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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03화 (103/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03화

맹인 오크를 죽인 직후 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에테르 증폭을 너무 오랜 시간 유지한 탓에 몸에 돌아온 반동 때문이었다.

“일어나셨군요.”

눈을 뜬 나를 반겨준 것은 모나…… 아니, 아델이었다.

또 그녀가 나를 간호하고 있었다.

“아델.”

살았다는 안도감에, 잠시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 중요한 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성전은, 공성전은 어떻게 됐지?”

내성에 남아 있던 최강자인 맹인 오크를 잡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작은 성과에 불과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백선율이 상대하던 주 전력은 그 순간까지도 계속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소강상태입니다. 공성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아델은 내가 쓰러진 다음의 상황들을 설명해 줬다.

우리가 적의 가장 강한 전력인 맹인 오크를 처치하긴 했지만 내성에는 아직 수비군이 잔류해 있었고.

사실상 전투 불능 상태가 된 우리 쪽 일행은 거기서 다 같이 퇴각했다고 한다.

그나마 힘이 남아 있던 다리우스가 자신의 권능으로 기병을 소환했고.

아델이 나를 비롯해 기절한 보그단, 이진윤까지 모두 거기에 태워 비밀 통로로 되돌아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백선율도 승부를 내지 못하고 일단 퇴각했다고 한다.

그로써 적은 성안으로 들어가고 아군은 성 바깥에 천막을 쳐서 군진을 형성.

그 상태로 전투가 멈춘 채 해가 저물어 저녁 무렵이 될 때까지 휴전 상태라고 한다.

“그런가……. 젠장, 이 정도로 치열할 줄이야.”

솔직히 나도 방심한 면이 없잖아 있다.

상대가 강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쪽엔 나와 내 강력한 병력, 심지어 백선율까지 있었다.

지려야 질 수가 없는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면 공격을 통해 적을 헤집어놓음과 동시에 백선율의 화력으로 압살시킬 작정이었는데.

압살하기는커녕, 되레 혼쭐이 나고 말았다.

“진윤이는 어떻게 됐지?”

난 그 치열했던 전투 과정을 되새기며, 가장 큰 부상을 입은 이진윤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아직 의식을 잃은 상태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합니다. 지금 치유사들이 그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내 선택지는 맞아떨어졌던 모양이었다.

난 결국 모든 동료들의 목숨을 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델, 너는 괜찮나?”

이어서 아델의 안부도 물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그녀 또한 미스텔테인에 의해 큰 부상을 입었을 테니 말이다.

“아……. 네! 저는 괜찮습니다. 마스터께서 저희를 지켜주시느라 받은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행이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바짝 군기 든 모습으로 대답했다.

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다른 병사들의 기강 때문에라도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저런 태도를 보였다.

-정말, 생긴 것도 그렇고 모나와 판박이군. 아주 괜찮은 녀석이야.

아흐리만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정작 난 그런 부담스러운 태도보단 좀 더 살갑게 대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컸지만 말이다.

* * *

“매튜.”

그렇게 아델과 전후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천막 입구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백선율의 목소리였다.

“들어가도 되겠나? 할 말이 있어서.”

전투를 종결하지 못하고 퇴각한 그.

분명 지금 상황에 대해 할 얘기가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내가 먼저 그를 찾아갈 생각이었기도 했다.

“들어와.”

백선율이 내 허락을 받고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돌아온 그는, 유니폼 곳곳이 찢어져 있고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모습이었다.

그 고고하던 1급 각성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온통 피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그 역시 오크들과의 전투에서 상당히 분투했던 모양이다.

“들어와라. 윤아.”

그런데 이 천막을 방문한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백선율은 최윤아 또한 데리고 왔다.

‘무슨 꿍꿍이지?’

자신의 부하와 함께 내 천막에 들어온 백선율.

그 둘과 나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아델은 천천히, 허리춤에 메고 있는 칼자루에 조용히 손을 올렸다.

털썩.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백선율이 갑자기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서, 선율 오빠…….”

“너도 꿇어라.”

그는 최윤아에게도 매정하게 내 앞에 꿇어앉을 것을 지시했다.

최윤아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랐다.

‘무슨 꿍꿍이지?’

난 그의 그런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콧대 높은 각성자였던 그가, 내 앞에서 이렇게 낮은 자세로 나오다니.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백선율이 내뱉은 첫 마디는 사과였다.

“미안하다.”

“……응?”

“우선, 내 클랜원인 윤아의 행동에 대해 너에게 사과한다.”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진중한 태도.

이쯤 되니 뭔가 꿍꿍이라고 할 만한 게 느껴지지도 않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아까 전의 전투에서, 도중에 내 쪽에 가담했다. 들어보니 네 쪽은 꽤나 위험했던 것 같은데, 내 클랜원인 윤아가 멋대로 대열을 이탈한 탓에 더 큰 위험에 빠졌던 모양이군.”

“선율 오빠, 그건…….”

“조용히 해.”

최윤아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백선율은 엄격하게 그녀의 변명을 막았다.

“이건 다 내 클랜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불찰이다. 이에 대해 사과한다.”

그가 무릎 꿇은 채로 나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네가 나에게 맡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한다.”

이어서 그는 최윤아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책에 대해서도 말하기 시작했다.

“저 오크들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나도 몰랐다. 각성자들이라고 해봐야 우리 전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상대하기 어려웠다.”

이 부분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건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하기보다는 우리가 서로 대책을 논의해야 될 부분이었다.

“아냐. 그건 나도 똑같았으니까. 적을 과소평가한 건 피차 다를 게 없는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다.”

백선율의 태도는 상당히 열려 있었다.

아까 전 오전의 발언도 그렇고, 의외로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속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

그 와중에도 최윤아의 표정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자기가 철저히 믿고 따르는 상관이 웬 듣도 보도 못한 인간에게 숙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말이 나와서 말이야. 저 오크 녀석들 전력에 대해서 얘기 좀 했으면 좋겠는데.”

난 그런 그녀를 은근슬쩍 밖으로 내보내라는 의중을 내비쳤다.

백선율은 그 뜻을 바로 알아듣고 내가 원하는 대로 지시했다.

“윤아. 밖에 잠시 나가 있어.”

“……알겠습니다.”

그녀는 군말 없이 백선율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아델. 너도.”

“예. 알겠습니다.”

나 역시 아델을 밖으로 내보냈다.

* * *

“네가 느끼기엔 어땠지? 오크들의 전력.”

나와 백선율은 오늘의 전투에 대해 평가했다.

예상했던 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의 적.

상상 이상으로 강했던 건 아까 내가 만난 맹인 오크뿐만이 아니라, 백선율이 상대했던 주 전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보기엔 그쪽이 훨씬 더 위험해 보였다.

“적어도 벨그레이브가 하나로 뭉친 것과 유사한 수준이거나, 그걸 웃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신화급 각성자가 적어도 넷 이상. 오늘 매튜 당신이 상대한 적까지 포함하면 다섯은 되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맹인 오크는 이 성에 있는 그 수많은 강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신화급 각성자가 하나도 아닌 다섯.

아까 전에 문득 떠올렸던 ‘분열하기 전의 벨그레이브 같다’는 감상은, 백선율도 똑같은 말을 하는 걸 보면 결코 과장된 비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어떤 능력을 사용했지? 네가 상대하기에 많이 버거웠나?”

이어서 그에게 자세한 사항들을 물었다.

적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싸웠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다음의 전투에 대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음, 눈여겨본 능력자들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는 그때부터 자신이 봤던 강자들에 대해 묘사했다.

“가장 위험해 보인 건 번개를 다루는 자였다. 작은 손망치 같은 투영무구를 들고 하늘을 날아다녔는데……. 근접 거리와 원거리 전부에서 망치와 번개로 위협적 공격을 쏟아냈다.”

-토르로군.

그리고 그 상대에 대한 묘사를 들은 아흐리만이 수호령의 정체에 대해 알아맞혔다.

사실 이건 굳이 아흐리만의 지식을 빌릴 필요도 없다.

망치와 번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한 게 북유럽 신화의 토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거센 바람을 조종하며 창을 던지는 자. 투창의 명중률이 매우 높아서, 공중전으로 상대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적이었다.”

-저건 오딘이다.

오딘 역시 이름만큼은 널리 알려진 존재.

신화시대의 오크 영웅 ‘시구르드’에게 가호를 내린 신이기도 했다.

“지상에선 활을 쏘는 자가 있었는데, 화살은 강한 냉기 속성을 품고 있어서 아군의 움직임을 봉쇄했었다.”

-냉기와 활……. 스카디? 아니면 우르인가?

이쪽은 내게 생소한 이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상군의 가장 선봉에 서서 분투하던 외팔의 검사. 그 녀석과 나는 직접 맞붙진 않았지만, 막시모라고 했나? 네 클랜의 지상군 리더 격인 자가 상당히 고생했을 거다.”

-아, 외팔의 검사라면 티르겠군!

그렇게 백선율이 눈여겨봤던 네 명의 오크 각성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 모든 묘사와 아흐리만의 설명을 들은 내겐, 단 하나의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오딘, 토르, 티르……. 전부 북유럽 신화의 주신에 가까운 격을 가진 수호령들이야. ……이런 수호령을 가진 각성자들이 한 클랜에 모여 있다고?’

수호령은 단순히 역사, 전설, 신화로 급을 나눈다고 끝이 아니다.

같은 전설, 같은 신화 안에서도 격이 다른 수호령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북유럽 신화에서 저 세 신의 격이 높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수준.

지금 이곳에 있는 오크 각성자들이, 모두 그런 수준의 신들을 수호령으로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우연.

‘수호령의 격만 놓고 본다면 저들이 오크 계에서 가장 강력한 각성자들, 즉 ‘올스타’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처음 내가 생각했던 불길한 예상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저 ‘도끼’라는 클랜이 엄청나게 레어한 이름을 가진 만큼 엄청나게 강할 것이라는 예상이 말이다.

‘하필 첫 공성전에서 맞붙는 상대가 저쪽 세계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클랜이라니. 젠장, 재수가 없어도 지지리도 없군.’

나도 꽤나 강한 세력을 구축했고, 거기에 더해 운 좋게 백선율이라는 든든한 지원군까지 얻었다고 생각했으나.

내 앞을 가로막은 벽은 그보다 더 높았다.

‘이 전투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결국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후방 침투로 내부를 뒤흔들고 전방 밀어붙이기로 정면에서 무너뜨린다는, 정석적인 요새 공략이 아니라, 무언가 색다른 방법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더 약한 공성군이 더 강한 수비군을 이길 수 있게 만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의 전략을 떠올려야만 한다.

‘젠장, 그런 게 될 리가…….’

-일단 그전에.

그때, 아흐리만이 내 심각한 고민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걸 쓰는 게 어떻겠나?

‘응?’

-고등 정령마술 각인서.

그의 말을 듣고 곧장 스킬창을 띄워 확인했다.

{심화 정령마술 숙련도: 100 / 100}

그 혼란스러운 전투 사이, 나도 모르게 심화 정령마술의 숙련도가 최대치까지 오른 상태였다.

정령술 사용자들 중에서도 습득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바로 그 ‘고등 정령마술’을 배우기 위한 선행조건을 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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