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27화 (127/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27화

대악마들이 나에게 죽임당하고도 영혼이 흡수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그들이 태생부터 일반적인 에테르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법칙을 기형적으로 변화하는 데 꼭 필요한 교란 매개.

처음부터 저 대악마들의 정체성은, 기존 법칙을 무시하고서 이 ‘문자의 권능’을 사용하기 위한 부산물, 혹은 도구로서 태어났던 것이었다.

“어디 한번 덤벼봐.”

그러니 이제 난 이들을 본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해 줄 생각이다.

화르륵.

내 안의 고통의 업화가 검게 타오른다.

양 손끝에서 시작된 그 불꽃은, 점점 기세를 확장시켜 온몸을 뒤덮었다.

곧 주변의 공기가 급격하게 달아오르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윽……! 이 기분 나쁜 열기는……!”

“으으…….”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언짢음을 숨기지 않으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세 대악마들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특히 내게 한 번 당했던 마르코시아스는 그 공포를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젠장!”

“이봐! 어딜 가는 거야!”

역시나 날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놈은 순식간에 줄행랑치고 말았다.

그를 따라온 두 대악마는 황당하다는 듯 도주하는 마르코시아스를 멀뚱히 쳐다볼 뿐.

“너희도 도망치는 게 좋을 텐데.”

난 거기서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셋 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흥! 네가 뭘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직까지 자신감이 넘치는 염소 인간 형상의 악마, 바포메트가 말했다.

“네가 지옥 서열 1위가 된 건 일 대 일 대결로 하나씩 이겨서 올라간 것일 뿐.”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아무리 너라도 힘들 거다.”

바르바토스도 거기에 한마디를 얹었다.

저 둘은 진심으로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저게 완전히 허황된 망상이라고만 할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저 둘을 상대할 당시에는 아직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한창 성장하면서 대악마들을 하나씩 이겨 나가던 때.

그 이후로 내가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마르코시아스도 그때 겁도 없이 내게 뻗댔고, 그렇게 한 번 힘의 격차를 느끼고 나자 지금 와서는 먼저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바포메트와 바르바토스, 이 둘은 아직 몸소 벽을 느껴볼 일이 없었으니,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그래? 그럼 먼저 와봐. 맨손으로 받아줄 테니까.”

“건방진…….”

화악!

내 도발을 받은 두 대악마가 흘끗,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예고도 없이 동시에 기습 공격을 행했다.

바포메트는 순식간에 몸집이 커지며 하늘도 가를 것 같은 거대한 양날 도끼를 불러내 나를 향해 내리찍었고.

바르바토스는 사방에 다수의 마법진들을 형성해 무수히 많은 독화살들을 내뱉었다.

쐐애액!

부지불식간에 날아드는 공격.

아무리 나라도 저 공격을 전부 받으면 육신이 소멸하고 말 것이다.

물론 그걸 다 얻어맞아 가며 다시 부활해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저놈들은 이제 내가 자신들을 영원히 봉인할 수 있게 된 줄도 모르고, 무모한 육탄전을 계속 벌이려 들겠지.

그 싸움에 맞서면 결국 신들과 마찬가지로 손해 보는 건 이놈들.

하지만.

‘보인다.’

그런 식으로 억지스럽게 싸움에서 이겨봐야, 지옥의 군주로서 영 볼품없는 그림이 되지 않겠는가.

지금의 나는 성장과 근성으로 서열을 높여 올라가던 예전의 신인 악마 같은 게 아니다.

‘미래가.’

내 눈에 바포메트가 휘두르는 양날 도끼의 궤적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바르바토스가 임의로 날려대는 무수한 양의 화살들이 어디로 날아올지도 보인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어떤 움직임을 취해 누구를 먼저, 어떻게 베어야 할지, 무수한 사고 실험을 통해 최적의 결과를 산출한다.

집중력이 지속되는 한, 세상의 시간은 흐르지 않고 내 사고는 그 안에서 보통보다 수백 배 더 빠르게 돌아간다.

이 모든 게 아테나를 죽여 얻어낸 새로운 특성 덕분이었다.

───

<승자의 사고체계>

-집중 시간 동안 고속 다중사고를 발동한다. 짧은 시간 동안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필승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

그녀를 전술의 대가로 만들어준 능력.

난 이걸로 이 현장을 지켜보는 모든 악마들에게, 격의 차이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저벅. 저벅.

차분히 저들을 향해 걸어간다.

저 둘이 행하는 공격 사이, 비어 있는 공간을 찾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격을 관통한다.

쉬쉬쉭!

쩌억!

화살들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고, 도끼가 내 어깨를 살포시 쓰다듬으며 바닥을 내리찍었다.

콱.

그리고 난 맨손으로 두 악마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컥!”

“어떻……게…….”

이 무모한 반란은 거기서 끝이었다.

“너희들도 이제야 좀 쓸모 있는 것들이 되겠군.”

화륵!

전신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불꽃이 내 손을 타고 저들의 몸으로 옮겨붙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끌 수 없는 무겁고 끈적한 화염이 바포메트와 바르바토스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그렇게 수십 초 이내에, 그들은 잿더미로 변해버리기에 이른다.

악마의 육신의 완전한 전소.

방금 내가 조정했던 ‘법칙’의 조건이 달성된 것이다.

{고통의 업화가 대악마 바포메트를 집어삼켰다.}

{고통의 업화가 대악마 바르바토스를 집어삼켰다.}

{<솔로몬의 마도서>에 교란 매개가 추가된다.}

결국 두 악마는 자신의 태생적 정체성인, ‘교란 매개’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 * *

화르륵.

“앙그라 마이뉴! 네놈! 언젠가 반드시 네놈을……!”

도망치던 마르코시아스가 창에 꿰인 채 검은 화염에 의해 불타올랐다.

그의 눈에선 강렬한 증오심이 뿜어져 나왔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서 더는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반란을 꿈꾸던 마지막 한 녀석까지, 문자의 권능 발현을 위한 연료가 되고 말았다.

“보라! 기적이 그분을 보호하신다!”

“전하가 반란군들을 물리치셨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머지 다른 대악마들은 나에 대한 충성심을 더욱 드높였다.

대악마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보여줬던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이, 보는 사람에게는 마치 기적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난 그저 빈곳을 찾아서 움직였을 뿐이지만, 겉보기엔 마치 모든 공격들이 저절로 나를 피해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 것이다.

물론 이제 그건 더 이상 단순한 착각이 아니게 되었다.

대악마 세 마리의 교란 매개를 확보한 만큼, 이젠 문자의 권능으로 기적과도 같은 비현실적 현상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전하, 모든 군단의 재편을 마쳤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지금 바로 올림포스를 무너뜨리러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푸르푸르로부터 공격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도 받았다.

이젠 정말 끝장을 볼 때가 온 것이다.

“잘했다. 그럼 올림포스산으로 진격한다.”

“예, 알겠…….”

“지금 당장.”

파앗.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편성된 군단을 지휘하려던 푸르푸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드넓은 초야에 군진을 형성한 채 대기하고 있던 모든 악마들이 하나둘씩,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지정 그룹 <제2 야전군>에 소속된 구성원 전부를 목표 지점으로 이동시킨다.}

거대한 병력 전체를 단번에 이동시키는 대규모 순간이동.

그렇게 나를 포함한 악마 군단은 눈 깜짝할 사이 올림포스산에 도착했고, 곧이어 신계 안으로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를 막는 적이나 방해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껏 날뛰어라. 눈에 보이는 걸 전부 파괴해라.”

“우오오오오!”

나는 데리고 온 악마들의 파괴 본능을 신계 안에서 마음껏 발산하게 했다.

그러자 그것들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악마다! 악마가 신계 안에 나타났다!”

그 광란에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들은 다름 아닌 ‘천상인’.

천상인은 신들을 받들어 모시는 하인과도 같은 존재로, 신에 의해 보호를 받는 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제한적 불멸자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을 지켜줄 신이 아무도 없다.

어찌 된 일인지 자신들의 신계를 최후의 보루 삼아 항전을 벌일 거란 내 예상과는 달리, 이곳에서마저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덕분에 천상인들은 그저 평범한 필멸자와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악마들에게 무참히 살육을 당할 뿐이었다.

‘올림포스로 도망친 것도 아니다……? 그럼 어디로 간 거지?’

결국 난 아무도 없는 빈집을 부수러 온 셈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엘프 신들이 다른 곳으로 도망쳐 봤자, 언젠가는 나에게 전부 죽임당하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나씩, 하나씩.

신계를 전부 파괴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나와 맞설 수밖에 없는 날이 온다.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반드시 해내고 말 것이다.

* * *

이 세상 모든 신계를 파괴한다.

그리고 모든 신들을 내 안의 심연에 봉인시킨다.

문자의 권능은 그 목적을 달성시켜 줄 필승의 무기.

그것도 언젠가는 솔로몬이 말했듯 아후라 마즈다와 신들에 의해 권능이 봉인되는 날이 오겠지만.

난 그전에 이 힘을 최대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써먹을 작정이다.

‘이걸로 나 자신의 힘을 극대화한다.’

직접적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면 간접적으로.

세계의 법칙을 뒤흔드는 능력인 만큼, 특정 개체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지옥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솔로몬도, 정작 자신의 본체는 평범한 필멸자일 뿐이었다.

그런 걸 보면 자기 자신을 강화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건 단지 그 녀석이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일 뿐이다.

{너의 잠재력을 각성시킨다.}

어떤 외부적인 요소의 주입이 아닌, 가지고 있는 힘 그 자체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

흡수한 영혼으로부터 추출한 힘들을 사용하기 수월하게 분류하고 인지시킨 일과 같이.

이미 갖고 있는 요소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나를 강화시키면 된다.

이 미지의 지식에 대한 심원한 탐구 끝에 내가 찾아낸 방법은 바로 이것이었다.

{네 안의 분노와 증오심, 파괴에 대한 갈구를 힘으로 구현한다.}

{조건: 내재된 잠재력 치환}

{보상: 세상을 파괴하는 힘}

{조건과 보상의 교환 조건……}

{……부적합. 더 많은 교란 매개가 필요하다.}

하지만 겨우 세 마리의 대악마를 먹어치운 것만 가지고는 원하는 결과를 현실화시킬 수 없었다.

보상의 수준을 저 표현보다 아래로 낮추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잠시 저 눈앞에서 날뛰는 내 추종자들을 잡아먹을까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딱히 정이 있는 놈들도 아니고, 토사구팽한다고 한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아니지.’

그러나 나에겐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돌아가면 되잖아? 지옥에.’

지옥은 문자의 권능 사용에 제약이 없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라면, 교란 매개 같은 건 아무런 필요가 없다.

거기서 내 힘을 끌어올린 다음, 다시 돌아오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였어.’

{지옥의 문을 연다.}

난 곧바로 지옥으로 되돌아갔다.

원래대로라면 이것도 모든 신계의 주신들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 굉장히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내 한 몸 지옥에 떨어뜨리는 것 정도는 대악마 세 마리분의 교란 매개 정도로도 현실을 왜곡하기에 충분했다.

‘다시.’

{네 안의 분노와 증오심, 파괴에 대한 갈구를 힘으로 구현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원래 하려던 작업을 재개했다.

{조건과 보상의 교환 조건……}

{……적합.}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이곳에선 아무런 제약이 없다.

고작 대악마 몇십 마리를 더 잡아먹느니, 내가 직접 지옥에 오는 게 훨씬 나은 일이었다.

‘됐어.’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내 안에 감춰져 있던 증오와 분노, 파괴 본능의 정체가 드러나기까지는,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 * *

쿠오오오오.

내게서 탄생한 거대한 힘이 울부짖는다.

그저 포효를 내지르는 것만으로도 이 드넓은 지옥세계의 천지를 뒤흔들 수 있는, 압도적 존재.

콰우우.

그것의 전신에서 검은 화염이 타오르자,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열기가 순식간에 황무지를 녹여 지상을 용암 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어떤 공격 행위가 아니라, 단지 몸에 불을 휘감았을 뿐인데도 그러했다.

실로 세상을 파괴하는 힘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는 면모를 지닌 그 생명체는.

거대한 날개.

날카로운 발톱.

흉포한 이빨을 지닌 세 개의 머리.

그리고 온몸이 검은 비늘로 뒤덮인, 용이었다.

나는 그것에게 ‘타오르는 용’이라는 의미를 담아.

“나에게 다가오라, 아지 다하카(Azhi Dahaka).”

아지다하카라 칭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