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96화 (396/400)

Round 396. 매너 없는 골

동반 퇴장 이후, 한국과 포르투갈 양 팀 감독들은 서둘러 두 선수의 공백을 메웠다.

“승옥아, 내려가서 준영이를 거들어! 병탁이는 미드필드 쪽으로 이동하고!”

윈터보텀 감독의 지시를 들은 최정민이 서둘러 선수들에게 전달했다.

박승옥은 하프백은 물론 센터백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수비적인 능력이 좋았고, 이전 경기에서도 준영과 콤비로 뛰었다.

정병탁은 지능과 패스 능력이 좋았기에 미드필더 임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은 제르마누를 전진시켜 콜루나의 자리를 채우네요. 시야가 넓고 패스 능력이 좋은 선수지만, 이러면 수비는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수비보다 공격.

한 점 뒤진 포르투갈 입장에선 공격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격을 중시하겠다는 그들의 의도는 공격수인 아우구스투가 주장 완장을 넘겨받은 것을 봐도 알 수 있었다.

“신문을 봤으니 이탈리아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다들 알고 있지? 정신 바싹 차리고 공격해.”

“예!”

조별 리그에서 한국에 패하고 탈락한 이탈리아는 오밤중에 몰래 귀국하다 들켜 팬들에게 썩은 토마토와 계란을 얻어맞았다.

유러피언 컵을 제패하며 이탈리아 축구의 위상을 들어 올렸던 영웅들은 순식간에 역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포르투갈 선수들은 절대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축구와 종교, 음악으로 우민화 정책을 펴고 있는 독재자 살리자르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포르투갈 선수들이 거칠게 한국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가 쓰러졌는데 계속 경기를 진행해 나가고 있네요.」

볼 경합 상황에서 그라샤와 충돌한 박승옥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포르투갈 선수들은 공을 내보내지 않았다.

공격에 혈안이 된 그들의 모습을 보고 관중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우-!”

“신사적으로 해라!”

쏟아지는 야유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은 공격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들의 플레이는 토히스의 헤딩슛이 골대를 빗나간 후에야 비로소 중단되었다.

“저놈들, 진짜 급해지긴 한 모양입니다.”

“그보다 승옥이는 어때?”

“심하진 않나 본데요.”

한국 코치들은 박승옥을 살펴본 팀 닥터의 사인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쉽게 일어나지 못해 걱정했는데, 큰 부상이 아니라 충격 때문에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혀 그랬던 거라고.

「골키퍼 Hahm의 킥으로 경기가 재개됩니다. 캡틴 리가 제르마누와의 공중 경합에서 공을 확보, Jung에게 건네줍니다.」

패스를 받은 정병탁은 측면의 이희택 쪽으로 공을 보냈다.

힐라리오를 앞에 두고 슬금슬금 전진하던 이희택은 한순간 툭 치며 돌파를 시도했다.

‘역시 돌파인가.’

힐라리오는 먼저 위치를 선점해서 이희택의 드리블을 막고, 공이 그대로 터치라인 밖으로 나가도록 유도하려 했다.

하지만 이희택의 몸놀림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날렵했다.

잽싸게 앞으로 파고들더니, 크로스를 올렸다.

낮고 빠르게 날아온 크로스는 비센테 앞으로 총알같이 파고든 조윤옥의 발에 맞고 골대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골인!”

“으하하! 3 대 1이다!”

조마조마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응원단이 다시 한번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선심이 깃발을 들었고, 심판은 노골로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희택이 크로스를 올리기 전에 이미 공이 터치라인을 나갔다고 본 것.

하지만 이 판정에 한국 선수들, 특히 이희택이 제일 펄쩍 뛰었다.

“안 나갔어! 안 나갔다고! 안 나갔단 말이야!”

거의 나갈 뻔했지만, 자신이 찰 때 아직 공 끝이 라인에 걸려 있는 걸 분명히 봤다.

‘진짜 안 나간 건가?’

선심은 내심 찔끔했다.

사실 그는 정확하게 목격하고 깃발을 든 게 아니었다.

공이 힐라리오나 이희택의 몸에 가려져 있었기에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공이 굴러가는 속도를 계산해서 나갔겠거니 판단했을 뿐이다.

“그만! 계속 불복하면 퇴장시키겠다.”

“이 씨…….”

목구멍까지 치솟는 욕설을 꾹 참은 이희택은 심판 앞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진짜 나간 건가?”

“내가 볼 땐 안 나간 거 같은데요?”

“어쨌거나 포르투갈은 위기를 넘겼군. 그게 들어갔으면 끝장났을 텐데.”

경기를 관전하는 축구인들도 방금 논란의 상황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것과 별개로 한국 선수들의 기량에 대해 눈여겨보는 이들도 많았다.

“진짜 3, 4부 수준이 맞아? 그보다는 높은 것 같은데?”

“스피드와 체력은 확실히 좋으니…….”

“치밀한 조직력이나 캡틴 리의 경기 조율 덕분인 거지. 개인 기량이 뛰어난 건 아니야.”

“그래도 공격수들은 꽤 하는데요?”

“그야 그쪽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니까. 리틀 리 같은 경우는 영입해 보고 싶구만.”

“맨체스터 시티에서 안 놔주려 할 겁니다.”

스카우터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포르투갈의 공격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르마누의 롱 패스가 측면 빈 공간으로 잽싸게 뛰어가는 에우제비우의 앞으로 떨어졌다.

달려가는 에우제비우의 옆으로 박중환이 바싹 따라붙었다.

‘진짜 진절머리 나게 쫓아오는군.’

Park이라는 풀백은 아주 끈질겼다.

전반적으로 자신에게 훨씬 못 미치는 기량에, 이미 몇 차례 돌파를 허용했지만 주눅 들지 않고 계속 덤벼들었다.

‘자기네 팀이 이기고 있으니 기가 산 거겠지.’

그건 포르투갈이 자초한 일.

초반 실점을 막았더라면 이렇게 상대에게 질질 끌려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기는 건 우리다!’

스피드를 올린 에우제비우가 총알같이 치고 나갔다.

박중환도 빨랐지만, 월드 클래스급 준족을 가진 에우제비우를 쫓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대로 놓칠 수 없어!’

급한 마음에 박중환은 태클을 날렸다.

하지만 에우제비우는 그 태클을 가볍게 뛰어넘고는 툭 치고 나갔다.

‘앗! 저 녀석은……!’

앞쪽의 김정석을 본 에우제비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박중환과 더불어 경기 내내 자신의 득점을 저지한 수비수.

그가 공을 걷어 내는 것을 본 에우제비우는 멈춰 서려 했지만, 한 번에 가속력을 죽이기란 무리였다.

퍼억-!

“으아악!”

두 선수가 충돌하자, 준영은 곧장 라인 밖으로 공을 내보냈다.

뒤이어 양 팀 팀 닥터들이 달려 나와 선수들을 살폈다.

「아주 세게 부딪친 것 같은데, 두 선수 모두 괜찮을까요? 아, 다행히 양쪽 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쉬케나지 심판이 다가와 두 선수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둘 다 뛸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포르투갈의 스로인으로 경기를 재개시켰다.

“어? 포르투갈의 파울 아닌가요? 한국 수비수가 먼저 공을 걷어 내고 에우제비우가 부딪쳤는데.”

“상관없어. 포르투갈 쪽에서 돌려줄 테니까.”

한국 쪽에서 일부러 공을 아웃시켰으니, 포르투갈이 돌려주는 게 예의.

실제 임시 주장인 아우구스투가 스로인을 해서 함흥철 쪽으로 던져 주었다.

함흥철이 그 공을 받아 내려는 순간, 갑자기 총알같이 뛰어온 모라이스가 공을 가로채 갔다.

“어? 어엇?”

“저 자식, 뭐 하는 거야?”

전혀 예상 못한 상황에 한국은 물론 포르투갈 선수들도 당황했다.

설마 하는 순간에 모라이스는 빈 골대에 공을 밀어 넣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런 식으로 골이 나올 수 있습니까?」

“우우- 우우우-!”

경기장에 거센 야유와 함께 쓰레기가 날아들었다.

물론 멍하니 실점을 해 버린 한국 선수들을 탓하는 게 아니라, 매너를 지키지 않은 모라이스에 대한 비난이었다.

“저런 쌍놈의 새끼!”

“페어플레이는 어디다 팔아먹었냐?”

“심판은 대체 뭐 하는 거야? 당장 저 자식 퇴장시켜!”

하지만 모라이스는 퇴장당하지도 않고, 득점도 인정되었다.

분명히 매너 없는 행위이긴 하지만, 규칙을 어긴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이 때문에 심판은 한국 측의 거센 항의에 시달려야 했고, 경기장 관리 요원들은 계속 날아드는 쓰레기를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

“와, 너 진짜 더럽다. 어떻게 그걸 가로채서 득점을 할 생각을 하냐?”

포르투갈 선수들도 치를 떨었지만, 모라이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끄러! 누군 욕 얻어먹는 게 좋은 줄 알아? 덕분에 동점이 되었으니 고마워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럼 여기서 탈락하고 살리자르에게 까이고 싶어?”

후반 32분, 세상에서 가장 매정한 남자의 골로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경기 분위기는 포르투갈 쪽이 원한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말았다.

***

소란이 수습된 후, 경기가 재개되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엉망진창.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어떻게든 이 경기를 잡으려는 포르투갈과 잔뜩 흥분한 한국 선수들이 거칠게 부딪치면서 흐름은 뚝뚝 끊기기만 했다.

“야야! 침착하게 해! 들입다 덤빈다고 골 안 나온다고!”

준영은 어떻게든 선수들을 진정시켜 보려 애썼다.

하지만 과열된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거기다 준영 본인도 모라이스의 매너 없는 골에 빡쳐서 경기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틈을 타서 포르투갈은 한국 진영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제르마누의 패스를 받아 오버래핑한 모라이스가 문전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토히스의 머리를 스쳐 간 공은 에우제비우의 가슴에 떨어졌다.

「아, 유세비오, 찬스! 한국, 위기입니다!」

발밑으로 공을 떨어트린 에우제비우.

눈앞으로 골문은 훤하게 열려 있었고, 곁을 막아서는 수비수들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슛하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좀 전의 모라이스의 골이 떠올랐기 때문.

‘차라리 지금 이 상황이 동점 골 찬스였다면 좋았을걸.’

머뭇거리는 사이, 박중환이 달려들어 공을 라인 밖으로 쳐 냈다.

이것을 본 모라이스는 펄쩍 뛰었다.

‘저 멍청이가! 왜 떠먹여 준 걸 흘리고 자빠진 거야!’

그 역시 이겨도 병신 소리를 들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게 되면 그 이상의 조롱과 비난을 듣게 될 터.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 에우제비우는 천금 같은 기회를 날려 버렸다.

‘방금 상황은 봐준 건가? 그걸 놓칠 녀석이 아닌데…….’

에우제비우의 복잡한 표정을 보고 있던 준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상대의 감정을 파악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팀을 추스르고 위기에서 벗어나야 하니까.

‘곧 있으면 포르투갈의 코너킥이다. 뭔가 분위기를 돌릴 특단의 조치 같은 게 없을까?’

짧은 시간 머리를 굴리던 준영은 쓰고 있던 안면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그 모습에 한국은 물론 포르투갈 선수들도 깜짝 놀랐다.

“야, 너 그거 왜 벗어?”

함흥철의 물음에 준영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답답해서요. 시야가 좀 가리기도 하고.”

“인마, 그러다 다치면…….”

“안 다치게 노력해야죠.”

마스크를 쓰고 경기장에 나왔을 때와는 또 다른 각오.

그 모습에 함흥철과 한국 선수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주장이 배수의 진을 쳤구나.’

‘우리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겨야지! 반드시 이겨야 해!’

모두가 각오를 다진 그 순간, 시모에스가 올린 크로스가 문전으로 떨어졌다.

빠르고 날카롭게 떨어지는 공을 향해 준영이 껑충 뛰어올랐다.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그의 등 뒤로 태양이 눈부시게 빛났다.

***

노 매너 골로 국내에서 제일 유명한 게 2011년 AFC 챔스에서 나온 수원과 알 사드 4강 1차전에서 알 사드의 두 번째 골일 겁니다.

당시 알 사드 진영에서 볼 경합을 하다 최성환 선수가 알 사드의 리지크에게 밟혀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근데 정작 밟은 리지크는 발목을 다쳤다고 뒹굴던…….

이후로 잠시 플레이가 전개되던 상황에서 경기가 중단되었고, 최성환 선수가 치료받는 와중에 알 사드 쪽에서 수원 정성룡 골키퍼에게 공을 차 줬는데, 이걸 알 사드 공격수 마마두 니앙이 가로채서 골을 넣어 버렸죠.

당연히 수원은 격분하여 한바탕 난투극이 벌어졌고, 수원의 고종수 코치와 스태보 선수는 6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당했습니다.

근데 일을 저질렀던 니앙은 레드카드 한 장을 받고 끝났죠. 더구나 페어플레이 위반이란 게 골 자체가 위반이 아니라 세리머니까지 하면서 수원을 도발했기 때문이라던가.

아무튼 이렇게 더럽게 이겨서 결승까지 올라간 알 사드는 그해 우승을 달성했고, AFC는 아시아 축구 연맹이 아니라 아랍 축구 연맹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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