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95. 수어사이드
“빌어먹을, 방금 파울이라고!”
항의하기보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진 위기를 막아야 했다.
이에 김청남은 황급히 아우구스투를 막아섰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가린샤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투는 자신이 잡은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바디 페인팅으로 김청남을 주춤하게 만든 후, 그대로 슛을 날렸다.
터엉- 철썩!
크로스바 하단을 강하게 맞힌 공이 골망에 휘감겼다.
전반 39분, 추격 골에 성공한 포르투갈 선수들은 환호하며 아우구스투를 얼싸안았다.
“와 휘슬을 안 붑니꺼!”
“분명히 손을 써서 쓰러트렸다고요. 그런데 왜……?”
김효와 김청남이 아쉬케나지 심판에게 항의했지만, 심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국말이라서 못 알아듣는 건 아니었다. 준영이 영어로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였다.
“저 인간, 이스라엘 국적이랬지? 지난 아시안컵 때 자기네 나라 꺾고 우리가 우승했다고 앙심을 품고 이러는 거 아냐?”
냉담하게 등을 돌리는 심판을 본 차태성이 음모론을 제기하자, 준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을 것 같으면 우리가 넣은 골도 트집을 잡아서 노골로 판정했을걸.”
그냥 못 봐서 대충 넘어가려 하거나, 판정을 뒤집기 귀찮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상황이 달라졌다.
기세가 오른 포르투갈이 성큼 추격해 왔으니 이제 동점, 역전까지 노리고 달려들 것이다.
“수비에 좀 더 신경 쓰자. 저놈들이 또 손을 쓸 수 있으니 조심하고.”
“예, 주장.”
여기서 동점을 허용하면 경기 분위기는 포르투갈 쪽으로 기울어질 터.
그렇기에 리드는 한 상태에서 전반을 끝내는 게 좋았다.
「아우구스투의 골로 포르투갈이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위기인데요. 이 상황을 잘 벗어날 수 있을지 두고 봐야겠군요.」
실점하긴 했지만, 한국 응원단에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고 응원의 함성을 높였다.
“위험해! 얼른 막아!”
“좋았어, 끊어 냈다!”
킥오프 후, 한국은 포르투갈에게 공을 빼앗겼지만 왼쪽 측면에서 김효가 다시 되찾았다.
그는 곧장 반대편으로 달려 들어가는 차태성 쪽으로 길게 넘겨주었다.
오른쪽 측면 빈 공간을 질주한 차태성은 힐라리오의 마크가 들어오자 이희택에게 패스를 보냈다.
가볍게 공을 치며 상대 박스로 들어가는 이희택에게 제르마누가 강하게 부딪쳤다.
‘큭!’
‘뭐? 거기서 중심을 잡아?’
제르마누는 깜짝 놀랐다.
분명히 넘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희택은 오뚝이처럼 냉큼 일어났다.
거기다 공도 빼앗기지 않았다.
제르마누가 재차 들이미는 순간, 이희택은 그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통과시킨 후 자신도 잽싸게 사각으로 빠져나갔다.
‘아니, 이 애송이가……!’
제르마누를 제쳐 내기 무섭게 이희택은 슛을 때렸다.
하지만 황급히 몸을 날린 비센테 루카스에게 걸렸다.
그리고 비센테의 몸에 맞고 힘을 잃은 슈팅은 페레이라 골키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아쉽게 발을 돌리는 리틀 리. 하지만 위협적인 돌파였습니다. 포르투갈이 마음 놓고 공격하기는 힘들겠는데요.」
중계 카메라가 잠시 이희택을 비췄다가, 이내 공을 잡은 마리우 콜루나 쪽에 초점을 맞췄다.
“빌어먹을, 아직 중앙선도 넘지 않았다고!”
박승옥이 마크하러 오자, 짜증을 낸 콜루나는 냉큼 공을 토히스 쪽으로 보냈다.
공중볼을 잡아 내 돌아선 토히스는 슛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앞쪽에는 어느새 준영이 내려와 가로막은 상태였다.
‘이런, 틈이 안 보이는군.’
역시나 명불허전 캡틴 리.
머뭇거리다 공을 빼앗길 것을 안 토히스는 에우제비우 쪽으로 패스를 보냈다.
공을 잡은 에우제비우는 악착같이 달려드는 박중환을 뿌리치고 강슛을 날렸다.
“이크!”
좍 뻗어 오는 슈팅에 화들짝 놀란 함흥철은 황급히 펀칭으로 공을 쳐 냈다.
리바운드 볼을 잡은 시모에스가 아우구스투 쪽으로 공을 보냈지만, 선심이 깃발을 들었다.
패스 직전 김정석과 김청남이 잽싸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깐 것이다.
삐익-!
오프사이드 판정이 내려진 직후, 전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스코어 2 대 1.
경기 흐름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리드를 지켜 낸 준영과 한국 선수들은 가벼운 표정으로 필드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
“한 점 내준 건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한두 골 실점은 각오하지 않았나. 중요한 건 끝까지 우리 플레이를 하는 거다.”
월터 윈터보텀 감독은 라커룸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 선수들에게 후반전 작전을 설명했다.
“전반에 그랬던 것처럼, 포르투갈은 콜루나가 짊어질 부담을 분산시키려 할 거다. 골도 필요하니 보다 적극적으로 나올 테지.”
시야가 넓고 패스 능력이 좋은 제르마누가 후반에도 전진해 올 터.
역습 때 그 뒷공간을 빠르게 공략해 들어가야 한다.
“대인 마크도 소홀히 해선 안 되지만, 그보다 먼저 상대의 패스를 끊어라. 그리고 공을 확보하면 빠르게 반격을 시도하되 성급한 결정은 내리지 말도록.”
이는 훈련 때도 귀에 못이 박히게 했던 말이다.
월터가 다시 한번 선수들에게 침착성을 강조하고 난 후, 이번엔 김용식 코치가 나섰다.
“후반전도 잘 뛸 수 있겠지?”
“하모요! 아직 팔팔합니더!”
김효가 벌떡 일어나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의 셔틀런, 삑삑이를 비롯해 파워 트레이닝이라는 걸 하면서 체력이 부쩍 올랐다.
거기다 상상만 하던 8강전을 뛰어서 그런지 의욕이 넘쳤다.
“좋아, 우린 전대미문의 영역으로 나가고 있다. 이 폭풍을 뚫고 가면 앞으로 두 경기는 더 할 수 있지. 마지막까지 충분히 즐겨 보자. 알겠지?”
“예-!”
“4강 가즈아-!”
우렁찬 함성으로 투지를 다진 선수들은 다시 필드로 나갔다.
「양 팀 선수들이 진영을 바꿔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연 45분 후에 승자는 누가 될까요?」
중계 카메라가 킥오프를 앞둔 센터 서클을 비췄다.
그리고 심판이 휘슬을 불면서 후반전 경기가 시작되었다.
“파이팅! 필승 코리아-!”
“Forca Portugal~! Muito orgulho, muito amor~!”
양 팀 응원단도 목이 쉬어라 함성을 내지르는 가운데, 한국과 포르투갈 선수들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포르투갈.
제르마누가 전진하며 길게 찔러 준 패스를 측면에서 시모에스가 받아 침투하는 에우제비우의 발 앞으로 밀어 넣었다.
에우제비우는 발바닥으로 공을 긁으며 빙글 돌아서 박중환과 김정석을 뿌리쳤다.
그리고 바로 슛.
파 포스트를 노린 에우제비우의 슈팅을 향해 아우구스투가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준영이 헤딩으로 공을 골대 너머로 밀어냈다.
“어우야, 깜짝 놀랐네.”
역시 흑표범 에우제비우.
정말이지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초반부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한국. 캡틴 리의 호수비가 위기에서 팀을 건져 냅니다!」
준영이 재빨리 수비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이, 포르투갈이 빠르게 코너킥을 처리했다.
토히스가 슬쩍 준영을 견제하는 사이, 공격에 가담했던 제르마누가 떨어지는 공을 향해 바람같이 달려들었다.
「제르마누, 헤딩슛-! 아! 아쉽게도 골키퍼 정면입니다. 또 한 번 위기를 모면하는 한국.」
포르투갈의 공세가 만만치 않았다.
함흥철은 잠시 공을 쥐고 상대의 공격 템포를 끊었다가 좌측면의 정병탁 쪽으로 롱 패스를 보냈다.
‘나도 월드컵에서 골을……!’
정병탁은 과감하게 돌파를 시도했다.
그라샤의 마크를 뿌리친 그는 모라이스와 맞닥뜨렸다.
페인트를 넣고 모라이스를 제쳐 낸 그는 바로 슈팅을 날렸다.
그러나 공은 골대 위로 뜨고 말았다.
병탁이 슛을 하는 순간에 모라이스가 슬쩍 유니폼을 잡아채 자세를 무너트렸기 때문.
“방금 저거 파울 아냐?”
“심판이 세심하지가 못하구만.”
결정적이진 않다고 하지만, 전반전에 판정에서 손해를 본 한국 선수들은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쳇, 그딴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형평성이 없는 심판도 문제지만, 얍삽하게 손을 쓰는 포르투갈 놈들도 문제.
그렇게 판단한 차태성은 한번 제대로 갚아 주리라 마음먹었다.
「포르투갈이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한국 진영의 빈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견고한 수비를 보여 주고 있는 한국…….」
앞으로 밀어 주다 뒤로 빼고, 좌우로 크게 넘겨주기도 하고.
포르투갈 선수들은 한국의 전열을 흐트러트리고 앞쪽으로 유인해 내려 애썼다.
“자리 지켜! 간격 유지해!”
“배후로 들어가잖아! 얼른 따라가!”
하지만 중원에서 소리치며 조율하는 준영 때문에 낚시는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할 사람은 마리우 콜루나.
탁월한 패스 능력을 가진 그라면 번득이는 패스를 찔러 줄 것이다.
그렇게 콜루나 쪽으로 공이 전달되었다.
“어림없지!”
“크악!”
가슴으로 공을 받은 콜루나가 발 앞으로 떨어트린 순간, 차태성이 냅다 달려들어 발길질을 날렸다.
허벅지를 세게 걷어차인 콜루나는 그대로 나동그라졌고, 심판의 휘슬이 날카롭게 울렸다.
“고의 아닌데요. 걷어 내려다 충돌한 건데요?”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
포르투갈 선수들은 퇴장시키라고 떠들어 댔지만, 심판은 일단 구두 경고만 하고 넘어갔다.
“이번 한 번뿐이야. 다음은 없어. 알겠나?”
“눼눼, 명심합죠.”
능글맞게 웃는 차태성이 물러나자, 인상을 쓰며 일어난 콜루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저 개자식, 죽여 버릴 거야!”
“참아요, 마리우 선배.”
“놈들의 골대에 골을 박아 넣어서 복수하자고.”
먼 거리에서 얻은 프리킥.
콜루나는 토히스의 머리를 노려 공을 띄워 보냈다.
토히스는 에우제비우 쪽으로 공을 떨어트려 주었지만, 박중환이 발을 뻗어 걷어 냈다.
박스로 접근하던 콜루나가 흘러나온 공을 다시 확보했다.
그런데 그가 재차 슛을 날리려는 순간, 차태성의 태클이 날아들었다.
거친 태클에 걸려 쓰러진 콜루나는 좀 전의 ‘그놈’이라는 걸 알고 바로 눈이 돌아가 버렸다.
“Hijo de puta!”
“컥! 뭐야? 이게 미쳤나!”
콜루나가 걷어찬 발에 턱을 맞은 차태성은 바로 멱살을 잡았다.
거칠게 드잡이가 벌어지는 가운데, 양 팀 선수들이 바로 몰려들었다.
「난투극이 벌어지며 경기가 잠시 중단됩니다. 양 팀 고참 선수들이 흥분한 두 선수를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군요.」
다행히 상황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난투를 벌인 콜루나와 차태성을 불러낸 아쉬케나지 심판은 단호한 표정으로 판정을 내렸다.
“포르투갈 10번, 코리아 8번 퇴장.”
마리우 콜루나와 차태성의 동반 퇴장.
콜루나는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지 펄쩍 뛰며 언성을 높였다.
“저 자식이 먼저 날 걷어찼다고! 저것들이 전반부터 날 자극한 걸 당신도 봤잖아!”
콜루나의 말대로 그의 분노가 격발한 건 비단 차태성 때문이 아니었다.
포르투갈의 주공격 루트였던 그는 이미 전반부터 강한 견제를 받았고, 그 때문에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심판은 이해해 주지 않았다.
보복 행위가 제대로 포착되었으니 봐주려야 봐줄 수 없었다.
“빨리 필드 밖으로 내보내!”
결국 콜루나는 주장 완장을 내려놓고 필드에서 물러났다.
유니폼을 벗어 거칠게 내팽개치는 그와 달리, 차태성은 상대적으로 담담했다.
“미안하다. 뒷일을 부탁할게.”
“어휴… 오냐, 알았다.”
준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성질이 불같은 차태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였다.
그래도 그동안 그 성질머리를 잘 참는다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터지고 말았다.
‘그나마 혼자 터지지 않은 게 다행이군.’
그것도 상대 팀 주장, 포르투갈의 핵심 플레이메이커를 끌고 갔다.
과연 이것이 한국에 유리하게 적용될까, 아니면 오히려 포르투갈 선수들의 투지에 불을 붙이게 될까.
아직 승부의 향방은 예상할 수 없었다.
***
차태성이 마리우 콜루나를 걷어찬 장면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일어난 상황에서 따왔습니다.
저때 ‘태권도 축구’라는 빈정거림을 들었지만, 볼을 걷어 내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라 고의성은 없었고, 경고도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기죽일 의도는 있었을 거라 봅니다만…….
참고로 앞서 칠레전에서 언급된 허윤정 선수가 바로 허정무 이사장의 먼 친척입니다.
두 분 다 진도 출신인데, 허정무 이사장이 중학생 당시에 뛰는 모습을 보고 허윤정 선수가 축구 선수가 될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