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6화
<주술사의 단검>.
고블린이 나에게 전해준 칼.
이 퀘스트의 최종보스인 악마를 처치하기 위한 수단이다.
가슴 부위를 지속적으로 공격해 코어를 드러나게 한 다음, 이 칼로 그걸 찔러야만 완전한 처치가 가능하다.
이걸 쓰지 않으면 악마는 다시 부활하고, 퀘스트도 완료되지 않는다.
만약 혼자 왔다면 이 칼을 얻기 위해 함정이 가득 깔린 방을 돌파해서 퍼즐을 풀고 찾아와야 했을 터.
그러나 난 고블린들을 살려 둔 덕에 그 과정이 모두 생략된 것이다.
‘원래는 그걸로 회심의 일격을 가해야 하는 건데…….’
한데 그와는 별개로, 어찌 된 일인지 그 칼로 찌르지도 않았는데 악마가 부활할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코어만 덩그러니 남겨두고서 말이다.
심지어 시스템 메시지가 그 악마를 ‘삼켰다’고 하질 않나, 퀘스트에 오류가 생겼다고 하질 않나…….
‘일단은 끝내자.’
푹.
난 얼떨떨한 마음으로 손에 쥔 단검을 코어에 찔러 넣었다.
어쨌든 이야기 진행은 시켜야 하니까.
파앗.
코어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오며 형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윽고, 고블린 주술사의 모습으로 변했다.
단검이 그 가슴에 꽂힌 채였다.
“키이이! 키에에!”
고블린은 깜짝 놀라 펄쩍 뛰면서 황급히 그 단검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주술사가 그것을 만류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인간.”
여기부터는 다 알고 있는 전개다.
주술사가 자신의 타락을 자책하며 이런저런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의 영혼을 단검에 봉인하는 것으로 끝.
이 퀘스트의 보상은 바로 그 주술사의 영혼이 봉인된 단검이다.
난 그걸 얻으러 온 것이기 때문에, 대충 이야기를 들어주고 끝내려고 했다.
“고맙다…… 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줘서.”
“……뭐?”
그런데, 또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계속 고통받고 있었다. 이 반복되는 세계에서……. 그리고 드디어…… 네가 나를 해방시켰구나.”
아까 그 악마처럼, 이 녀석은 퀘스트의 전개에 종속되지 않고 현실의 시간선을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대충 이 퀘스트는 어떤 스토리다, 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말하는 건가? 나에게만 이런 전개가 펼쳐지는 건가?
그러한 의문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내 업은 끝났다. 인간…… 진심으로 고맙다. 이것이 마지막…… 내 영혼의 정수가 되겠군.”
그러고는 눈과 입에서 마력이 흘러나와 심장에 꽂힌 단검을 둘러쌌다.
이윽고 주술사는 숨이 멎었다.
단검의 칼날에는 빛나는 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대체…….’
시스템 오류.
악마를 삼켜버렸다는 메시지.
순환에서 벗어났다는 주술사의 말.
수많은 의문들만 남긴 채, 난 그대로 단검과 함께 현실 차원으로 튕겨 나왔다.
* * *
<주술사의 영혼이 봉인된 단검>.
어쨌든 원래 내가 얻기로 했던 것은 얻는 데에 성공했다.
이것의 용도는 바로 마나 회복 스킬을 습득하기 위한 도구.
난 지체하지 않고 그걸 얻기 위해 움직였다.
휘우웅.
아직 9월임에도 이른 겨울이 찾아온 듯 세찬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의 지역.
마나 회복 스킬을 얻기 위해 내가 들른 곳은, 바로 러시아 시베리아의 최북단 구역이다.
“저긴가.”
산 중턱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컨테이너 하나가 보인다.
아무래도 저곳이 포탈의 입장을 관리하는 관리소인 모양이다.
“실례합니다.”
그 컨테이너의 문을 열고 영어로 말을 걸었다.
안에는 젊은 백인 남자 세 명과 여자 한 명이 난롯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러시아어로 뭐라 말했지만, 난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계속 영어로 물었다.
“여기 포탈 이용하러 왔는데, 영어 할 줄 아는 분 없습니까?”
각성자 일을 하다 보면 해외에 나가거나 외국인들과 부딪힐 일이 많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서로 웬만한 영어 대화가 가능한 수준.
그런데 이곳에는 어째선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보인다.
전부 다 러시아어로만 말하고 있다.
‘아…… 이거 낭패네.’
포탈 이용료만 내면 되는데.
카드를 보여주면서 보디랭귀지로라도 돈을 낼까를 고민하던 찰나, 가만히 앉아 있던 백인 여성이 입을 열었다.
“내가 대신 얘기해 줄까?”
방금 전까지 러시아어로 이들과 대화를 나누던 그녀가, 갑자기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
“응?”
“포탈 쓰려는 거지?”
“아…… 그래. 포탈.”
그러곤 다시 남자들에게 러시아어로 말했다.
가만 보니, 그녀는 저 남자들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후줄근한 재킷을 걸친 백인 남자 세 명이 이곳 현지인 같은 느낌이라면, 여자는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
모델 같은 외모에 화려한 액세서리와 명품 코트에 명품 부츠를 신은…….
누가 봐도 재력가 집안의 딸 같은 인물이었다.
“입장료는 50만 루블이래. 카드로 할 거지?”
“응.”
그녀가 나에게서 카드를 받아 결제를 진행했다.
그러고는 코트를 여미면서 컨테이너 사무소의 문을 열고는 말했다.
“나랑 같이 가자.”
“음?”
“나도 마침 들어가 볼 생각이었거든.”
여자는 남자들에게 다시 뭐라 말을 한 다음, 앞장서서 포탈 위로 올라갔다.
나에게 같이 가자며 손짓하는 그녀.
그리고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는 백인 남자들.
묘하게 적대감이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난 레아. 너는?”
“신우.”
팟.
서로 통성명을 하며 악수를 나눈 순간, 나와 그녀는 포탈을 타고 던전으로 이동했다.
* * *
마나의 성소.
이곳은 세계 각지의 오지에서만 입장이 가능한 특별한 장소로, 마물이 나타나지 않는 던전이다.
대신 마나가 풍부한 곳이라 각종 마법 생물이나 정령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많은 각성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들르는 곳이 되었는데.
지금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성소 중앙에 있는 거대한 나무 때문이었다.
“와, 러시아에 있는 마나의 성소는 처음 와봤는데……. 저것 봐! 엄청 예쁘다.”
찰칵찰칵.
레아는 내 뒤에서 쉬지 않고 재잘대며 풍경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확실히 색다른 분위기를 가진 장소였다.
공기 중에 흐르는 마나가 눈에 보이고, 옆으로 뻗어 있는 강은 보석처럼 빛난다.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는 정령은 형형색색의 빛깔을 가진 진귀한 풍경.
그 풍경을 가로지르는 동안, 레아는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다 사진을 찍을 만큼 찍었는지, 이번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신우, 너 한국인이지?”
“음? 어떻게 알았어?”
“딱 보면 알지. 나 케이팝 팬이거든.”
그러고는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룹의 누가 어쩌고저쩌고.
외국인들과 일을 할 때면 빠짐없이 듣게 되는 레퍼토리라, 이젠 별로 신기하지도 않았다.
이런 말을 할 때면 꼭, 나더러 무슨 그룹의 누구 닮았다더라 하는 얘기를 덧붙인다.
처음엔 칭찬이라 생각했으나, 매번 그 닮은 사람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걸 보고 깨달았다.
얘넨 그냥 동양인 얼굴을 구분 못 하는 거라고.
“난 이런 아무도 안 오는 곳에 여행 오는 게 취미야.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너는?”
“나도.”
그녀에 말에 난 적당히 대꾸해 줬다.
어차피 다시 볼 사람도 아니다.
“와! 진짜? 우리 뭔가 맞는 게 있나 봐.”
그렇게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우린 금세 성소 중앙에 있는 거목에 도착했다.
“레아.”
“응?”
“내가 지금부터 할 일이 있거든?”
“아아, 그래! 자리 비켜달라는 거지?”
그녀는 바로 눈치채고 내가 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비켜줬다.
그리고 나는 곧장 품에서 주술사의 단검을 꺼내, 그 거대한 나무의 몸통을 가볍게 찔렀다.
그러자 상처 부위에서 진한 푸른색의 수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단검으로 훑어서 입안에 넣었다.
{무한히 생성되는 마나의 원천이 당신의 신체 일부가 됩니다.}
뜨거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독한 술이라도 마신 듯, 타오르는 불꽃을 삼킨 기분.
이윽고 그 뜨거운 기운은 몸 전체의 혈관을 타고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후.”
마침내 흐르던 기운은 폐 속으로 모여들었고, 난 그것들을 한꺼번에 내뱉었다.
샘솟는 마나가 가득 담긴 날숨.
이 들숨과 날숨을 몇십 번이나 반복하며, 내 모든 정신력을 그 호흡에 쏟아부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기운의 흐름에 익숙해지기 위해.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액티브 스킬 <마나 호흡>을 습득했습니다.}
어느 순간 메시지가 나타나며 내 몸 안의 타오르는 불꽃이 사라졌다.
나무를 찔러 수액을 냈던 주술사의 단검도, 어느새 날이 모두 녹아내리고 자루만 남아 있었다.
‘됐어.’
난 습득한 기술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
<마나 호흡>
특수한 호흡을 통해 체내에 있는 원천으로부터 마나를 생성합니다. 사용 중에는 발동중인 모든 특성, 권능, 스킬의 사용이 중단됩니다.
마나 생성 속도: 1%/초
숙련도: 1/100
───
최대 숙련도 달성 시 초당 10%의 마나를 회복하는 액티브 스킬.
설명대로라면 이 스킬을 사용하는 동안은 악룡마공이 해제된다는 약점이 있지만.
어차피 마나가 떨어지면 취약해진다는 건 마찬가지라 큰 단점은 아니다.
어쨌든 항시 마나를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이득.
‘이렇게 되면 쉬지 않고 싸울 수 있어.’
이젠 마나가 바닥나도 사냥을 중단할 필요가 없다.
마나포션의 한계에 제약받지 않아도 되고.
하루 종일 악룡마공을 유지하며 싸울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 끝났어? 그럼 같이 사진 찍자!”
“……그래.”
이로써 목표는 달성했다.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다.
난 기분 좋게 레아의 말을 들어주고, 성소 밖으로 나갔다.
* * *
철컥. 철컥. 철컥.
안드레이가 마나건의 노리쇠를 잡고서, 당겼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건 분한 생각을 계속 떠올리며 죽일 대상에 대한 증오심을 증폭시킬 때 하는 손버릇이었다.
“그 원숭이 새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조금만 더 얘기하면 그 끝내주는 여자가 넘어올 수도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훼방을 놓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여자를 데리고 가버리기까지 했다.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감히 유색인종 놈이 백인 여자랑 손을 잡아? 그런 말도 안 되는!”
“나도 손 못 잡아봤는데!”
옆에서 유리와 보리스도 거들었다.
셋은 평생 이 깡촌을 벗어나지 못하고 깡패 짓이나 하며 살았다.
동네에 살던 여자들은 다 도시로 떠나버려서 연애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포탈을 지키는 일자리를 구하게 되어 외지인이라도 만나볼 수 있을까 했지만.
여기에 오는 외지인 여자들이라곤 다 무서운 덩치들과 와서 말 한마디 못 거는 사람들뿐.
그런 그들에게 처음으로 따뜻하게 말을 걸어준 레아를, 웬 동양인 놈이 나타나서 데려갔다.
엄청난 기회를 빼앗겼다는 억울함에, 폐쇄적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새겨진 인종차별 의식까지 더해져, 그들의 분노는 곱절로 커졌다.
“절대 용서 못 해.”
“아까 그놈 보니까 무기도 안 가지고 있었어.”
“그래?”
“총 몇 발만 갈겨주면 순식간에 자빠질 테니까, 봐주지 말고 죽여 버려, 안드레이.”
“당연하지.”
안드레이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마나건을 만지작거렸다.
파앗!
“나온다!”
그때, 포탈에서 빛이 뿜어 나왔다.
이 순간을 기다리던 안드레이가 총을 쥐고 컨테이너 밖으로 뛰쳐나갔다.
“안드레이! 여자는 쏘지 마! 남자만 죽여야 돼!”
“나만 믿어!”
투타타타타타!
NAK-29 무속성 마나건 D형.
로마노프 사의 노하우가 집약된 명품 총기의 마력탄이 남자의 인영에 집중적으로 꽂힌다.
“뭐야!”
갑자기 날아든 총탄에 당황하는 모습.
지금은 탈리스만 방어장 덕분에 살았지만, 몇 발만 더 맞추면 방어장을 없애고 몸에 직접 타격할 수 있다.
“죽어어어어! 키헤헤헤!”
흥분된다.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총알을 마음껏 퍼부을 수 있다니.
이게 얼마 만의 감각인지.
예전에 총으로 사람을 쏴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처럼, 저놈은 피를 흩뿌리면서…….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한 십 미터는 넘게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눈앞에 그놈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한순간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가 싶더니.
잠깐 눈을 감았다 떠보니 세상이 뒤집혀 있다.
옆엔 유리와 보리스가 꽁꽁 묶인 채 발가벗겨져서 우스꽝스러운 꼴로 매달려 있다.
그건 안드레이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등신들.”
“와, 너 진짜 세구나?”
세 사람은 그렇게 지붕에 매달린 채.
유신우와 레아가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