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71화
어찌 보면 이 모든 일들의 원흉이라고 볼 수도 있다.
먼 옛날 신화시대, 오크 종족이 그렇게나 무자비하게 우리 인간을 공격했던 게 바로 풍신 오딘의 계시 때문이었으니까.
그로 인해 타라가 죽고, 야드가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갔고.
그들을 구출하던 도중에 아르테미스에 의해 모나가 죽고 신으로서의 힘을 각성했다.
더 근본적으로 파고 들어가서 엄밀히 따지자면 이건 다 아후라 마즈다의 탓이긴 하지만.
결국 직접적인 원인제공을 한 것은 오딘인 셈이다.
“앙그라 마이뉴……! 네가 어떻게?”
그런 그와는 오늘 처음으로 독대했다.
물론 나야 워낙 신들에게 요주의 인물인 터라 저쪽은 날 이미 알아보는 듯했지만.
제대로 마주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준비됐어? 업보 청산할 준비.”
난 마나가 흘러넘치는 두 주먹을 서로 맞부딪히며 말했다.
터엉! 텅!
가볍게 부딪혔을 뿐이지만, 힘의 작용으로 인해 묵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멍청한……. 온몸을 갈가리 찢어주마!”
오딘은 곧 손에 쥐고 있는 궁그닐을 다시 내게 던지려고 했다.
내가 근접전을 펼치려는 걸 눈치챘는지 바람을 일으켜 자신은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둘 내가 아니다.
애초에 놈에게 곧장 달려들지 않고 말을 거는 여유를 부린 것도.
반 박자 이하의 리듬으로 한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하고서 한 것이었으니까.
파앙!
가볍게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 나간다.
극한까지 개방된 감각이 주변 시간을 느리게 만든다.
뒤로 뛰면서 궁니르를 던지려던 오딘은 내겐 그 자리에서 멈춘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 일격에 끝장낸다.’
오른손에 휘감기는 보랏빛 마나가 날카롭게 빛나고.
난 그대로 한껏 열려 있는 오딘의 품으로 주먹을 뻗었다.
단숨에 목을 꿰뚫어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콰우우우.
그러나 놈은 그리 쉽게 자신의 목숨을 내주지 않았다.
그의 몸 전체에 날카로운 돌풍이 휘몰아치며 내 접근을 막았다.
난 그 즉시 전진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했다.
‘돌풍으로 접근을 저지하고서 거리를 벌릴 셈인가.’
내 생각대로 오딘은 그 상태를 유지하며 내게서 멀어지려 했다.
곧바로 투창을 던지지 않는 걸 보면, 궁니르의 인과 고정 효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져야만 발동하는 모양이었다.
‘절대 안 되지.’
그렇기에 난 더욱 놈에게 바짝 붙었다.
불어닥치는 돌풍을 파헤쳐 안으로 파고들었다.
핏.
그 과정에서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난 그보다 훨씬 더 큰 한 방을 먹일 테니까.
“젠장! 저리 좀…… 떨어져!”
그는 끝까지 달라붙는 나를 보며 짜증을 냈다.
동시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도와줄 병사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오딘이 사용하는 병종은 해모수와 같은 그리폰 비병대.
투콱! 푸확!
하지만 그것들은 지금 내 용기사들에 의해 모조리 찢겨 나가고 있다.
다른 병사가 나와 오딘 사이에 끼어들 여력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으아아아!”
결국 오딘은 분에 못 이겨 역수로 들고 있던 궁니르의 자루를 정방향으로 고쳐 잡았다.
투창처럼 집어 던지는 대신, 직접 찌르기 공격을 하기로 전환한 것이다.
‘바라던 바다.’
이건 나야말로 환영할 만한 상황.
이제 놈은 완전히 내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인과 고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저건 그저 좀 강한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무기일 뿐.
급소를 노리고 날아드는 궁니르는 막지 못하면 죽어야 하는 치명적인 무기지만.
창날을 피하는 게 가능해지는 근거리에서라면 내겐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
피이이잉!
귓전을 때리는 날카로운 바람도 그저 부가적인 공격수단에 불과하다.
난 거기서 오딘에게 더 과감하게 접근했다.
“난…… 여기서 죽을 순……!”
그러자 그가 오른손으로 궁니르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나를 떨쳐내기라도 하려는 듯한 몸부림.
물론 그건 말 그대로 몸부림일 뿐이었다.
스르륵.
난 전진을 멈추지 않고 몸을 오른쪽으로 살짝 웅크리며 가볍게 회피한 후.
다시 일어서는 반동으로 힘껏 스트레이트 펀치를 뻗었다.
간격은 완벽.
주먹이 닿는 순간, 오딘의 두개골은 망치로 후려친 수박처럼 산산이 으깨질 것이다.
쩌렁!
그 순간, 굉음과 함께 빛이 번쩍였다.
* * *
요르겐을 비롯한 오크 신들이 대량으로 사망한 이후, 한동안 오크 계는 극심한 사분오열 현상을 겪었다.
서로 간에 큰 의견 차를 보이던 오크 족 클랜들 사이에서 사실상 구심점 역할을 하던 요르겐의 부재는 너무나도 심각한 문제였던 것이다.
“에길! 네놈이 싸워야 할 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그 이종족들이다!”
“흥! 애초부터 시스템은 클랜끼리 전쟁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는 걸 모르겠나?”
그 와중에 가장 극심했던 갈등은 토르 수호령을 가진 라르스와 오딘 수호령을 가진 에길의 대립.
아이러니하게도 두 오크의 수호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누구보다도 가까운 존재였지만.
정작 그 신들을 품은 오크 각성자들은 극명한 성향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게 우리에겐 더 좋을 수도 있지. 약한 놈들을 제물 삼아서 강한 전사들을 길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 말이야.”
“……네놈은 지금 그런 개소리를 옳은 얘기랍시고 내뱉고 있는 건가?”
“당연하지.”
에길은 동족 간에도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행하는 게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다.
반면 라르스는 공동의 적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족끼리 싸우는 건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했다.
“안 되겠군. 네가 죽어야 오크가 살아날 수 있겠어.”
“누가 할 소릴.”
결국 그들은 서로가 큰 부상을 입을 때까지 치고받으며 싸웠다.
물론 실력은 거의 동등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승부는 나지 않았다.
{수호령 동화율 100%에 도달했습니다.}
{신격이 육체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길은 자신의 수호령인 풍신 오딘에게 몸을 빼앗기고 만다.
동족마저 무참하게 죽여대며 살육을 벌여왔던 그가 이렇게 된 건 당연한 수순.
결국 오크 종족 중 최초로 깨어난 신인 오딘이 오크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해 나갔던 것이다.
“라르스? 생각이 틀려먹은 놈이군. 저런 녀석의 몸 안에 있다면 토르는 절대 깨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오딘은 가망이 없어 보이는 신화급 각성자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가망이 없다는 건, 동화율 100%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인 ‘생명 경시’를 갖추지 못했다는 뜻.
그런 자들이 계속 살아 있는 한, 그 자에게 수호령으로서 종속되어 있는 신들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터다.
그러니 이참에 미리 제거해서 다른 각성자의 몸에서 다시 살아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당연히 그 제거 대상에는 라르스도 포함되어 있었고 말이다.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예상외로 강한 저항에 오딘은 상당히 놀랐다.
궁니르 한 방에 심장이 관통당해 나가떨어졌어야 정상일 라르스가, 끝끝내 죽음을 피해 살아남아 자신과 대적했다.
단순한 필멸자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힘이 그의 안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토르……?’
이윽고 그의 등 뒤로 현실에 구현된 토르의 영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에길과 달리 끝까지 명예와 이타심을 유지했던 라르스가, 스스로 금제를 해제하고 뇌신 토르의 영체를 직접 투영하는 권능을 얻어낸 것이다.
그날의 승부는 그 시점에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오크계는 또다시 계파가 갈라지는 상황을 맞이해야만 했다.
“오딘은 우리의 적이다.”
“토르가 깨어나려면 라르스가 죽어야 한다.”
오딘과 대등한 힘을 가진 라르스에 의해 두 동강이 난 오크 종족.
그로써 전보다 더욱 심한 분쟁을 벌이는 상태가 된 그들이었는데.
쩌렁!
어째서인지 지금, 유신우와 오딘의 싸움 사이에 라르스가 끼어들었다.
묠니르의 뇌격으로 오딘을 구원하면서 말이다.
* * *
‘토르……?’
내 머릿속에는 레아가 떠올랐다.
그의 등 뒤에 ‘영체 투영’으로 모습을 드러낸 뇌신 토르의 형상.
그건 마나난을 투영시키는 레아와 똑같은 권능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딘을 구한 건가?’
그런데 저 오크는 오딘이 아닌 나를 노리며 번개를 쏘아 보냈다.
덕분에 난 공격을 멈추고 피해야만 했다.
명백히 오딘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로밖에 볼 수 없는 행동인 것이다.
‘영체 투영을 쓰고 있어.’
난 그를 보고 레아가 사용하는 기술을 떠올렸다.
저걸 사용하고 있다는 말인즉, 신에 의해 육체가 빼앗긴 자는 아니라는 뜻.
레아가 말해줘서 알고 있다.
영체 투영을 사용할 때는 신의 음성을 듣고 그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 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그러니 방금 전의 행동은 순수한 자기 의지로 실행한 일이라는 것이다.
쾅!
곧이어 토르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오랜만이군.”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번 공성전에서도, 바벨탑 1층에서도 우리는 크게 충돌했었으니 기억에 남기엔 충분하다.
‘법륜인 해제.’
난 곧바로 근접전 강화 상태를 해제하고 다른 무구를 꺼내 들었다.
지금과 같은 2 대 1 대치 상황에선 주먹만으로 싸우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나를 방해하는 거지?”
그러고는 긴장을 유지한 채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말했다.
겉보기엔 참으로 이상한 질문이지만, 오크 세계의 내막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에겐 그런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은 신이다. 같은 필멸자로서 증오스럽지도 않나? 동족을 마구 죽여대는 그놈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내뱉어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토르, 그러니까 저 라르스라는 오크 녀석은 오딘과 갈등 관계에 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디테일한 건 모르지만, 이번 공격을 준비하면서 그 정도 환경에 대해서는 이미 다 조사해 놓았던 덕에 이런 말을 하는 게 가능하다.
게다가 한 쪽은 영체 투영, 다른 한쪽은 신격 각성 상태라는 점 또한 그 증거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 라르스라는 오크는 분명 레아와 같이 이타적인 마음을 가진 자다. 그러니 조금만 설득을 하면…….’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금세 반박되었다.
“오딘이 아무리 악행을 저질렀다 해도, 오크가 인간에게 죽임당하는 걸 내가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리가 없잖은가?”
“……뭐?”
“오딘, 토르. 신과 필멸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도 다 알고 있다. 지금도 토르가 내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으니까.”
그는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광기에 물들거나, 신에 의해 종속된 듯한 낌새는 한 점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이 필멸자를 죽인다. 그것이 설령 내 신념에 반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는 오크의 명예가 우선이다.”
확고한 적개심.
그건 신에 의한 것이 아닌, 순수한 사상에 의한 행동이었다.
필멸자의 자유의지가, 누구보다도 적대해야 할 신을 바로 앞에 두고서도 뭉치지 못하고 분열되도록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결국은 이 둘 다 상대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갈등이 단순히 신과 필멸자 간의 대립 구도라면 너무나도 알기 쉽겠지만.
종족, 이데올로기, 믿음, 오해.
이런 모든 ‘인간적인’ 요소들이 갈등의 양상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나 또한 그런 요소들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고 말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더욱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다.
‘상승해라. 공중전을 행한다.’
난 용기사들에게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명했다.
처음엔 궁니르를 가진 오딘 때문에 공중전만큼은 어떻게든 피하려 했지만.
지금부터는 도리어 내가 이들을 하늘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토르와 말을 주고받는 동안, 와이번들이 오딘의 그리폰 비병들을 전부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궁니르는 용기사의 보조를 받는 나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근접전으로 오딘을 처리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플랜 B.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끌었던 모든 행동들은 바로 이런 상황을 위한 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