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49화 (149/197)

149 혹한의 땅, 동남아시아(1)

흔히 동남아시아 하면 습기가 가득 찬 열대우림을 떠올리곤 한다.

허나 올해에는 그런 편견 아닌 편견이 깨지고 말았다.

휘이이잉!

한반도에서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당사자인 동남아시아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연일 이어지는 기온 하강 현상으로 인해 기업들의 매출과 흑자 폭이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이었다.

“항만이 얼어붙다니……. 이 정도면 피해가 심각하겠는데요?”

“동남아시아의 특성상 더위에 특화된 생활을 하는데, 기온이 하루아침에 수십 도씩 내려가는 바람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사했다고 하는군요.”

“허어, 이럴 수가!”

“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절반 이상이 고사해서 생태계의 심각한 파괴 현상이 예견된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동식물이라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한 탑의 수호자들은 동남아시아 헌터협회가 위치한 시가지로 향했다.

동남아시아 헌터협회는 싱가포르 시가지 중앙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이 동남아에서 이뤄지는 모든 레이드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허나 이제는 이곳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헌터협회를 방문하자, 10명 남짓한 헌터들이 태하와 일행을 마중하러 나왔다.

“잘 오셨습니다. 추우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인원이 100명 남짓이라 접대가 좀 소홀해도 이해해 주십시오.”

“100명 남짓이요……?”

“저체온증으로 많이들 사망했습니다. 특히나 시가지에서 떨어져 전통 가옥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특히나 많이 사망했죠.”

하루아침에 수십 도씩 뚝뚝 떨어지는 기온 때문에 미처 대비할 새도 없이 사람이 죽어 나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만약 천천히 기상이변이 일어나 대비할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좀 나았을 텐데, 지금으로선 아예 손쓸 방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듣자 하니 냉동 현상의 근원지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던데, 그게 어디입니까?”

“인도네시아 북부, 필리핀제도 중앙 지역, 그리고 태국, 미얀마, 베트남 등 15개 지역입니다.”

“생각보다 근원지가 많이 분포되어 있네요?”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이 정도입니다. 사실 얼마나 더 많은 냉동의 근원지가 있을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냉동 현상이 발견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심해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되고 있다는 건데…….”

“항만이 얼어붙었고 바다가 전부 빙판으로 변해서 사실상 동남아시아 제도가 전부 대륙처럼 이어져 있는 상태죠.”

“북극처럼 말인가요?”

“그런 셈입니다. 마치 아시아 동남부가 거대한 대륙처럼 변해, 걸어서 횡단이 가능할 정도가 되어 버렸죠.”

“흐음…….”

“그나마 항공편이라도 떠다닐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가까운 아시아 인근 국가에서 구호 물품을 조달받아서 생존에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럼 일단 근원지에 대한 정보를 좀 주시죠. 저희들이 한번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지금 동남아시아 헌터협회에는 S급 헌터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조사단을 꾸리기도 힘든 시점이었다.

그렇다고 군대를 동원한다거나 과학자들을 동원하자니, 일반인의 몸으로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빅토리아와 태하가 조사를 자원했을 때, 동남아시아 헌터협회에서 이를 크게 반겼던 것이었다.

“물품은 충분히 지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그곳으로 가겠다는 가이드가 없어서 지도만으로 찾아가셔야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GPS 장치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요.”

“참고로 근원지 인근은 극한의 지역이라서 전자 기기가 먹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을 유의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군요.”

혹한의 지역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 상당히 험난해 보였다.

허나 혹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란돌은 이에 대비해서 영하 100도에서도 작동하는 코어 기반 GPS 장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극한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기술력이 필요하지. 다들 건강 유의하세요. 추의에는 장사가 없거든요!”

“흠, 그럼 됐네요. 방한복을 챙겨 입고 한번 떠나 보자고요.”

***

스스스스……!

빙판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잔잔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허나 그만큼 이곳의 추위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온도계를 바라본 태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영하 40도……?”

“북부 던전 60층부터는 영하 50도 이하예요. 이건 사실 북부 던전에서는 거의 생활이나 다름없죠.”

“북유럽 사람들은 그야말로 괴물 그 자체네요.”

“적응을 한 거죠. 혹한 속에서 사냥을 해야 하니.”

“아니, 그나저나 바닷물이 얼다니. 이게 가능한 건가요?”

아무리 염분이 많은 바닷물이라고 해도 일단 수분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분명 어는점이 존재하긴 한다.

하나 바닷물은 조수 간만의 차에 의해 끝없이 흐르기 때문에 북극처럼 유속이 낮은 곳이 아니라면 어지간해선 대륙처럼 꽁꽁 얼어붙지는 않는다.

이곳 동남아시아는 유속이 상당히 거칠기 때문에 분명 바닷물이 잘 얼 수 없는 구조일 텐데, 태하는 이곳이 얼음 대륙이 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빅토리아는 명쾌한 답을 주었다.

“인력의 영향에서 다소 벗어났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추측이더군요.”

“달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지구의 자전축이 흔들렸거나, 어쩌면 중력에 어떤 영향이 생겼을지도 모르고요.”

“흠.”

“만약 자전축이 흔들렸다면 지금의 현상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북극, 남극이 변했다면 지금의 현상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일 테니까요.”

“어떤 방향이든지 간에 아무튼 지구에 큰일이 벌어진 것은 확실하네요. 그렇죠?”

“네, 맞아요. 큰일이 벌어진 것은 확실합니다.”

GPS 장치는 태하 일행을 첫 번째 목적지인 인도네시아 북부로 안내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의 숲으로 향하는 태하 일행, 그들은 오랑우탄과 호랑이 등이 서식했을 숲이 황량해진 걸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끔찍하네요. 마구잡이식으로 벌목을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텐데요.”

“근처에 얼어 죽은 동물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자고요.”

인간이 제아무리 포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동물이라곤 해도 대자연 앞에서는 그저 지구 속의 먼지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지금의 경우엔 누군가 인위적으로 참극을 만들었다는 것에 화가 날 뿐이었다.

태하는 순식간에 초목이 얼어붙어 죽음의 땅이 되어 버린 수마트라섬 북부를 묵묵히 탐험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삐비비빅……!

GPS 신호가 서서히 약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일행의 발걸음 역시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영하 60도입니다. 이거,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온도인지도 의심스럽군요.”

“아마 피복을 갖추지 않았다면 진즉에 얼어 죽었을 온도죠. 이 근처에도 사람이 분명 살았을 텐데, 그들은 고통 없이 갔을지 모르겠네요. 부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편안히 갔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사람이 자연재해로 죽었다고 한다면, 그들이 최대한 고통 없이 갔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으니까.

허나 이번에는 달랐다.

누군지는 몰라도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따위 짓을 했는지,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목적지가 바로 앞이에요. 온도는 내려가고 신호는 희미하네요.”

GPS 신호는 약해지고 있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일행은 이곳이 목적지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태하는 홍이의 아공간에서 피닉스를 소환했다.

퍼엉!

이제는 굳이 홍이가 등장하지 않아도 아공간 내에서 태하가 원하는 것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이 추운 곳에 홍이를 데려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피닉스, 우리를 좀 따뜻하게 해 줘.”

-삐애애액!

피닉스는 절대 꺼지지 않는 불꽃의 심장을 가진 신수였기 때문에 주변이 아무리 추워도 꿋꿋하게 그 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는 꽁꽁 얼었던 초목이 다시 생기를 되찾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덕분에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태하 일행은 목적지까지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삐이이이익!

“뭐야, 설마 으르렁거리는 거야?”

피닉스는 목적지 부근에 다다르자, 날개를 옆으로 쫙 펼치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곳에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태하는 슬그머니 방패를 꺼내 들었다.

“앞에 뭔가 있는 모양인데요?”

“몬스터인가? 아니면 사람?!”

진형을 갖추기 시작하는 탑의 수호자들.

그런 그들의 앞에 뭔가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히히히히!

“……뭐지, 이건?”

“앗! 앞에 뭔가 있어요! 희미한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고요!”

아리사는 마법으로 빛나는 형광물질을 동료들의 앞에 던졌다.

그러자 사방이 환해지더니 희끄무레한 뭔가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언뜻 보니 그 신형은 마치 머리가 길고 얼굴이 시퍼런 사람과 같았다.

“……뭐야, 처녀귀신?”

“에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요?!”

“그럼 우리 앞에 있는 건 뭔데요?”

“앗, 그야……. 헤헤, 그러게요. 저건 도대체 뭘까요?”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에는 영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 태하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존재에 대해서 떠올렸다.

“아 참, 그렇지! 나와, 메이지!”

뼈다귀 뭉치를 바닥에 던져 놓자, 그 안에서 작은 메피스토의 형상을 한 메이지가 나왔다.

끼리리리릭!

-크헬헬!

“메이지, 저놈들의 정체가 뭔지 좀 알아봐 줘.”

-크헬!

메피스토는 지옥에서 올라온 일종의 사자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 그의 심장을 흡수한 메이지라면 저들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일순간 정신을 집중하며 귀신들의 존재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하는 메이지.

잠시 후, 녀석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크헤엘!

“……뭐? 진짜 귀신이 맞다고?”

놀랍게도 저들은 정말로 사람의 형상을 한 귀신이 맞았고, 심지어는 이 세상에 해악을 끼칠 수 있을 정도로 원한이 깊기까지 했다.

태하는 더 깊은 곳으로 과연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잠시 주춤했다.

“처녀귀신들이 분명하다네요. 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저 의문의 공간, 우리가 들어가도 되는 걸까요?”

“……일단 저것이 뭔지는 몰라도 우리가 들어가는 것보다는 우선 입구를 막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별로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란돌의 말을 모두 수긍할 수밖에는 없었다.

저기 있는 처녀귀신들이 과연 어떤 이유에서 여기까지 나왔는지는 몰라도, 그다지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일행이 다소 방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쿠그그그극!

어디선가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진동을 뚫고 나오는 뭔가 엄청난 크기의 존재.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일행들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끄이에에에엑!

“……뭐야, 저거! 드래곤?”

“아니요! 드래곤이 아닙니다! 이무기인 것 같아요!”

태하는 저 푸른색 이무기를 던전에서 본 적이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그때의 그 이무기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제가 본 이무기에 비해서 거의 10배는 큰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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