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73화
28장 칠흑의 기사, 재습격(2)
“라크 듀렌달 자작께서 후작의 호위를 맡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긍정했고 테일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라크 듀렌달 자작은 왕실 근위기사단의 부단장으로 기사단장인 아이크 벤켈 자작과 거의 비슷한 나이에 고위 기사가 된 천재였다.
그런 거물급 고위 기사가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호위를 맡았다는 것은 국왕이 얼마나 엘런데일스 후작을 아끼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왕국 정보부의 수장이며, 800년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똑똑한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 또한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 대상 중 한 명이었지만 전생에서 그는 호위가 두터운 덕분에 암살을 피해 갔었다.
테일러라는 이름의 이물질이 개입하는 것으로 인해 역사의 톱니바퀴는 어긋났지만 라크 듀렌달 자작이라는 뛰어난 고위 기사가 지키고 있으니, 그는 웬만해선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그의 주변에는 왕국 정보부의 뛰어난 특수 요원들이 언제나 함께하고 있었다.
왕국 정보부의 특수 요원들은 정보 수집 외에도 암살과 파괴 공작과 같은 특수한 임무 수행을 위한 훈련을 받은 최정예 요원들이었다.
“요즘 활약하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왕국을 위해 일해주었으면 좋겠군.”
자신에게 시선이 향하자 라크 듀렌달 자작은 테일러를 향해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테일러의 대답에 듀렌달 자작은 만족스러운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듀렌달 자작의 실력은 뛰어나지. 아마 그림자 기사단에서 자작급 이상의 그림자 기사가 내려오지 않는 이상 나를 암살하기란 힘들 것이네.”
“동의합니다. 한데, 저를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테일러의 물음에 의자에 앉았던 엘런데일스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잘 정리된 서류뭉치에서 서류를 한 장 뽑아 테일러에게 건넸다.
“북부 군단 사령관의 보고서라네.”
“초소가 파괴되었고, 다수의 침입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적혀 있군요.”
엘런데일스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왕국 정보부는 그 다수의 침입자가 그림자 기사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북부 군단 사령관의 명령에 의해 투입된 조사대가 면밀하게 조사를 한 결과 그림자 기사단이 사용하는 검은 마력검의 흔적이 발견했다고 보고서에 적혀 있었다.
해당 항목을 읽은 테일러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렇다면 최근 약화된 왕국 내의 그림자 기사단 세력을 보충하기 위한 보충병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테일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보고서를 하나 더 집어 테일러에게 건넸다.
“녀석들이 대장장이 길드를 다시 노리는 모양이네. 윙클던 기사단만으로는 힘이 부족해. 제이드 기사단을 움직여 줘야겠네.”
“제이드 기사단이 명령을 기다립니다. 하명하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나 검집 채로 가슴에 가져가며 테일러는 말했다.
그 모습에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명령서를 써주겠네. 광산 마을로 향해 윙클던 준남작을 도와 적을 격퇴하게.”
* * *
테일러는 윙클던 준남작을 지원하기 위해 즉시 제이드 기사단을 움직였다.
레딘 남작령은 수도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광산 마을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테일러와 제이드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윙클던 기사단의 기사단장 토미 윙클던 준남작이 10여 명의 기사와 함께 마을 입구로 걸어 나왔다.
광산 마을도 몬스터가 서식하는 산에 있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목책을 갖추고 있었다.
목책에는 길드 경비대로 보이는 용병 2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테일러 경.”
토미 윙클던 준남작이 물었다.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니 테일러가 올 소식을 왕국 정보부로부터 전달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윙클던 기사단을 지원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여기 명령서에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을 겁니다.”
테일러는 주머니에서 곱게 접어둔 명령서를 꺼내서 펼친 다음 윙클던 준남작에게 건넸다.
명령서를 읽은 윙클던 준남작은 예상과 다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엘런데일스 후작은 나와 기사단을 믿지 못한다는 것인가?”
예상 밖의 반응에 테일러는 당황했다.
“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내게는 그런 뜻으로 들리네. 고작해야 고위 기사도 아닌 평민 기사가 이끄는 기사단의 지원을 받을 바에야 우리 윙클던 기사단의 힘으로만 대장장이 길드를 지켜보이겠네. 경은 이만 돌아가도 좋네.”
윙클던 준남작은 자신만만하게 소리친 후 목책의 열린 문을 통해 광산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윙클던 준남작이 들어가고 닫힌 목책의 문을 바라보며 테일러는 어이를 상실하고 고개를 저었다.
왕국 내에선 평민 출신인 테일러의 갑작스러운 벼락출세를 좋지 않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주로 귀족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고위 기사이며 윙클던 기사단의 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토미 윙클던 준남작은 작위가 없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피눈물이 흐르는 수련 끝에 고위 기사 작위를 얻고 후에 준남작 작위를 얻은 기사였다.
최근에는 조금 덜해졌지만, 제이드 기사단이 처음 창설될 때만 해도 테일러의 활약은 알 사람들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귀족 층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최근 제이드 기사단이 활약하면서 귀족 층의 시선이 조금 호의적으로 변했지만, 아직도 토미 윙클던 준남작과 같은 소수 귀족들은 테일러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토미 윙클던 준남작은 고집이 아주 셌다.
그런 그가 자신이 싫어하는 테일러에게 도움을 받을 리가 없었다.
“날 시험하는 건가.”
테일러는 이를 악물었다.
아마 왕국 정보부장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이런 상황이 테일러를 덮치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왕국 정보부의 수장.
왕국 정보부에는 왕국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모두 모여든다.
그리고 그 정보를 모두 검토하는 괴물 같은 사내가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었다.
당연히 윙클던 준남작의 성격 또한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과민반응일 수도 있네. 테일러. 지금 왕국은 인력이 부족하지 않은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네.”
곁에서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가이우스가 말했다.
“그렇군요.”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일러는 잘 몰랐지만, 중앙 수비군 소속의 윙클던 기사단을 광산 마을로 보내는 것도 왕국군 입장에선 정말 힘든 일이었다.
토미 윙클던 준남작의 성격을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알고 있었다고 해도 윙클던 기사단을 빼고 투입할 다른 병력이 없었기 때문에 윙클던 기사단이 아닌 다른 병력을 배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사단장. 어떻게 해야 하오리까? 정보부의 보고에 의하면 공격이 임박했다고 하오.”
로미오 로펜 경이 다가와 걱정이 깃든 눈동자로 목책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왕국 정보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그림자 기사단의 공격은 얼마 남지 않았다.
“쉽게 마을로 들여보내 줄 것 같지는 않군.”
굳게 닫힌 목책을 보며 테일러가 말했다.
윙클던 준남작은 테일러와 제이드 기사단이 광산 마을로 진입하는 것을 쉽게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검을 뽑아 윙클던 기사단에게 무력을 보이는 방법은 옳지 않았고,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것도 시간이 부족했다.
아마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테일러가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곳으로 테일러를 보냈을 것이다.
“우선은 광산 마을 근처에 야영지를 세워야 할 것 같다.”
윙클던 준남작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어린아이처럼 삐쳐서 기사단을 회군시키는 것은 테일러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광산 마을 주변의 적당한 곳에 야영지를 세우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테일러는 로펜 경, 쟈크 경, 살라다르 경에게 각각 기사단원 10명을 붙여주어서 주변을 탐색하게 하였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쟈크 경이 야영지로 사용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내 보고했다.
“야영지로 사용하기 적당한 것 같습니다. 주군. 광산 마을과 가까워 유사시 이동하기 편리합니다.”
알버트가 의견을 내보였다.
고위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장교 수업도 어느 정도 받아야만 했기 때문에 알버트 또한 사관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장교 수업은 받았다.
물론 테일러도 제이드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되기 전에 간단한 장교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여기를 야영지로 사용한다. 모두 준비하도록.”
“예!”
테일러의 명령에 기사단의 일꾼이라고 할 수 있는 수습 기사들이 본격적으로 팔을 걷고 나서기 시작했다.
산이지만 기병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이 잘 나 있었기 때문에 야영지 근처의 길목에 기병 장애물을 설치하고 천막을 세웠다.
야영지가 완성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야영지가 완성되고 테일러는 자신의 천막으로 레드를 호출했다.
“무슨 일로 나를 부르셨나?”
천막의 문을 열어젖히고 붉은 머리의 레드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레드. 당신이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사단장. 나 같은 아래 사람에게 무슨 일을 시킬 땐 명령이면 충분해. 아무튼, 그 일에 대해서 들어볼까.”
레드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테일러의 앞에 다가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았다.
“용병으로 위장해서 광산 마을로 잠입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면 신호탄을 쏴서 저희에게 전투가 벌어진 사실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난 지금 가지고 있는 신호탄이 없어.”
남부 레인저 여단 출신인데다가 최근까지 용병 생활을 했던 레드가 용병으로 위장해 광산 마을로 잠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광산 마을 주변에는 용병의 일거리가 많이 없었지만, 수도로 가는 길에 있는 마을 중 하나인 만큼 적지 않은 수의 용병들과 여행자들이 지나쳐 갔고 그들 중 일부는 마을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도 했다.
하지만 레드는 가지고 있는 신호탄이 없었다.
신호탄은 신호용 불화살과 다르게 제작이 조금 까다로워서 마탑에서 주로 제작을 하고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 유통된다.
때문에 남부 레인저 여단과 같은 군에서 주로 사용을 해왔다.
“신호탄은 기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게 몇 개 있습니다. 그것을 사용하세요.”
다행히 제이드 기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신호탄이 몇 개 있었다.
제이드 기사단은 국왕의 명령으로 최근 새롭게 만들어진 기사단답게 보급이 훌륭하게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신호탄 정도는 만약을 위해 구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맡겨만 줘. 남부 레인저 여단의 에이스 레인저의 이름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도록 하지.”
레드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친 뒤 잠입을 위한 준비를 하러 갔다.
레드가 나가고 테일러는 복잡한 얼굴로 광산 마을과 주변의 지도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