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73화
[그럼 물건은 주소대로 보낼 테니까, 제때 가서 받으라구.]
[고맙다. 너 다음에 보면 이것보다 훨씬 대단한 걸로 보답할게.]
[짜식. 가족끼리 보답이 뭐냐?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구 친구!]
[보답하겠다는 건 진심이야. 거절은 없다.]
[새끼, 은혜도 겁나게 강압적으로 갚네. 좋다! 그 보답 기꺼이 받아주마! 으하하하!]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고.]
[얍.]
다리우스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난 그에게 어떤 물건 하나를 부탁했다. 그는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다고 했다. 쫓기는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말투를 보니 살만한 모양인데.’
메시지일 뿐이지만, 그의 문장에선 해맑음이 느껴졌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우 씨, 무슨 좋은 일 있나 봐요?”
한편, 나와 함께 체포되어 감금당해 있던 최윤아는 나와 함께 풀려났다.
브랜든이 징계 절차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녀를 풀어달라고 요청한 것도 있고.
“그냥 그렇지.”
“아하하, 그렇구나.”
“…….”
“…….”
나란히 복도를 걷는 동안,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다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기…… 고마워요. ……그리고 죄송해요.”
“뭐가?”
“제멋대로 움직인 것 때문에 신우 씨까지 휘말리게 하고……. 그래놓고는 염치없게 또 신우 씨한테 도움을 받았네요.”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너 때문에 사람들 구한 거 아니니까.”
“아…… 네.”
그리고 다시 침묵.
“……그런데.”
그러다 이번엔 내가 그 침묵을 깼다.
“나한테 궁금한 건 없나?”
그녀가 ‘본 것’에 대해 캐묻기 위해서였다.
최윤아는 은신한 채로 내 뒤를 따라다니며 내가 전리품을 습득하는 걸 다 지켜보고 있었다.
거기에 대해 어떤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 해서 물은 것이다.
“궁금한 거요? ……어…… 글쎄요? 신우 씨의…… 취미?”
다행히 그녀는 그때 그 상황을 그렇게 이상히 여기고 있지는 않았던 듯하다.
대답에서 전혀 다른 의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됐어. 그냥 없던 얘기로 하자.”
“왜요. 전 신우 씨의 취미가 궁금한데요?”
“내 취미는 마라탕 맛집 찾아다니기야. 됐지?”
“……에엑. 거짓말. ……진짜예요?”
“아니, 가짜.”
“에라이.”
아무튼 그렇게 나와 최윤아는 계속 같이 복도를 걸어갔다.
이윽고, 우리의 목적지인 잭슨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셨군요. 앉으시죠.”
그는 우리에게 손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말했다.
나와 최윤아는 그 의자에 앉았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점령지에서 두 분 다 위험한 행동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는 다짜고짜 그때 있었던 일을 상기시켰다.
물론 다시 징계를 하려거나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정말 순수하게 우리의 안부를 묻는 말일 뿐이었다.
“보시다시피, 다친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 둘 다요.”
“그러시군요. 다행입니다.”
잭슨이 책상 위에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대화를 굳이 길게 늘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 공략했던 코홀리테 요새……. 그곳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요?”
“네. 두 분 다.”
최윤아와 나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
난 다시 잭슨에게 물었다.
“무슨 일 때문이죠? 징계 건은 이미 다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그런데…….”
뭔가 곤란해 보이는 듯한 얼굴.
“저희 클랜에서 그 점령지를 관리하려고 했습니다만…….”
잭슨이 자꾸만 말을 하면서 뜸을 들였다.
답답한 마음에 그를 보챘다.
“뜸 들이지 말고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시죠.”
그러자 그가 한숨을 푹 쉬면서 대답했다.
“……주민 호감도가 낮아서 요새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주민 호감도?”
“그렇습니다. 아마 저희 쪽의 무리한 공격 때문에 NPC들의 민심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만.”
그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비웃을 뻔했다.
‘무리한 공격은 무슨. 브랜든 그놈이 대놓고 사람들을 죽여서 그렇겠지.’
나와 최윤아가 체포당할 때, 우리 앞을 가로막던 NPC들.
염왕의 명령을 받은 클랜원들이 그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명령을 내린 염왕도 그렇고, 명령을 들은 클랜원들도 NPC들의 생명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니 당연히 반발이 심할 수밖에.
“신우 씨와 윤아 씨가 그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주민들을 좀 설득해 주셨으면 합니다.”
결국 벨그레이브는 우리의 손을 빌리는 선택을 한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최윤아도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주민 호감도라……. 이런 게 있었구나.’
{신규 추가 던전 분류: 영지}
나는 ‘영지’에 관한 패치노트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사실 알포드 성을 점령하러 갔을 때도 딱히 내 영토를 가지거나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거기에 있는 에테르 웨폰을 얻는 게 목적이었을 뿐.
그래서 이런 영지 관리에 관한 부분은 딱히 자세하게 알아보지 않았고-
무기 생산 체제를 만들 때도 그저 골드와 다이아를 쏟아부어서 환경을 조성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인해 난 이 부분을 조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패치노트에 쓰여 있는 어떤 문장 때문이었다.
{영지의 주민들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오브젝트가 아닙니다.}
{이들은 환경과 사건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영지 소유자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소유자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문구.
그 문구를 머리에 새겨 넣은 채, 나와 최윤아는 고위 클랜원들과 함께 요새에 도착했다.
“거리가…….”
“텅 비었군.”
넓은 부지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코홀리테 요새.
이곳은 완전히 폐허로 변해 있었다.
단순히 건물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다 그때 죽은 건가.”
최윤아가 지난번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고개를 떨궜다.
우리를 풀어주라며 눈앞을 가로막던 주민들.
그들이 염왕의 명령을 받은 클랜원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 터다.
흘끗.
난 우리 뒤에 따라붙은 고위 클랜원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들은 염왕의 부하였다.
“그 자리에 당신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아직 남아 있을 잠재 위협으로부터 우릴 지킨다는 명목으로 동행했지만, 사실 이들의 역할은 감시였다.
염왕은 여전히 나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뭘 어쩌긴. 이렇게 계속 우릴 졸졸 따라다니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하는 거지.”
“뭐?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냐?”
그러니 이들을 좀 떼어 놓을 필요가 있다.
“생각을 해봐. 우리보고 주민들을 설득하라며? 그런데 너희가 우릴 쫓아다니면 어쩌자는 거야?”
난 내 관자놀이를 검지로 툭툭 건드리며 생각을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자기들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인 괴물 두 명이 이렇게 바로 옆에 붙어 있으면 사람들이 퍽이나 우리 이야길 들으러 나오겠다. 안 그래?”
“흥, 그래서 우리보고 자리를 비우라는 거냐?”
“어.”
“염왕께선 너희를 지키라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거기에 최윤아도 거들었다.
“사람들을 겁먹게 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자리를 비켜주셔야 저희가 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죠.”
“크흠…….”
그녀의 말을 들은 두 클랜원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더니 결국.
“……그래. 네 말대로 하지. 대신 확실한 결과를 가지고 와야 할 거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라져 줬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고서 약 30분 정도가 흘렀다.
웅성웅성.
주변에서 조금씩 기척이 드러나며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폐허 곳곳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다행이다. 사람들이 우릴 보고 밖으로 나오고 있어요.”
최윤아는 그들을 보고 활짝 웃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영웅이다! 그때 우리를 구해줬던 그분이야!”
“언니-!”
이윽고, 주민들이 빼곡하게 모여들어 우리 주변을 둘러쌌다.
인파 사이에서 한 여자아이가 뛰쳐나와 최윤아의 품에 안겼다.
“미아! 잘 있었어?”
“응!”
구출 당시에 만들었던 인연인 모양.
“영웅님,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 아이를 시작으로,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중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당연히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감사 표시를 못 드렸군요.”
“잘 오셨습니다!”
“그땐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봉사에 감사함을 전했다.
나와 최윤아 둘 다 인파에 둘러싸여 그들 모두의 손을 잡아주느라 여념이 없었을 정도.
‘NPC들은 현실 세계의 각성자들을 영웅이라 칭하며 기본적으로 호감을 갖는다……. 거기다 목숨까지 구해줬으니 더욱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가.’
확실히 이런 반응은 현실의 사람들보다는 좀 더 과장된 반응이긴 하다.
아무래도 이것 또한 시스템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적대 당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은데, 벨그레이브는 그걸 해내고 말았군. 심지어 오크들도 주인이 바뀌니까 군말 없이 날 따랐는데.’
어쨌든 그 덕분에, 우리는 코홀리테 요새의 주민들에게 큰 환대를 받으며 들어올 수 있었다.
* * *
야옹!
“잡았다.”
난 막다른 골목에 몰린 회색 고양이 한 마리를 잡아서 안아 들었다.
이 고양이는 마을 주민 중 한 명이 잃어버린 녀석이었다.
전쟁으로 집이 무너지고 거리가 파괴되다 보니, 고양이도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맸던 모양.
난 신화 사냥꾼의 본능을 활용해 이 녀석의 흔적을 추적했고, 어렵지 않게 찾아내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문제 하나 해결.
그다음으로 들어온 의뢰는 고양이 찾기보다는 좀 더 중한 일이었다.
“저희 집에 있는 곡식을 누군가 훔쳐 갔습니다! 제발 도둑을 잡아주십시오! 그게 없으면…… 임신한 제 아내가 먹을 게…….”
“걱정 마시죠.”
식량을 훔친 도둑을 잡는 일.
그 도둑을 찾아내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처럼 법질서가 와해된 상황에서, 그 도둑을 어떻게 처분하느냐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가 너무 배고파하는 바람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물론 범인에게도 딱한 사정이 있었다.
특히나 지금같이 어려운 상황이 그런 범죄를 만들어냈으니, 참작의 여지도 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으니, 진심으로 사죄하십시오.”
난 그런 그에게 피해자에게 사과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어서 이런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았고, 동시에 적절한 배상도 이뤄지게 했다.
“그리고 부족한 식량은 제가 조달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훔친 식량 2배만큼의 배급량을 피해자에게 나눠 주십시오.”
그렇게 난 포탈을 타고 밖으로 나가 멕시코 국내의 수많은 식료품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음식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줬다.
적어도 요새 내의 모든 사람들이 며칠간은 풍족히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을 말이다.
“감사합니다! 신우 님!”
“신우 님 덕분에 마을에 다시 활기가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경찰이자, 법관이자 또한 행정관이었다.
단순히 사람들에 대한 도움을 넘어, 사법적, 정치적 행동도 서슴지 않고 행했다.
“진짜 대단해요. 저도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은데.”
최윤아가 그런 나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들을 NPC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지만…… 신우 씨는 정말 다르네요.”
“그래?”
“네. 겉보기엔 차가워 보여도…… 마음은 따뜻해요. 그때 레이드에서도 그렇고, 개미굴에서도, 여기서도. 신우 씨는 정말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아요.”
“난 그런 사람 아닌데.”
“후훗, 겸손하기까지?”
그녀가 나를 한껏 띄워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하는 행동들은 다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사실 너한테 부탁이 하나 있거든. 그 얘길 들으면 실망할걸?”
“부탁? 뭐든 말해봐요.”
그저 주민들의 클랜에 대한 호감도를 ‘적대적이지 않은 상태’로 만드는 것, 그 이상의 과도한 호의를 베푼 목적.
마을의 온갖 대소사에 관여하며 임시 공권력 노릇을 한 이유.
“네가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줬으면 좋겠어.”
“소문이요?”
“유신우가 성의 관리자가 되는 게 좋겠다는 소문.”
그건 바로 이곳 코홀리테 요새를 먹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