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바로 차키를 챙겨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내내 손끝이 떨려왔다. 갑작스러운 유현재의 통보에 눈앞이 아득해져 당장 그에게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2년 전 부모님과 같은 사태는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결국 차를 타고 한성 병원으로 향하면서도, 나는 내내 다리를 떨었다. 애초에 단 한 번의 언질도, 어떠한 계획도 들은 적이 없는 말이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늘 가는 연구실 안쪽 병동에 한재민이 앉아 있었다. 한재민이 구두도 벗지 않은 채 테이블 위에 다리를 올리고 있다가 나를 슥 쳐다보았다. 방 안에는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전 박사가 정말 유능해.”
“…….”
“근데 유능한 거랑 똑똑한 건 다른 것 같단 말이지.”
“무슨 소리야? 지금 전 박사님 어디 있어? 또 이상한 짓거리 할 생각 하지 말고.”
“전 박사가 자기는 수술 모니터링 못 하겠대.”
“…뭐?”
“그 수술 때문에 미친 필리핀 갱 집단 겨우 국내에 들여 놨더니, 이제 와서 못 하겠다네.”
“왜 못하는데.”
“학자보다는 먼저 인간이 되고 싶다.”
“…….”
“라고 하던데. 네가 살 확률이 0%에 가까워서 자기는 못 하겠대.”
“……그래?”
“대단한 양심이셔, 그치.”
“그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야. 너 같은 쓰레기 새끼들이 발상이 다른 거라고.”
한재민의 눈썹이 꿈틀댔다. 심기가 불편한 듯했다. 나로선 잘된 일이었다. 전정우가 어떤 이유든 간에 수술 모니터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면, 현재 국내에서 이 일을 봐줄 수 있는 연구자는 구하기 굉장히 어려울 터였다.
“그럼 어떡할 건데?”
“뭘.”
“전 박사가 손 놨으니까 어떻게 할 거냐고.”
“전 박사가 전화했잖아.”
“뭐?”
“오라고. 내가 말했잖아. 전 박사가 너 여기 부른 거야.”
“도대체 무슨 소리야? 전 박사가 수술 못 하겠다고 했다며. 그럼 날 왜 여기 부른 건데?”
“본인의 의지로 못하겠다고 하긴 했지.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고용한 사람이잖아? 고용주가 시키면 기어야지, 뭘 못 해.”
“협박한 거야?”
“협박이라고 하지 마. 그냥 제안이었지. 전 박사도 너보단 자기 가족이 더 중요한 것 같던데.”
“미친놈.”
“나도 빠르게 너랑 연 끊고 싶어, 찬희야.”
“…….”
“내 계획대로만 했으면 진작에 서로 좋았을 걸 그놈의 사랑이니, 운명이니. 지긋지긋한 것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미뤄진 거잖아. 네 형 아니었으면 너도 네 부모랑 같이 날렸어.”
“넌 이렇게까지 유도현의 힘을 가져서 뭘 어떻게 세상을 가질 건데?”
“뭐?”
“나랑 유도현 마나를 가지고 갔다 쳐. 그럼 뭐, 이대로 대통령이라도 죽이게? 죽이면 이 세상이 네 거가 돼?”
“애새끼 같은 발언이네.”
“그래. 나 애새끼라서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그런다. 이 힘이 그렇게 대단한가 싶은데.”
“나한테 주고 너네 집에 처박혀서 천천히 지켜봐.”
“…….”
“네가 말한 그 거지 같은 운명을 싹 다 없애고 내가 꼭대기에 오르는 거 보라고.”
한재민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그러니까 한재민이 유도현의 손에 죽는다는, 그 소설을 빙자한 운명의 흐름을 본인이 직접 깨겠다는 말이었다. 시스템의 주인도, 하다못해 그 ‘소설’의 주인공도 아닌 뭣도 아닌 악역 한재민이.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날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나는 한재민이 이어 말하길 침묵하며 기다렸다.
“유도현이 말한 대로 다 진행되고 있어. 우리는 죽을 거야.”
“…….”
“어머니와 아버지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지. 그렇게 강한 사람들이. 남부럽지 않을 재력과 힘, 명성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고작 죽은 사람의 그 말 한마디에 매일을 악몽처럼 살아 가셨어. 왜 그랬을까?”
“그러게.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라고? 이게 다 네 형이 가지고 있는 그 미친 능력 때문이잖아, 뭘 모르는 척해. 네가 어쩌다 물려받은 그 능력만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운명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게 되겠지. 그렇다고 널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될까? 다시 그 능력이 다른 허튼 놈에게로 가버리면? 네 그 헛소리대로 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서 언젠가 날 죽이면?”
“너… 진정해.”
한재민은 점점 목소리를 높이다 말고 내 말에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잘 정돈되어 있던 머리가 금세 헝클어졌다. 자세히 보니 한재민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매끈하게 잘 빠져 있던 눈매엔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고, 전체적으로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게 지금 생애면?”
여태 한재민을 나라에 반란을 일으키기 위한, 권력을 쥐기 위한 인물로만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다. 그저 본인이 살아 나가야 했던 사람. 그렇지만 본인이 살기 위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짓이겨도 되는 걸까. 나는 순간 시나리오의 일부에 들어가 있던 유도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렇지 않게 어린 유찬희를 죽이고 피를 흘리는 유현재를 방치하던 유도현.
“너 되게 우리 형 같다.”
한재민이 붉게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형도 너무 살고 싶어 했거든.”
“……그랬겠지. 그러니까 죽기 전에 그런 말이나 했겠지.”
“그런데도 네가 말하는 그 망할 능력 때문에 결국 그 능력의 주인이었던 형도 죽었잖아? 네 부모님뿐만 아니라.”
“…….”
“그건 그냥 죽을 운명이었던 거야.”
“운명 같은 건 없어.”
“그래. 정정할게. 그냥 죽을 상황에 처했던 거야.”
“…….”
“사람은 누구나 죽어.”
“…….”
“네가 내 힘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죽지 않는 건 아니야.”
“적어도 컨트롤할 수는 있겠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나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내 실소에 한재민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컨트롤할 수 있었으면 내가 아홉 번을 죽었을까?”
“아홉 번?”
“그래, 아홉 번. 넌 이 능력에 대해 이해하고 있으니까 쉽게 말할게. 칼에 찔려 죽어 봤어? 차에 깔려서 죽어 봤어? 혹은 치여서는? 옥상에서 떨어져 죽어는 봤니? 아니면, 아무런 이유 없이 급사해 봤어?”
“그만해.”
“그만한다고 사실이 달라져? 난 그렇게 죽고도 매일 똑같은 곳에서 다시 눈 떴어. 이게 행복하다고 생각해? 단 한 번만 겪으면 될 그 일을 아홉 번이나 겪는 게 과연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네가 내 능력을 가지고 가게 돼서, 다시 죽어도 살아난다 쳐도 너는 절대 행복할 수 없어. 안심할 수도 없고.”
“그런 건 내가 결정해.”
“그래. 늘 네가 결정했지. 그래서 내 부모를 죽였고 전 박사와 전 박사의 가족을 죽이려 하고 멋대로 게이트 같은 거나 만들고.”
“가지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아.”
“그래. 가져가. 나도 바라던 바야.”
한재민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근본적인 두려움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운명, 그리고 그 운명을 쥐고 흔드는 시스템을 소유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내 형은 단지 멀쩡히 살아갈 운명이라는 이유로 나를 싫어하고 내게 이 능력까지 넘겨 버렸어. 내가 싫어서 죽겠다는 사람이 이 능력을 왜 내게 넘겼을까? 이건 그냥 폭탄 돌리기야. 넌 스스로 폭탄을 떠안으려고 하는 거고.”
“…….”
“너도 들었잖아? 그때 유도현이 게이트에서 나와 한 말. 내가 싫다고. 행복해지는 게 싫다고. 추악하지 않냐? 어린애를 상대로 그딴 생각을 하고. 그래서 나 하나 불행하라고 이딴 능력까지 넘겨버린 게.”
하지만 시스템을 소유한 나조차도 결국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마 그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도 가져야겠어?”
“…….”
“이 불행의 원천을?”
한재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