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41.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
새로 시즌이 시작되면 가는 선수가 있고, 오는 선수가 있기 마련.
여기에 주급 상한제가 폐지되자, 선수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 사는 구단들에 마음이 쏠리게 되었다.
그건 맨유 선수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좀 더 높은 급료에, 더 많은 경기를 뛰고자 하는 이들은 과감하게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 갔다.
그런 이들 중에는 데니스 바이올렛 같은 주전급 선수도 있었다.
“리에주 로열 스탕다르 클럽? 그거 혹시 벨기에리그 팀 아닙니까?”
“어? 알고 있나?”
“개인적으로 아는 선수들이 거기서 뛰었거든요.”
21세기의 명칭은 스탕다르 리에주.
벨기에 황금 세대의 일원이었던 마루앙 펠라이니와 악셀 비첼의 친정 팀으로, 벨기에의 대표적인 명문 구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랬나? 그 팀이 이번에 유러피언 컵에 출전한대.”
데니스 바이올렛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여러 팀에게서 구애를 받았다.
그중에 가장 적극적이고 조건이 좋았던 팀이 스토크 시티와 리에주 로열 스탕다르.
데니스는 이 중에 후자를 선택했다.
“지난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클러프 자식이랑 맞붙었잖아. 그 경기를 보니까 나도 문득 그 녀석처럼 너랑 맞붙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준영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수로 평가받고 있다.
더 나이 들고 기량이 녹슬기 전에 그와 한번 제대로 겨뤄 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유럽의 왕좌를 다투는 큰 무대에서.
“나랑 붙기 전에 탈락하면 어쩌려고요.”
“그리 안 되게 열심히 해야지. 두고 보라고. 분명히 왕좌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치게 될 테니까.”
“훗, 기대할게요. 아무튼 그동안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영광이지. 앞으로도 유나이티드를 잘 부탁한다.”
준영을 비롯해 모두와 작별 인사를 나눈 데니스 바이올렛은 곧바로 벨기에로 떠났다.
***
간판 공격수인 데니스 바이올렛이 떠났지만, 버스비 감독은 큰 우려를 하지 않았다.
주전급 공격수들이 잔류했고, 7월에 아스날에서 데이비드 허드가 영입되었기 때문.
“공격진은 됐고… 수비를 강화해야겠군.”
버스비는 데니스 바이올렛을 이적시키고 얻은 자금으로 조지 코헨을 영입했다.
풀럼의 조지 코헨은 예전부터 눈독을 들였던 인재였다.
그는 날카로운 태클과 뛰어난 대인 마크 능력을 갖췄으며 공격 가담에도 뛰어났다.
팀에 더 다양하고 여유로운 전술 운용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인재였던 것이다.
“그 말은 곧 측면 주전 경쟁이 더욱 심해진다 이거군.”
“긴장하는 게 좋을 거다, 던. 코헨은 소문보다 훨씬 뛰어난 놈이라고.”
“훗, 내가 그런 애송이에게 밀릴 거라 생각해?”
던컨은 장담한 대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 냈다.
8월 19일 개막된 1961-62 시즌 1라운드 웨스트햄전에 출전한 것이다.
“해머스 녀석들 전술이야 뻔하다. 골대 앞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역습을 노리는 겁쟁이들을 철저히 박살 내 줘라!”
“우리도 할 수 있다. 스퍼스 녀석들이 그랬던 것처럼 버스비의 붉은 악마 새끼들을 눌러 주고 챔피언이 되는 거다!”
양 팀 주장들이 전의를 고양시키는 가운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홈팀인 웨스트햄은 과감하게 공세로 나왔다.
바비 무어에서 시작된 패스가 필 우스만을 거쳐 최전방의 존 딕, 앤디 말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앤디, 유나이티드 박스 쪽으로 접근, 캡틴 리를 앞에 두고 과감히 슛-! …뜨고 맙니다.」
초반에 흐름을 잡은 웨스트햄은 5개의 슈팅을 날렸다.
그중의 하나는 깊숙하게 공격 가담을 하러 올라왔던 바비 무어의 슛이었다.
하지만 웨스트햄의 슛은 모두 골대를 지나치거나 수비수 몸에 맞고 튕겨 나왔다.
“성급하군요. 좀 더 침착하게 파고들었어야 했는데…….”
“그럴 만한 능력이 된다면 말이지.”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히라키 류조와 나가누마 겐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답답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출전한다 해도 저들만큼 해낼 자신은 없었으므로.
아니, 오히려 더 형편없는 플레이를 보였을 것이다.
지난 6월에 처참하게 박살, 아니 분쇄당했을 때처럼.
“정말 악몽이 따로 없었지.”
“축구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죠. 정말 리준욘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데…….”
일본 축구협회에서 호되게 질타를 받았지만, 그래도 그건 사랑의 매라고 할 만했다.
대다수 언론에서는 경기에 대해서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신문 한쪽 구석에 짤막하게 내보냈다.
마치 남의 나라 일인 양.
국민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관심을 가졌느냐는 듯,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건 축구를 정략적으로 밀어주던 우익 정치인이나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업 스폰서가 일방적으로 끊겨 버린 두 사람은 완전히 끈 떨어진 연이 되고 말았다.
리저브 팀으로 밀려난 것도 모자라, 아예 4부 리그 팀으로 임대 가 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고 있었다.
말이 권유이지, 사실상 강압이었다.
“차라리 가는 게 나을지 몰라요.”
“그래,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적응하고 실력을 키우며 배워 나가는 게 더 좋겠지.”
‘도쿄 참사’로 앞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될 가능성은 없어졌다.
하지만 개똥 같은 신세가 되었다고 마냥 체념할 순 없지 않은가.
하나라도 더 보고 배워야 10년, 아니 20년 후의 후배들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캡틴 리, 바비 찰튼의 리턴 패스를 받아 슛-! 아, 들어갔습니다! 휘어 찬 슛이 구석에 정확하게 명중!」
골을 넣은 준영은 손에 낀 결혼반지에 입을 맞추는 세리머니를 펼쳐 보였다.
두 일본인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지만, 그들은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미래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그들은 악마 같은 리준욘의 플레이를 계속 지켜보았다.
***
준영의 선제골과 후반전에 터진 노비 스타일스의 추가 골로 맨유는 새 시즌 첫 경기 첫 원정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었다.
나흘 후 홈에서 첼시에 승리, 3라운드와 4라운드 경기에서도 연승을 이어 갔다.
“3라운드에선 6 대 1, 4라운드에선 2 대 0인가.”
“데니스 바이올렛이 빠져서 걱정했는데, 알베르토 스펜서와 데이비드 허드가 충분히 잘해 주는군.”
“4라운드에 출전한 조지 코헨도 대단했지. 상대 공격수들이 오른쪽 측면 공략은 엄두도 못 냈으니까.”
“잘못하면 빅 던이 밀리는 거 아니야?”
“뭐, 걱정할 필요는 없어. 던컨은 측면이 아니라도 어디든 뛸 수 있는 선수니까.”
8월의 4연승에 맨유 팬들은 상당히 고무되었다.
1958-59 시즌의 트레블이 다시 가능해 보였으니까.
특히 주장 이준영은 4경기 연속 골을 터트리며 기대감을 드높였다.
그 기대감을 부풀리는 데 한몫한 언론들은 5라운드 경기 하루 전, 준영과 인터뷰를 했다.
“리 선수, 이번 시즌 초반부터 활약이 눈부신데 비결이 대체 뭡니까?”
“대단한 건 아니고, 경기 못하면 집에 못 들어갑니다.”
준영의 너스레에 기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잡혀 사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대중의 흥미를 끌 만한 건수임엔 틀림없다.
“내일 귀가를 위해서라도 꼭 블랙풀을 격파해야겠군요.”
“네, 꼭 이길 겁니다. 두고 보십쇼.”
준영은 장담한 대로 블랙풀 원정에서 활약을 보였다.
전반 3분 만에 벼락같은 무회전으로 골망을 흔들어 버린 것이다.
「캡틴 리, 5경기 연속 골! 엄청난 슈팅에 관중석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할 말을 잃게 한다는 게 이런 걸까요?」
준영의 벼락 골로 기선을 잡은 맨유는 이후 알렉스 퍼거슨과 알베르토 스펜서가 연속 골을 터트리며 일찌감치 승리를 굳혔다.
“매튜스 아저씨가 없는 블랙풀은 뭔가 좀 싱겁군.”
“그러고 보니 이번 시즌에 이적했다고 그랬지? 어디로 가신 거야?”
“친정 팀인 스토크 시티로. 계속 2부에서 빌빌거려서 불쌍해 보였다나 뭐라나.”
준영과 던컨이 경기 중에 잡담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승세는 맨유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블랙풀에선 잉글랜드 국가대표인 지미 암필드가 분전했지만, 그가 홀로 막아 내기엔 맨유의 공격진은 너무나 강했다.
좌우의 알렉스 퍼거슨과 데니스 로, 중앙의 알베르토 스펜서와 주제 토히스.
여기에 부지런한 공격 가담으로 공세에 무게를 더하는 하프백 이준영과 바비 찰튼.
이들의 활약을 꼼꼼하게 지켜보는 낯선 이방인들이 있었다.
“올해 유나이티드는 작년보다 강해 보이는군.”
“우리 팀 에이스가 있는데 당연하지.”
이들은 우루과이에서 온 페냐롤 선수들이었다.
9월 4일 열리는 1961년 인터콘티넨털 컵 1차전을 치르기 위해 왔던 것.
“이틀 후에 우리랑 맞붙는데 리그 시합이라…….”
“거기다 주전도 죄다 나온 것 같은데?”
“무모한 건지, 아니면 그만한 자신감이 있는 건지?”
“우리가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한 걸 알고 저러는 걸지도 모르지.”
이유야 어찌 되었든, 페냐롤 선수들은 작년의 패배를 반드시 되갚아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야 세계 챔피언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
전반에 승세를 잡은 맨유는 후반에는 안정적으로 경기를 조율하며 3 대 0으로 경기를 끝냈다.
“좀 더 많은 골을 넣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군요.”
“이틀 후에 중요한 경기가 있으니 체력을 아껴야지.”
버스비 감독은 오늘 경기 직전까지 주전들을 제외시킬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를 너무 얕보다간 된통 당하기 마련이다.
거기다 리그 우승을 위해서는 최대한 승점을 많이 따서, 경쟁 팀들과의 격차를 벌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1차전이야 우리 홈에서 하니 어떻게든 할 수 있습니다만, 문제는 9월 17일에 열리는 2차전 원정이죠.”
머피 코치의 말에 버스비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해 인터콘티넨털 컵은 하필 리그 중에 열려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9월 16일과 18일에 각각 7라운드, 8라운드 경기가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FA에 일정 조정을 요청해 봤지만, 거절당했다.
“FA보다 다른 팀들이 문제였지. 다들 일정을 미룰 수 없다고 반대했으니…….”
“우리가 또 우승하는 게 어지간히 배 아팠나 봅니다.”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게 두려운 거지. 전력뿐만 아니라, 경력이나 인지도도…….”
이미 현재도 맨유는 영국을 대표하는 팀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맨유 출신 선수들은 국내외를 망라하고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축구계 영재들 사이에서도 장차 뛰고 싶은 팀 1순위에 꼽혔다.
당연히 선수 영입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지금은 이 난감한 일정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한데 말이야.”
“이미 정해진 일정을 바꿀 순 없죠. 경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팀을 나눌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역시 그 방법뿐인가.”
“다행인 건 나눠도 될 정도로 우리 팀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다는 거죠.”
수비에는 셰이 브레넌, 노엘 캔트웰, 토니 던 등이 출전 기회를 엿보고 있고, 미드필더에서도 조니 자일스와 짐 박스터, 노비 스타일스가 있다.
공격에서도 알버트 퀵솔과 새미 맥밀런 등이 출전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들 외에 리저브 팀에도 발탁할 만한 선수들이 꽤 있었다.
“누굴 어떻게, 어느 쪽으로 나누느냐를 고민해 봐야겠군.”
“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니까요.”
아직 2차전까지 시간은 있다.
그러므로 버스비 감독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좀 더 생각과 논의를 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이미 별다른 고민 없이 낙점한 선수도 있었다.
‘존, 힘들겠지만 몬테비데오 원정에 다녀와야겠네.’
세계 챔피언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서는 최강의 카드를 절대 빼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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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설 연휴 건강하고 즐겁게 잘 보내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