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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71화 (71/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71화

난 우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최윤아를 일으켜 세웠다.

“빨리 날 따라와!”

존댓말을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그저 이곳에서 빠르게 탈출하는 게 최선.

난 그녀의 팔을 힘껏 잡아당기며 지하수로 쪽으로 달렸다.

화륵! 콰콰쾅!

하늘에 있는 염왕과 고위 각성자들은 지상을 아예 초토화시킬 기세로 공격을 퍼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 입장에서 이곳에 사정을 봐줄 만한 존재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그런데 한참 달려가던 도중에, 최윤아가 갑자기 멈춰 섰다.

“뭐하는 거야! 죽고 싶어?”

“사람들이!”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건물 잔해에 깔린 민간인들이 있었다.

불타는 집과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는 기둥.

잠시 후면 저 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그냥 놔두고 가!”

하지만 지금 우린 NPC들의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다.

자칫하다간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저 살벌한 불덩어리에 휘말려 우리 역시 한 줌 재가 될지도 모른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꺼내드릴게요!”

그럼에도 최윤아는 끝까지 그들을 구해내려 했다.

내 외침은 못 들은 체하며, 온몸에 자신의 주 속성인 빙결 속성의 마나를 두르고 불 속에 뛰어들었다.

치이이익!

다행히 속성 덕분인지, 얼음이 맹렬하게 증발하는 소리만이 요란했을 뿐 그녀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 듯해 보였다.

최윤아는 그 상태로 무너진 건물 잔해들을 헤치며 그 밑에 깔린 사람들을 구출했다.

‘젠장,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러나 저건 너무 무모한 짓이다.

콰쾅! 콰아아아!

이 전장은 지금 우리 수준에서 한참 벗어난 전장이다.

실제로 지금 저 위에선 괴물 같은 능력의 수비군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염왕과 호각으로 싸우고 있다.

스탯 하나하나가 무려 다섯 자리에 이르는 미친 능력치의 염왕과 말이다.

저기서 튀는 불똥에라도 맞는 날엔,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꼴이 되는 것이다.

“외곽으로 달리세요!”

“고, 고맙습니다!”

“감사 인사는 다음에! 얼른 뛰어요!”

그 와중에 최윤아는 방금 그 사람들을 보내놓고서 자신은 또 다른 희생자들을 구하러 갔다.

‘그래……. 본인 뜻이 그렇다면.’

난 더 이상 그런 그녀를 신경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

괜히 그녀를 억지로 데려온답시고 실랑이를 벌이다가는, 내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결국 난 최윤아를 뒤로하고서 지하수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콰르릉!

도망치던 중, 저 앞쪽에 있는 집이 무너지며 잔해가 길을 막았다.

물론 난 그냥 뛰어넘으면 그만.

하지만 내 앞에서 도망치던 민간인 가족은 그럴 수 없었다.

그 위로 불꽃이 피어오르는 바람에, 나처럼 높은 점프력으로 단숨에 뛰어넘지 못하면 그대로 타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빠…… 뜨거워…….”

“으으…….”

양손에 각각 아들과 아내의 손을 움켜쥔 남자.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빠져나갈 공간은 없어 보였다.

사방이 뜨거운 불길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와!”

“여보……?”

그러자 그는 자신의 가족들을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둘을 덮더니, 자신이 그 위를 감싸 아내와 아들을 화염으로부터 지키려 했다.

‘바보 같은 짓.’

당연하게도 저런 걸로는 가족들을 지킬 수 없다.

보나 마나 이 불길 속에서 세 사람 모두 새까만 잿더미로 변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남자가 흘끗,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난 그와 눈이 마주쳤다.

-여보. 야드가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남자에게서 아흐리만의 모습이 보였다.

참혹한 전쟁터 속에서 어떻게든 가족을 지켜보고자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던.

신화시대 한 인간의 처절한 모습이 말이다.

‘이건……?’

갑자기 주변이 암흑에 휩싸였다.

방금 전까지 온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불길과 잔해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새까만 물감을 쏟은 듯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남았다.

그리고 내 앞엔, 아흐리만의 아내와 야드가르가 나란히 서 있었다.

-미안해.

아내가 백골이 되어 사라졌다.

-아빠.

아들도 백골이 되어 사라졌다.

그렇게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겨진 가장은, 발끝에서부터, 손끝에서부터 몸이 천천히 소멸해 갔다.

지독한 통증이 너무나도 괴롭지만, 아무리 끝내려 해도 끝나지 않는.

이상하리만치 길고 아픈 심연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벗어나고 싶다면,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라.

곧이어 아흐리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어둠이 사라지고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망할……!”

난 힘껏 내달려 눈앞에 있는 그 가족들을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남자는 왼팔에, 여자와 아이는 오른팔에.

그렇게 세 사람을 붙잡고서 높게 점프해 이 화염 함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구해낸 세 사람은, 나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하더니 이윽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뭐야 방금?’

얼떨결에 몸을 움직이긴 했지만, 뭔가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의 나는 나인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내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아흐리만은.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였다.

보통의 그라면 무조건 죽게 내버려 두라고 했을 텐데, 어째서인지 사람을 구하라고 말했다.

그것도 심지어 NPC를.

-…….

난 방금 그게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일부러 침묵하는 건지, 아니면 말을 할 수 없는 건지, 지금은 알 도리가 없다.

“아! 신우 씨!”

때마침 사람들을 구출하던 최윤아가 나타났다.

화염 때문에 얼굴이 새까맣게 그슬리긴 했지만, 용케도 저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모양이다.

* * *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그 후로 난 최윤아와 함께 수많은 민간인 NPC들을 구출했다.

성내 수비군은 모두 압도적인 화력의 염왕을 막는 데에 집중하느라 성안에서 시민을 구출하는 우리와 마주칠 일이 없었고-

벨그레이브의 공격대는 민가가 밀집된 외성보다 지휘부가 있는 내성을 공략해서 공격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도와줘서.”

최윤아가 새까맣게 검댕 칠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물론 지금 나도 그녀와 같은 꼴이다.

처음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난 그녀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이번엔 운이 좋아서 망정이지, 다음에도 그렇게 하다간 제명에 못 죽을 겁니다.”

그러곤 재빨리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혹여나 이곳에 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기…….”

그런데 다시, 최윤아가 나를 붙잡았다.

“왜요?”

그녀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냥 계속 반말해도 돼요. 저 진윤이랑 동갑이에요. 스물네 살.”

의외로 외모에 비해 나이가 더 많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어리다.

그래서 난 거리낌 없이 그녀의 마를 받아들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둘이 함께 숙영지로 돌아가려던 찰나.

쉬이이익! 콰앙!

하늘에서 미사일 같은 것이 날아와 눈앞에 떨어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부지불식간에 접근해 온 고속의 비행물체.

“유신우. 또 너냐?”

그건 염왕 브랜든이었다.

“내가 분명히 꼼짝하지 말고 숙영지에서 대기하라고 했을 텐데.”

“…….”

“이젠 아주 상급자의 말을 똥으로 듣는구나?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말을.”

그 뒤로 검은 유니폼을 입은 고위 클랜원들이 뒤늦게 날아왔다.

나와 최윤아는 순식간에 그들에게 둘러싸였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넌 닥쳐.”

최윤아가 뭐라고 항변하려 했으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 상황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모면할 수 없는 명백한 명령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리품을 챙기는 모습을 걸리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유신우. 네가 이러는 게 검제를 믿어서 그런가 본데…….”

브랜든이 손바닥으로 내 뺨을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검제는 너 아니라도 기대를 거는 사람이 많거든? 네가 이딴 식으로 행동했다는 걸 안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는 이번 일로 클랜 내에서의 내 입지를 말살시킬 생각인 것 같았다.

가만히 대기하라는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이 엄청난 중죄는 아니지만, 이를 통해 클랜원으로서의 자격에 흠을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검제의 눈 밖에 나게 만든 다음, 나를 마음대로 처리하면 된다고 염왕은 생각한 것이다.

“…….”

“큭큭. 드디어.”

그는 내 침묵에 아주 흡족했다는 듯한 얼굴로 박수를 치며 웃었다.

“드디어 주제도 모르고 나불대던 입을 다물었군.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고는 주변에 있던 고위 각성자들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명령을 내렸다.

“둘 다 데려가서 진술서 쓰게 해. 오늘 바로 본부에 보고한다.”

“네.”

나와 최윤아는 나란히 그들에게 붙들린 채 끌려갔다.

그런데.

“아니! 왜 사람들을 구해준 영웅께서 이런 꼴을 당하고 계십니까!”

아까 나와 최윤아가 피신시켰던 NPC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분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그저 저희를 구했을 뿐이라고요!”

브랜든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는지, 사람들은 다 같이 우리를 변호하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용기를 내자, 여기저기 숨어 있던 사람들이 덩달아 함께 나섰다.

“뭐야? 이것들은?”

물론 그런 행동들이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게 해줄 수는 없었다.

브랜든은 미간을 좁히며 NPC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분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들을 구해주신 진짜 구원자 같은 분입니다! 그러니…….”

화륵!

“안 돼!”

최윤아의 비명.

순식간에 날아든 화염.

시민 한 명이 눈 깜짝할 사이 새까만 재로 변해버렸다.

브랜든의 손에는 잔불이 남아 있었다.

“염병을 떨고 있군.”

곧이어 그의 입에서 잔혹한 지시가 떨어졌다.

“길 막는 놈들 다 죽여.”

“예!”

* * *

브랜든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군 공항에 돌아왔다.

점령지 공성도 큰 피해 없이 성공적으로 마쳤고, 눈에 거슬리던 유신우도 알아서 자폭해 줬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하비를 처리하는 것뿐.

‘그 녀석이 제일 문제인데.’

다만 바로 그 하나가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게 문제다.

“후우.”

달칵.

일단 골치 아픈 사안은 뒤로 한 채, 브랜든은 의자에 앉으면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틀간 통신 불가 지역에 들어가 있느라 꺼놓았던 것을 이제야 부팅했다.

[부재중 메시지 41건]

[부재중 전화 15건]

“음? 뭐야?”

그런데 그 이틀 동안 꽤 많은 연락이 와 있었다.

원래도 일 때문에 연락을 많이 받는 편이긴 해서 이 정도 연락은 충분히 있을 법한 양이었다.

문제는 그 연락 중 대부분이 자신의 측근들에게서 왔다는 것.

이번엔 이틀간 연락이 불가능하다는 전언을 미리 해두었다.

즉, 뻔히 사정을 알면서도 이렇게 많은 연락을 한 것이다.

“대체 뭔…… 응?”

그는 부재중 메시지들을 살펴보다, 이상한 내용들을 발견했다.

[대런이 로마노프 사 관계자들과의 미팅을 무산시켰습니다.]

대런은 브랜든이 거의 전권을 위임한, 자신의 대리자 자격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었다.

사업과 관련된 중요한 업무를 그에게 전적으로 맡길 정도로 신뢰하는 직원.

그런 그가 자신이 지시한 일을 망쳐버렸다고 한다.

“……왜지?”

그 이유는 그다음에 연속적으로 받은 메시지들에 담겨 있었다.

[대표님, 메시지 확인하시면 바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대런에 관한 문제입니다.]

[대런과의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대런이 실종되었습니다.]

그가 미팅을 파투내고 사라졌다.

누군가에 의한 고의적 음모로 느껴지기에 충분할 만큼 작위적으로.

그리고 그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은 바로.

[대표님의 동생분께서 대런의 실종에 관련된 것 같습니다.]

하비였다.

“……하비, 이…….”

그 순간, 브랜든은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솟음을 느꼈다.

자신의 최측근을 건드리다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친다고?

분명 말썽을 일으킬 것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다.

이 정도로 빠르게 선을 넘을 줄은 몰랐다.

“……이 개X끼!”

쾅!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침과 동시에 브랜든의 몸으로부터 사방에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화르륵! 쨍그랑!

물건들이 불타오르고, 유리창이 깨졌다. 곧이어 막사의 천장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모든 게 수월하게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불상사를 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언제나 자신의 손아귀 위에서 놀아날 거라고만 여기던, 아둔한 동생에게 말이다.

“그…… 개자식.”

그 순간, 어젯밤에 유신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너한테 있어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거든.

당장 그를 눈앞에 데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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