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33화
52장 대량살상병기(3)
사우스 왕국의 수도 사우스펠 주변에는 수도 방어를 위해 강력한 병력을 보유한 충성스러운 영주들이 다수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해상 군단의 움직임이 드러난 순간, 집결하여 해상 군단 해병대와 1차전을 벌였지만 패배했다.
귀족들에게 패배를 안겨준 해상 군단은 그 후, 남하한 하이드 베이커 백작의 군대와 전투를 치르고 승리하였지만, 그 수가 처음에 비하면 제법 줄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사우스 왕국 최고의 방어를 자랑하는 수도의 성벽을 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더 많은 수의 병력을 동원하라고 내가 말했을 텐데?”
그림자 대공이 말했다.
그는 린데일 후작이 더 많은 병력과 함께 상륙하기를 원했지만 사실 본국의 사정은 그림자 대공의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동원한 병력이, 동원 가능한 전부라고 합니다.”
산 크루소 백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림자 대공의 눈동자에 살기가 깃들었다.
“뭐라고? 프랑츠 제국이 자랑하는 50만 지방 군단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지?”
프랑츠 제국은 50만 지방 군단을 동원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총력전에 돌입할 경우 100만을 넘기는 수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산 크루소 백작은 그림자 대공의 눈을 피했다.
차마 자신이 모시는 주군에게 이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해야만 했기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전의 징조가 보입니다.”
베르헨 공작이 목숨을 잃으면서, 그림자 대공은 사실상 프랑츠 제국의 1인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하지만 베르헨 공작이 가지고 있던 세력을 모두 흡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리를 비우고 사우스 왕국으로 내려온 것이 컸다.
그뿐만 아니라, 세라 슈레이안 후작을 놓친 것도 큰 실수였다.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그림자 대공은 ‘클리어’를 위하여 무리하게 사우스 왕국으로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다.
그것도 남아 있는 황금 군단의 거의 대부분을 이끌고.
하야드 나이트쉐도우 후작이 그림자 대공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 공백을 메우려 하고 있었지만 힘든 모양이었다.
“내전의 징조? 하야드 나이트쉐도우 후작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면목없습니다.”
그림자 대공의 타박에 산 크루소 백작은 고개를 숙이고 좀처럼 들지 못했다.
“우회하겠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작스러운 그림자 대공의 말에 산 크루소 백작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며 질문했다.
그림자 대공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중심도시를 우회하여, 해상 군단과 합류하여 수도를 점령한다. 수도를 점령하고 국왕을 죽이면 사우스 왕국도 무너지겠지.”
“하지만 주군, 그러면 후방이 노출됩니다.”
산 크루소 백작은 반대했다.
적지 않은 수의 병력이 중심도시 안에 있었다.
그 수는 그림자 대공의 군대가 중심도시를 우회할 경우 후방을 공격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림자 기사단 1만 병력만 데리고 이동할 것이다. 크루소 백작. 너는 지방 군단이 대량살상병기를 가지고 합류하면, 대량살상병기를 이용해 중심도시를 지도에서 지워 버리도록.”
그림자 대공도 바보가 아니었다.
중심 도시를 가만히 놔둔 채 우회한다면 후방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림자 기사단 1만 정도만을 이끌고 우회한다고 한 것이었다.
수도까지 가는 길에는 무수히 많은 성과 도시가 있었지만, 북부와 중부 대부분 병력이 실버레인 중심 도시에 집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그림자 기사단을 공격할만한 규모를 가진 단일 세력은 없었다.
귀족들이 힘을 모은다면 조금 문제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전에 신속하게 영지를 벗어나면 될 것이라고 그림자 대공은 생각했다.
* * *
“적 병력이 중심 도시를 우회했습니다.”
루시드가 보고했다.
상급 장교 한 명이 흥분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면 후방 기습을 하는 것이……!”
중심 도시의 병력을 외면하고 우회했다면 후방을 기습할 수 있었지만 루시드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우회한 것은 그림자 기사단뿐이다. 황금 군단은 아직 포위를 유지하고 있어.”
루시드의 말에 상급 장교는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면 우회한 그림자 기사단의 지휘관은 그림자 대공입니까?”
테일러가 질문했다.
루시드는 다시 한번 보고서를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엘런데일스 후작의 왕국 정보부가 자세한 정보는 입수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럴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네.”
그림자 기사단이 중심 도시를 우회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왕국 정보부는 지휘관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지만 그 지휘관이 그림자 대공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황금 군단은 산 크루소 백작이 지휘하고 있겠군요.”
테일러의 말에 루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 대공이 그림자 기사단을 지휘한다면, 황금 군단을 지휘할 자는 산 크루소 백작밖에 없었다.
왕국 정보부의 정보에 의하면 그는 최근 황금 군단의 군단장직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문제는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논외로 두고 루시드. 황금 군단이 포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번에 편성된 특수 부대는 어떻게 대량살상병기를 운반하는 지방 군단에 침투합니까?”
테일러가 질문했다.
특수 부대 편성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특수 부대는 테일러 파티가 포함된 다수의 고위 마법사와 고위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황금 군단이 실버레인 중심 도시에 대한 포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여기를 보게나.”
루시드는 새로운 전진 지휘부 회의실 벽면에 걸려 있는 군사 지도를 지휘봉으로 가리켰다.
중심 도시를 포위한 황금 군단 각 부대의 위치에 작은 단검들이 꽂혀 있었다.
“설명을 부탁하지. 부관.”
루시드는 지휘봉을 부관에게 건넸다.
지휘봉을 건네받은 부관은 안경을 살짝 올리며 지휘봉으로 황금 군단 각 부대의 위치를 순서대로 가리켰다.
“보시는 대로, 산 크루소 백작의 황금 군단은 포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오늘 아침 그림자 대공이 그림자 기사단 1만과 함께 이탈하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부관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단검 몇 개를 뽑았다.
“포위에 구멍이 생겼군.”
군사 지도를 면밀히 살핀 누군가 말했다.
부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그림자 기사단 1만이 이탈한 상황에서, 전투로 인해 상당수의 병력을 잃고 3만 정도 남은 황금 군단 병력만으로는 사정권 밖에서 완벽한 포위망을 구축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루시드가 입을 열었다.
“내일 밤. 아이반 왕자 전하의 명령을 받은 대규모 기병대가 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이, 특수 부대는 포위망을 넘는다.”
루시드의 눈이 반짝였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작전 실행을 앞두고 있었다.
대량살상병기 탈취 또는 파괴라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은 특수 부대는 아이반 왕자의 호위를 맡은, 왕실 근위기사단의 부단장 라크 듀렌달 자작이 맡게 되었고, 부지휘관의 자리는 테일러가 맡게 되었다.
스킬 정보를 상세히 살핀 결과, 지휘 관련 스킬 효과는 부지휘관을 맡고 있더라도 지휘권이 있기 때문에 발동되는 것으로 적혀 있었다.
특수 부대는 미리 쪽문을 통해 중심 도시를 나와 풀숲에 몸을 숨겼다.
성문이 열리고 아이반 왕자의 명령을 받은 기병대 수천이 튀어나와 방심하고 있던 적진을 휘저었다.
“지금이다! 신속하게 포위망을 벗어난다.”
라크 듀렌달 자작의 명령에 100명이 조금 안 되는 특수 부대가 은밀하게, 하지만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전장을 피해 포위망을 쉽게 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미리 왕국 정보부의 요원으로부터 받은, 지방 군단의 예상 이동 경로가 기록된 군사 지도를 살피며 3일 정도를 도보로 이동한 끝에 지방 군단과 조우할 수 있었다.
“나는 새벽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테일러 경, 경의 생각은?”
멀지 않은 곳, 하지만 서로를 인지하기엔 충분한 거리.
라크 듀렌달 자작은 풀숲에 납작 엎드린 채 야영지 건설을 서두르는 지방 군단을 노려보며 테일러의 의견을 물었다.
“저 또한 새벽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적의 경계 병력의 집중도가 가장 떨어지는 밤 또한 새벽에 침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교과서적이었다.
문제는 새벽이 될 때까지 야영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들키지 않는 것이었다.
지방 군단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다수의 정찰대를 주변에 풀어놓을 것이다.
새벽이 올 때까지 적 정찰대의 눈에 발각되면 안 된다.
발각되는 순간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인식 장애 마법과 집단 은신 마법으로 아군의 기척을 지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안 되는 말이네. 은신 마법이라면 모를까 인식 장애 마법 같은 경우엔 마력 파장이 제법 멀리까지 퍼진다네. 그렇게 되면 적 고위 마법사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게 될 것이야.”
테일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지만, 곁에서 듣고 있던 가이우스가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기척을 지우는 집단 은신 마법 같은 경우엔 은신에 특화된 마법답게 마력 파장이 멀리 퍼지지 않고, 탐지도 힘들 정도로 희미한 수준이지만 상대의 인식에 장애를 일으키는 인식 장애 마법 같은 경우엔 그 마법 자체가 마력 파장이 넓게 퍼지는 특성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사용하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위 마법사들은 집단 은신 마법을 전개하라.”
라크 듀렌달 자작의 지시가 전파되었다.
집단 은신 마법은 범위 마법이었기 때문에, 한 명만 캐스팅하면 모두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가이우스를 포함한 고위 마법사들은 집단 은신 마법에 가장 능통한 고위 마법사를 가려, 그에게 집단 은신 마법의 캐스팅을 맡겼다.
집단 은신 마법이 캐스팅되고, 그들의 기척이 사라졌다.
가까이 접근할 경우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했기 때문에 잘 숨어 있는 것이 중요했다.
밤이 찾아오자 지방 군단 야영지에서 정찰대로 추정되는 기병대 무리가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다행히 야영지 주변은 면밀히 살피지 않았다.
설마 야영지 근처에 몸을 숨긴 병력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정찰대 무리가 귀환하고, 새벽이 찾아왔다.
라크 듀렌달 자작은 조용히 검을 빼 들며 입을 열었다.
“테일러 경, 경에겐 대량살상병기의 탈취 또는 파괴를 맡기겠다.”
“그렇다면 자작께선?”
테일러의 물음에 라크 듀렌달 자작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갈색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 넘겼다.
“나와 10명의 인원은 군단장을 공격한다. 일종의 양동 작전이지.”
“너무 위험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임무의 수행이 힘들어질 것이다.”
테일러가 위험을 경고했지만 라크 듀렌달 자작은 바위처럼 완고했다.
그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자신을 제외한 10인의 지원자를 받았다.
사실상 과거 고위 기사 제이드가 결사대를 뽑을 때와 같은 분위기가 흐르고, 9명의 고위 기사와 1명의 고위 마법사가 지원했다.
“그럼, 살아서 또 만났으면 좋겠군.”
라크 듀렌달 자작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른 10인의 인원과 함께 군단장 막사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중앙으로 이동했다.
“테일러, 저희는 언제 움직이면 되나요?”
일리아가 다가와 질문했다.
테일러는 라크 듀렌달 자작 일행이 향한 방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일단은 야영지에 접근한 뒤, 자작께서 소란을 일으키면 진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