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68. 본선을 향하여
“베트남전 반대 시위래요.”
시내에서 일어난 소란에 대해서 알아보고 온 레논이 이야기했다.
그것도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투로.
“반전 시위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 거야?”
“뭐, 미국이 참전한 후로 종종 일어나고 있죠.”
다만 그동안은 소규모 인원이 시위했다면 이번엔 수백 명이 몰려나왔다고.
갑자기 시위대 규모가 불어나자 당황한 경찰이 공포탄을 쏴서 해산시켰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 자신들과 별 상관없는 나라에서 형제나 자식이 피를 흘리고 있으니까.”
냉전이라는 큰 틀에서 보자면 남베트남은 동남아시아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켜 내야 마땅했다.
그러나 일반인들 입장에선 수긍하기 힘든 전쟁임에 틀림없다.
“아직은 초창기라 피해가 적으니 큰 호응이 없겠지만, 사상자가 늘어나면 대중의 반전 여론도 커지게 될 거야.”
“사상자가 그리 늘어날 일이 있을까요? 베트남은 조그만 나라잖아요.”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을 무찌른 미국이 그 작은 나라 하나를 못 이기랴.
레논처럼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준영은 달랐다.
나름 제시할 근거도 있었고.
“10여 년 전에 미국은 이미 한국 전쟁에서도 승리하지 못했어. 그저 휴전 조약을 맺었을 뿐.”
“음…….”
“베트남의 자연환경은 한국보다 더 열악해. 거기다 남베트남은 프랑스의 괴뢰 국가로 탄생한 터라 부패도 심하고 베트남인들의 호응도 적지.”
“나치에 적대적이었던 유럽과 다르다는 거군요.”
점령하더라도 민심을 얻지 못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건 미래의 전쟁, 아프간이나 우크라이나에서도 증명되었다.
“영연방에서 이번 전쟁에 소극적인 것도 그 때문인가요?”
“프랑스가 개판으로 만든 동네에 들어가서 수습을 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이미 영국 정부는 준영을 통해 이 전쟁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과 가까운 영연방 국가, 호주와 뉴질랜드의 파병도 생색을 낼 정도만 보냈다.
사실 미국이 한국에 전투병 파병을 닦달하게 된 것도 영연방의 소극적인 대처도 한몫했다.
“어쨌든 이 전쟁에 대해서 경솔한 언행을 하지 않는 게 좋아.”
“예, 뭐. 당장 우리가 신경 쓸 일은 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 열릴 특별 경기니까요.”
“그래. 안 그래도 그 경기에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있으니까.”
이미 작년에 비틀즈가 겪었던 미국의 인종 분리 정책.
짐크로 법이라고 하는 그 인종 차별적인 악법은 비틀즈 공연 사태 이후 시민권법이 제정되면서 각 주 정부마다 폐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법이 폐지되지 않았다고 사람들의 인식까지 금방 바뀌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준영은 이번 특별 경기를 그 인식을 바꿔 갈 계기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
2030년 브리튼-에이레 월드컵을 관람하던 제이크 김은 지인에게서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
“1965년 맨유의 비시즌 경기 영상이라고?”
“그렇다니까. 미국과 한국에서 촬영된 거야.”
지인은 고물상 창고에서 영상 필름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풀 영상은 아니고,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 간단한 뉴스를 내보내는 용도로 편집되어 만들어진 거라고.
“풀 영상은 맨유 구단 창고를 뒤지면 나오려나?”
“그럴지도 모르지.”
필름을 영사기에 끼워 넣은 제이크 김은 스크린 위로 재생되는 흑백 영상을 살펴보았다.
1960년대 LA 메모리얼 콜로세움으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찾아가는 광경이 보였다.
재생되는 음성에 따르면 이날 맨유와 미국 축구대표팀 간의 특별 경기가 경기장에서 열렸다고 한다.
“그 경기인가 보군. 존 레논이 미국에서 주최했다는 축구 경기 말이야.”
“본인도 직접 출전했다는 경기? 어째 아가씨들이 많다 싶더니만…….”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 있는 건 비틀즈 팬들만이 아니었다.
경기 중에 교체되어 들어가는 이들을 보면 록스타 믹 재거나 숀 코너리, 오마 샤리프도 있었다.
“저 머머리 아저씨,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바보야, 율 브린너잖아.”
존 레논과 숀 코너리, 오마 샤리프는 축구를 한 덕분인지 상당한 발재간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일반인 수준이었던 믹 재거는 드리블을 하다 공을 밟고 넘어지기도 했고, 율 브린너는 골대 바로 앞에서 로키산 폭발 슛을 날리기도 하였다.
이런 광경을 보며 웃는 관객들 중에는 찰턴 헤스턴이나 오드리 헵번 등 유명인들도 있었다.
“믹 재거는 완전 흑역사인데? 이거 인터넷 영상 플랫폼에 올라가면 조회 수 대박 나겠어.”
“고소당하는 거 아니야?”
키득거리며 편집된 경기 영상을 보던 제이크 김.
그는 경기장에 걸린 현수막의 문구에 주목했다.
‘Match for Everyone.
Red Blood and One Heart.’
모두를 위한 시합, 붉은 피와 하나의 심장.
미국에서 오랫동안 문제가 되었던 인종 분리를 타파하고,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내건 문구 같았다.
“딱 그 시대를 보여 주는 문구 같군.”
“하긴 저땐 미국의 인종 차별 문제가 심했으니까.”
“미국뿐만이 아니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도 저 해에 문제가 되었다고.”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발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월드컵 예선에서 남아공과의 경기를 거부했다.
그 바람에 남아공은 아프리카 예선이 아닌,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에 참여해야 했다.
“뭐, 거기서도 최종적으로 보이콧 당했지만.”
“당시 FIFA 회장이 스탠리 루스였지? 남아공과 로디지아를 두둔하다 선거에서 패했다고 하던데…….”
“그래, 주앙 아벨란제에게 회장직이 넘어갔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영상은 LA에서 서울로 넘어갔다.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맨유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의 경기는 앞서 LA에서의 경기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친선전은 분명하지만, 꽤 진지하게 진행되었던 것.
“한국 선수들이 꽤 적극적이군.”
“저때가 월드컵 예선까지 몇 달 남지 않은 시점이었을 거라 그랬을 거야.”
이 경기에서 이준영은 전반에는 맨유, 후반에는 한국 대표팀으로 뛰었다.
포지션도 달랐는데, 맨유 쪽에서 뛸 때는 센터백을 맡았고 한국 대표팀에서는 하프백으로 뛰었다.
경기는 맨유의 4 대 2 승.
전반엔 한국 대표팀이 밀리면서 조지 베스트, 던컨 에드워즈에게 연이어 실점하며 3 대 0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후반전에 이준영이 가세하고 전열을 가다듬으며 3 대 2까지 쫓아갔다.
이때 추격 골을 터트린 선수가 김기복과 이희택.
영국에서 축구 유학을 하고 돌아와 중앙대 축구부에 뛰고 있던 김기복은 과감한 중거리 슛으로 맨유의 골문을 열었다.
뒤이어 후반전에 교체 출전한 이희택이 멋진 돌파로 두 번째 골을 만들어 냈다.
“저 선수, 맨시티의 리틀 리 같은데?”
“맞아. 저땐 아직 어렸지.”
그럼에도 이희택은 꽤 과감한 돌파와 슛으로 맨유 수비를 흔들어 놓았다.
전반전부터 출전했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동점을 만드는 데는 실패.
맨유는 후반 종료 직전에 얻은 프리킥으로 추가 골을 넣으며 2점 차로 경기를 끝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뿐만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축구 역사에도 소중한 기록 자료로군.”
“오, 그럼 비싸게 팔 수 있는 거야?”
“그럴지도.”
제이크 김은 영상의 남은 부분을 살펴보다 흠칫했다.
경기가 끝나고 필드에서 퇴장하던 이준영이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였기 때문.
‘저런 제스처가 저땐 없었을 텐데…….’
외계인 혹은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
이준영과 관련한 루머들을 떠올린 제이크 김은 의아해하다 이내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뭔가 확실한 증거물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저 정도로 그의 정체를 단정하기란 힘들었으니까.
***
1965년 6월 5일.
월터 윈터보텀과 한국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은 어제 치른 맨유와의 친선전 경기 영상을 다시 살펴보고 있었다.
“수비가 너무 쉽게 무너졌어. 상대의 페인팅에 저리 농락당하다니…….”
“상대가 조지 베스트였는걸요. 풋볼 리그에서도 그놈을 확실히 막을 만한 수비수들은 손꼽을 정도라고요.”
지난 시즌 기자들이 선정한 베스트 플레이어.
그만큼 조지 베스트의 실력은 이름 그대로 최고라 할 만했다.
“오히려 그놈이 막혔으면 지금쯤 영국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을 겁니다.”
“물론 그렇지만……. 미드필드에서부터 강하게 견제했다면 실점도 줄었을 거야.”
후반전엔 확실히 그랬다.
김삼락 대신에 중원을 맡은 준영이 날카로운 인터셉트와 철벽같은 마크로 상대의 공격을 대부분 막아 냈으니까.
“아무튼 결론은 존이 있고 없고에 따라 대표팀 전력의 차이가 크다는 거야.”
월터의 말에 로저가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그건 유나이티드 쪽도 마찬가지죠. 녀석이 있을 땐 세계 챔피언을 노릴 만한 전력이지만, 없을 땐 그냥 풋볼 리그의 평범한 강팀 수준이니까요.”
“그러니까 더 문제지.”
월드컵 예선이 열리는 건 11월.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은 현재 가까운 일본에서 열리는 게 유력했다.
문제는 그때 한창 풋볼 리그가 진행되고 있을 시점이라는 점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을 유나이티드가 존의 차출에 순순히 응해 줄까? 한두 경기 빠지는 건 몰라도 장기간 이탈은 꺼릴 수밖에 없을걸.”
일단 유나이티드의 성적이 좋기를 기대해야겠지만, 마냥 기도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거기다 부상이나 비행기 연착 등으로 합류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건 준영이 아니라 다른 유럽파 선수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김 코치. 존 없이도 예선을 치를 수 있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도 11월에 맞춰 현재 선수들의 역량을 최대로 올려놓아야 한다.
당장 예선 참가가 확실한 호주와 북한의 전력이 심상찮으니까.
정보부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북한 대표팀은 장기 합숙을 통해 탄탄한 조직력을 갖춰 놓았다고 한다.
최근에 스파르타 프라하, 레프스키 소피아 등 동유럽 강팀들을 평양에 초청해서 경기도 했는데,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특히 박승진과 박두익, 신영규, 리동운, 한봉진 등은 유럽 선수들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고, 기회도 있죠. 김 코치, 8월에 말레이시아에서 대회가 있다고 했지요?”
“예, 메르데카 컵이라고 8월 14일에 개막합니다.”
“그때 선수들의 기량도 올리면서 조직력도 다져야겠군요.”
그 대회에 참가하는 홈팀 말레이시아나 인도, 중화민국은 현재 아시아에서 강호에 속하는 국가들.
낯선 환경에서 불리한 조건을 안고 만만찮은 상대와 경기해 보면 얻는 게 적지 않을 것이다.
“기왕에 우승하면 사기도 더 오르겠죠.”
“맞는 말입니다. 우승을 맛보면 그만큼 자신감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반드시 월드컵 본선으로.
세계 무대를 꿈꾸는 선수들만큼이나 뜨겁게 의욕을 불태운 그들의 회의는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
1. 율 브린너의 경우엔 리버풀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 리버풀은 자기 구단 마케팅으로 스킨케어 상품을 판매하면서 율 브린너에게 모델을 제안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율 브린너는 ‘나는 스킨케어 같은 화장품 안 쓴다.’며 거절했다고 하네요.
2. 박승진 선수는 1966년 북한 축구대표팀 주장이었습니다.
당시에 이탈리아전에서 결승 골을 터트린 박두익 선수가 유명하지만, 실제 북한 에이스는 박승진 선수였죠.
이탈리아전에서도 승부의 향방을 가르게 된 불가렐리의 부상 퇴장을 유도한 것도 박승진 선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