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근육으로 씹어 먹다(2)
이용광의 눈에서 광기가 폭발하고 있었다.
“……성공이다. 메피스토를 소환할 수 있다니!”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듯한 이용광.
허나 그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보고가 올라왔다.
“드리머가 감금 장치를 부수고 탈출했답니다.”
“……골드 등급의 그 드리머가 탈출을 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소식통에 의하면 환술사 제이드가 협조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드리머, 그러니까 각성자 중에서도 골드 등급으로 여겨지는, 이른바 ‘재앙급’ 헌터의 별명이다.
그는 꿈과 꿈을 넘나들 수 있으며, 심지어는 꿈을 설계하거나 꿈속에서 기억을 조작할 수도 있다.
무의식을 이용해 정신 지배나 착란, 혼동 등을 초래하여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드리머가 재앙급 헌터로 불리는 이유는 이러한 정신 지배 및 착란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일으킬 수 있고 사람의 기억을 해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흠……. 환술사 제이드라? 제이드가 제법 강력한 놈이긴 하나, 아카이브에 감금되어 있던 각성자를 빼돌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닌데?”
환술, 그러니까 환상을 눈앞에 보여 줌으로써 인간을 현혹시키는 능력자가 바로 환술사 제이드다.
허나, 그의 능력은 허상인 데다 공격 능력으로 사용할 정도로 대단한 힘까지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이용광.
“……아니, 잠깐만. 감금 장치의 억제기를 파괴하고 도망쳤다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환술사, 파괴……?”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으십니까?”
“스마트워치 문자 못 받았어? 몬스터가 활개를 친다잖아.”
“그건 메피스토가 만들어 낸 것들 아니었습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 하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아.”
“예……?!”
메피스토는 분명 아수라 길드가 소환했다.
허나, 그 작품 중에는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뜻이었다.
“환술사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허상을 소환할 수 있다 아이가. 만약 그 허상에 숨결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어?”
최연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허상은 허상에 불과할 뿐, 그것을 실제로 소환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죠.”
“아니, 가능하데이. 그런 사람이 딱 1명 있다 아이가.”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존재한다. 라이프 모듈.”
“아니, 만약 그랬다면 이 세상을 지배하고도 남았겠지요.”
“그럴 수도 있었지.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인간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 아무리 상상이 정교해도 그것을 막상 3D에 풀어놓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거든. 하지만 환술사는 달라. 아주 정교한 상상력을 통해 허상을 소환할 수 있지. 살아 있지만 않다 뿐이지, 진짜 존재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야.”
“그렇다면 그들 세 사람이 힘을 합쳐서…….”
“괴물을 만들어 낸 기라.”
“허어!”
이용광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후후, 하늘이 이리 우리를 돕는 건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퍼뜩 환술사와 드리머를 수소문해라이. 우리가 놈들을 먼저 잡는다!”
***
[좀비의 맷집]
[라이프가 20%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체력을 즉시 회복합니다]
[저항 증가, 방어력 증가]
[스킬 증가]
[순간 근육량 증가]
쿠그그그극!
좀비의 맷집으로 되살아난 태하가 뱀파이어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터억!
“근육량이 증가해서 이제 패시브가 안 먹히네. 아, 이제 좀 편하다!”
-뭐, 뭐야?!
“뱀파이어는 심장에 말뚝을 박으면 죽는다고 했었나?”
-……이런 빌어먹을!
태하는 놈의 심장에 주먹을 찔러 넣었다.
퍼억!
그리고 시작되는 약탈.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7]
[뱀파이어 노블을 약탈합니다]
[주의 사항: 뱀파이어 노블의 두뇌가 가진 용량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기억 재생은 추후에 해금됩니다]
[스킬, 특성, 특수 능력은 정상적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비명도 없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 뱀파이어.
뱀파이어를 없애 버린 태하는 더욱 강력해진 벌크를 가진 근육맨으로 거듭났다.
태하는 쏜살처럼 튀어 나가 에저드 호른의 죽빵을 후려갈겼다.
콰아앙!
-크헤에엑!
“이런 먼지 구덩이 같은 새끼가?”
-……너, 넌 아까 죽었던 놈인데, 분명!
“그건 네 생각이고.”
에저드 호른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사, 살려 줘!
바로 그때였다.
우우웅……!
따악!
에저드 호른의 몸속에서 서판 조각이 튀어나오더니 태하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억!”
허무한 일이지만 놈은 서판 조각이 떨어져 나옴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적을 모조리 쓰러트린 태하가 주변을 살폈다.
“다들 괜찮아요?!”
“……희란 씨와 한나 씨가 크게 다쳤습니다!”
“젠장,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한나와 희란은 태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르르릉!
희란이 힐링 마법으로 간신히 체력을 회복하고 한나를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
“……가요! 할 수 있어요!”
“음, 지금으로선…….”
“할 수 있어!”
결국, 태하는 그녀들의 강권에 못 이겨 메피스토 레이드 현장으로 향했다.
***
-쿠오오오!
메피스토의 마력이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
헬스하운드는 준보스들을 처리하고 본대와 합류했다.
본대는 메피스토의 마력이 폭발하기 전에 어떻게 공격하면 좋을지 여전히 상의하고 있었다.
태하는 현영태에게 준보스들을 물리쳤다고 보고했다.
“준보스는 처리했습니다.”
“……뭐, 뭐라고?!”
깜짝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준보스가 이렇게까지 빨리 정리되는 것은 드문 일이었으니 말이다.
일동은 모두 놀라 헬스하운드를 멀뚱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나저나 저놈을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 텐데요.”
“지금은 마력을 충전하는 중인 것 같은데, 만약에 우리가 잘못 건드려서 마력이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이 근방은 초토화가 되는 거야.”
“으음…….”
“바벨탑 전문가들도 이렇다 할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네.”
지금으로선 정말 흡수 말고는 답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 태하.
그런 태하에게 용팔은 다소 엉뚱한 제안을 한다.
“협상을 해보면 어때요?”
“……협상이요?”
“헌터님은 몬스터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니 대화로 충분히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상당히 신박한 아이디어였다.
그러고 보면 마력을 집중하기만 하고 아직까지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만 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가설이었다.
태하는 현영태에게 자신이 나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이 사태를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사태를 마무리하겠다니?”
“자세한 것은 일이 마무리된 후에 설명하겠습니다.”
현영태는 가만히 태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불현듯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죽을 수도 있어.”
“압니다. 하지만 저 하나 죽어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뜻대로 하시게.”
아직 공식적으로 선언한 바는 없었으나, 현영태는 분명 태하를 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하는 현영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동료들에게 파이팅의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그리고 태하는 거침없이 메피스토를 향해 나아갔다.
메피스토는 동그란 원형 마법진을 그려 놓고 그 안에 들어가 뭔가 주문을 외고 있었다.
태하는 메피스토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메피스토.”
-……?!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메피스토는 진심으로 놀란 모양이었다.
심지어 그는 연성하고 있던 마법진까지 놔두고 태하를 쳐다보았다.
무려 12m씩이나 되는 거대한 몸집,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보라색 숄에 검은색 사제복까지.
사실 메피스토라는 것만 빼놓고 본다면 신관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태하는 그런 메피스토에게 조금 더 다가섰다.
두근!
순간, 메피스토가 당황했다.
-……사신?!
“……?”
-사신의 징표가 왜 여기에?!
메피스토는 손가락으로 태하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러자 공명하는 서판 조각 ‘죽음’편.
“이게 사신의 징표라고?”
-사신은 아직 지하에 존재하셔야 하는데……?
혼자서 자문자답을 하며 놀라고 당황하는 메피스토다.
왜 이렇게 황당한 원맨쇼를 하는 것일까?
-당신, 정말 사신이 맞는 건가? 어째서 인간의 몸으로……?
“음, 그게…….”
-아아!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사신이 뭐 하는 사람이기에 저러는 것일까.
자세한 건 몰라도 저리 난리 치는 것을 보면 사신이라는 존재는 대단한 놈인 게 분명했다.
-우연한 기회에 조각을 얻었소! 우리의 대업이 이제 곧 완수될 것이라, 이 말이오!
“……뭐? 너도 가지고 있어?”
-당연한 것 아니오. 우리의 대의를 위해선 반드시 쟁취했어야 할 것들 아니겠소.
메피스토는 태하를 사신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묻는 대로 술술 대답하는 메피스토.
태하는 조금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봐, 그럼 내가 당신 보스야?”
-……당연한 소리 아니오.
“그럼 내놔.”
-뭘 말이오?
“서판 조각 말이야.”
-……뭐, 뭐요?!
“싫어?”
-아니, 도대체 왜…….
“까라면 까지, 무슨 말이 그리 많아? 대업을 완수하기 싫어?”
싫냐는 말에 메피스토는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가슴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었다.
그러자 나타나는 서판 조각.
-이것을 사신께 바치겠소! 그리고 이 포이나드 백작은 먼저 돌아가겠소!
타악!
태하의 몸속으로 서판 조각이 날아와 흡수되었다.
그러자 이내 다시 한번 큐브가 맞춰지듯 빠르게 돌아가며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서판 2장: 생명]
[완성률: 90%]
조각이 맞춰지고 생명이라는 서판이 있다는 암시가 내려왔다.
메피스토는 그와 동시에 스러져 가기 시작했다.
사아아아아……!
이쯤 되면 의문이 들 수밖에는 없다.
‘도대체 이 서판이 무엇이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차지하려는 것일까?’
태하는 죽어가는 메피스토를 붙잡았다.
“이거 뭐 하는…….”
-됐다! 이제 내 할 일은 다 했다!
“엇, 잠깐만! 죽을 때 죽더라도 서판이 뭐 하는 건지는 좀 알려주고 죽어!”
-……폐하! 소신, 폐하께로 가옵니다!
태하는 다급히 스러지는 메피스토에게로 스태랩을 뻗어서 코어를 흡수했다.
이내 약탈이 시작되었다.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8]
[메피스토 ‘포나이드 백작’을 흡수합니다]
[메피스토 ‘포나이드 백작’의 일기를 Lv.12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메피스토 ‘포나이드 백작’의 특수 능력과 스킬은 Lv.18에 해금됩니다]
흡수에는 성공했으나 그의 기억이나 능력은 쓸 수가 없었다.
“아, 젠장! 가장 중요한 게 빠졌잖아!”
바로 그때, 태하의 손으로 떨어지는 한 장의 종이.
[‘포나이드 백작’ 특수 던전: 비밀의 방]
“어엉……?”
“이게 뭐예요?”
“그, 글쎄요?”
“아무튼, 우리가 레이드를 끝냈어요!”
태하는 그저 메피스토와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인데 레이드는 끝이 났다.
이윽고 시작되는 아이템 파밍과 랭크업.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
-아이템 카운트: 51개
듣던 것과는 다르게도 아이템이 엄청나게 많이 파밍 되었다.
심지어는 지금까지는 아예 듣도 보도 못했던 아이템까지 파밍 되었다.
[랭크가 상승합니다]
[랭크: C-골드]
[세 번째 특성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특성 스킬: 정복 / 군림]
[당신의 강력함은 이제 던전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정복된 던전 위에 군림할 수 있습니다]
[스킬: 약탈]
[메피스토의 DNA에서 추출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스킬이 저장되었습니다]
[추출 대상 - 메피스텔레스: 악마의 재능]
랭크가 상승하였고 새로운 스킬도 얻었다.
다소 얼떨떨해 있는 태하에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오, 영웅이다! 진짜 영웅이 탄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