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장 광무자 냉혈검을 손에 넣다. (2)
"차압!!"
일이 어떻게 되었든 일단 정파의 인물을 돕는 것이 우선되어야 했기 때문에 이
준은 적의 무사들의 우두머리들을 압박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이라는 것은 침착성을 잃으면 그 예기가 줄어드는 법이였으니 급한
생각을 하는 이준의 검은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젠장!"
쉽게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하자 이준은 다급함이 밀려 올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 그의 귀로 누군가의 전음이 밀려왔다.
[사제 침착함을 잃지 말게, 평정심을 잃은 검은 자연히 무뎌질 수 밖에 없는 것
이라네.]
'사형!'
그것이 광무자의 목소리라는 것을 안 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자 그의 검의 날카로움을 다시 거세
어지기 시작하니 혈의의 무사들의 우두머리는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치게 되었
다.
한편 도복을 입은 무사는 적의 무사들에 의해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는
데, 그 때 도사의 뒷편에서 무엇인가가 빠르게 날아와서는 적의 무사들의 손등
에 박혔다.
"크악!!"
도사를 노리고 있던 다섯명의 무사들의 손에는 놀랍게도 나뭇잎들이 박혀 있었
으니 크게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적엽상인(適葉傷人)!!"
나뭇잎을 암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경지라면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고수였기
에 그들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수풀을 헤치며 한마리의 말을 끌고 오는 육십대의 노인을 볼 수 있었
으니 그의 주위로 잔잔하게 기도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며 적의 무사들은 병기
를 들어서는 경계하기 시작했다.
"음.."
싸움터로 나타난 육십대의 노인은 바로 광무자였으니 그는 크게 부상을 당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도인의 모습을 한번 처다보고는 적의 무사들에게 말
했다.
"이만 물러는 것이 어떻느냐?"
"헉!"
광무자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적의의 무사들에게 말했지만, 듣고 있는 이들의
기분은 그런 것이 아니였다.
그의 잔잔한 말투에서는 상당한 경력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임무가 있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는데, 그 때 한 쪽에서 누
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끄억!!"
"앗! 대장!"
비명소리의 주인은 이준과 싸우고 있던 적의 무사들의 우두머리였으니 그는 허
리에 검상을 입고는 들고 있던 도를 지팡이 삼아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큭..."
우두머리는 숲에서 적엽상인의 경지에 이르는 고수가 나타나자 마음이 흐트러
져 부상을 입게 된 것이다.
"두고보자!"
자신들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부하들을 보며 눈짓을 하
고는 급히 경공을 사용하여 숲으로 사라졌고, 그의 뒤를 이어 적의의 무사들도
사라져갔다.
"휴.."
무사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준은 한숨을 내쉬고는 부상을 당해 쓰러져 있는
도사에게 걸어갔다.
"이보시요. 도대체 무슨 일이요!"
피로 흠뻑 젖어 있는 도복을 입은 도사는 이준을 보고는 힘겹게 손에 들고 있
던 검을 그에게 건네주면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으니 이미 기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이준은 급히 그의 맥문을 잡고 진기를 불어 넣어주려고 했지만, 이미 숨이 끊어
져 버렸으니 한 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광무자를 보며 말했다.
"숨이 끊어졌습니다."
"알고 있다. 네가 진기를 불어 넣어주었다고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어느정도 그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던 광무자는 덤덤하게 말하고는 천천히 그
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을 잡았다.
단지 곁에 있었음에도 상당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 예사 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
"대사형 어떻습니까?"
"대단한 한기로구나 이준 네가 보기에는 이 검이 무엇인것 같으냐?"
"이 정도의 한기를 뿜을 수 있는 검이라면 십대신병의 하나인 냉혈검 밖에 없
다 생각합니다."
이준의 말에 광무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검을 잡고 있는 것 만으로 광무자의 손은 얼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에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니 도사의 허리에 검집이 하나 있는지라 그것을 들어
서는 검을 끼워 넣었다.
검집에 검을 넣자 주위로 퍼져나가던 한기는 감쪽같이 사라지니 광무자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호오! 검집도 예사로운 것이 아니로구나."
"그렇군요."
냉혈검의 한기를 완전하게 차단하는 것을 보며 이준 역시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이 도사는 누구이길레 무림 십대신병 중 하나인 냉혈검을 가지고 있
었을까요?"
"글쎄다. 그가 싸우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기력이 다해 제대로 된 초식을 볼
수 없었으니 어느 파의 제자인지 알 도리가 없구나."
"그렇군요.."
이준은 한참을 그렇게 그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천천히
광무자를 보며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는 것은 냉혈검의 이제 우리의 소유가 됬다고도 할 수 있겠네
요?"
"쯧쯧 염불보다 잿밥이 더 관심이 많은 녀석이로구나."
하지만 그 잿밥이란 것이 모든 무림인들이 바라마지 않는 십대신병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아서라 네 녀석의 실력으로 냉혈검을 잡았다가는 한시진도 되지 않는 검에 체
온을 모두 빼앗기고 비명횡사하기 딱 좋으니까 말이다."
"쳇!"
광무자의 말에 이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도사를 묻어주기 위
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도사를 땅에 묻어주고 간단하게 묘비를 만들어 준 두 사람은 다시 사천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나저나 적의의 무사들은 누구였을까요?"
이준은 자신과 싸운 자들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광무자는 아
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마교의 암혈당의 무사들인 것 같구나."
"예? 마교의 암혈당이요?"
이준은 그들이 마교도라는 것을 듣고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와 겨루던 우두머리란 자가 익힌 도법은 암혈당의 하급간부들이 익히는 혈
영도법이더구나."
"아!"
혈열도법은 상당히 패도적인 무공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그의 도에서 보인 기운
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암혈당의 무사들을 그냥 보내주다니...앞으로의 길이 조금 힘들겠습니
다."
"그렇겠구나."
역시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광무자였으니 고개를 내저으며 한 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광무자가 암혈당의 무사들인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그냥 보내 준 것이 좌검우
도의 무리를 위해 강자와 대결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가 무림의 삼대세력 중 하나인 마교의 무리들이라면 그로서는 고개
가 내저어 질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일이 있은지 삼일이 지났음에도 암혈당의 무사들이 나타날 낌새를
보이지 않자 이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
감숙과 사천성의 경계쯤에 이른 두 사람은 한 객잔에 머무르게 되었다.
평안객잔이라 불리는 곳이였는데, 이미 객잔에는 십수명의 사람들이 식사는 술
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호오!"
안으로 들어서자 이준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는데, 구석 쯤에 식탁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울고 있는 갓난아이를 달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
다.
물론 갓난아이의 모습을 보며 유부녀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아이를 지긋이
봐라보는 모습이 마치 관음보살이 현신해 온 것 같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객잔 안에 있던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는지, 이준 처럼 멍한 눈으로
보지는 않지만, 가끔씩 곁눈질로 여인의 모습을 처다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이군요."
자리에 앉은 이준은 여인에게서 눈을 때지 못한 채 광무자를 보며 말했다.
"그렇구나."
육십이 넘어 이젠 색에는 덤덤한 경지에 이른 광무자였으니 그의 말에 간단하
게 대답하고는 식탁 옆으로 와있는 점소이를 보며 말했다.
"만두 두접시와 소면 두그릇, 죽엽청 한병을 주게."
"예."
간단하게 음식을 시킨 광무자는 천천히 짐 속에서 책을 하나 꺼내어서는 그것
을 펼쳐 보았으니 쌍도문에서 나올 때 가져온 무학서적이였다.
"그나저나 대사형 마교 녀석들이 왜 이렇게 조용할까요?"
"글쎄다."
"삼일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다니 녀석들도 그 검이 냉혈검이라는 것을 알텐데
말입니다."
"그렇겠지."
무학서적을 보며 이준의 말에 툭 내뱉듯이 대답을 하는 그였으니 한참을 그렇
게 말하던 이준은 질렸는지 고개를 돌려서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흝
어보았다.
"응?"
그 때 창문 가까이의 식탁에 앉아 있던 무리들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방향이 바로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이 있는 곳인지라 미간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저런 시정 잡배 같은 녀석들...'
물론 그들은 시정 잡배가 맞다.
한참을 여인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그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한 녀석이 천
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런..'
여인에게 무슨 수작을 부릴 것이라는 알 수 있었던 이준이였다.
"젠장한 그 애새끼 조용히 좀 못시켜!!"
"죄송합니다."
남자는 여인에게 가서는 크게 소리지르니 갓난 아이는 그 소리에 놀라 더욱 크
게 울음을 터뜨렸고, 여인은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크크크 죄송하단 말로 끝낼 수야 없지 오늘 어르신들의 기분을 망처놓았으니
그 만큼의 빛을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인은 잡배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는 그녀의
말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잡고는 끌어 당겼다.
"크크크 오늘 밤 이 어르신의 수청을 들란 말이다!"
"이 자식들이!!"
이준은 그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여인을 돕기 위해 달려가려고 했는
데, 잠시 후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인은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잡배의 손을 금나수법을 사용하여 가볍게 풀
어버리더니 오히려 그의 가슴에 일장을 가했기 때문이다.
"뭐야! 이.....크윽!!"
여인에게 일장을 당하자 그는 화가 난 목소리로 손을 들어서는 그녀를 후려치
려고 했는데, 한 순간 신음을 지르고는 입에서 시뻘건 피를 쏟으며 자리에서 쓰
러지고 말았다.
"암경?"
이준은 여인의 일장에 상당한 위력의 암경이 섞여 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호오!"
광무자 역시 그녀의 암경이 실린 일장을 보았는지 크게 탄성을 내지르며 턱수
염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