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79화
아델은 오랜 시간 유신우의 곁에 있으면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사고방식, 전술, 태도, 신중함과 과감함, 그리고 전투 경험.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은 바로 ‘영혼’이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싸움을 통해 혼에 쌓여가는 무의 업은 단순히 스테이터스처럼 수치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었고.
스킬이나 권능처럼 익히는 순간 직접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쌓이고 쌓여 티끌이 태산을 이루게 되었을 때.
영혼에 축적되는 무의 업은 그때 비로소 진정한 힘의 형태로 발현되는 것이었다.
‘드래곤……? 내가?’
그 순간은 검기를 발출한 아델은 본인 스스로도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동안 자신이 수련하며 만들어낸 기술과는 전혀 다른 것이 튀어나왔으니 말이다.
적사자(赤獅子)가 아닌 적룡(赤龍).
그것도 평범한 붉은 용이 아니라, 머리가 세 개 달린 포악한 드래곤이었다.
색깔만 붉을 뿐이지, 그 모습은 유신우가 소환하는 아지다하카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내가 마스터의 힘을……?’
콰우우우!
“꺄아아악!”
그것은 브리이드가 뻗어낸 화염과 함께 브리이드 본인까지 집어삼켰다.
닿는 모든 것을 할퀴고 물어뜯으며, 유기물이고 무기물이고 할 것 없이 사정없이 파괴했다.
그 포악한 용의 힘이 붉은 검기의 형상으로써 이곳에 있는 그대로 현신한 것이다.
고오오.
모든 파괴 행위가 끝난 후, 붉은 아지다하카는 그대로 사라졌다.
남은 자리엔 본래의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찢겨 나간 브리이드의 시체만이 남아 있었고.
그 위로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기분 나쁜 서늘함이 흐를 뿐.
“이럴 수가…….”
아델은 자신의 검으로 이런 걸 흩뿌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나 지독한 암흑의 기운이 자신의 몸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도 그렇고, 클랜 마스터인 유신우만의 힘을 자신이 발휘했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희열과 두려움이 동시에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이런 힘을 가져도 되는 걸까.
혹시나 이게 유신우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저쪽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강력한 마력의 충돌로 인해 성내에 잔류하고 있던 인원들이 수상함을 느끼고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대로 계속 가자.’
아델은 이렇게 된 김에 빼지 않고 더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갈 생각을 했다.
이미 신화급 각성자, 아니, 신까지 죽였는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을까.
성내에 주둔한 병력 대부분이 유신우와 싸우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 있는 지금.
이건 어쩌면 오히려 그녀에게 기회일 수도 있었다.
* * *
화아악.
에테르 큐브에 투영되었던 라의 영체가 불꽃으로 화하면서, 나로부터 시작해 내 뒤로 쫓아오고 있는 용기사들에게까지 뻗었다.
그것은 이윽고 거대한 붉은 날개를 펼친 한 마리의 화조(火鳥)가 되었다.
나를 필두로 한 드래곤 나이트 편대 전체가 헬리오폴리스의 불사조로 변화한 것이다.
‘충돌 공격……. 누가 이기는지 보자.’
순수한 무력으로 밀어붙이는 오그마와 강한 피지컬을 가진 페가수스 기수 편대.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충돌 공격을 행하는 그들에게 유효한 공격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똑같은 돌진 공격을 행하되, 태양신의 불꽃으로 둘러싸인 우리와 부딪히면 도리어 피해를 입는 건 저쪽이 되는 것이다.
쐐애애액!
나는 편대를 이끌어 그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기본적으로 빠른 알파 퓨리 와이번들의 활공에, 고공에서 아래쪽으로 강하하는 에너지 기동에다 비행형 권능인 ‘저물어가는 아툼’까지 더해지자, 그 속도는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았다.
이제는 나 스스로도 제어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감히 이 몸의 방식을 따라 하려는 것이냐! 오만한 필멸자 놈이!”
그런 와중에도 오그마는 계속해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내게 달려들었다.
눈앞에서 이 위협적인 형상과 마력을 보고도,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자만심이 하늘을 찌를 기세로군.’
저렇게 나와준다면야 나야말로 환영이다.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지금, 혹시나 놈이 겁을 먹고 피한다거나 하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리어 정면 승부를 걸겠다고 하니, 잘만 하면 한 방에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슈하아악!
나와 오그마의 편대는 그렇게 그대로.
쾅!
정면충돌했다.
폭탄을 가득 실은 두 대의 항공기가 공중에서 부딪혀 폭발하듯, 대규모의 폭발을 일으켰다.
물론 편대의 크기에선 아주 큰 차이가 났다.
한쪽은 대략 200여 기의 페가수스 기수로 이뤄진 거대 편대인 데 반해.
다른 한쪽은 겨우 일곱 기의 와이번 용기사들과 편대장으로 이뤄진, 작은 부대였으니 말이다.
콰우우우!
그러나 그 크기와는 관계없이 위력만큼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다른 클래스의 각성자들이 대규모 인원으로 부대 코스트를 가득 채워 병력을 운용하는 반면.
드래곤 나이트 클래스는 그야말로 그 규모를 압축시켜 놓은 소수정예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매일 1억 다이아를 소모해야 하는 클래스인 만큼, 머릿수의 불리함을 오히려 그걸 상회할 수준의 압도적인 정예화로 극복했다.
거기에 엘프의 기술력으로 강화한 에테르 큐브를 통해 신의 힘에 근접하는 영체 투영 권능까지 구사하고 있으니.
절대 내 쪽이 질 리가 없다.
“커헉!”
헬리오폴리스의 불사조는 단숨에 저 거대한 페가수스 편대의 가운데를 관통했다.
뭉쳐 있던 페가수스 기수들은 화염에 휩싸인 채 사방으로 나가떨어졌고.
최전방에 위치해서 그들을 이끌던 오그마는 지금.
내 손에 목덜미를 붙잡힌 채 이끌려 가고 있다.
“이…… 이거 놔……!”
“닥쳐.”
쉬이이익!
난 그대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그마를 움켜쥔 채 속도를 늦추지 않고 큰 원을 그리며 완만하게 상방으로 재상승했다.
다시 한번 추진력을 얻으면서, 남아 있는 전장의 다른 비병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으…… 젠장!”
그러다 도중에 오그마가 손에 쥔 단봉에 자신의 무구를 투영했다.
돌덩이를 깎아 만든 투박하기 그지없는 몽둥이.
하지만 근접전에선 더할 나위 없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그인 만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저걸 얻어맞으면 매우 위험할 것이다.
스륵.
후웅!
그래서 난 그가 그것을 휘두르기 직전에 목덜미를 놓아버렸다.
휘두른 몽둥이는 그저 허공을 갈랐을 뿐.
나에게 붙잡힌 채 라의 화염에 지속적으로 불태워지던 그는 공중에서 툭, 하고 미끄러져 떨어졌다.
“하! 멍청한 놈!”
오그마는 자신의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를 깔보며 비웃었다.
비행 스킬을 가지고 있는 그는 금세 공중에서 다시 자세를 잡고 편대를 재정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다음부터는 나와 정면충돌하는 대신, 페가수스의 기동력을 살려 히트 앤 런을 하거나 무언가 다른 술수를 펼치려고 하겠지.
하지만.
“너한테 다음은 없어.”
난 그놈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줄 생각이 없다.
‘영체 투영. 루 라바다.’
에테르 큐브에 루를 투영하고서, 그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전창 게 아살.’
파지지직!
뱀처럼 지그재그로 허공을 가르는 번개 불꽃이 루의 손에서 뻗어 나가 오그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딜!”
그는 그 공격을 쳐내기 위해 몽둥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근접전에 강하다는 것은 즉, 가까이 다가오는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도 능하다는 뜻.
그렇기에 그에겐 단순히 명중률이 높기만 한 공격을 써서는 안 된다.
아르테미스나 오딘 같은 영체의 공격은, 피하진 못해도 막아낼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쉬쉬쉭.
그래서 나는 루 라바다를 선택했다.
변칙적인 궤도로 공격하는 데에 특화된 중거리 무구.
게 아살은 그 자체로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오그마의 몽둥이 바로 앞에서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그의 등 뒤로 돌아 들어갔다.
푸확!
“으컥!”
창날이 오그마의 척추를 꿰뚫고 그대로 입으로 튀어나왔다.
마치 꼬챙이처럼 꿰인 채 내 에테르 큐브와 연결되어 하늘로 딸려 올라오던 그는.
‘끝내버려.’
콰앙!
루의 반대쪽 손에서 튀어나온 광전포 타흘룸에 얻어맞고 전신이 산산 조각나며 흩어졌다.
* * *
쾅! 콰쾅!
오그마를 죽이고 남아 있는 비병들을 정리함으로써 이 전장의 제공권은 우리 쪽이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더 이상 하늘에 떠 있는 나와 해모수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열한 대공 포병들도, 다리우스의 고르곤 포병대가 멀리서 쏴 대는 레이 캐논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녹아내렸다.
그런 다리우스를 견제할 비병들이 다 죽고 없어졌으니, 그야말로 하늘과 땅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시너지가 극한까지 발휘되고 있는 셈이었다.
-기병들의 공격이 너무 거셉니다. 방진이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승기를 잡지는 못했다.
레아의 부재가 너무 컸던 걸까.
정면에서 치고 들어오는 키안의 기병대는 아군이 구축하고 있는 중갑보병 방진을 거의 궤멸 직전까지 이끌어가고 있었다.
-저는……! 더 이상……!
-안 돼! 호아퀸을 보호해!
-무너진 진형에 병력을 보충할 여유가 없습니다!
레아의 벨그레이브 클랜 소속 지상군 각성자들의 아우성으로, 머리가 시끄러울 지경이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
‘후방은 완벽하게 제압했는데도…….’
키안은 비병과 포병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헬하운드 기병대만으로 우리 쪽을 몰아붙였다.
부대 전체를 화염으로 휘감고 돌격하는 충돌 공격뿐만 아니라, 타고 있는 헬하운드들이 화염방사기처럼 연신 내뿜어대는 불꽃이 아군을 괴롭혔다.
화르륵!
마치 카라콜을 하는 총기병처럼, 방패와 장창으로 벽을 만든 아군 앞에서 멈춘 다음 불꽃을 뿜고는 기수를 돌려 도망친다.
그런 그들을 다른 기병들이 추격이라도 하려고 하면, 이번엔 그 강력한 돌진 공격을 사용해 모조리 쓰러뜨렸다.
엄청난 기동성과 유연성.
키안의 헬하운드 기병대는 근거리와 중거리를 넘나들며 완벽하게 아군 지상군을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직접 개입해야겠어.’
더 이상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이미 공중과 후방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으니, 더 이상 따로 신경 쓸 요소도 없다.
난 그대로 아래로 하강해 키안을 향해 공격 태세를 취했다.
‘누아다 아르게틀람 투영.’
이번엔 누아다를 불러낸다.
광범위한 영역에 고화력의 무구를 투사할 수 있는 영체.
화력 자체만으로 따지면 ‘세계를 불태우는 검, 레바테인’을 사용하는 수르트가 더 강력하겠지만.
지금 저 녀석의 속성은 다름 아닌 불꽃이기에, 같은 불 속성 무기를 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성 속성을 쓰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수속성 중에는 신화 수호령이 없고, 때마침 헬하운드의 약점 중에는 신성 속성도 있으니.’
촤아악!
곧바로 투영된 누아다는 대검 클리브 솔리쉬를 휘둘러 키안이 종횡무진 하고 있는 지상으로 하얀 검기의 돌풍을 발산했다.
쩌저정! 콰우우!
용기사들의 마력이 더해져 마력이 극대화된 신성 검풍은, 지반을 통째로 뒤집어엎었다.
위력이 너무 강해서 아군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투사 각도를 바깥쪽으로 조절해서 썼어야 할 정도.
키에엑!
“끄악!”
거기에 휘말린 헬하운드 기병들은 속절없이 쓸려 나갔다.
단번에 3분의 1에 해당하는 전력이 사라진 것이다.
“큭큭. 왔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안은 오히려 웃었다.
그는 여유롭게 검을 휘둘러 화염으로 신성 검풍을 빗겨 친 후에,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노려봤다.
‘……뭘 하려는 거지?’
저 여유에는 분명 무언가 숨어 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아직 카드가 남아 있다.
……그런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뻐끔.
그가 입술을 뻐끔거렸다.
무어라 작게 중얼거리고 있다.
목소리에 마력을 담지 않았기에 나더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난 신화 사냥꾼의 본능 특성으로 그가 하는 소리를 어렴풋이나마 알아듣는 게 가능했다.
“클래스 체인지.”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마치 진언과도 같은 시스템 명령어.
키안의 말 한마디에 그를 따르던 헬하운드 기병들은 모두 해산했고.
“컴뱃 레디니스.”
대신 새로운 병종들이 그가 사용한 어빌리티에 의해 전장에 새롭게 소환되었다.
‘……드레이크?’
새롭게 소환된 병종의 정체는 다름 아닌 드레이크 기수.
드레이크는 날개 없이 지상을 누비는 용종 마수였다.
즉, 지금 키안이 ‘체인지’한 클래스는, 다름 아닌 드래곤 나이트였던 것이다.
다만 나와는 달리 비병이 아닌 기병 형태로 말이다.
“다이아는 너만 가진 게 아니야. 큭큭.”
이제 알겠다.
키안이 저렇게나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였던 이유를.
저놈은 아무래도, 돈지랄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