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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9화 (9/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9화

레이드는 총 5개의 스테이지로 이루어져 있다.

참가한 개인들은 각자 알아서 돌파하거나, 힘을 합쳐 함께 돌파할 수도 있다.

그렇게 각 스테이지를 차례로 클리어한 후,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모든 각성자들이 다 같이 레이드 보스와 싸우게 된다.

그 보스를 격파하는 순간, 레이드 일정은 종료.

만약 클리어가 늦어서 보스가 격파될 때까지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면 최종 보상은 받지 못한다.

반대로 선두그룹은 레이드 보스를 빠르게 격파하지 못하면 최종 보상에 대한 소유권 경쟁이 점점 치열해진다.

그러니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협력과 경쟁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을 계속 넘나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사망자가 생기는 것은 예삿일.

그럼에도 막대한 돈과 보상을 얻기 위해, 매년 수많은 각성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에 뛰어든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제 1 스테이지가 시작됩니다.}

{클리어 목표: 오크 워로드를 처치하십시오.}

우여곡절 끝에 레이드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독특한 양식의 인공 구조물로 만들어진 긴 통로였다.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

‘자격시험 시작인가.’

작년에도 이런 식이었다.

단순히 적을 처치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목표.

입장한 사람들은 각자 개별 차원에서 혼자 진행.

여기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대부분 떨어져 나간다.

마치 ‘이 정도도 혼자 못 하는 자들은 레이드에 도전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듯한 첫 스테이지다.

‘작년엔 나도 여기서 탈락했었지.’

그때의 기억을 곱씹으며 통로를 따라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크왁!”

이윽고, 첫 적과 마주쳤다.

녹색 피부를 가진 거구의 인간형 지성체 마물.

도끼와 방패로 무장한 두 마리의 오크였다.

“그로! 그라락!”

놈들은 무작정 달려들기보단, 나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말이 통할 리가 없다.

지난번 고블린 던전에서의 히든 퀘스트와 같이 특별히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아는 개체가 있지 않은 한 의사소통은 불가능.

다만 행동과 표정을 보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두 오크는 계속 위협만 하더니 둘 중 한쪽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냥 보내줄 순 없지.’

난 놈들의 의도를 금세 알아차렸다.

한 명이 날 막고 다른 하나가 도주해서 본진에 적습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이 상당히 귀찮아진다.

오크들은 거의 인류에 필적하는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전술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함정과 지형지물을 활용하기도 하고, 각개격파 당하지 않기 위해 한데 뭉치거나 역으로 포위망을 형성하기도 한다.

혹여나 그 안에 갇혀버리기라도 하면 첫 스테이지부터 매우 난감해지는 것이다.

그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여기서 저 둘을 없애 버려야 한다.

‘악룡마공. 무구 투영.’

난 주머니에서 너클을 꺼내 양손에 감아쥔 다음, 두 기술을 동시에 발동했다.

탓!

그리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라각!”

역시나 내 예상대로, 하나가 내 앞을 가로막고 다른 하나는 뒤로 달린다.

콰아아!

우선 방패를 든 놈의 정면에서 리드 스트레이트 펀치.

왼손 너클로부터 뻗어 나온 용의 앞발이 파공음을 내며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투쾅!

주먹 쥐듯 둥글게 말아 쥔 형태의 앞발은 그야말로 대포알과도 같았다.

그 큰 덩치의 오크를 방패와 함께 통째로 저만치 날려버릴 만큼 묵직한 일격.

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추격타를 넣었다.

타탓!

앞으로 튀어 나가듯 스텝을 밟으며, 동시에 사선으로 내리찍는 오른손 러시안 훅.

푹찍!

이번엔 오른쪽 너클에서 뻗어 나온 앞발이 발톱을 바짝 세운 채로 휘둘러졌다.

뒤로 튕겨 나가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오크는 날카로운 발톱에 의해 순식간에 참살당했다.

‘다음.’

이어서 그 뒤로 도주하는 오크를 쫓았다.

놈은 흘끗흘끗 뒤를 돌아봤다.

공포에 질린 눈빛.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모양이다.

쉭!

사선으로 올려치는 왼손 어퍼.

카가가각!

악룡의 발톱은 도망치는 오크의 몸통을 낚아채듯 할퀴었고.

다음 순간, 온 사방에 튀는 육편이 통로의 벽과 천장을 엉망으로 뒤덮었다.

* * *

좁은 통로를 따라 계속 전진한 끝에, 거대한 공동 하나가 나타났다.

그 한가운데엔 원시 부락 같은 구조물들이 그야말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원래는 야외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있었어야 할 것을 한꺼번에 들어내 이 인공 구조물 안으로 갖다 놓은 느낌이다.

‘저기가 본진이군. 워로드도 저 안에 있겠지.’

안에는 거의 백 마리에 달하는 오크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아까 그 정찰병을 놓쳤다면 저 많은 오크들이 단단히 준비를 마치고 나를 맞이했을 것이다.

그럼 난 수적 열세는 물론이고 적진 안에서 싸우는 페널티까지 짊어진 채 워로드와 대면하게 되는 셈.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니까 하나씩 죽여야 해.’

그래서 여기부턴 암습으로 적의 숫자를 줄여나갈 것이다.

은신에 관련된 특성이나 스킬 같은 건 따로 가지고 있지 않지만, 반사 신경 스탯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다.

게다가 지난번 늑대인간과는 달리, 이것들은 후각으로 적을 감지하는 능력 같은 건 없으니 충분히 해볼 만하다.

꽈악.

오른손에 쥔 손도끼의 자루를 고쳐 잡았다.

이건 아까 죽인 오크가 들고 있던 것이다.

암습을 하려면 날붙이 무기가 필요해서 가져왔다.

용 발톱은 휘두를 때마다 파공음이 울리고, 주먹질은 뼈와 장기를 부술 때의 타격음 때문에 암습에는 부적합한 공격수단.

반면 살갗을 파고드는 날붙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소음만으로 대상을 제압하는 게 가능하다.

내겐 갈무리용 나이프도 있긴 하지만, 암살술 같은 기술이 없는 상태에선 오히려 손도끼가 낫다.

‘그렇게 하려면 저것부터 없애야겠지.’

일단 첫 번째로 무력화시켜야 할 대상은 감시탑.

이 부락에는 총 세 개의 감시탑이 세워져 있었다.

그 위의 초병부터 죽여야, 아래에 있는 적들도 하나씩 없앨 수 있다.

머릿속으로 내가 해야 할 동작을 상상하며, 움직임을 예측해 본다.

‘앉아 있는 놈 먼저. 서 있는 놈은 나중에.’

앉아서 무방비로 쉬고 있는 오크.

그 녀석이 우선 척살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쪽이 사수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군대에서의 경험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하는 짓은 인간이랑 별반 다를 게 없군.’

난 곧장 감시탑을 맨손으로 등반해 올라간 다음, 생각해 둔 움직임을 그대로 시행했다.

“그로……!”

푹!

앉아 있는 녀석이 나를 발견했지만, 그놈이 소리를 내기 전에 목을 도끼로 쳤다.

푸확!

이어서 그 옆에 서서 어리벙벙하게 보고만 있던 부사수 오크도 똑같이 만들어주었다.

둘 다 성대가 끊어져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그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피가 몸에 튀었지만, 탈리스만 방어장이 막아줘서 옷이 오염될 걱정은 없다.

‘마나 호흡.’

후우우.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악룡마공으로 인해 줄어든 마나를 보충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적을 하나씩 죽일 때마다 마나를 회복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움직일 생각이다.

불시에 닥쳐올 위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때.

{악의가 너의 살육에 흡족해한다.}

{악의는 네가 더 많은 적의 피를 뒤집어쓰길 원한다.}

‘음?’

갑자기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데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시스템 메시지와는 매우 이질적인 느낌.

어조가 확 달라져서, 마치 다른 존재가 말하는 것 같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런 메시지는 지난번에도 본 적이 있다.

‘고블린 던전의 히든 퀘스트.’

잠깐 스쳐 지나간 터라 그냥 넘어갔지만, 그때도 이런 어조의 메시지였다.

‘게다가 내용도 그렇고.’

지난번엔 바포메트의 미니언을 삼켰다고 했고.

이번엔 ‘악의’, ‘살육’, ‘더 많은 피’라는 말을 대놓고 하고 있다.

그 둘 다 어떤 악마적 존재와 관련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악의, 악마…… 악룡. 설마?’

난 그 대목에서, 내 수호령이 떠올랐다.

곧장 아지다하카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동화율: 0.53%}

그 많은 마물을 죽이고도 겨우 0.03%밖에 오르지 않았던 동화율이.

지금은 무려 0.5%나 올라 있었다.

50배의 증가량.

늑대인간 5천 마리를 죽인 이후, 내가 죽인 생명체는 오늘 만난 오크 네 마리뿐이다.

그것만으로 저 정도 수치의 동화율이 오른 것이다.

즉, 저 메시지에서 의미하는 ‘악의’는 어쨌든 내 수호령인 아지다하카와 관련되어 있는 존재이고.

다른 마물도 아닌 오크를 죽이는 데에 반응하고 있다는 것.

‘고블린이랑 늑대인간을 그렇게나 죽일 때는 아무 말도 없더니…….’

이제 와 이러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걸로 엄청난 수치의 동화율이 상승했다.

내 수호령, 아지다하카의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려면 이 ‘악의’라는 것의 의도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악마? 살육? 까짓거, 얼마든지 따라가 주지.’

고압적 어조에 과격한 언어.

하지만 사실, 내용만 따져보면 기존의 시스템과 다를 게 전혀 없다.

저 메시지를 ‘{동화율을 높이려면 오크의 피를 뒤집어쓰십시오.}’ 같은 식으로 바꿔 생각해 보면 된다.

‘애초에 이 스테이지를 통과하려면 해야 하는 일이었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난 그냥 오크들을 죽이면서 몸에 피를 묻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동화율을 높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것이다.

* * *

투콱!

손도끼에 잘려나간 오크 한 마리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그로오오옥!”

그리고 그것은 오크 워로드의 발 앞에서 멈췄다.

녀석이 나의 존재를 발견했을 땐, 이미 혼자 남은 후였다.

“그와아아아악!”

분노하며 울부짖는 워로드.

놈이 감정에 휩쓸려 그런 쓸데없는 행동을 하는 사이, 난 도끼를 버리고 가방에서 마나포션 캔 하나를 꺼냈다.

딸깍.

그것의 뚜껑을 딴 다음, 눈치를 보며 재빨리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꿀꺽.

맛 따위를 느낄 시간은 없다.

그냥 목구멍을 열고 식도가 터져라 쑤셔 넣는 것이다.

‘업화의 구.’

그렇게 왼손으로는 마나포션을 마시면서, 오른손으로는 너클을 쥐고 권능을 시전했다.

순식간에 내 마나 총량의 3분의 2가 사라졌지만, 동시에 마시고 있는 마나포션 덕분에 다시 빠르게 최대치까지 차올랐다.

너클에 얽힌 검은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고, 스탯은 최상.

이걸로 워로드와 싸우기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지난번에는 ‘파이어 너클볼’ 같은 어이없는 수를 써서 운 좋게 이겼지만.’

이번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땐 그냥 던져 보고 안 되면 퀘스트 포기라는 생각으로 한 도박 수였을 뿐.

레이드는 한 번 포기하면 재참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도박 수를 쓸 순 없는 것이다.

또 그 공격이 먹히리란 보장이 없으니, 제대로 싸워야 한다.

게다가 이번엔 그때와 달리 새로운 무기가 생기기도 했고.

‘무구 투영.’

파아앗.

너클이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로그락! 크와악!”

포효를 끝마친 워로드가 나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쿵! 쿵!

4미터 쯤 되는 키에 거대한 몸집, 양손에 쥔 위협적인 손도끼를 든 괴물이 내게 돌진했다.

후웅!

오른손의 도끼를 휘두르는 워로드.

난 뒤로 몸을 젖혀 스웨이백으로 회피한 후, 카운터 어퍼를 날렸다.

화아악!

검게 이글거리는 화염의 용 발톱이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졌다.

원래는 푸른 에너지로 이뤄진 발톱이 나왔어야 하지만, 너클에 시전된 업화의 구 효과가 수호령의 투영 무구에도 적용된 것이다.

카앙!

워로드는 그 공격을 반대쪽 손에 든 도끼로 막았지만.

화륵!

그로 인해 검은 불꽃이 놈의 도끼를 타고 몸으로 옮겨붙었다.

“크와악! 크와아악!”

거대한 오크가 끈적한 화염에 휩싸인 채 고통으로 발광했다.

곧이어 놈의 눈이 붉게 빛났다.

광폭화. 공격성이 더욱 증가하는 것이다.

‘지난번 바포메트의 미니언 때와는 반응이 다르군.’

콰앙! 콰앙!

도끼날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맹렬한 공격이다.

‘하지만 이성을 잃고서 공격하고 있으니, 업화의 구 한 방에 무력화되었다는 건 똑같아.’

난 가까이 가지 않고 스텝을 밟으며 놈과의 거리를 계속 조절했다.

그 녀석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움직이는 나에게 단 한 번의 공격도 맞추지 못했다.

오히려 흥분이 더해지며, 더 큰 헛점을 노출할 뿐이었다.

부웅!

두 도끼를 번쩍 들어 한 번에 내리찍는 비효율적 공격.

‘지금!’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쪽으로 빠지며 리버 샷을 날렸다.

콱!

“끄워어어억!”

용발톱이 놈의 옆구리를 갈랐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난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연타 콤비네이션을 가했다.

촤악!

반대 손으로 추가 복부 공격.

또 다른 발톱이 워로드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그 통증으로 인해 놈이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며 배를 막으려는 동작을 취했을 때.

투콱!

머리에 최후의 일격을 꽂는다.

워로드는 그 자리에서 피 분수를 뿜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난 그 피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악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러자 또 그 ‘악의’라는 것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신규 특성, <악의의 오른쪽 눈>이 개화했다.}

{오류 발생!}

{수호령의 스테이터스에 미승인 데이터가 발견되었습니다. 즉시 디버그…….}

{바포메트의 미니언이 시스템에 침투한다.}

{오류…… %^@#% ……수정……}

“……뭐, 뭐야?”

마치, 두 존재가 시스템 안에서 서로 다투는 것 같은 모습.

한쪽이 혼란을 일으키는 듯, 잠깐 동안 메시지가 온통 먹통이 된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디버그가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나타나며 모든 혼란이 종료되었다.

───

<악의의 오른쪽 눈>

-(1단계)타인의 수호령을 관찰한다.

───

새로 얻었다던 특성은 그대로 남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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