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80화
에테르 조작 스킬에는 ‘증폭 효과’가 붙어 있었다.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에테르를 끌어와서 운용할 수 있는 부가 효과.
내 것도 아닌 에너지를 끌어와 쓰는 것이기에 큰 리스크를 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걸 감수하고서 잘만 사용하면 필요할 때 강한 힘을 내는 수단이 될 수 있는데.
이걸 얼마만큼 적재적소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스탯에서 기인하는 일방적인 유불리를 짧은 순간이나마 뛰어넘을 수 있는, 일종의 조커 카드.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쓰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래서 나 또한 최근 몇 개월간 에테르 증폭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도중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이것이 나에게는 단순히 스탯을 증폭시키는 데 그치는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콰르릉. 콰쾅.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폭풍우가 쏟아지는 어두운 심상세계.
발밑엔 파도가 굽이치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에는 용오름이 솟아나고 있다.
세 개의 머리가 달린 검은 용.
아지다하카가 그 용오름을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내게로 와라.’
난 그 녀석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에는 손을 뻗어 목을 비틀고 바닥에 내리치는 등 억지로 몰아붙여서 복종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 순간, 저것은 극단적으로 증폭된 내 영혼의 힘에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존재가 되었다.
크르릉.
에테르 증폭은 숨겨져 있던 나의 힘을 되찾아주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수호령인 아지다하카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심상세계 속의 저 악룡을 완전하게 제어할 수 있는 영혼의 격.
이렇게 함으로써, 짧은 순간이나마 진정한 용혈의 힘을 각성할 수 있는 것이다.
크오오오오!
이윽고 내 의식은 심상세계 밖으로 빠져나왔고, 마수 곰이 돌진해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난 손에 쥐고 있는 에테르 큐브를 공중에 띄워, 악의의 전당을 전개했다.
촤르르륵.
지금껏 모았던 10종의 투영무구들이 전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바로 진짜 악의의 전당.
이전까지는 각각의 투영무구들을 한 번에 하나씩, 파동의 힘을 빌려 억지로 발동하는 게 최선이었지만.
아지다하카의 진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모든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은 10초. 그 안에 끝낸다.’
지난번에 연습 삼아 시험해 봤을 때는 이 증폭 상태를 최대 20초까지 유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실전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모른다.
혹여나 조금이라도 삐끗했다간, 증폭 효과의 반동 현상 때문에 대량의 에테르를 영구적으로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난 유지 시간을 10초로 제한하고 싸울 생각이다.
콰앙! 쩌렁!
마수 곰이 또다시 아까처럼 공중으로 뛰어올라 허공을 밟고 내 쪽으로 급속 돌진을 행한다.
난 앞으로 손을 뻗어 10자루의 무구들을 일제히 날려 보냈다.
쩌렁!
그런데 곰은 그 상태에서 다시 방향을 바꿔 옆으로 피했다.
저런 기술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모양.
‘절대 안 놓친다!’
하지만 이번엔 안 통한다.
난 곧장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상에서 곰을 바짝 추격했다.
쐐애애액!
지금 이 상태에선, 그 간단한 스킬마저도 거의 순간이동에 가까운 신술(身術)이 된다.
그걸로 손쉽게 놈의 뒤꽁무니에 따라붙었다.
그 상태로 곰을 향해 손을 휘두르자.
투쾅!
크허엉!
허공에서 나타난 갈라틴이 그 거대한 몸뚱이를 꿰뚫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른 무구들도 연달아 날아들었다.
쾅! 콰쾅! 콰콰콰쾅!
공기를 찢는 파공음은 마치 포탄이 비행하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에 걸맞게, 날아드는 무구는 주변 일대의 나무들을 모조리 뽑아버릴 만큼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다.
바닥이 파이고, 바위는 산산 조각났다.
그 공격 하나하나가 파동을 사용하는 발동 효과와 맞먹는 위력.
그런 공격이 겨우 몇 초 이내에 수십 번 반복되는 것이다.
콰쾅! 쾅! 쾅!
한 번 날아들었던 무구는 다시 내 옆에 소환되어 재차 공격을 가했다.
페일노트와 아르테미스의 활, 두 자루의 활은 내 머리 위에서 쉬지 않고 화살을 뿜어댔다.
마수 곰은 어느새 땅에 처박힌 채로 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이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하아……. 하…….”
그렇게 10초가 흘렀다.
‘증폭 중단.’
난 재빨리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에테르 증폭 상태를 멈췄다.
실전의 흥분 속에서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몰아친 공격.
다행히 난 거기서 멈출 수 있었다.
{서브 시나리오를 클리어했습니다.}
털썩.
* * *
눈을 떴다.
서브 시나리오를 클리어했다는 메시지를 본 직후, 난 그대로 쓰러졌던 것 같다.
아무래도 에테르 증폭 상태로 힘을 사용한 충격이 신체에 그대로 되돌아온 모양.
‘설마.’
난 혹시나 붕괴 현상이 온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몸 상태를 살펴봤다.
“하아.”
다행히 에테르의 양은 그대로다.
내가 쌓은 힘을 영구적으로 잃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연습 때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확실히 실전과 연습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번에 시험해 봤을 때는 에테르 증폭 종료 직후에 그저 체력이 좀 많이 떨어졌을 뿐, 의식까지 잃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몸에 힘이 완전히 다 빠져버린 느낌이다.
주먹에 힘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
만약 의식적으로 10초라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면, 난 아마 더 큰 페널티를 받아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제법인데. 내 도움도 없이 아지다하카의 본성을 끌어낼 줄이야.
‘으응? 아흐리만?’
갑자기, 그동안 잠잠했던 아흐리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코홀리테 요새에서의 일 이후로 처음.
마냥 짜증 나기만 하던 놈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으니 반가운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불완전하군. 이런 식으로 네 한계를 함부로 넘다가는 언젠가 일이 터지고 말 거야.
그는 여전했다.
저 고압적인 태도는 그때와 똑같다.
‘이봐,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인사도 없이 훈수부터 두는 거냐?’
-돌아오긴. 난 계속 네놈 옆에 있었다. 단지 내 목소리가 닿지 않았을 뿐이지.
‘아, 약간 반가울 뻔했는데 벌써 지겨워지려고 하네.’
아무튼 아흐리만의 존재를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한편, 나는 이곳이 내가 쓰러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서 있던 숲속 한가운데가 아니라, 어느 오두막이라는 걸 알아챘다.
반동 충격으로 인해 워낙 정신이 없어서 주변 환경이 변화했다는 것도 이제야 인지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덜컥.
오두막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갈라틴.’
난 곧장 에테르 큐브를 꺼내 검을 소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 일어났군.”
그사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자는 키가 큰 근육질 몸을 가진 남자였다.
“당신은……?”
“난 마나난. 반가워.”
마나난 막 리르.
이곳에 날 데려온 건 바로 내가 만나려고 했던 그 사람이었다.
“그럼 당신이 루의 아버지?”
“호오, 날 아는가 보지?”
“그거야 뭐, 둘 다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라서 그런 거지.”
시스템이 가르쳐 준 거긴 하지만.
“너처럼 이상한 옷을 입은 이방인까지 알 정도면, 내 유명세가 대단하긴 한가 보네. 하하.”
마나난이 자화자찬하며 웃었다.
난 그 말에서 이 세상의 세계관이 현실과 이어지지 않음을 눈치챘다.
‘레아도 시련을 진행했을 텐데, 날 보고도 그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보니 그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모양이군.’
마치 개별적으로 만들어진 평행차원과 같은, 히든 퀘스트와 비슷한 세상.
내 눈앞에 있는 자들은 그저 시나리오에 의해 재현된 일종의 연기자일 뿐, ‘신화 속에 등장하는 진짜 신’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은 아까 보고 있었어. 네가 그 곰 잡는 거.”
한편, 마나난은 한껏 흥미롭다는 투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
“아주 대단하더라고. 특히 그 많은 무기들을 다루는 거 말이야. 나도 웬만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한테는 못 이기겠더군.”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는 온몸에 창과 칼을 두르다시피 하고 있었다.
양 허리춤에 각각 한손검을 장비하고 있고, 등 뒤에는 투창 한 묶음을 담은 주머니를 맨 상태.
거기에 마지막으로 천으로 싸맨 채 손으로 들고 다니는 커다란 양손검 한 자루까지 더해, 총 네 종류의 무기를 소지한 것이다.
“그 곰은 내가 몇 주 동안이나 도전했지만 못 잡았던 녀석이거든. 근데 그걸 네가 그렇게 순식간에 잡아버렸다고.”
마나난의 눈빛에는 아쉬움과 즐거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내 양어깨를 붙잡고서 말했다.
“넌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네가 우리 다누 족의 전사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중요한 이야기였다.
지금 내가 그를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런 그가 초장부터 나와 ‘한 편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
이 순간 이미 난 목적을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서브 시나리오를 클리어한 덕분인가.’
“다누 족의 전사……. 그 말인즉, 포보르 족과의 싸움에 내가 나섰으면 좋겠다는 거군?”
그래서 나는 더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들었다.
“……뭐?”
마나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보는 자가 이 왕국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 놀라울 만도 했다.
“사실 난 루와 만나고 오는 길이야.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거지.”
난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밝혔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 그도 내막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구태여 뻔히 알려질 것을 감췄다가 뒤가 구린 사람 취급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인사가 늦었군. 난 유신우다.”
내가 악수를 청하자, 마나난이 응했다.
그의 그저 흥미가 돋았을 뿐인 눈빛에는 어느새 진중함이 담겨 있었다.
“아까 그 말……. 무슨 뜻이지?”
“어떤 말?”
“포보르 족과 싸웠으면 좋겠냐고 물었던 것. 설마 너도 그들에게 무슨 원한 같은 게 있는 건가?”
“아아. 뭐, 그런 셈이지. 난 그놈들이 이곳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거든.”
이유야 어쨌든 목표는 같다.
루의 아버지인 마나난도 포보르 족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터.
그뿐만 아니라 다누 족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난 그 가운데 유력자들을 이런 식으로 만나 포보르 족에 대한 적개심에 불씨를 피울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암군인 오하드를 몰아내고 다누 족 전체를 일으켜 세워서 포보르 족을 물리치면 끝.
물론 적과 싸워 이기는 문제가 결코 쉬운 건 않겠지만.
생각대로만 된다면 일단은 이번 시련을 클리어하기 위한 기반은 갖추는 셈이다.
난 그렇게 믿으며 그 계획의 첫걸음인 마나난을 설득한 것이었다.
시나리오도 클리어했고, 시스템의 작용으로 인해 나에 대한 호감도도 올라갔으니 그는 분명 나를 따라와 줄 거라고 생각했다.
‘……뭐지? 왜 밝지가 않지?’
그런데 내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어두웠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음?”
“지금 우리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포보르 족을 절대 이길 수 없어. 아무리 네가 우리를 돕는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내 말은 그냥 마물들을 잡는 데에 네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뜻일 뿐이었어. 미안하지만, 그 목표는 이룰 수 없을 것 같군.”
이 순간 마나난은 마치 무력감에 빠진 패잔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누 최고의 전사라는 자가 이런 꼴이라니.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상, 다른 자들도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 시련 또한 실패로 돌아갈 것이고.
그래서 난 그를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했다.
“이봐, 너희는 지금 포보르 족 때문에 제대로 먹고살지도 못하고 있다고. 게다가 너희의 왕이라는 오하드도 그놈들에게 부역하는 쓰레기고…….”
하지만 그건 오히려 역효과였다.
콱.
마나난이 내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말조심해. 오하드는 그런 인간이 아니야.”
‘이건 또 뭔……?’
“네가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몰라도, 오하드 그 녀석은 절대 욕을 먹을 만한 인물이 아니야.”
아버지와 아들의 의견이 정반대다.
루와 마나난.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