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플레이어-2화 (2/150)

리턴 플레이어 2화

1장 리턴(1)

826년 12월.

겨울의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성벽로를 따라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하나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테일러.

825년 12월 그랑키아 숲의 몬스터들의 흉포함을 억제하는 억제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파괴되고 그로 인해 시작된 그랑키아 숲 몬스터 군단의 대대적인 남하와 함께 시작된 전쟁에 징집된 불행한 병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선에서 싸우는 전투병이 아니라 참모부의 잡일을 하는 병사로 뽑혔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그는 서류 더미를 들고 사우스 왕국의 수도 사우스펠의 성벽로를 따라 참모부가 있는 곳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잠깐, 정지!”

“참모부의 테일러입니다. 여기 신분증입니다.”

참모부 앞에 도착하자 무거워 보이는 철제 갑옷을 입은 젊은 수습기사가 창을 들고 앞을 막아섰다.

젊은 수습기사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두꺼운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차가운 밤바람을 모두 막아내지는 못한 것인지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테일러는 그에게 신분증을 건넸다.

신분증을 건네받은 젊은 수습기사는 테일러가 참모부 소속 병사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창을 옆으로 치웠다.

“들어가도 좋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참모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파손된 갑옷을 입은 채 전신을 붉은 피로 물들인 젊은 병사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중앙 수비군 사령관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에게 전장의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테일러 또한 참모부 장교에게 서류를 전달하면서 그 내용을 조금 들을 수 있었다.

“……엘라스티에 윈터레일 백작의 남부 군단이 포위당했습니다. 남부 군단을 구원하기 위해 출전한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마저 포위당해 격렬한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음……!”

병사의 구두 보고를 받은 윙그레이 백작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신음을 흘렸다.

테일러가 보기에도 상황은 좋지 않아 보였다.

참모부 병사로 징집되고 1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정보를 보고 듣게 되었고, 머리가 나쁘지 않은 테일러는 자연스럽게 적지 않은 정보를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하이 오크 대족장 라우쉬가 이끄는 몬스터 군단은 사우스 왕국의 북부 군단을 순식간에 쳐부수고 내려와 북부 지역을 유린했다.

사우스 왕국은 즉시 군대를 소집하여 북부 지역으로 보냈지만 1년에 걸친 치열한 전투의 반복 끝에 결국에는 방어선이 무너지고 수도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테일러는 1년 동안 참모부에서 일하면서 꽤 친해진 참모부 장교에게 서류를 넘기곤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참모부 장교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큰 피해를 입은 남부 군단이 포위되고, 수도를 방어하는 중앙 수비군의 정예 부대를 지휘하는 게슈타인 자작까지 포위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전멸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거야.”

말을 마치며 참모부 장교는 고개를 저었다.

남부 군단과 게슈타인 자작이 지휘하는 중앙 수비군의 일부는 포위된 이상 전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족장 하이 오크 라우쉬에게 한 번 포위된 부대는 빠져나온 적이 없었으니까.

그건 참모부에서 1년 동안 심부름을 해온 테일러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수도를 방어하고 있는 군대는 중앙 수비군과 남부 군단.

그중에 남부 군단과 중앙 수비군 일부가 전멸할 예정이니 남은 것은 윙그레이 백작이 지휘하는 중앙 수비군뿐이다.

그들의 수는 1만을 넘지 못하니, 10만이 넘는 몬스터 대군을 상대로 수도를 방어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또 방어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적을 격퇴하기 위해 달려와 줄 군대가 더 이상 수도 근처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윈터레일 서쪽에 3만 정도의 군대가 남아 있었고, 징병령을 내린다면 추가 징집이 가능하겠지만 그전에 수도가 함락될 것이다.

북부 군단 사령관 하츠 실버레인 후작이 의문의 암살자들에게 습격당해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아들 하일론 실버레인이 몬스터 군단에 맞서 북부 군단을 지휘했지만, 그는 너무나도 어렸다.

사우스 왕국이 자랑하는 정예 군단인 북부 군단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초반에 전멸해 버렸다.

많은 이들이 말했다.

하츠 실버레인 후작이 살아 있었다면 전쟁의 판도는 바뀌었을 것이라고.

하츠 실버레인 후작뿐만이 아니었다.

왕국의 많은 영웅들이 습격 5년 전부터 의문의 사고나 암살로 목숨을 잃어왔다.

사우스 왕국은 이를 프랑츠 제국의 소행으로 보고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늦고 말았다.

지금은 수도가 위협받는 상황.

이 전투에서 수도를 지켜낸다고 해도 군대가 주변에 남아 있지 않아서 이어지는 공격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길 수 있는 것입니까?”

테일러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그 불안한 떨림을 잡아낸 참모부 장교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입을 열었다.

“이길 수밖에 없어. 왕성이 무너지면 사우스 왕국은 끝이다.”

“그렇습니까.”

참모부 장교는 이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직 이겨야 한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참모부 장교는 그렇게 말했지만 테일러는 물론이고, 참모부 장교조차 사우스 왕국의 수도 사우스펠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몬스터들에 의해 끔찍하게 유린당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법 폭격이다!”

참모부 건물 밖에서 수습기사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불덩이가 참모부 건물을 공격했다.

마법에 의한 거대한 불덩이의 공격에 참모부 건물의 일부가 무너졌고, 건물 잔해에 깔린 부상자들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다행히 테일러와 참모부 장교는 건물이 무너진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큰일이군. 수도가 마법 폭격 사정거리에 들어가다니.”

참모부 장교는 군복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참모부에 마법 폭격이 떨어졌다는 것은 적의 군대가 수도에 상당히 가까이 접근했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곧 윈터레일 백작이 이끄는 남부 군단과 게슈타인 자작의 중앙 수비군이 전멸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테일러! 성벽에 나가서 상황을 보고 와! 보아하니 전령이 오는 도중에 죽은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참모부 장교는 테일러에게 상황을 보고 올 것을 지시했고 테일러는 흙먼지를 대충 털어낸 뒤 조심스럽게 참모부 건물을 나와 성벽으로 올라갔다.

“맙소사.”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수도를 향해 침착하게, 하지만 빠르게 다가오는 압도적인 수의 몬스터 군단을.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오크들의 함성 소리와 북소리가 들리고 거대한 오우거를 육안으로 분간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우렁찬 함성을 내뱉으며 큰 보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오크들과 거대한 몸을 움직이는 오우거의 모습에 압도당한 테일러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힘을 내서 일어선 뒤 참모부 건물로 힘겹게 돌아갔다.

“적의 대군이 수도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늦어도 20분 안에 성벽 근처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적의 마법 폭격으로 소란스러운 참모부 내에 테일러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참모부 장교들은 물론이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기사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일어서는 윙그레이 백작까지, 모두의 시선이 테일러에게 향했다.

“거기 이름이 뭔가?”

“테, 테일러입니다.”

“좋다. 자네를 임시 전령으로 쓰겠다. 나를 따르도록.”

“알겠습니다.”

무장한 채 참모부 건물을 나서는 윙그레이 백작을 따라 참모부 건물을 나서는 테일러.

밖으로 나오니 한층 더 가까워진 함성 소리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윙그레이 백작의 지휘에 맞춰 성벽을 가득 채운 궁병들과 마법사들이 일제히 원거리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지만 적들의 진격을 멈출 수는 없었다.

몬스터가 만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공성추가 성문을 거칠게 때리고 공성탑이 성문에 몸을 붙이고 성난 오크들을 토해냈다.

전령이 된 테일러는 윙그레이 백작의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성벽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오크들이 성벽에 침입하기 시작하고 난 뒤로는 명령을 전달하는 게 상당히 어려웠다.

중간에 오크를 한 번 만나기도 했다.

비록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참모부 병사라고는 하지만 기본 훈련은 받았기 때문에 테일러는 오크와의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크를 쓰러뜨린 것은 수습기사였지만.

“실버스만 준남작님!”

“뭐냐!”

망루에서 궁병대의 지휘를 하고 있던 실버스만 준남작이 테일러의 부름에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윙그레이 백작님의 명령입니다. 지금 즉시 내성으로 후퇴하라고 하셨습니다!”

테일러의 외침에도 실버스만 준남작은 물러나지 않았다.

“준남작님!”

보다 못한 테일러가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실버스만 준남작은 대답 대신 조용히 손을 들어 망루의 뒤를 가리킬 뿐이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망루가 붙어 있는 성벽을 완전히 점령한 오크 무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잡한 기술로 만들어진 갑옷을 걸치고 있는 오크들과 다르게 찬란하게 빛나는 갑옷을 걸친 그들은 하이 오크의 직속 근위대가 분명했다.

테일러는 절망했다.

하이 오크의 직속 근위대가 성벽 위로 올라왔다는 것은 이미 외성벽은 적에게 넘어갔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죽을 운명인가 보군. 궁병대! 검을 뽑아라!”

실버스만 준남작의 외침에 궁병대가 일제히 활을 놓고 검을 뽑아 들었다.

궁병대의 병사들은 활을 주로 다루는 궁병들이었지만 유사시에 검을 쓸 수 있도록 검술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고 받는다.

특히 중앙 수비군의 궁병대는 궁술뿐만 아니라 검술 실력 또한 상당히 좋은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테일러 또한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장검의 무게 탓인지 긴장해서 그런 것인지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테일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오크들은 그런 테일러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망루로 몰려 들어왔다.

“국왕 폐하를 위하여!”

“국왕 폐하 만세!”

실버스만 준남작이 호기롭게 외치며 궁병대와 함께 오크들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망루는 오크와 인간이 뒤섞여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테일러는 뒤로 물러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크가 테일러에게도 달라붙었다.

인간을 향한 증오로 가득 찬 붉은 눈으로 테일러를 노려보며 오크는 검을 휘둘렀다.

하이 오크 직속 근위대의 오크답게 상당히 빠른 움직임이었다.

테일러는 오크 근위병의 검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고 검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막지 못했다.

“으악!”

오크 근위병의 검은 테일러가 입은 얇은 갑옷을 우습게 찢고 들어가 복부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복부가 열리고 내장이 쏟아져 내렸다.

배에서 느껴지는 아득한 통증에 테일러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그를 향해 오크 근위병은 다시 검을 휘둘러 테일러의 목을 잘라냈다.

머리를 잃은 몸은 좌우로 휘청이다가 결국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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