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81화
마나난은 오하드에 대해 루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누아다가 오하드를 후임 아르드리로 선택한 건 그의 뛰어난 외교력과 통치 능력 때문이었어.”
“뛰어난 통치 능력? 하지만 왕국의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 게 현실이잖나?”
“그건 단지 올해가 지독한 흉년이라서 그런 것일 뿐, 오하드의 실정 같은 게 아니야.”
난 그 말에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다.
“단지 흉년? 흉년이 생선까지 썩게 만드는 건가?”
빵 같은 곡식이야 농사가 제대로 안 되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물에서 잡는 생선의 질까지 낮은 건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정곡을 제대로 찌른 건지, 마나난은 금세 입을 닫아야만 했다.
“…….”
‘뭔가 있군.’
난 여기서 그를 좀 더 추궁했다.
“다누 족이 이렇게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건 오하드의 실정 때문도 아니고, 단순한 흉년 때문도 아니야. 그렇지?”
“…….”
마나난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긍정의 대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난 당신들을 돕고 싶어. 나 역시 포보르 족을 없애고 싶은 건 마찬가지라고.”
“……가마솥.”
내가 간절한 표정으로 설득하려고 하자, 그가 실마리를 던져줬다.
“풍요의 가마솥. 다누 족에게 풍요를 가져오는 마법의 도구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사라졌어. 그것 때문에 이 땅 전체의 활력이 죽어버린 거고.”
그리고 그 실마리는 아주 구체적인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그것 때문에 다누 족의 상황이 이런 꼴이 되었다는 건가.”
“그런 셈이지.”
지금과 같은 다누 족의 좋지 않은 상황을 호전시키려면, 우선 그 풍요의 가마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아르드리가 폭군이건 아니건 간에, 그게 있어야 다누 족의 번영과 통합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원점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원래 그 가마솥은 어디에 보관되고 있는 거지?”
“그건…….”
그런데 마나난은 또다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더 설득하려 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입을 열었다.
“……아르드리가 지킨다.”
“아르드리? 오하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다누 족의 아르드리인 오하드가 가마솥을 잃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는 것.
그도 예상치 못하게 가마솥을 잃은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어딘가에 숨긴 건지는 알 방법이 없지만.
“어쨌든 오하드가 이 상황의 중심인물임은 틀림없다는 거네.”
“……그렇다.”
“당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고 있고.”
“그래. 나도 처음엔 그 자가 포보르 족의 혼혈이라는 이유로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니 그 의심은 사라졌어. 누아다가 그를 믿고 신임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지.”
오하드라는 자는 실제로 만나보면 상당한 카리스마를 지닌 자인 것 같다.
정황 상 이렇게나 수상쩍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누아다와 마나난이 끝까지 지지하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정말로 비열한 존재들은 앞에선 한없이 착하고 성실해 보이다가도 막상 뒤에선 온갖 음험한 모략을 꾸미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내가 직접 알아보지 않으면 절대 실상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혹시, 나도 당신들의 아르드리와 만나볼 수 있겠나?”
그래서 난 마나난에게 오하드를 직접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처음 보는 이방인이 다짜고짜 일국의 왕을 알현한다는 게 파격적이긴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중세 시대의 전제 왕정국가 사람들과는 달리 꽤나 편견이 없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난 이곳의 가장 강력한 유력자들인 누아다와 마나난의 환심을 샀으니 만날 자격은 충분하다.
“그래, 좋아. 차라리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는 게 낫겠군.”
마나난은 선뜻 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또다시 서브 시나리오 메시지가 나타났다.
───
<서브 시나리오>
풍요의 가마솥의 행방에 대해 알아내십시오.
조건: 풍요의 가마솥을 제단에 가져다 놓기
보상: 다누 족 번영도 + 100, 다누 족의 당신에 대한 호감도 + 20
───
* * *
나는 마나난과 함께 오하드의 저택에 방문하기 위해 숲을 떠났다.
그런데 목적지에 가는 길목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닥쳐!”
“저 여자, 시끄러우니까 그냥 죽여!”
무장한 병사들이 민간인을 노상에서 습격한 것이었다.
민간인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호위들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습격자들에 의해 모두 포박되었다.
‘도적? 노예로 잡아가려는 건가?’
이런 곳에서 무장집단이 사람을 묶어 데려간다는 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제, 제발! 저는 뱃속에 아이가……!”
푸확!
그 무자비한 도적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임산부를 죽여 버렸다.
꽈악.
그 장면을 보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분개한 건 마나난이었다.
“이…… 개자식들!”
무어라 생각할 것도 없이, 그는 들고 있던 양손검의 천 칼집을 풀어헤치고 대뜸 앞으로 뛰쳐나갔다.
“응? 저건 뭐야?”
“다누 놈인 것 같은데? 거기다 무기를 들고 있어.”
“쫄지 마. 어차피 혼자야.”
저 도적들은 마나난을 얕보았다.
하지만 그는 무시무시한 강자들이 가득한 이 세계에서도 최강의 전사라 일컬어지는 존재.
또한 동시에 시스템 상 검제의 수호령 원본이기도 했다.
후웅!
그가 들고 있던 양손검을 하늘로 던지자, 그것은 갑자기 공중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검의 칼끝이 도적들 중 하나를 겨누더니.
투쾅!
“커헉……!”
순식간에 날아들어 목표물을 분쇄했다.
아니, 날아갔다기보다는 순간이동에 더 가까웠다.
그건 눈으로 추적한다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는 무기.
위력은 아까 전 내가 에테르 증폭 상태에 돌입해서 아지다하카의 진정한 힘을 발휘했을 때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때의 내가 10개의 무구들을 난사하는 것보다, 지금 저 하나의 검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난 그것이 뭔지 이미 알고 있다.
‘검제의 투영무구인 프라가라흐.’
러시아 상공에 떠 있는 핵미사일들을 모조리 격추시켜 버린 그 엄청난 무구.
그것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순간, 벨그레이브 앞에서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들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그 투영무구의 원본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이다.
“무, 무슨……!”
“저 칼부터 잡아!”
프라가라흐의 위력을 단숨에 알아본 도적들은 그걸 먼저 무력화시키기 위해 뛰어들었다.
쿵!
그들 중 하나가 땅을 박차고 튀어나가 들고 있던 검으로 프라가라흐를 내리쳤다.
이곳에서는 한낱 길가의 도적들도 범상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단순한 공격만으로도 땅이 울릴 정도였다.
‘갈라틴.’
난 곧장 무구가 봉쇄된 마나난을 돕기 위해 검을 소환했다.
다행히 아까 전보다 조금 힘이 돌아온 것 같았다.
여전히 에테르 증폭을 사용한 후유증으로 몸이 상당히 약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빠르게 회복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네 도움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아흐리만이 거기서 나를 말렸다.
‘뭐?’
-마나난을 봐라.
난 그의 말대로 마나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이미 등 뒤의 투창 주머니에서 창을 꺼내 도적들을 향해 내던지는 중이었다.
쐐애액! 퍽! 퍼퍽!
프라가라흐를 붙잡고 있던 녀석은 그대로 머리통이 날아갔고, 그 주변에 있던 다른 도적들도 같은 신세가 되었다.
“이이익! 저 녀석을 죽여!”
그러자 저들은 이를 악물고 이판사판으로 마나난을 향해 덤벼들었다.
뒤에서 자신들의 등을 노리는 프라가라흐조차 무시하고서, 어떻게든 그를 죽이려는 시도.
스릉!
그러나 마나난은 이미 양 허리에서 두 자루의 칼을 꺼내 들어 근접전을 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저 녀석에게 접근할 생각을 하다니, 바보들이 따로 없군.
아흐리만은 그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실제로 맞아떨어졌다.
마나난은 두 자루의 쌍검을 쥐고서 달려드는 도적들을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쉬이익!
누아다가 대검을 휘두르던 것과는 확연히 대조적인 모습.
그는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세계의 대다수 전사들과 달리, 매우 절제되고 정밀한 검술을 구사했다.
거기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검, 프라가라흐까지 난입해 마나난을 돕자, 사실상 사각이 없는 무결점의 살육 기계가 된 것이다.
-잘 봐둬라. 저게 검제의 싸움 방식일 테니까.
아흐리만이 말했다.
‘검제? 하지만 그건 그냥 수호령일 뿐이잖아. 수호령의 전투 방식이 각성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건가?’
-영향을 미친다. 아니, 그 이상이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의미심장한 말에, 내가 되물었지만 그는 그대로 침묵했다.
‘매번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군.’
* * *
잠시 후, 마나난에게 덤벼든 도적들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참살당했다.
“자, 잠깐! 멈춰!”
그리고 마지막 한 명만이 남은 상황.
그자는 자신들이 급습한 민간인들 중 하나를 인질로 붙잡았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너…… 너희들!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냐?”
‘이런 짓?’
그는 뻔뻔하게도 마치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투로 말했다.
길 가던 민간인들을 공격한 도적들 주제에.
“내가 그걸 알아야 하나?”
그 어이없는 태도에 마나난이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뒤에 서 있는 내 오금마저 저리게 만들 정도로 흉흉했다.
“우린 발로르 님의 사병이다!”
“…….”
그런데 당장이라도 검을 내지를 것 같던 마나난은, 그 도적의 말 한 마디와 함께 보여준 오른쪽 팔뚝의 표식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발로르? 그건 또 누구야?’
이방인인 난 처음 듣는 이름.
하지만 그 다음으로 도적이 한 말을 듣고는 금세 그 이름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 그래. 오늘 네가 저지른 짓은 우리 포보르 족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짓이다. 만약 우리가 죽었다는 게 알려지면, 발로르 님이 너희 다누 족에게 보복을 할 거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들은 포보르 족의 병사들이었다.
저 팔뚝의 표식은 ‘발로르’라는 자의 사병임을 증명하는 표식인 모양이었다.
‘하, 그럼 일국의 정규군이라는 것들이 남의 나라에서 이런 패악질을 부리고 있는 건가?’
누아다는 그때도 자신을 습격한 중무장 군사들을 ‘도적 떼’라 칭했다.
그것들을 포보르 족 정규군으로 인정해 버리면 문제가 커질까 봐 그렇게 규정해 버린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 포보르 족이라는 놈들이 하는 짓이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뜻.
루 라바다가 이들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 그토록 역겹다는 반응을 보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발로르……. 그놈이 이런 짓을 하도록 직접 시킨 거냐?”
마나난은 그 팔뚝 표식을 확인하고서 동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면에는 강한 분노와 증오심이 끓어오르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의 벽에 막혀 차마 표출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런 심리가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그렇다! 이제 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거기서 칼을 놓으면, 조금이나마 보복의 강도가 약해질 수 있다.”
“……그걸 어떻게 믿지?”
“내가 돌아가서 발로르 님께 상황을 좋게 설명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그자의 말은 누가 들어도 궤변이었다.
그런데 마나난은 그 말을 듣고 정말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이냐?”
“그래! 어차피 날 죽이면 넌 더 난처해질 거다. 그러니…….”
그 순간.
푸확!
놈의 혓바닥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그건 아론다이트였다.
“커헉…….”
“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원거리 소환한 무구를 조종해 뒤통수를 찌른 것이었다.
발동 효과도 없고 프라가라흐처럼 빠르게 움직일 순 없지만, 칼날 자체가 예리하기 때문에 사람의 뼈와 살 정도는 충분히 꿰뚫을 수 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나? 네 왕이라는 자가 너 혼자만 살아 돌아왔다고 하면, 잘도 네 말을 기분 좋게 들어주겠군.”
확!
난 그자의 손에 붙잡혀 있는 인질을 끌어당겨 내 뒤로 보냈다.
그리고 아론다이트를 조종해 천천히 비틀기 시작했다.
“컥……. 커헉…….”
“아까 아이가 있다고 한 여자를 죽인 놈이, 너지?”
콰드득. 콰득.
“어억! 어…… 억!”
“죽을 짓 했으니까 달게 벌 받아라.”
털썩.
칼날에 의해 사정없이 몸이 헤집어진 그 녀석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난 놈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한 후 검을 회수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마나난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고맙다.”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포보르 족과 싸우면 안 된다고 말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문제의 소지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한 나에게 고맙다고 한 것이다.
이성은 현실과 타협하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도 포보르 족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인물.
어쩌면 마나난 막 리르야말로 현재 다누 족 전체의 상황을 대변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