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45화 (46/355)
  • 제 9 장 다시 도를 배운다. (1)

    무진의 도움으로 간신히 구랍의 손에서 벗어난 장천은 두려움에 숲의 바위 틈

    에 숨어서 떨고 있었다.

    지금까지 사람이 죽은 것은 본적이 없는 것은 아니였지만, 자신과 친한 사람이

    죽는 것을 보자 장천에게 공포감이 밀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장천에게 몰려 온 것은 좌절감이였다.

    쌍도문에서 다른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빠른 무공 진전에 칭찬을 받아왔던 장

    천은 강호에 나가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적

    을 만나 친하게 지내던 무진까지 죽자 감추어져 있던 두려움과 함께 좌절감이

    터져 나온 것이다.

    "흑흑흑....엄마...아빠..."

    바위틈에서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있는 장천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왔다.

    지금 그에겐 좁은 바위틈을 빠져나갈 용기도 무진의 시체를 볼 수 있는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은빛을 뿜는 보름달 사이로 밤새의 울음소리가

    들릴 무렵 장천은 숨어 있던 바위틈에서 떨리는 몸을 가누며 천천히 일어섰다.

    깊은 산속에 있는 장천에게 추위가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처에 있는 풀들을 모아 불을 붙인 장천은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며 피워놓은

    모닥불의 곁에서 두리번거리며 두려워했다.

    언제 무진을 죽은 자가 또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공포감이 도저히 장천을 가만

    히 내버려두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산을 울리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 마다 장천은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공포가 가득한 밤이 지나 아침이 됬을 때 장천은 천천히 눈을 뜰 수 있

    었다.

    공포감과 피로감에 지쳐있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이다.

    서서히 배고품이 밀려오기 시작한 장천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경험이 없는 그에겐 산 속에서 혼자 살아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군데군데 자라나고 있는 버섯을 자신도 모르게 뜯어 입에 넣으려고 했지만, 그

    것이 독버섯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선뜻 입에 넣지 못하고 있던 장천은 입술을

    깨물며 버섯을 땅에 던져버렸다.

    공포감과 좌절감 속에서도 장천은 죽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한 쪽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왔고, 장천은

    두려움에 급히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자신을 쫓아온 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떨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지만, 천천

    히 고개를 들어 인기척이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장천의 눈에 보이는 이는 다행히 무진을 죽인 자가 아닌 약초를 캐는 늙은 약

    초꾼으로 이마에 있는 주름살과 행색이 백살도 넘어 보이는 늙은이였다.

    어깨에 매고 있는 약초 바구니에 숲에서 자라고 있는 약초를 캐고 있는 노인을

    보며 장천은 그의 주머니에 먹을 것이 들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도 모르게 침이 넘어가는 장천은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들고는 천천히 노

    인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걸어오는 소리에 약초꾼은 아무런 표정 없이 고개를 들었는데, 그곳에

    열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도를 들고는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숨어 있었던 녀석이 너였더냐?"

    "...바구니를...내려놓고 가요.."

    "쯧쯧쯧.."

    장천의 말에 혀를 차던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안타까운 듯이 장천을 보

    더니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서는 장천의 앞에 던져 주었다.

    "뭐..뭐하는 거지..?"

    "가지고 가거라.."

    노인의 말에 장천은 천천히 발을 놀려 노인이 던져준 물건을 보았는데, 그곳에

    는 무명천에 감싸여져 있는 떡과 음식이 있었다.

    "아.."

    자신도 모르게 칼을 놓친 장천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으

    니 상당히 굶주려 있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참을 노인에 건네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던 장천은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이

    조금 부끄러웠는지, 칼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내..내가 거진줄 알아!!"

    장천의 말에 노인은 약초를 캐던 것을 멈추고는 잠시 장천의 흝어보고는 말했

    다.

    "거지는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의 내 행색은 거지보다 더 못한 졸장부의 행색이

    로구나."

    "뭐야!"

    노인의 말에 장천은 노기를 터뜨리며 도를 들고는 노인을 향해 덤벼들었는데,

    놀랍게도 노인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서는 가볍게 휘둘러 달려오던 장천의

    정강이를 후려 갈렸다.

    "끄으윽..."

    정강이를 강타당한 장천은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자세가 잡혀 있는 모습이였다.

    "칫!!"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네에게 허를 찔린 장천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화룡신도를 두 손으로 거머쥔 장천은 내공을 돋구어 청

    풍도법의 공격초식을 사용하기 위한 자세를 취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노

    인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찌 도를 다루는 자가 도에 끌린단 말이냐."

    그 한마디와 함께 노인은 손에 들고 있던 대나무지팡이를 장천을 향해 겨누니,

    장천은 그 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충격과 함께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뭐지..?"

    공격이 아니였다.

    노인의 대나무지팡이에는 어떠한 검기나 검풍도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인가에 밀려버린 장천은 몸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귀신한

    테라도 홀린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장천은 그 순간 당가에서 구랍에게 당한 상

    처가 쑤셔오기 시작했다.

    '난...졌다....'

    처음에는 백살도 넘었을 직한 노인을 보며 우습게 여겼지만, 자신은 그 우습게

    보인 노인에게 단 한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배를 당하니 눈물이 흘러내

    리고 있었다.

    "흑흑흑....."

    "쯧쯧쯧..."

    울고 있는 장천을 본 노인은 혀를 차고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짚고는 천천히

    뒤로 돌아 사라지니 어두운 밤 장천 혼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였다.

    쌍도문의 장춘삼의 양자가 된 이후로 그가 이렇게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 남은 일은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돌보아주는 사형과 사제, 사질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흑흑...무진형 미안해...."

    구람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쌍편에 목을 관통당하여 죽음을 당한

    곽무진을 생각하며 장천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친형과 같이 자신을 돌보아주던 그의 죽음은 이제 노인에게 당한 패배로 기가

    꺽여진 장천의 마음을 무너지게 한 것이다.

    혼자가 된 장천은 달 빛 조차 거부당한 채 숲길의 한편에서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뒤돌아보고 있을 때 한 사람의 인형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

    왔다.

    "쯧쯧..."

    장천에게 패배를 안겨준 노인이였다.

    "따라 오거라..."

    그 한마디만을 내뱉고 노인은 뒤돌아섰지만, 장천은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천천히 노인을 따라나섰다.

    "죽어본 느낌이 어떻더냐?"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면서 노인은 한참만에 장천을 향해 뜬금없는 질문을 날렸

    다. 죽어본 느낌이 어떨까?

    장천은 노인의 질문을 한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지팡이가 날아와서는 장

    천의 머리를 강타했다.

    "끅.."

    "죽은 놈이 생각은 무슨 생각이냐?"

    "죽긴 누가 죽어요!!"

    얻어 맞았다는데 열이 난 장천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

    고는 노인을 향해 소리를 질렀는데,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끌끌끌....아직 죽지는 않았나보구나..."

    "....."

    뭐라고 할 말도 생각나게 하지 않는 노인이였다.

    천천히 노인의 뒤를 따라가니 한시진만에 산 속에 어설프게 지어진 한 오두막

    에 들릴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누군가 살고 있는 듯 불이 켜져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노인을 따라온 장천은 오두막으로 들어서는 그를 따라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순간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진형!!"

    놀랍게도 그곳에는 구랍의 쌍편에 목이 관통되어 죽었다고 생각한 곽무진이 목

    에 무명천을 감고는 죽은 듯이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응? 네놈의 형이였더냐?"

    "예."

    "쯧쯧 형이나 동생이나 다 같이 죽고 싶은 난리를 치는 족속이니 그 집안이 알

    만하구나.."

    "...."

    노인은 천천히 들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서는 그곳에서 약초를 꺼내어 빻기 시

    작했다. 장천은 그 약초가 무진에게 쓰여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상처를 치료

    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 약초를 모두 빻은 노인은 천천히 무진의 곁으로 가서는 무명천

    을 벗겨내고는 목에 있는 상처에 약초를 바르고는 다시 깨끗한 천으로 그의 목

    을 감아 주었다.

    한참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장천은 더 이상을 참지 못하고 노인을 보며 물었

    다.

    "할아버지 무진형이 살 수 있을까요?"

    "글쎄다. 다행이 목구멍과 숨구멍이 크게 뚫리는 것을 면하기는 했다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을지 살지는 모르겠구나.."

    그때 갑자기 무진이 무엇인가가 목에 걸린 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하

    자, 노인은 가볍게 그를 들어 올려서는 손으로 가볍게 그의 등을 처냈는데, 그

    순간 무진의 입에서 시뻘건 핏덩어리가 튀어나왔고 무진은 숨은 조금씩 나아지

    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상세가 괜찮아진 것 같자 노인은 천천히 무진을 자리에 눕히고는 자

    리에서 일어나서는 말했다.

    "잠시 앉아 있거라 내 먹을 것을 조금 가져올테니.."

    "예."

    장천으로선 심하게 부상을 당한 무진의 곁에서 떠날 수가 없었기에 고개를 끄

    덕이며 대답을 하고는 무진의 곁으로 갔고, 노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는 방

    에서 나갔다.

    "부처님 제발 무진형을 살려주세요."

    장천으로선 치료를 해 줄 수도 없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행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부처님에게 기도하는 것 외에 어린 장천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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