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70화
난 하비와 브랜든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첫 시도는 실패.
-네가 우리 형제에 대해 뭘 안다는 거지? 개수작 부리지 말고 꺼져.
브랜든은 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당연히 모든 일들이 다 내 생각대로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내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준 하비 쪽이 예상보다 너무 쉽게 넘어온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한테 전혀 기회가 없느냐고 하면, 그건 또 그렇지 않다.
‘놈의 눈빛이 흔들렸어.’
난 그 순간 브랜든의 반응을 눈여겨봤다.
내가 하는 말에 마음이 동요하는 모습이, 분명히 보였다.
이건 단순한 직감 같은 게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시, 청각으로 감지해 낸 분명한 신호였다.
‘처음에 날 죽일 것처럼 굴던 것과는 상반된 반응이었지.’
게다가 내 제안을 듣기 전과 후의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계기를 만들기만 하면 돼. 놈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하게 하는 계기.’
거기서 가능성을 본 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흡족한 결과물을 안고서 천막으로 돌아왔다.
“형은 어땠지?”
하비가 돌아온 내게 물었다.
그는 내가 브랜든에게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땠긴. 그냥 영약만 받고 꺼지라고 했지.”
물론 진짜 목적을 밝히고 간 건 아니고, 오늘 얻은 영약을 브랜든에게 전달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었다.
“내가 여기까지 따라온 데 대해서는 별 얘기 없었나?”
“아무것도 안 물었어.”
“젠장.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군.”
“나도 마찬가지야.”
하비는 초조해 보였다.
난 그 초조함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휴대폰 가지고 왔지?”
하비에게 물었다.
“가지고 왔지. 근데 그건 왜?”
“네 능력이 필요해.”
“내 능력?”
“회사를 뒤흔들어놓는 거야.”
“그게 무슨…….”
“뭐든 좋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브랜든에게 뭔가 충격을 주라고. 지금의 네 영향력을 이용해서 말이야.”
내 요구에 하비는 눈을 찌푸렸다.
“그래 봐야 형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될 텐데.”
“생각해 봐. 어차피 브랜든은 여기 묶여 있는 신세라고. 그 녀석이 여기서 싸우는 동안, 네가 밖에서 일을 벌이면 되잖아.”
[신호 없음]
내가 그에게 휴대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포탈 너머의 이세계인 이곳에선 현실 세계와 통신이 불가능하다.
즉, 염왕이 이곳에 있는 동안은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무런 연락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무슨 일을 해도 좋아. 그냥 최대한 네 형이 신경 쓸 정도의 일만 저지르면 돼.”
그 시간 동안 하비는 몰래 밖으로 나가서 회사와 관련된 일을 벌인다.
아무리 승계 구도에서 밀려났다고 하더라도, 그는 엄연히 상속권자다.
마음만 먹으면 뭔가를 하기엔 충분한 지위를 가진 인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해서 뭘 하려고?”
물론 이런 요구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하비 역시 그 이유를 알고 싶을 것이다.
“긴 시간이 걸리는 공략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회사가 난장판이 되어 있다. 그것도 너 때문에. 그럼 네 형은 너에 대해 경계심을 품을 거야.”
“그러면 내가 위험해지는 것 아닌가?”
“그렇겠지.”
“하, 그렇게 무책임하게…….”
“그리고 그 위협을 가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은 누구지?”
“어…… 그건…….”
“나야. 너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가 할 일이 늘어나는 거지. 브랜든이 너한테 날 보낸 이유가 바로 그거라고.”
난 적당히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그를 설득했다.
실제로 하비는 그 특유의 부활 능력 때문에 무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부활 위치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서, 묶어두는 것조차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브랜든이 그를 통제하려 들 거라면 뭔가 교묘한 술수를 쓸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하비에게 바로 그 ‘교묘한 술수’의 정체가 나라고 믿게 만든 것이다.
“바로 그때 내가 네 형의 약점을 파고들 기회가 생기는 거지.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래. 그렇군. 이제 알겠어.”
하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넌 역시 머리가 좋아.”
이때까지 나 때문에 골탕 먹었던 기억들이, 되레 ‘신뢰의 경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거의 나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용해 먹기에 너무나 좋은, 그런 상태가 된 것이다.
‘내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네 머리가 나쁜 거겠지.’
이 녀석 덕분에, 내겐 아주 큰 기회가 생겼다.
엄청난 걸 얻어낼 기회가.
* * *
다음 날.
하비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포탈을 타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전투는 어제와 같은 양상으로 계속되었다.
실은 밤중에도 우리 쪽에서 몇 번이나 성을 기습적으로 공격하긴 했다.
그걸로 인해 약간의 피해를 입히긴 한 것 같지만, 결국은 저놈의 보호막 때문에 제대로 된 성과는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
투쾅! 콰콰쾅!
하늘에서 염왕이 화룡들을 조종해 보호막을 공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에서 찍혔던 영상에선, 저 불꽃의 용들은 바위마저 눈 깜짝할 사이에 녹여서 용암으로 만들 만큼 뜨거워 보였는데.
그런 불꽃들이 이틀에 걸쳐서 몇천, 몇만 번이나 실드를 두들겼음에도 보호막은 건재하다.
‘난이도가 높은 점령지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물론 그 점이 오히려 나에겐 더 유리하다.
그동안 난 어제 발견한 지하수로를 통해 요새 안으로 들어와 온갖 물건들을 쓸어 담으면 되기 때문이다.
“빛의 신 루 라바다이시여, 적으로부터 우리의 땅을 지켜주시옵소서…….”
요새 내의 민간인들은 이 불안한 상황에서 저마다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해 기도를 했다.
벨그레이브가 성안의 NPC 전체를 적으로 상정해서 그런지, 알포드 성 때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자, 그럼 한번 돈 좀 벌어볼까.’
물론 난 그냥 이곳에 있는 값진 물건들과 숨겨진 보상들을 쓸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도시 안을 돌아다니며 밖에서 팔면 비싸게 팔릴 만한 것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넣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요새가 함락되면 요새 내의 각종 가치 있는 물건들은 다 클랜 소유가 된다.
그러니 그 전에 내가 먼저 꿀꺽할 작정이었다.
───
<인벤토리>
……
-상급 풍편저항 증가 포션
-최상급 결빙저항 증가 포션
-최상급 유수저항 감소 기름
-최상급 체력 포션(순도 95%)
-가공된 마정석(3등급) x 2
……
───
약 30분 후, 내 인벤토리는 온갖 값나가는 물건들로 가득 채워졌다.
각종 포션과 무기에 바르는 기름, 그리고 여러 가지 물건 제작에 사용되는 마정석까지.
이 정도면 난 엄청난 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벨그레이브라는 거대 집단이 취해야 할 전리품을 나 혼자 꿀꺽한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걸로 최대한 많은 돈을 모을 수 있겠어.’
지금 난 능력을 강화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돈을 버는 것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미래정보의 보고인 패치노트를 계속 독점하려면 점점 더 많은 양의 다이아가 필요해질 것이므로.
‘11월 1일 이후, 전 세계에 대한 마물 침공이 본격화되는 걸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렇지.’
게다가 내가 골드와 다이아를 수급하는 통로는 어디까지나 은행 계좌다.
즉, 사회기반이 무너져 인터넷과 은행 전산망이 유지되지 않으면 다이아 수급이 불가능한 능력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런 멸망의 날이 다가오기 전에 최대한 많은 돈을 벌어서 미리 골드로 변환해야 한다.
{숨겨진 보상을 발견했습니다.}
{<고등 정령마술 각인서>를 획득했습니다.}
‘찾았다!’
한편 그렇게 도심을 돌아다니며 온갖 값비싼 물건들을 싹쓸이하는 도중, 패치노트에 적혀 있는 두 번째 숨겨진 보상을 얻어냈다.
스킬을 습득하도록 도와주는 ‘각인서’였다.
───
<고등 정령마술 각인서>
-사용 시 패시브 스킬 <고등 정령마술>을 습득합니다.
-필요: <심화 정령마술> 숙련도 100 / 100
───
그중에서도 극도로 희귀한 스킬인 ‘고등 정령마술’을 습득하는 각인서.
‘지금 세상에 이걸 습득한 사람은 마존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마법사형 각성자들은 수호령 권능 외에도 여러 종류의 마법을 사용하곤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정령마술로, 대다수의 각성자들은 이 스킬을 심화 단계까지만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어지간한 고위 마법사형 각성자들도 구경조차 못 하는 물건을 손에 넣은 것이다.
‘횡재했군.’
이걸 팔면 엄청난 돈을 만질 수 있다.
또는 내가 직접 습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난 모든 스탯이 균일하게 높은 올라운더형 능력치를 가진 각성자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넣어둬야겠어.’
결정은 나중에.
어느 쪽이 됐건, 당장 처리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다.
판다면 그 엄청난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구매자를 찾는 데에 시간이 걸릴 테고-
직접 사용한다면 선행 스킬인 심화 정령마술의 숙련도를 100까지 찍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럼…… 이제 돌아가 볼까.’
쿵! 쿠쿵!
쩌저적!
하늘을 올려다보니, 요새를 둘러싼 보호막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저 괴물 같은 염왕과 클랜의 고위 각성자들이 기어이 이 보호막을 화력으로 깨부수려는 모양이다.
‘이 정도면 소득은 충분해. 세 번째 숨겨진 보상이 남아 있지만…… 그건 포기해야지. 어차피 나 혼자서는 얻지도 못할 물건이기도 하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난 과감하게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스르륵.
내 바로 앞 허공에서, 유령처럼 어떤 형상이 나타났다.
어떠한 조짐도 없이 갑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그것을, 나는 처음엔 악귀 종류의 마물이라고 생각했다.
화악!
난 본능적으로 손에 악룡의 발톱을 투영하고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커다란 용의 앞발이 되어, 그 대상을 붙잡아 바닥에 처박았다.
콰직!
“아흑!”
그런데 마물이라고 생각했던 그 존재의 목소리는 꽤나 익숙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외형도 그러했다.
“윤아 씨?”
“아…… 안녕하세요.”
그 유령은 최윤아였다.
* * *
최윤아는 자신의 장기인 은신 권능을 사용하고서 몰래 나를 따라온 것이었다.
‘두 번이나 뒤를 밟히다니…….’
어제는 비현실적인 하비의 행운 때문에-
오늘은 최윤아의 절륜한 성능을 가진 은신 권능 때문에.
나는 신화 사냥꾼의 본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틀 연속으로 추적당하고 만 것이다.
자칫하면 크게 곤란해질 수도 있는 상황.
물론 애초에 사냥꾼의 본능 특성 자체가 은신보다는 추적 용도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원거리에서 적을 감지하는 능력이 내겐 반드시 필요하다.
“죄송해요. 놀라게 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젠장, 다 본 건가?’
사과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뒤를 밟은 그녀의 진의가 의심스러웠을 뿐.
아니, 그 의도를 떠나 내가 남들은 모르는 정보를 이용해 혼자서 요새를 활보한다는 사실을 안 것 자체가 문제다.
“저를 왜 따라오신 겁니까?”
난 그녀를 바닥에 틀어박은 채로 추궁했다.
그러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눈을 피하면서 말했다.
“……걱정돼서요.”
“뭐?”
난 그게 그저 지금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로 느껴졌다.
그래서 난 더욱 몰아붙이려 했다.
“거짓말하지…….”
그런데 그 순간.
쉬익.
하늘에서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귀가 먹먹해졌다.
아주 짧은 순간, 세상은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곧이어.
쩌렁!
우레와 같은 굉음이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요새를 감싸고 있던 보호막이 파괴되고, 염왕이 지상에 직접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