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55화
총 여덟 마리의 와이번을 탄 드래곤 나이트들이 나와 함께 염왕을 격퇴하기 위해 출격했다.
드래곤 나이트 하나가 차지하는 코스트는 1,200.
여덟 기를 운용하면 총 9,600 코스트를 채우게 되는 셈이다.
이를 숫자로 비교하면 용기사 하나당 보병 1,200명분의 전력을 낸다고 볼 수도 있는데.
사실 이건 그렇게 단순하게 코스트만으로 비교할 문제도 아니다.
그럴 거였으면 드래곤 나이트란 클래스가 이렇게나 비싸고 특별한 클래스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자색파동발산기.’
나는 염왕의 군대들이 빼곡한 지역의 상공에서 무구를 꺼내 들고 파동기를 사용했다.
‘악룡 제1격, 미스텔테인. ……합동 시전.’
그리고 부대 시스템의 진가를 즉시 발휘한다.
파아앗!
내 의지는 나에게 배속된 모든 부대원들에게 전달되고.
그들은 탑승하고 있는 와이번의 힘을 끌어올려 내 검에서 발출하는 검기에 마력을 보탰다.
아지다하카의 힘으로 짜낸 파동기의 위력에, 여덟 마리의 와이번과 그들을 조종하던 기사들의 마력까지 더해진다.
이렇게 합쳐진 에너지는 기존 기술의 위력을 단순한 힘의 총합 이상의 곱절로 증가시킨다.
콰우우우!
아지다하카 형상의 검기가 적진을 붕괴시키기 위해 쇄도해 나갔다.
그것의 크기는 원래 사용하던 것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 이상 커져 있었다.
거의 대형 빌딩 한 채의 크기를 자랑하는, 저주의 기운 가득한 회색빛 마력 덩어리.
투쾅!
지상에서 알포드 성 포탈을 향해 진군하던 대규모 병력이 거기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이 공격의 중심 목표는 다른 누구보다도 이들의 총 지휘자인 염왕이 우선이었으나.
‘피했군.’
마지막 순간, 그는 지상으로 떨어지는 내 공격을 피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전신에 화룡을 두르고 빠른 속도로 고속 비행을 하는 염왕.
주변에 그리폰을 타고 있는 병사들을 대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염왕 역시 나와 같은 ‘비병’ 병과인 모양이었다.
“유신우!”
그는 분노 섞인 목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손바닥에서 화염을 내뿜었다.
화아아악!
화룡 형상의 불꽃은 그리폰 비병들의 마력과 연결되어, 기존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해져 있었다.
‘흑색파동발산기, 현무 제1격. 앵거바딜.’
나는 거기에 물 속성 공격을 내지르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쪽 역시 합동 시전 덕분에 원래보다 훨씬 더 화력이 증강된 상태.
콰아아!
당연한 얘기지만, 기본적인 힘 차이부터 시작해 클래스의 질과 속성까지, 염왕은 처음부터 어느 것 하나도 나보다 뛰어난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 마주한 상태에서의 일대일 부대 간 힘 싸움은, 당연하게도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룡은 내 검에서 뻗어 나온 현무에 의해 단번에 진화당하고, 역으로 염왕 쪽이 내 공격을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으아아악!”
염왕 주변을 날아다니던 그리폰 비병 수십 기가 현무 공격에 휩쓸려 한꺼번에 소멸했다.
“젠장!”
안타깝게도 염왕은 그 와중에 빠르게 사선에서 이탈하는 데 성공.
이 한 번의 공격으로 그는 거의 백여 기에 달하는 그리폰 비병들 중 절반 이상을 잃었지만, 여전히 자신은 살아남은 채였다.
“뭐 하는 거냐! 저 녀석에게 포화를 집중해!”
그리곤 이 전장에 있는 모든 클랜원들에게 내게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투화악! 파파팡!
그러자 지상과 공중에서 일시에 수많은 공격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합동 시전으로 강화된 온갖 종류의 권능들이 내게로 날아들었다.
염왕의 클랜은 많은 숫자의 각성자들이 제각기 특성에 맞는 부대를 편성해 화력의 양을 늘린 듯한 모양이었다.
‘저걸 전부 받아내는 건 위험해. 일단은 피하자.’
물론 그 또한 충분히 유효한 전략임은 틀림없었다.
확실히 부대원들과의 합동 시전으로 강화된 기술들은, 아무리 개별 각성자의 등급이 낮다고 하더라도 나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강했으니 말이다.
그런 게 무수히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전장에 홀로 머무는 건 바보짓.
특히나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귀중한 자원인 드래곤 나이트 병사를 하나라도 잃어선 안 된다.
쉬이익!
그래서 나를 포함한 여덟 명의 용기사들은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순식간에 포탈 쪽으로 후퇴했다.
알파 퓨리 와이번들의 비행 속도는 현존하는 비행형 마물들 중에서도 최상위급.
그런 개체들과 삼각 편대를 이뤄 움직이니, 부대의 이동 속도가 동기화되어 나까지 더 빨라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유신우! 겁먹은 거냐!”
뒤쪽에서 브랜든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난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 * *
유신우가 와이번들과 함께 성안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내 차례군.”
그걸 본 다리우스는 사전에 유신우와 약속했던 행동을 실행한다.
그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의 부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클래스는 데모닉 하위처(Demonic howitzer).
시야 밖에서 적을 타격하는 포병 병과다.
다리우스의 의지에 따라, 기수들이 전신이 강철로 이루어진 황소들을 움직여 사격지점으로 이동했다.
그 강철의 황소들은 마안(魔眼)을 가진 마수 고르곤이었다.
텅, 텅, 텅.
크고 단단해 보이는 외형에 걸맞게, 그것들은 느리지만 우직하게 목표한 지점으로 달려간다.
한 기당 180이나 되는, 꽤나 비싼 코스트의 고르곤 기수들은 총 54기가 다리우스 한 명에게 배정되어 있었다.
-적이 옵니다! 목표 지점 확인!
이윽고 정찰병이 마법을 통해 전언을 보내 왔다.
그가 말하는 목표 지점은, 성 바깥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러 나간 또 다른 부대가 관측한 지점이었다.
파앗!
성 바깥의 하늘에서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왔고, 거기서 지상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기둥을 형성했다.
적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리기 위한, 관측병의 신호탄.
그것은 적에게는 보이지 않는, 아군만을 위한 빛이었다.
척!
그 신호를 보자마자 다리우스의 손에 쥐어진 마법 막대가 하늘을 가리켰다.
그 끝에서 마법진이 펼쳐졌다.
우웅. 우우웅.
그와 동시에 모든 고르곤들의 눈이 일제히 번쩍이는가 싶더니.
다리우스의 것과 같은 형태의 마법진들이 제각기 고르곤들의 머리 위 대각선 방향을 조준한 채로 전개되었다.
그렇게 사격 준비를 끝마친 직후.
퍼퍼퍼펑!
그 모든 마법진에서 마력 포탄 55발이 동시 발사.
다리우스의 역사급 수호령인 나폴레옹의 권능, 화포 사격을 고르곤의 마안으로 모방한 것이다.
그건 하나의 기술을 극단적으로 증폭시켜주는 합동 시전의 또 다른 형태인, ‘연쇄 시전’이었다.
장거리 포격은 한 발의 거포를 쏘는 것보다는.
여러 발의 투사체를 광범위한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흩뿌리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저걸 사용한 것이다.
쿠구구궁.
-거리가 부족합니다! 방향도 좌측으로 좀 더 틀어야 합니다!
멀리서 착탄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정찰병의 수정 사격 요청 전언이 들려왔다.
사실 진짜 현실 군대의 관측반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조악한 수준의 요청 내용.
물론 이건 애초에 이곳 알포드 성 NPC 중에 그런 교육을 받은 자가 전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적절한 관측 장비도 없을뿐더러 사격의 주체인 다리우스와 고르곤 기수들의 조준 방식과 연계되지도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클래스 레벨을 높여서 병과에 맞는 ‘클래스 어빌리티’를 해금하는 방법뿐.
퍼퍼펑!
결국 지금은 주먹구구식으로, 감에 의존해 전투를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부대 시스템이 나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이런 부분에서 미흡한 건 적도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 * *
다리우스가 성안에서 공성 보호막으로 보호받으며 장거리 포격을 행하는 동안, 난 다시 용기사들을 이끌고 적과 공중전을 이어갔다.
아까 전 포탈 밖 개활지에서 염왕의 대군과 정면 대결하는 건 무모한 짓이었지만.
지금 난 알포드 성이라는 거대한 쉘터를 등지고서, 다리우스 부대의 강력한 포격 지원을 받으며 싸울 수 있다.
그러니 아까보다 훨씬 더 마음 놓고 적을 유린하는 게 가능하다.
‘염왕을 생포한다.’
나는 그를 죽이는 대신 되도록이면 살려서 잡을 생각이다.
아후라 마즈다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이 대병력……. 절대 저놈 혼자서 모은 건 아니야.’
전에 뒤통수를 거하게 치고 잠적했던 만큼, 난 그동안 그의 동태를 계속해서 살피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사정은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를 공격하러 온 병력의 수는 지난번 나와 검제, 유메미가 연합해서 이끈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대규모인데.
스케일이 이 정도나 된다면, 염왕의 단독행동이라고는 절대로 볼 수 없다.
여기엔 반드시 아후라 마즈다의 백산 클랜이 깊게 개입되어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 녀석은 이번 전투의 추이를 어딘가에서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기고 염왕에게서 정보를 알아낸 다음, 단숨에 몰아쳐야 해.’
그러니 전투의 승리부터 엘프의 도움을 받아 놈을 처치할 때까지.
그 모든 과정을 속전속결로 처리할 생각이다.
“아델.”
“네.”
“적의 대공 공격을 방어해 줘. 그사이 나는 공격을 준비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부대원들에게 공중전을 맡긴 후, 곧장 ‘큰 기술’을 준비했다.
쉬이익! 쾅!
그리고 기사들을 등에 태운 알파 퓨리 와이번들이 고속으로 산개하며 날아드는 적 비병들을 매처럼 사냥하기 시작했다.
입에서 강렬한 마력탄을 뿜어내거나, 우월한 스피드를 활용해 발톱으로 낚아채 찢어버린다.
이곳에서 용기사들은, 하늘의 포식자와 다름없었다.
“흩어지지 말고 내 쪽으로 모이란 말이다! 이 멍청한 것들!”
그 와중에 염왕은 다시 그 예의 그리폰 비병대를 이끌고 내 앞에 나타났다.
아까 분명 절반에 가까운 병력이 휩쓸려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저 녀석은 다시 원래의 100여 기를 회복한 상태.
포탈을 다시 넘어오기 전에 다른 그리폰 비병 부대로부터 병력을 보충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부대의 머릿수가 줄면 줄수록 그만큼 전투력도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부대원의 보충은 필수적이다.
“내게 마력을 모아라!”
그는 비병들의 힘을 전달받으며, 인벤토리에서 꺼내 든 칼에 자신의 무구를 투영했다.
이어서 허공에서 다섯 마리의 화룡들이 형성되어 칼이 가리킨 한 지점에 모였다.
저건 아마도 태양신 해모수의 인공태양 형성 권능인 천광지귀.
지금의 나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한 화력을 지닌 기술이다.
‘아지다하카!’
하지만 그사이 난 이미 ‘큰 기술’의 시전 준비를 이미 끝마친 상태였다.
체내에서 보랏빛을 형성해서 끌어 올린 힘을, 다시 역으로 방출해 아지다하카를 물질세계에 불러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든 투영무구들을 거대화시킨 채 소환했다.
금세 22개에 달하는 신화 속 투영무구들이 이 전장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거대한 형상으로 나타났다.
“아델! 나를 도와줘!”
“……네!”
그 위압감에 같은 아군인 아델마저 잠시 머뭇거리게 만들 정도.
그러나 그녀는 금세 마이페이스로 돌아와 내 지시의 의미를 파악하고 드래곤 나이트들을 움직여 내게 마력을 집중시켰다.
‘힘은 충분하다.’
그로써 아지다하카의 힘으로 거대화된 이 무구들의 컨트롤이 한결 가벼워졌다.
난 그대로 투영무구들을 염왕 쪽으로 날려 보냈다.
쩌저정!
그 거대한 무구들이 마치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듯 바람을 가르고 음속을 돌파해 굉음을 일으켰다.
공격 중인 나를 격추시키기 위해 달려들던 수많은 비병들은, 그 무구가 날아가면서 발생시키는 파장에 닿는 것만으로도 마치 파도에 휩쓸려 나가듯이 날아갔다.
그렇게 어떠한 저지의 가망도 없이, 공격의 목표인 염왕에게 거대 무구들은 맹렬히 쇄도한다.
“제, 젠장!”
천광지귀를 시전하려던 브랜든은 한 박자 빠르게 다가온 공격에 당황해서는, 권능 시전을 중단하고 회피 시도를 했다.
그러나 무구 발사 속도가 너무나 빨랐기에 온전히 피하는 것은 무리.
“나를 지켜라!”
그는 결국 자신의 부대원들인 그리폰 비병들을 자기 앞으로 불러들여 인간 방패로 사용하는 선택을 했다.
부대 시스템에서 각성자의 명령은 부대원들에게 절대적이기 때문에.
강압적인 명령을 내린다면 각자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움직이는 것도 가능했다.
‘저 멍청한…….’
그런데 사실 난 그 녀석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무구를 정확한 타이밍에 멈춰 세워서 후폭풍으로 기절시킬 생각이었다.
하나 염왕은 내가 생각한 지점보다 훨씬 앞쪽에 그리폰 비병들을 보내버린 바람에, 괜히 쓸데없이 병사들의 목숨을 희생시킨 것이다.
그런 악수에도 불구하고 악의의 전당 무구 발사는 멈추지 않고 내가 예측한 지점까지 감속 없이 날아가 멈춰 섰다.
퍼엉!
“커헉!”
결국 염왕은 내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무구에서 퍼져 나온 파장에 의해 큰 충격을 받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NPC들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건가…….’
어차피 전장에선 적이니 내 입장에서 저 병사들을 죽인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부하일 텐데 가차 없이 고기방패로 써버리는 염왕의 태도를 보고는, 왠지 모르게 치가 떨렸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신화급 각성자가 저런 행동을 하면 더더욱 강한 혐오감이 들었다.
‘언제든 신에게 육체를 지배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까.’
쐐애애액!
어쨌든 난 지금 기절해 추락하는 염왕을 생포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그에게 날아갔다.
상대측 병사들이 그의 신병을 확보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낚아챌 속셈이었다.
두근.
그런데.
‘……음?’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며 강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숨이 턱 막히고, 명치가 묵직해지는 기분.
왜인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곳에 가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불쾌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번쩍.
염왕이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