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37화 (37/197)

037 고영수, 새로운 헬창의 탄생!(1)

메피스토 레이드가 성공한 직후.

“……누가 없어져요?”

“고영수 씨요. 이런 편지를 놓고 사라졌어요.”

이제 막 여장을 푼 태하와 동료들은 고영수가 놓고 간 편지를 확인해 보았다.

헬스하운드 여러분들에게.

원대한 뜻을 품었으나 제 깜냥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 되어 버렸습니다. 부디, 큰 뜻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 고영수 배상. -

태하는 씁쓸하게 편지를 갈무리했다.

용팔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귀영에 연락해 보니 그쪽에도 그만둔다고 했대요.”

“……환두대도가 부러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러게요.”

어쩐지 희란도 마찬가지로 힘이 쭉 빠진 느낌이었다.

태하와 용팔은 다친 한나와 희란을 대신해서 장비를 거두어 잘 말려 두었다.

그리고 가진 티타임.

“보상은 어떻게 한대요?”

“후순위 채권을 돌린다던데요.”

대한민국 정부는 사망한 헌터들의 장례를 치러 주는 한편, 그들의 죽음에 대한 합당한 보상 절차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또한, 레이드 성공에 따른 보수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허나, 그 보상에 관한 내용이 약간 이상했다.

“후순위 채권? 그게 뭔데요?”

“채권에도 배당 순위라는 게 있잖아요. 이를테면 A라는 회사가 망했을 때, 돈을 누가 먼저 얼마나 가지고 가는지를 정하는 거죠.”

“음, 그런 것도 있어요?”

길드들에 도착한 ‘레이드 보상에 대한 안건’을 읽은 한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어 버렸다.

“아니, 무슨 국가에서 후순위 채권을 발행해서 레이드 보상을 해 줘요? 그냥 임금을 줄 돈이 모자란다고 솔직하게 말하든지.”

“뭐라더라, 중간에 코어가 사라져서 그렇다나? 아무튼,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긴 했어요.”

코어의 가격을 논하는 건 정규 공격대가 오로지 던전 돌파를 목적으로 하였을 때, 사냥 과정에서 나오는 획득 아이템으로 수익을 배분할 때의 얘기다.

지금과 같이 의뢰를 받아 보스를 토벌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그곳에서 나오는 모든 물건은 레이드 당사자에게 있다.

이는 법에도 명시된 사안이었기에 한나가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흠! 법에도 명시된 것을 이리도 아무렇지 않게 쌩깔 수 있는 건가?”

태하 역시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정부에서 자꾸 돈 문제를 가지고 사람을 짜증 나게 할 때가 있었다.

마이너스 코어 관련 청산 절차에서도 정부가 계속해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요즘 정부의 부채가 많아졌나?”

“글쎄요.”

물론 돈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받을 돈을 못 받는 건 조금 억울한 일이었다.

허나, 헬스레이드도 이젠 돈에 연연할 필요까진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안건이 있지 않던가.

“아 참,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뭔데요?”

태하는 오래된 종이에 그려진 지도를 내밀었다.

지도에는 상형문자와 룬어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메피스토 레이드 말미에 저에게 떨어진 아이템이에요. 비밀의 방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특수 던전의 지도라고 하던데요?”

일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던전을 오르면서 특수 던전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나는 지도에 있는 글귀들이 이계의 룬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룬어를 공부한 사람은 이게 이계에서 왔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오호, 그럼 이게 무슨 뜻인지도 알아요?”

“아니요. 저도 룬어를 공부했지만 이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몰라요. 아무래도 ‘이계 언어의 기원’이라는 책과 ‘이계 언어 사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책도 있어요?”

“그럼요. 금성탑에 있지요.”

“아하!”

한나는 태하에게 일주일의 말미를 구했다.

“일주일, 그 안에 금성탑에 다녀올게요. 그 후에 다시 얘기하는 걸로 해요.”

“그럼 가는 김에 카이튼이라는 이름도 좀 알아봐 주시면 안 될까요?”

“카이튼이요?”

“에저드 호른이 그렇게 지껄인 것 같아서요.”

“음. 알겠어요.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동료들은 일주일 후를 기약했다.

***

대전정부청사 앞 일식 전문점 ‘다도’의 VIP룸.

쨍그랑!

유리잔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미쳤나! 도대체 우리가 들인 돈이 얼마인데 실패를 해?”

“죄송합니다. 메피스토가 그렇게 허무하게 녹아 없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금 국정원 줄까지 끌어다 쓴 걸 몰라?”

“면목 없습니다!”

“아수라, 그 새끼도 한물갔군그래.”

“갑자기 계산에 없던 엄청난 놈이 나타나서 말입니다.”

“계산 외의 인물? 그게 누군데?”

“정태하라고.”

“……누구?”

울긋불긋한 기름에 호박을 푹 담갔다가 뺀 것 같은 얼굴, 거기에 울퉁불퉁한 주먹코까지.

살이라도 좀 뺀다면 조금 나을까 싶지만, 얼굴이 워낙 못나서 그렇게 될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였다.

자타 공인 ‘추남’이자 3선 의원 추민우.

그가 던진 유리잔이 깨지면서 사방은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추민우는 국방부차관 조석희에게 물었다.

“뭐, 됐어. 정태하인지 지랄인지, 내 알 바야? 긴말 필요 없고, 언제까지 수습할 수 있어?”

“현재 아수라 길드의 인수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한 달 안에 마무리를 보겠습니다.”

“한 달……. 라인하트 가문에서 그때까지 기다려 준대?”

“최선을 다해서 기일을 앞당겨 보겠습니다.”

“보름, 그 안에 처리해.”

“예, 의원님.”

그제야 약간 누그러지는 추민우.

“그나저나 메피스토가 사라졌으니, 이젠 어떤 몬스터로 마이너스 코어를 만들어 내나?”

“언데드 계열 몬스터면 다 좋습니다. 차기 후보로는 65층의 보스 라이먼트가 있습니다.”

“머미를 만들어 내는 그 질병의 사자인가 뭔가 하는 놈 말이야?”

“맞습니다. 라이먼트를 이용한다면 우리가 마이너스 코어 시장을 완벽히 장악할 수 있을 겁니다.”

“완벽한 장악이라…….”

추민우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잠시 술로 입술을 적시던 그는 불현듯 이렇게 말했다.

“그럼 딱 서울 시민 1/3만 죽여.”

“……우리가 목표했던 것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양입니다만.”

“알아. 하지만 그래야 라인하트 가문에서 우리를 기다려 줄 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그리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한남동에 있는 부자 동네까지 싹 쓸어버리고 기업 순위도 좀 조정하고 말이야. 이거야 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생스러워서 어디 살겠어?”

“그럼 다음번에는 아예 장소를 용산으로 할까요?”

“오호? 그것도 괜찮겠군.”

조석희는 추민우의 지시 사항을 상세히 받아 적었다.

그러다가 그는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나서 물었다.

“아 참, 아수라 길드의 마이너스 코어 건은 어떻게 할까요? 수백 조의 손실이 날 것 같은데요.”

“돌려막기 안 되나?”

“일단 지급은 해야 하니…….”

“꼭 지급을 해야 하는 건가? 안 주면 안 되는 거고?”

“으음…….”

“될 수 있으면 돈 굳는 쪽으로 알아봐. 만약 안 될 것 같으면 몇백억 먹고 떨어지라고 하든지.”

***

운동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려는 태하를 희란이 붙잡았다.

“……그걸 꼭 쓰고 싶어!”

“흠. 지금 당장은 좀 어려울 건데.”

“어려워도 괜찮아. 나도 파티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요!”

대천사의 구원자 스태프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대천사의 구원자 스태프 착용 제한]

[힘: 13/168]

[민첩: 21/211]

[체력: 20/1,112]

[제한 옵션: 착용 성향 - 힐러]

힐러의 특성상 마력이나 체력, 근력 등 신체적인 스텟보다는 정신적인 스텟에 더 많은 양의 수련을 치중하게 된다.

직업의 특성상 최대한 많은 사람을 치료하고 그들을 방어막으로 보호하며 정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힐윈드라든지 메스힐 같은 광범위 스킬을 쓰는 힐러들은 체력과 마력에 관심을 끄고 하루 종일 명상만 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정신력에 집중하기만 해도 모자랄 판에 1,112라는 말도 안 되는 체력에 211이라는 민첩은 그야말로 억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생각이 짧았어. 사람이라면 때론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인데 말이야.”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사람은 뭐든 할 수 있어요!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죠!”

희란의 스텟을 보면 일단 보통의 여성, 아니 어지간한 일반 남성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다.

허나, 딱 거기까지였다.

“일단 다른 방법을 좀 찾아보자.”

“너무해…….”

금방 시무룩해지는 희란이 불쌍해 보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집을 나서려는 때였다.

우적!

“음……?”

“어디서 박 깨지는 소리 안 들렸어?”

“그거, 대장 가슴 속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요?”

“……내 가슴?”

곧이어 다시 한번 가슴 속에서 박이 쪼개지는 소리가 들린다.

쩌저적!

그러곤 이내 태하의 가슴을 뚫고 나오는 2개의 작은 생명체.

-꺄하!

-갸르르릉!

작은 벚나무 한 그루와 아기 고양이였다.

헌데, 벚나무는 사람처럼 생겼고 심지어 2~3세쯤 되는 소녀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기 고양이는 여기저기 줄기가 돋아나 있었는데, 아직 꼬마임에도 불구하고 맹렬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뭐야, 이게?”

“미쳤어…….”

“응? 뭐가 미쳐?”

“너무 귀여워! 어머, 이 언니 죽어, 얘들아!”

희란은 나무와 덤불을 꽉 안아 버렸다.

그러자 나무는 그녀의 품에 파고들었고 덤불은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쳤다.

-헤헤헤!

-갸르르……!

“어머, 미쳤나 봐! 뭐가 이렇게 귀엽지?! 대장, 이것 좀 봐! 어머나, 너무 귀여워!”

마치 1마리의 돌고래가 된 것 같은 목소리다.

태하는 희란이 태어나서 저렇게까지 호들갑 떠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딩동!

[퀘스트: 나무지기]

[나무 두 그루를 키우세요]

[조건: 나무가 말라 죽으면 당신은 근육 80%를 잃습니다]

“어엉?!”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가 아닌가!

나무가 죽는데 왜 가만히 있는 근육을 건드린단 말인가!!

신 미쳤음? 당신 도랏? 도르신?

[보상: 나무가 성장하는 만큼 당신도 성장합니다]

[나무의 성장치 = 당신의 근 성장치]

“오호, 이건 좀 괜찮네.”

그나마 좀 나은 조건이었다.

허나, 태하는 태어나서 뭘 키워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다.

키우는 건 고사하고, 자기 스스로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누굴 건사한단 말인가?

[옵션: 공동육묘]

[소울메이트 한정 공동육묘를 할 수 있습니다]

[단, 독박육묘는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공동육묘 만족도 = 근 성장]

[만족도 하락 시: 페널티 적용]

‘독박육묘가 뭐야? 혼자 독박을 쓴다는 건가? 아무튼, 공동으로 돌봐도 된다 이거지?’

벚나무는 희란의 등에 업혀 웃고 있었고 고양이도 그럭저럭 그녀의 머리 위로 올라가 잘 쉬고 있었다.

희란은 그런 녀석들이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미쳤어, 너무 귀엽잖아! 대장, 우리 얘네 키우는 거지?!”

“음, 그래야겠지?”

“좋아! 그럼 어서 수의사, 아니 식물 전문가부터 찾아가 보자!”

“아니야. 걔네, 던전에서 온 애들이거든. 우리가 알아서 잘 키워야 해.”

“……그럼 몬스터인 거야?”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불쌍해…….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몬스터로 성장한다니.”

“희란이가 잘 키우면 되지.”

그녀의 눈에 육묘의 의지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응! 내가 잘 키워 볼게!”

희란의 굳은 의지가 관철되었다.

딩동!

[퀘스트: 소울메이트의 성장]

[당신의 소울메이트에게서 굳은 의지가 엿보였음에 탑의 수호자는 감동했습니다]

‘뭐 어디서 감동을 했다는 건데? 그럴 만한 포인트가 없는 것 같은…….’

탑의 수호자는 감동을 엄청 잘하는 성격인 모양이다.

탑의 수호자는 희란을 성장시키고 싶은 엄청난 욕구를 과감히 드러냈다.

[‘소울메이트 - 희란’에게 점진적 과부하 패시브가 적용됩니다]

[점진적 과부하의 하위 스킬을 적용받습니다]

[‘공동육묘’의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대사형의 오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태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이 정도면 뭐.”

“뭐가?”

“가자, 희란아. 오늘부터 우리 1일이야.”

“……1일? 가, 갑자기?”

“운동은 원래 갑자기 하는 거야. 오늘부터 운동 1일 차!”

짜악!

희란은 태하의 등짝을 후렸다.

“으헉! 갑자기 왜 때려? 내가 뭐 또 잘못했나?”

“아니, 좋아서! 가자, 가자!”

다른 건 몰라도 희란은 헬스하운드의 첫 번째 덕목에 딱 부합하는 사람이다.

운동에 아주 쉽게 미치는 사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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