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철든 용에게 점진적 과부하를!(2)
이른 아침부터 4명의 드래곤들이 태하를 찾아왔다.
“뭐야, 나머지 3명도 운동을 배우겠다고?”
“……오라버니! 저희들을 부디 거둬 주세요!”
“너희 4명은 이미 내가 거뒀잖아. 근데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야?”
“운동을 배우고 싶어요! 우리도 아르네시아처럼 근육질의 몸을 갖고 싶다고요!”
에밀리의 간절한 부탁에도 태하는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근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태하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드래곤들은 적잖게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분명 트레이닝을 해 달라고 하면 반길 거라고 했잖아?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은데…….”
“형님! 이 3명을 구원해 주세요! 형님은 헬스 전도사잖아요?!”
아르네시아의 말처럼 태하는 헬스계의 전도사나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다.
허나 그는 오늘 3명의 드래곤이 어떤 각오를 지니고 있는지, 그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근성이 없는 놈들은 받아들이지 않아. 재능이 없다면, 그건 어떻게 해 줄 수 있지. 하지만 근성이 없다면 말짱 꽝이라 이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근성만 보여 주면 된다, 그건가요?”
“나의 마음을 움직여 봐. 그럼 너희들을 트레이닝해 주도록 하지.”
“좋아요! 우리의 결의를 보여 드릴게요!”
태하는 이들에게 아르네시아를 붙여 주고 자신이 알려 준 루틴대로 운동을 시켜 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유산소운동을 해 주고 저녁에는 고강도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었다.
물론 식단을 엄수하는 것은 필수였다.
“지켜보겠어. 앞으로 너희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말이야.”
“알겠어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과연 드래곤들이 얼마나 대단한 결심을 보여 줄지, 태하는 은근히 기대가 되긴 했다.
드래곤들에게 훈련을 시켜 놓고 오픈 준비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휘이이이잉!
태하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바람이 일었다.
“……한여름에 무슨 냉기가?”
지금은 8월이다. 절기상으로 분명 여름이었고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삼복더위의 맹렬한 기세가 서울 전체를 뒤덮고 있을 정도였다.
헌데 오늘 아침이 되니 그 무더웠던 기운은 사라지고 초겨울의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기상이변인가?”
워낙 근육으로 단련된 몸이라서 추위를 생각보다 많이 타지 않지만, 그래도 온몸에 털이 삐죽삐죽 서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오픈 시간이 되자 오전 GX 회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코치님 안녕하세요!”
“네, 다들 굿모닝!”
“그나저나 어지간히 춥네! 어째 해가 뜨니까 더 추운 것 같아요! 오늘따라 날씨가 왜 이러지?”
“그러게요. 다들 옷은 따뜻하게 입으셨어요?”
“바람막이를 입기는 했는데, 어째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아요!”
요즘 기상이변이 가장 큰 문젯거리라고 하더니, 결국엔 한여름을 초겨울로 바꾸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GX는 여성 회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순환 운동으로, 30분 정도 중강도 운동을 차례대로 꾸준히 돌려 주면서 지방을 연소시켜 주는 루틴이었다.
한바탕 수업을 끝내고 나온 태하는 곧바로 PT를 준비했다.
“이게 바로 렛풀머신이야!”
“렛풀?”
“등을 운동시켜 주는 거지.”
“오호!”
행복관의 머신들을 차례대로 돌면서 사용법을 배우고 있는 드래곤들이 보인다.
아르네시아는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태하의 가르침에 따라서 가장 기본이 되는 머신 운동부터 알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첫날의 태도는 다들 경청하는 분위기라서 보기는 좋았다.
“뭐, 나쁘지는 않네.”
이 정도라면 운동을 알려 줘도 손색이 없을 것 같기는 했다. 다만, 이걸 얼마나 꾸준하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앞으로 한 달만 더 기다려 볼 참이었다.
***
그날 오후, 조선엽이 태하를 찾아왔다.
그는 최근 마정석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앞으로 마정석이 에너지 시장을 주름잡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은청석이 시장에 풀리면서 에너지원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인류가 발견한 신물질 중에서도 마정석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회장님께서 시장에 풀어놓았던 미량의 마정석이 과학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요. 정상적인 과학자들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죠. 에너지 효율이 코어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이니까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한다면 마정석은 코어를 만들어 냈던 원료의 개념이기 때문에 오히려 상위 호환의 에너지원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인류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에 접어든 셈이었다.
“마정석을 연구하는 것은 인류사에 아주 큰 획을 그을 만한 일입니다. 이대로 시장이 조금만 더 급격하게 변화한다면, 아무래도 코어의 쓸모는 서서히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 공급량을 서서히 늘려 줘야겠지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사실 하루에 1톤만 공급되어도 대한민국의 전력 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1년에 100톤만 공급해 줘도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는 남아돌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100톤이라. 그렇게 어려운 목표는 아니네요.”
“그렇다면 조만간 이 마정석을 꾸준하게 생산한다는 발표를 하고 각 에너지 회사와 자동차 회사들과 협의해서 인프라를 구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정석은 은청석보다 훨씬 강력한 물질이기 때문에 멜트다운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족히 100배는 뛰어나다.
허나 문제는 아직까지 인류가 이 마정석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태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마정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서 시장의 질서를 바로 세워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연구소를 설립하시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더 미룰 것 없이 일단 연구소부터 설립하도록 하자고요.”
“알겠습니다. 우리 펀드 산하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과학자들을 모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마정석을 연구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될 것이다.
태하는 자신의 결정이 지구의 생활 전반을 바꿔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선엽이 다녀간 직후, 빅토리아가 태하를 찾아왔다.
그녀는 태하에게 오늘 일어난 기상이변에 대해서 물었다.
“뭔가 이상한 점 느끼지 못했습니까?”
“이상하긴 했죠. 한여름에 칼바람이 불었잖아요?”
“단순히 그런 걸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이 칼바람, 단순한 기상이변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순한 이변이 아니라면? 이걸 인간이 만들어 냈다는 소리입니까?”
“이것 좀 보세요.”
빅토리아는 태하에게 국제 기상학회에서 보내온 공문을 보여 주었다.
공문에는 국제 기상학회에서 슈퍼컴퓨터 10대를 동원하여 만든 시뮬레이션의 결과가 적혀 있었다.
다소 복잡한 내용들이 많았으나, 결론적으로 본다면 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상이변의 근원이 동남아시아에 있다고요? 그것도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마력의 파장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단순히 기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특정 지역들에서 마력으로 인한 냉풍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는 겁니다.”
“마력이라니. 그렇다면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추위라는 뜻이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보고서를 보면 인간이 직접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기상학회는 지금의 기상이변을 설명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 걸쳐 취재를 하고 이변이 가장 강력하게 일어나는 지역을 지목하여 탐사대원을 보냈다.
헌데 그곳에서 마법이 사용될 때에 나타나는 특유의 파동이 관측되었고, 심지어는 화이트홀과 유사한 파동도 감지되었다.
“어쩌면 공간과 공간 사이에 구멍이 뚫린 것인지도 몰라요.”
“공간과 공간 사이에 구멍이 뚫리다니, 그게 가능한 건가요? 인간의 힘으로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공간과 공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할 것 같아요.”
“던전 돌파는 어쩌고요?”
“우선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흐음.”
확실히 전 세계가 빙판처럼 꽁꽁 얼어붙고 나면, 인류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느라 엄청난 시간과 인력을 투자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태하가 한 수 접고 기상이변을 정리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태하는 동남아시아로 당장 떠나자며 나섰다.
“그러면 더 미룰 것 없이 한번 가 보자고요.”
“이번에는 헬창스를 한국에 두고 우리끼리 가 보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말이죠.”
“우리끼리? 탑의 수호자들 말입니까?”
“지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요. 그럴 바엔 차라리 헬창스를 지상에 남겨 두고 우리끼리 떠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안 그래요?”
“하긴. 그것도 일리가 있긴 하네요. 물론 헬창스가 그걸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지만요.”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그런 건 걱정할 필요가 없죠.”
“뭐, 그렇다면야.”
태하는 그녀가 헬창스를 설득할 때까지 잠시 대기하기로 했다.
***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 3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쐐에에에엥!
본격적인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찬 바람만 불더니, 이내 눈 폭풍이 온 지구를 덮쳐 왔다.
시기적으로 지금은 우기이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가도 엄청난 강수량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헌데 이렇게 주야장천 내리쏟는 비가 전부 눈으로 바뀐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눈 태풍이 북상하고 있어요. 잘못하면 이재민이 대량 발생할 수도 있겠는데요?”
“겨울 태풍이라니. 전혀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인데…….”
헬창스는 전 세계를 조만간 강타할 얼음 태풍이 걱정이었다.
그들은 탑의 수호자들만 원인 지역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짐짓 서운한 마음을 숨길 길이 없었다.
허나 태풍이 불어닥친다는 얘기를 듣자 서운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빅토리아의 말처럼 밖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인간이 계획한 현상이라면 뭔가 의도가 있을 거예요. 그게 뭔지는 몰라도 인류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맞습니다! 잘못하면 몬스터가 다시 창궐할 수도 있죠!”
던전 안에서 겪는 일은 그야말로 귀여운 동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던전 밖에서 마주한 몬스터들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 다녔다.
이번에도 분명 그런 찝찝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헬창스는 이번 작전에서 빠지기로 한 것이었다.
“우리가 서울을 지키고 있을게요. 안심하고 다녀와요!”
“그래, 다들 고마워요.”
“다만 대장, 그곳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곧장 연락을 줘야 해요. 알겠죠?”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