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4화 (5/355)
  • 제 2 장 장천 쌍도문의 소주가 되다. (3)

    이러한 역사를 가진 쌍도문의 연공관에 들어선 곽무진과 장천은 제일 처음 연

    공관의 건물 안에 들어서면 드러나는 쌍도문립 무학도서관의 거대한 서고를 보

    며 탄성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방안의 족히 수십만권은 될 듯한 책이 가득 꽃혀 있었는데, 이것은 필자

    가 다니던 대학의 허접한 도서관의 책보다 많은 숫자이다.

    물론 이것들 전부가 무학서적은 아니였지만, 무학에 관한 서적도 방 한쪽을 가

    득히 메꾸고 있으며, 그 종류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물론 장강수로십팔채

    같은 수적 무리에서 제일 밑바닥의 하오문의 무공서적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구파일방의 무공들은 한두권을 빼고는 모두 흔히 알려져 있는 무

    공인지라 곽무진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상승무공에 없구나..."

    무공서적을 뒤지던 곽무진은 책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는 투덜거리면서 서고를

    지나 다음 방으로 들어가려했는데, 그때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뒷덜미를 잡고

    들어올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헉!!"

    곽무진은 자신의 뒷덜미를 잡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며 소리치려고 하다가 그의

    정체를 알고는 헛바람 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무진아...네 녀석이 어떻게 연공관으로 들어와 있는게냐?"

    "사..사부님..."

    무진의 뒷덜미를 잡고 들어올린 사람, 그는 바로 곽무진의 스승이다. 양우생의

    수제자이기도 한 광무자 유운이였던 것이다.

    이제자 중 가장 연장자이며, 비공식 쌍도문의 무공 서열 3위의 인물인 광무자

    유운은 겁도 없이 삼제자의 신분으로 연공관에 들어온 무진을 들어올려서는 손

    위에 올려놓고 돌리기 시작했다.

    "끄아악!! 사부님 제발 회선풍의 벌만은...끄아악!!"

    회선풍의 벌은 광무자 유운이 자신의 어린 제자들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말썽을

    저지를 때 주는 벌 중의 하나로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서는 내공을 사용하여

    돌리는 벌이다.

    일단은 맞는 것보다 나을 것이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회선풍의

    벌을 받았던 이들은 거의 모두 차라리 맞고 만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회선풍

    의 벌은 고통스러운 것으로, 보통 10분만 벌을 받아도 삼일은 어지러움증에 밥

    한술도 못 뜬다고 하는 최악의 형벌이였다.

    곽무진의 작은 덩치야 광무자 유운에겐 작은 자갈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한 손으

    로는 회선풍의 벌을 주면서 옆에 있는 꼬마 아이를 처다 보았다.

    장천은 곽무진이 소리를 지르면서 뺑글뺑글 도는 것을 보며 부러운 듯이 입맛

    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무진이 형. 재밌겠다.."

    하지만 지금 곽무진으로선 죽을 맛이라는 것을 어린 장천이 알 리가 없었다. 무

    진이 피가 머리와 다리로 몰려가는 듯 하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유운은

    장천의 뒷덜미를 들고는 자신의 얼굴 앞으로 들어올리더니 물었다.

    "네 녀석은 누구냐? 새로 들어온 제자인가?"

    유운의 물음에 장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럼 어디 사는 꼬만데, 연공관까지 들어 온 것이냐?"

    유운의 말에 장천은 돌고 있는 곽무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진이 형이 전 이곳으로 들어 올 수 있다고 했어요."

    "응?"

    장천의 말에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유운은 조그만한 꼬마인 장천을 내려놓고는

    회선풍의 벌을 받고 있는 무진을 던지듯이 떨구었다.

    "우와...돈다. 돌아..."

    회선풍의 벌에서 간신히 벗어나기는 했지만, 사방이 돌고 있는 무진은 휘청휘청

    술이라도 취한 것처럼 연공관을 돌아다니다가 그대로 자빠지고는 속이 넘어오

    는지 연공관의 바닥에 구토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을 보며 유운은 다시 뒷덜미

    를 잡아들어 올리고는 가볍게 손가락으로 무진의 몸에 있는 혈도에 튕기자 넘

    어오던 구토는 다시 속으로 들어가고 곽무진은 간신히 어지러움 증을 약간 벗

    어날 수 있었다.

    "아...사부님?? 언제 오셨나요? 오늘은 연공관에 안가시는 가보죠?"

    하지만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사부를 보며 히죽거리며 웃더니 흔들거

    리면서 횡설수설을 하기 시작했다.

    유운은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지풍이 일어나며 무진의

    이마를 강타했고, 지풍을 맞은 무진은 비명 소리와 함께 이마를 부여잡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끄아악!! 아이고 머리야!!"

    "이제 정신이 좀 드느냐?"

    "으악!! 사부님.."

    그제서야 완전히 정신을 차린 곽무진은 사부의 얼굴을 보자 이마의 통증은 사

    라졌는지, 벌떡 일어나서는 양발은 붙여서 45각도로 벌리고, 눈은 15도 각도로

    위를 쳐다보며, 턱은 당기고, 양손을 주먹을 쥔 채 허벅지에 일자로 갖다 붙여

    서는, 가슴을 내미는 부동자세를 취했다.

    "분명 연공관은 삼대제자는 못 들어온다는 것을 알텐데, 어떻게 들어왔지? 또

    이 아이는 누구냐? 아이의 말 대로라면 네가 이 아이에게 연공관에 들어올 수

    있다 했는데, 난 이대제자나 사숙, 사백님의 가족 분 중에서 이런 아이를 본 적

    이 없다."

    "그게...이 도련님은 이번에 장대사숙님께서 양자로 들여오신 장천도련님입니

    다."

    "장사숙님의 양자?"

    유운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는데, 곽무진은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

    작했다.

    "그게 장대사숙님께서 저번에 강북사우의 다른 분들과 함께 혈비도 무랑을 잡

    기 위해 강호에 나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지."

    "거기서 혈비도 무랑이 한 아이를 미끼로 군웅들을 유인하여 사라졌는데, 그때

    혈비도 무랑의 미끼가 된 아이를 장대사숙님께서 양자로 들이시고는 문으로 돌

    아오셨습니다."

    "응. 그런일이 있었는가."

    곽무진의 말에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유운은 뒤에서 멍하니 서 있던 장천을

    보며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아빠가 천이라고 그랬어요."

    "천이라 어울리는 이름이로구나.."

    천의 맑은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유운은 그에게 가까이 가서는 손을 움직여

    천의 몸 이곳저곳을 주물러보고는 말했다.

    "근골은 무공을 익히기에 아주 적합하구나."

    그 말과 함께 그는 장천과 곽무진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올려서는 서고를 지나

    한참을 걸어가더니 약재실이라 쓰여 있는 방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약재실에는 각종 약초와 환약들의 냄새가 가득 흐르고 있었기에, 장천은 뒷덜미

    를 잡혀 매달려가는 체로 코를 막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유운은 두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근처에 있던 서랍을 열어 환단 두 개를

    꺼내어 나왔다.

    곽무진은 그가 꺼내든 환단의 정체를 짐작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사부 그 환단은 혹시?"

    "그래 청심단이다."

    "아!!"

    청심단은 쌍도문의 비전환단으로 청심당을 먹으면, 한 알당 약 10년의 내공증진

    을 볼 수 있는 엄청난 환단이였다.

    이 환단은 군자쌍도 오립산이 무림삼광의 일인인 견즉사의(見則死醫) 호청명과

    약 1년에 걸친 내기를 해서 얻어낸 것으로 이 내기에서 호청명은 청심단 100알

    을 오립산에게 뺏기고 나서는 쌍도문의 쌍자만 들어도 피를 토하며 경기를 일

    으키는 홧병에 걸렸다고 한다.

    무공은 결코 견즉사의 호청명의 발끝에도 닿지 못하는 군자쌍도 오립산이 무슨

    수로 내기에서 승리하여 청심단을 뺏었는가는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일 중에

    하나였지만, 오립산은 그 내기의 내용을 죽을 때까지 밝히지 않았기에 그 내용

    를 알 고 있는 사람은 백살이 넘는 나이에도 삼광의 명성으로 강호를 누비는

    호청명 한 사람 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오립산이 얻어낸 100알의 청심단은 이대제자이상의 신분이 아니라면 손

    도 못대는 쌍도문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이 청심단을 처음 내공을 익히는 이가 먹어 운기조식을 통해 내공으로 화

    하게 된다면 10년이 아닌 그 두배의 효능을 볼 수 있었기에, 아직 내공을 익히

    지 않은 장천을 보며 유운은 청심단을 먹일 생각을 한 것이다.

    옆에서 장천이 먹게될 청심단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곽무진은 무엇인가 이상한

    지 스승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어떻게 청심단이 약재실에 있는거죠? 제가 알기로는 청심단은

    문주님께서 비밀금고에 보관하신다고 들었는데?"

    "물론이다. 이 두 알의 청심단은 내 몫으로 받은 것과 자신의 무공으로는 먹어

    도 소용이 없다며 구문필(九文筆) 사진이 나에게 넘겨 준 것이지."

    구문필 사진은 구양생의 삼제자로 현재 나이 45세의 중년의 인물이였다. 그의

    명호는 9가지의 서체에 능하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문필로 감숙성에서 양우생

    의 삼제자인 신필(神筆) 김춘수와 함께 감숙성을 대표하는 양대 명필가로 알려

    져 있었다.

    이대 제자로는 조금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이대제자 중 가장 연장자

    인 유운과 가장 친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부님..."

    "왜?"

    "저도..어떻게 한 알 어떻게 안될까요?"

    청심단의 효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곽무진으로선 장천의 입으로 들어갈 청

    심단이 엄청 부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유운은 그런 무진의 말에 특유의 무표정

    을 지으며 왼손으로 그의 이마에 또 다시 지풍을 날렸다.

    "끄아악!!"

    또다시 지풍에 맞은 곽무진은 이마를 부여잡고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런 무진에게 유운은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그렇잖아도 네 녀석이 나의 정제자가 되면 내 몫의 청심단을 하나 주려고 했

    다."

    "예? 정말이요?"

    "청심단은 정제자가 아닌 제자에게 먹일 수 없으니. 지금으로선 네 녀석이게 먹

    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였다."

    그의 말에 곽무진은 입은 찟어질 듯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유운의 다음 행

    동에 그 입은 오무라들며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유운이 두알의 청심단을 모두 장천의 입에 던져 넣었기 때문이다.

    "끄아악!! 싸부!!"

    "왜?"

    "청심단 한 알은 제가 정제자가 되면 주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그런데 왜 도련님에게 두 알 모두를...."

    하지만 또 다시 유운의 손가락이 튕겨지면서 지풍이 곽무진의 이마에 작렬했고,

    무진의 몸은 반동에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끄아악!!"

    머리를 부여잡으며 곽무진은 약재실 바닥을 뒹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유운이 그 모습을 보며 오른발을 들어 진각을 시전하자 약재실 바닥이 진동하

    며 그의 몸을 튕겨서 방문 밖으로 떨구어 버렸다.

    "싸부 너무해요!!"

    문밖으로 튕긴 곽무진이 억울하다는 얼굴을 하며 소리치자 유운은 손을 내저으

    며 말했다.

    "지금부터 단 한사람도 약재실로 출입하게 하지 말아라."

    "흑흑흑...지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싸부 시키는데로 해야지요.."

    청심단의 꿈이 사라진 것에 눈물을 흘리며 곽무진은 사부의 명령에 따라 약재

    실의 문을 닫고 경비를 서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유운이 입 속에 넣은 청심단을 자신도 모르게 꿀꺽 삼켜버린 장천은 뱃속

    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저...싸부..."

    "난 니 싸부가 아니다. 사형이라 불러라.."

    "그렇군요 전 무진형이 싸부라 부르길레 싸부가 이름인 줄 알았어요."

    "무진형이 아니라 지금부턴 무진 사질이라 부르며 하대를 하도록 해라."

    "예?"

    아직 촌수에 대한 관념이 없는 장천으로선 유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가끔씩 무진이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자신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을 이상하게 여

    긴 적이 있던지라 그것과 많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추측만을 할 뿐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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