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하지만 세계는 내게 그다지 너그럽지 못했다. 유현재는 자신이 왜 울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눈물이 흐르는 거고, 단지 많이 슬플 뿐이라고 그 나이대의 꼬마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으로 솔직한 말들을 뱉을 뿐이었다. 나는 일말의 희망을 위해 며칠 동안 유현재를 추궁해 보았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커다란 성벽이 조그만 균열 따위로 금방 부서져 내리지 않듯 그 울음 하나로 내 삶이 바뀌는 것은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더더욱 마음을 굳게 먹었다. 감정은 쇠붙이처럼 제련하면 제련할수록 단단해졌다. 나는 그걸 몸으로 직접 느꼈다. 그랬기에 아홉 번째 생일날 유현재가 나를 위한 편지를 썼을 때도, 열 살에 왕따 방관자가 되었을 때도 비교적 차분할 수 있었다. 문제의 납치 사건은 유현재가 그날 저녁 무사히 돌아오는 것으로 허무하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관심을 두지 않는 척 만신창이가 된 유현재를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유현재는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채 무럭무럭 자랐다. 착실하게 망가져 간 것이었다. 나는 내 역할을 알고 있었다. 유현재가 자신의 불행에 익숙해질 때쯤 다시 그 처지를 일깨워 주고 소금을 뿌리는 것. 유찬희는 똑똑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대놓고 사람을 괴롭히진 않았다. 특히 유현재가 능력을 발현하기 전까지는 동정에 가까운 적선을 해 주기도 했다.
내가 어떻게 나쁜 짓을 해야 할지 모를 땐 시스템이 친절하게도 방향을 설정해 주었다. 나는 유현재에게 손을 내미는 척 그를 나락에 밀어 넣는 짓을 서슴없이 반복했다.
우리는 그렇게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입학을 앞두게 되었다. 나는 첫 번째 삶 이외엔 이렇게까지 길게 ‘살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겁이 났다. 여덟 살 그날, 내 삶의 분기점에서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때로 돌아가기가 두려워졌다. 다시 돌아간다는 건 유현재가 망가져 가는 걸 또다시 지켜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그를 괴롭히는 역할에 충실했다.
*
중학교 입학식 날 1학년 전원이 운동장에 모였다. 중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랭커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반과 특별 교육반이 따로 나뉘었다. 그새 1급이라는 소문을 들은 건지 꼬맹이들 몇 명이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와 친한 척을 했다. 나는 크게 거부하지 않고 웃으며 그 애들을 받아 주었다.
“찬희는 전투반에 들어가겠지?”
“근데 찬희 아버지는 실더잖아?”
“야 이 멍청아, 찬희네 형이 엄청 유명한 헌터였잖아.”
유도현 얘기를 해놓고는 돌연 찔리는지 꼬맹이들이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버지가 헌터였든 실더였든 내겐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저 녀석들 사이에선 꽤 중요한 이슈인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이름 있는 랭커 집안은 대대로 같은 직종을 선택했다. 유도현은 헌터에 너무나도 적합한 인재였기 때문에 논외였지만 그 동생인 유찬희는 아버지를 따라 실더로 특화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어릴수록 좀 더 멋있어 보이는 직업인 헌터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은데, 헌터들은 직업 중 가장 다양한 특화 능력을 가졌다. 그리고 이 특화 능력을 발전하게 하는 것은 1차 선별전에서 발현되는 ‘힘’. 이 힘이란 게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는, 죽은 형을 금술로 불러내 그 힘을 죄다 흡수해버리는 유찬희라는 캐릭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원작에서 유찬희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실더를 택한다. 하지만 유현재가 힘이 생긴 후 헌터로서의 재능을 갖추자마자 뒤질세라 헌터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니 나도 일단은 실더로 가는 게 맞았다.
“근데 찬희야, 쟤 말인데.”
단발머리의 여자애 하나가 조심스럽게 어느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유현재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쟤 정말 너랑 같이 사는 애야? 형제야?”
“…아니.”
“그럼… 쟤가 진짜 그 살인자야?”
나는 표정을 굳혔다. 내 상처를 건드린 거라 착각한 건지 여자애가 빠르게 사과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살인자 아냐.”
“그치만 너희 형이….”
순간 유현재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현재가 원해서 형이 죽은 게 아닌 걸.”
그 말은, 결국 유현재 때문에 형이 죽었단 말이었다. 나는 스스로 뱉은 그 영악한 말이 꽤 경멸스러웠다. 유현재는 별다른 반응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대본대로 내뱉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
유현재는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다. 원래도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지만 최근 일이 년은 더더욱 그랬다. 생각에 잠겨 보이는 모습이 잦았고 가끔은 수업 시간에 지적까지 받을 정도였다. 내게 말을 걸지 않은 것도 오래되었다. 다만 지금처럼 뚫릴 듯이 빤히 쳐다보는 일이 많았는데, 그걸 모른 척하는 것도 사실 제법 곤혹스러웠다.
나는 유현재와 친하지 않은 10대 시절을 보내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게 바른 삶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시스템이 개입하지 않고 이 상황을 방관한다는 것만으로 대충 맞는 거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그것과 별개로 나는 사춘기 10대 꼬맹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좀 귀찮았다. 몸은 이래도 나는 벌써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가끔은 꼬맹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학교 이곳저곳에 몸을 숨기곤 했다. 빈 창고라든가, 야간에만 사용하는 자습실, 일반반 애들이 사용하는 음악실이 주로 내 피신 장소였다. 특히 음악실은 건물과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자주 이용하는 은신처 중 하나였다. 나는 자주 점심을 거르고 음악실 뒤편에 앉아 휴식을 취하곤 했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음악실 주변은 조금 난잡했다. 잡초들이 마구 자라있었고 가끔은 쓰레기도 보였다. 나는 퍼질러 누워 있는 것조차 지겨워질 때면 건물을 따라 산책을 했다. 잡초들 사이에는 가끔 꽃도 피어 있었다. 나는 그 꽃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유현재를 종종 떠올렸다. 작은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꽃다발을 만들었을 유현재를 생각하면 아주 조금이지만 웃음이 나왔다. 나는 눈앞에 있는 꽃을 몇 송이 꺾어 줄기를 묶었다.
때맞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뭐야?”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겨우 감추고 몸을 일으켰다. 유현재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유현재는 내 손에 들린 꽃을 쳐다보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꽃을 바닥에 던졌다.
“꽃 좋아해?”
“아니.”
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녀석을 지나치려 했다. 유현재가 내 손목을 세게 잡아챘다.
“좋아했던 것 같은데.”
“…….”
“꽃.”
유현재는 자신이 말하고도 뭐가 혼란스러운지 미간을 찌푸렸다.
“안 좋아한다고.”
네가 좋아했었겠지. 나는 뒷말을 삼키고 그 손을 뿌리쳤다.
“하나만 대답해 줘.”
나는 도망치려다 말고 잠시 주춤했다.
“내가… 잊어버린 게 있어?”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손발은 저릴 정도로 떨렸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두통이 밀려왔다. 제발 이 모습을 유현재에게 들키지 않길 바라고 바라며 내가 겨우 고개를 저었다. 말을 내뱉으려 했지만 혀가 아릴 정도로 목이 떨려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겨우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유현재는 다행히 나를 잡지 않았다. 나는 감히 그쪽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교실을 향해 뛰었다.
잊어버린 게 있어.
근데 있다고 하면, 그러면 또다시 우리가 죽어버릴까 봐.
나는 겨우 진정이 되고서야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계단에 앉아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