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2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아름다운 목소리에도 소년은 엎드린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모습이 퍽 재밌었는지 환관은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다시 한번 고소를 지었다.
“그래, 넌 고개를 들라고 해도 들 수 없겠구나. 그러니 다르게 말해야겠지. 고개를 들어라. 그러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그것이 환관의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소년을 떠보기 위한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떠보기 위한 말이라 했더라도 소년이 고개를 들지 않아 환관의 기분이 상했다면 얼마든지 소년은 목이 잘려 저잣거리 장대 위에 매달릴 테니까.
억지로 고개를 든 소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환관은 젓가락을 바쁘게 놀려 향어의 살을 발랐다.
‘제기랄, 어지간히도 맛이 있었나 보군.’
향어는 뼈가 굵고 잔가시가 적어 바르기도 쉽고 기름져 먹기 좋은 생선인 만큼 인기도 많고 값도 꽤 나가는 고급 생선이다.
원래대로였다면 이런 밑바닥 구더기에게까지 떨어질 식재료가 아닌 데도 그의 손에까지 들어온 걸 보면 이번에 유난히도 향어가 많이 들어와 돼지 먹이로 줄 만큼 넘쳐 흘렀던 모양이다.
돼지 먹이로 주느니 불쌍한 놈도 한 마리 주자는 내식방 나인들의 마음 씀씀이 덕분에 간신히 손에 들어온 향어였는데.
‘제기랄, 그 정도 신분이면 팔뚝만 한 향어를 온갖 방법으로 처먹을 수 있을 텐데, 왜 하필 내 걸?’
고기나 생선은커녕 계란 한 알 일주일에 한 번 입에 못 대는 날이 허다한 소년은 오랜만에 들어온 행운을 송두리째 빼앗기자 서글픔이나 분노보다도 허탈함이 먼저 밀려왔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향어 한 마리를 살뜰하게 발라먹은 환관은 기분 좋게 배를 두드리며 다리를 꼬고 앉아 그에게 말했다.
“왜 튀겼지?”
“……예?”
아니, 튀겨먹고 싶었으니까 튀기지 그럼 삶아 먹으려고 튀겼겠습니까? 솔직히 네놈을 튀겨먹고 싶기는 하다만?
그렇게 반문하기 전에 환관이 그의 말문을 막고 추리를 시작했다.
“넉넉하지 않은 빈곤한 살림살이인 것은 굳이 네 처지를 눈으로 보지 않아도 잘 안다. 우연히 향어를 얻었다고 해도 굽거나 삶으면 그만인 것을, 어째서 밀가루 옷을 입혀 튀겼을까? 그리고 산초. 얼마 있지도 않은 귀한 산초를 어째서 사용했을까? 뭔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거겠지.”
바닥에 소년을 꿇어 앉혀놓고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무엇이 그리도 흥미로운지 환관은 입꼬리를 길게 찢은 미소를 그리며 재잘거렸다.
처음에는 그 말이 귀찮고 구차하게 느껴졌다. 그래 봐야 재미 삼아 구더기 밥이나 뺏어 먹는 한량 놈이 아니냐.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을수록, 소년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시린 한기에 몸을 떨었다.
심장이 오싹해졌다.
추리해 냈는가? 아니면 혀끝으로 느꼈을까? 그렇게 해서 내 생각을 읽어낸 건가??
재밌다는 듯이, 잡은 벌레를 내려다보는 동심으로 가득한 아이 같은 눈빛으로 환관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소름 끼치는 감각에 소년은 더욱더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튀기는 음식, 그러면서도 들어가는 재료가 비싸 네가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 그래, 당초(糖醋)로구나. 당초향어였어.”
그 순간만큼은 소년도 순수하게 탄성을 터뜨렸다.
확실히 탕추(糖醋)를 끼얹어 먹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도대체 어디서 그 사실을 유추해 냈을까?
“하지만 단순히 당초만을 끼얹기만 하고 끝내지는 않았을 것 같아. 무엇을 생각했지?”
소년은 눈앞의 환관이 무섭게 느껴졌다. 이번 생은 물론 지난 생에서도 자기 생각을 이렇게까지 알아맞힌 사람은 없었다.
흉금 안까지 그대로 읽힌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운 불안과 누군가에게 자신의 밑바닥까지 이해받는다는 공포감에 소년은 식은땀을 흘렸다.
환관이 은근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이번엔 가죽을 벗기겠다는 협박을 곁들였기에 소년은 순순히 입을 열었다.
“용수면을…… 튀겨 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아! 이어배면(鯉魚焙面)이구나! 원래라면 잉어로 만드는 요리지만 향어로 만드는 것도 괜찮겠어.”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환관은 혼자서 웃고 자문자답하며 기꺼워했다. 꿇어 엎드린 소년에겐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한참을 혼자서 궁리하던 환관은 다시 입을 열어 누군가를 크게 불렀다.
“위정(衛貞)! 위정 이리 좀 와!”
“예 태감님, 부르셨습니까?”
바로 문 앞에 서 있었으니 위정 이란 이름의 환관은 부름을 받자마자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엎드린 채로 고개만을 힐끔 돌려 본 위정의 첫인상은 도저히 환관으로 두기에는 아깝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환관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칠 척이 훌쩍 넘는 장신에 넓은 소매 사이로는 드러난 굵은 팔뚝과 강인한 손목, 흉터 많은 손은 틀림없이 전장에서 구르던 장수의 풍모였다.
거기에 보통 거세한 환관은 수염이 나지 않거나 나도 옹졸하게 쥐 수염이 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사내는 제법 그럴듯한 풍성하고 윤기 나는 수염 결을 자랑했다.
그의 뒤로 세 명의 환관들이 더 들어왔다. 항상 넷이서 함께 태감을 보필하는 듯 태감 앞에 늘어선 그들의 모습은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익숙했다.
이 시대에는 귀한 수정알 안경을 쓴 환관, 고양이 같은 인상이 귀여운 환관, 그리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환관까지.
현대였으면 아이돌 그룹 하나 짜면 딱 좋을 미소년들이 줄줄이 들어오자 남루한 오두막 안이 환하게 느껴졌다.
가면을 쓴 환관은 몇 가지 명령을 위정의 귀에 속닥거렸다. 과묵한 바위 같은 얼굴에 한차례 황당함이 서렸지만 빠르게 표정을 고친 위정은 깊게 허리를 숙이고 바깥으로 나섰다.
잠시 후 그가 광주리에 담아 가져온 것은 토끼였다. 딱 보기에도 궁내 나인들이 먹는 것보다는 상품.
적어도 후궁의 비들에게 올라갈 만한 신선한 것이었다. 토실토실하게 살이 잘 오르고 너무 늙지 않아 연하고 부드럽고 즙이 많을 것이다.
쭈뼛거리며 고기를 들여다보기만 하는 소년을 재밌다는 듯이 보며 가면을 쓴 환관이 입을 열었다.
“뭐든 좋으니 맛좋은 음식을 만들어 보아라. 맛이 좋으면 그만큼 상을 주마.”
“무엇이든지……입니까?”
“음? 아 그래. 기왕이면 찜이 좋겠다. 산뜻한 거로. 시간은 좀 들여도 좋으니.”
뭐, 궁 밑바닥 구더기에게 거부권이랄 것이 있겠나. 시키면 해야지.
마음속으로는 열불이 치솟았지만, 몸에 밴 노예근성은 어느새 그를 화덕 앞으로 내몰았다.
라복증암토(蘿蔔蒸罯兎, 무와 토끼찜)
살집이 좋은 토끼는 머리를 떼지 않은 상태로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빼 소금과 초석 가루를 문지른다.
큼직한 생강에 무와 파, 물에 불린 진피(陳皮, 귤껍질을 말린 것)에 산초와 팔각을 배에 채워 넣고 나무 꼬치로 배를 여민다.
냄비 바닥에 물과 유채 기름 약간, 식초, 노주(臘酒)를 조금 섞어 넣고 나무 걸대를 걸어 토끼를 올린다. 뚜껑을 덮어 밀가루 반죽으로 틈을 막고 한 시간 남짓하게 찐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조절하던 소년이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어느덧 후궁의 담벼락 너머로 황혼마저 지고 어슴푸레한 달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배고프다…….’
소년은 점심에 보리 주먹밥 하나를 먹고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정성 들여 준비한 향어와 쌀밥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환관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살 오른 통통한 암토끼도 저 환관의 배에 들어갈 것이었다.
배고프고 서럽다. 정신연령이 얼마가 되었던 그의 몸은 한창 먹고 잘 나이의 어린 소년이었다.
배가 고프니 울적하고 애써 만드는 요리가 얄미운 환관 놈의 혓바닥 위에 올라갈 것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오늘의 난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걸까?
소년의 처량하게 굽은 등을 보던 가면을 쓴 환관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토끼찜 하나로는 식사가 안 되겠는걸. 그렇다고 밥은 아까 먹어서 속이 부대낄 것 같고…… 뭔가 더 만들어주겠니?”
“……그럼, 죽이라도 쒀 올리리까?”
“죽? 그거 좋구나. 밤이 늦었으니 속이 편한 죽이 좋겠다. 위정, 재료를 더 가져다주어라.”
뭔가 위로라던가 사죄의 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라지만 막상 환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소년은 허탈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하여간 일관되게 싹수없는 놈이니 그거 하나는 인정해 줄 만하다만, 부디 정적에게 암살이라도 당하길 빌며 이왕 이렇게 된 것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줄 테니 고혈압이나 걸리라는 마음으로 재료를 이것저것 더 주문했다.
만들 것은 향어의 살로 만든 완자와 죽순을 넣은 옥정어구죽(玉淨魚球粥)에 화퇴(火腿, 중국식 돼지 뒷다리 햄)와 콩나물을 볶은 초두아(炒豆芽), 연두부에 파를 듬뿍 올리고 간장을 끼얹은 소총반두부(小蔥拌豆腐)까지.
이 정도면 야식 상차림으론 과할 정도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다 쪄진 토끼를 꺼내 등뼈를 발라내고 반으로 가른 후 먹기 좋게 썬다. 머리는 반으로 갈라 접시에 얹어낸다.
아마 전생에 한국에서였다면 기겁을 했겠지만, 본토 중국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이곳도 다를 바 없겠지.
죽은 고명으로 잘게 다진 파와 생강을 얹는다. 위정이 가져온 청자 그릇에 담고 그래도 꼴에 전직 요리사였다고 당근을 조각하고 향초 가지로 요리를 장식했다.
만들어놓고 보니 예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솜씨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먹지도 못하고 돈도 못 받는데 미운 놈에게 먹일 요리에 무얼 그리 공을 들였는지 헛웃음이 나왔다.
“호오, 야식에도 이렇게 장식까지 해서 공을 들이다니. 맛도 기대가 되는구나.”
우선은 야식의 메인인 토끼찜. 진피 향이 진하게 나는 토끼고기는 지방이 적고 연하며 부드럽다.
아삭아삭한 죽순과 부드러운 향어살 완자가 들어간 죽은 부담 없이 가볍고 연두부 위엔 파와 자차이가 듬뿍 올라가 신선하고 향긋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 이 두아 볶은 거 맛있다…….”
고풍스러운 말투마저도 잊어버리고 고상하신 환관 나리께서 감탄사를 터뜨렸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감탄사가 당황스러웠는지 왼손으로 가면을 눌러 고쳐 쓰며 환관은 소년에게 점잖은 칭찬을 전했다.
“화퇴가 들어가 진한 간이 절묘하군……그래, 그래서 전체적으로 모든 요리의 간이 싱거웠던 건가?”
먹고 분석하고 감탄하고,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참 바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로는 반쪽짜리 정답이야. 그 요리에는 먹는 순서가 있어.’
레스토랑이었다면 먹는 방법을 우선 적으로 말해 주었을 것이다. 요리사인 그는 본능적으로 음식을 최고의 맛으로 즐길 수 있는 순서에 맞게 요리를 만든다.
하지만 눈앞의 가면을 쓴 환관은 그의 손님도 아니었고 오히려 불청객에 가까웠다.
‘거기까지 말해 줄 의무는 없다. 하지만…….’
어째선지, 눈앞의 기적 같은 미각의 소유자라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소년은 느꼈다.
차가운 연두부를 시작으로 따뜻한 토끼찜을 먹고 삼삼한 간에 집중하는 혀 위로 강렬한 소금기가 느껴지는 콩나물과 햄에 혀가 짜릿해지면 간이 거의 되지 않은 순한 죽으로 혀를 달랜다.
두부에서 찜으로, 찜에서 볶음으로.
차갑고 부드럽고 짠맛을 순차적으로 경험한 혀에 미미하게 간이 된 쌀의 단맛이 슬며시 퍼진다.
기름진 향어의 살, 아삭아삭한 죽순에 아릿하고 산뜻한 생강과 파. 그 완벽한 조화 속에서 환관은 깨달았다.
이 식탁의 중심은 찜이 아니란 사실을.
다른 모든 음식은 이 죽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잔가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 죽을 눈앞에 둔 환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든 조각이 순서대로 맞물려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을 목도 한 희열.
환관은 손끝으로 지긋이 가면을 누르며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그래. 화가 난 모양이군? 이건 소소한 복수인가?”
그 말을 들은 소년은 몸을 움찔 떨면서도 모른 척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 천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래? 뭐 상관없겠지. 이런 복수라면 환영이야.”
다섯 명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만의 야식을 즐겁게 끝마친 환관이 일어섰다.
드디어 간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소년에게, 태감은 그런 행운을 베풀지 않았다.
“내 이름은 양단(梁旦)이다. 앞으로 날 ‘양 태감’이라고 부르면 된다.”
“예, 양 태감님.”
“그래. 내일 아침 연좌궁(蓮坐宮)으로 오거라. 조반을 먹기 전에.”
“예?”
그의 반문을 듣지도 않고 양 태감, 양단은 자리를 일어섰다. 사뭇 당당한 태도에 발걸음은 즐겁고 가벼워 무심코 그 등을 멍하니 쳐다보던 소년에게 그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뒤돌아 보지 않고 걸어갔다.
“남는 식재료로 든든하게 야식을 먹거라. 내일은 즐거울 테니.”
소년의 지랄 맞고도 피곤하고 고달픈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