는 걸 알게 된 유신우에게는 변명조차 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원로원의 세 현자께서 하신 예측에는 빗나감이 없다. 그러니 너희는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질호른은 매우 당당했다.

이 배에는 어떠한 위험도 남아 있지 않을 거란 확신.

그건 ‘원로원의 세 현자’가 전한 정보는 반드시 맞아 떨어진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패치 노트의 범주를 넘어서 다른 세계,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비밀까지 내다보는 능력자들인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곳 리타네스포스 협곡에 잠든 프리드웬에 접근한 자는 반드시 죽게 된다.

왜냐하면 프리드웬은 생명체의 영혼을 구성하는 에너지인 에테르를 잡아먹고 움직이는 배였기 때문이다.

‘배의 수호자인 ‘호수의 여인’은 극히 배가 고픈 상태. 유신우는 에테르를 전부 빼앗기고 껍데기만 남았겠지.’

그런 정보를 알지 못하고 섣불리 접근해서는 죽기 십상이다.

물론 그건 종을 불문하고 에테르를 가진 생명체라면 누구든 마찬가지기에, 질호른 역시 그 흡수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지금 배가 용암을 뚫고 협곡 위로 떠오른 것의 의미는, 이미 연료가 충분히 공급되었다는 뜻.

즉, 유신우 개인이 가진 엄청난 양의 에테르만으로 프리드웬을 부양시키기에 충분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질호른은 지금 유신우로 인한 위협과 배 자체의 위협, 둘 모두 없다는 걸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과감하게 접근했던 것이다.

덜컥.

그는 망설이지 않고 갑판 하부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다.

마치 배가 그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문은 아주 자연스럽게 열렸다.

압력을 감지하는 센서라도 달린 것처럼, 손을 대고 살짝 잡아당기기만 했는데 저절로 움직였다.

“역시, 이 배도 의지를 가지고 있군.”

질호른은 이런 현상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 정도 수준의 격이 담긴 신화적 물건이라면, 사용자를 알아보거나 가리는 정도의 의식을 가진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원래 그가 탔던 테세우스의 배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저벅. 저벅.

그는 역장으로 붙잡은 차원 엔진 코어를 가지고서 갑판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원래 이런 범선에는 당연히 동력실이랄 게 없는 게 정상이지만, 에테르로 움직인다는 원리에 걸맞게 외형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의 원천이 담겨 있는 장소가 있었다.

질호른은 황금 투구의 기능을 사용해 바로 그 에너지 원천이 있는 곳으로 거침없이 다가갔다.

“엘프?”

곧, 이 배의 수호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얀 옷을 입은 여성.

호수의 여인이 동력실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잠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배 안에 들어온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 엘프라니, 기분이 좋지 않군.”

그녀는 굉장히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다고 해야 할까.

“뭐, 그래도 파충류나 잘 씻지도 않는 초록 피부들보다는 낫지만.”

질호른은 그런 그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생각보다 쉽게 다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수호자라기에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했더니……. 좀 강한 각성자 수준이군. 그것도 물리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는.’

배는 이미 에테르를 충분히 받아들여서 당장 위협이 될 것도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몰랐는데 잘됐다 싶었다.

질호른은 당장 그녀 앞에서 차원 엔진 코어를 설치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수호자. 당신을 위해 선물을 가지고 왔다.”

“선물? 그게 뭐지?”

“직접 봐라.”

그는 역장을 조종해 가지고 온 원기둥 형태의 코어를 앞으로 내밀었다.

우웅. 우웅.

대량의 마력을 뿜어대는 그것이 호수의 여인과 접촉하자 더 강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불길한 물건이군.”

“전혀 그렇지 않아. 이건 당신이 다시는 저 어두운 곳에 갇힐 필요 없이, 영원히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줄 물건이다.”

질호른은 그것에 대해 가감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차원 엔진 코어는 정말로 무한한 동력을 만들어내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 배의 정체성이 테세우스의 배로 완전히 바뀐다는 것만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는 이걸 프리드웬에 설치하면 호수의 여인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질 거라는 얘기는 쏙 빼놓았다.

“그래?”

때마침 동력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지하에 갇혀 있던 그녀에겐 너무나도 달콤한 이야기일 것이다.

굳이 억지로 설득할 것도 없이, 그녀는 아주 손쉽게 질호른의 말에 넘어왔다.

“물론. 그러니 당신이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군.”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별거 아니야. 거기 있는 에테르 코어 대신 이걸 넣기만 하면 돼.”

“그런 거라면 당신이 직접 하면 되겠네.”

호수의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계획에 동조해 주었다.

질호른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알았다. 그럼 내가 하도록 하지.”

주인이 없으면 움직이지도 못하는 배.

이제 곧 있으면 이 배는 완전히 자기 것이 된다.

한없이 긴 신화와 전설의 시간 동안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고 움직여졌던 이 배가, 지금부터는 엘프 종족의 물건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들은 이 배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니, 우월한 종족인 엘프가 쓰는 게 맞아.’

그는 오른손 역장에 가둬 놓은 코어를 앞으로 내밀고, 왼손 역장으로는 이미 동력실에 위치해 있는 에테르 코어를 붙잡았다.

그러면서 마력 공급이 끊어지지 않게끔, 아주 조심스럽게 그 둘을 교체시켰다.

{<테세우스의 배>가 <강철선 프리드웬>을 잠식합니다.}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프리드웬의 본질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테세우스의 배는 애초부터 이렇게 하도록 만들어진 물건이었기 때문에, 오류 메시지가 나타나지도 않았다.

프리드웬이 테세우스의 배로 변화하는 건 변칙적인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변칙적인 것은, 그 반대의 일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오류! <테세우스의 배> 잠식 프로세스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뭐, 뭐지?”

질호른은 난생 처음 보는 메시지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른 배가 테세우스의 배에 잡아먹히는 과정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던 그였지만, 이런 메시지가 나타난다는 건 과거의 기록으로도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여기까지 모든 게 다, 아무런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나타난 장애물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변화가 완료되고 사용자 등록만 하면 되는 건데.’

애초부터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다.

혹여 유신우가 배를 작동하는 데 실패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에테르를 흡수당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건 아닌지.

호수의 여인이 훼방을 놓는 건 아닌지.

이번 일은 그런 불안요소들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온갖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구상해 놓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문제가 없다가, 제일 문제가 없어야 될 부분에 문제가 생겨버렸다.

코어까지 교체했는데, 시스템이 그걸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스템이 거부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의 규칙을 거스르는 무언가’가 거부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악룡 포식 변형>이 해제되었다.}

그 순간, 바로 그 ‘시스템의 규칙을 거스르는 존재’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한없이 여리해 보이던 호수의 여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 이곳에서 질호른이.

끔찍하게도 만나기 싫은.

가장 두려운 존재가 얼굴을 그 앞에 들이민 것이다.

“으아앗!”

질호른은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선물 감사합니다, 집정관님. 이 배는 이제 제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