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51화 (251/400)

Round 251. 비상(飛上)

“캡틴 리, 나는 풀럼의 선수인 동시에 풋볼 리그 선수 노조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선수 노조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있지요?”

“네, 이곳 맨체스터에서 결성했다고 하더군요.”

지미 힐이 회장으로 있는 선수 노조, PFA는 1907년 맨체스터의 임페리얼 호텔에서 출범했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 찰리 로버츠와 웨일스 출신의 빌리 메레디스가 주축이 되어 결성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축구선수연합(AFU)이라는 단체가 있었죠. 주급 상한제가 시작된 1901년에 해산되었지만.”

선수 노조는 이 주급 상한제와 현재의 선수 보유 및 이적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출범했다.

그들의 끊임없는 투쟁의 결과로 선수들의 주급은 계속 올랐다.

1920년대에 최대 9파운드였던 선수 주급은 1959년 현재 20파운드까지 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죠. 나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실력 있는 선수들은 충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래야죠. 활약한 만큼 대우를 받아야 의욕이 생기고 발전하는 법이니까요.”

충분한 대우가 보장되지 못하면 선수는 다른 팀이나 해외 리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건 21세기뿐만 아니라 1959년 현재에도 그렇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비롯한 남미 선수들이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뛰고 있으며,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선수들 역시 해외 무대를 누비고 있다.

영국 선수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웨일스의 거인 존 찰스는 유벤투스에서 뛰고 있으며, 준영과 맨유에서 한솥밥 먹었던 콜린 웹스터도 이탈리아로 떠났다.

“서둘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실력 있는 선수들은 죄다 떠나고 말 겁니다. 그리되면 축구 종가는 번드레한 껍질만 남게 되겠죠.”

“동의합니다.”

특급 선수들이 우수수 빠지면 리그 수준은 떨어지고, 축구팬들의 관심도 멀어진다.

인기를 잃은 리그에 대한 후원은 당연히 줄어들고, 팀의 재정도 축소.

당연히 선수 육성도 힘들어지게 되고, 그 뒤로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21세기에도 그렇게 해서 망했던 리그들이 많지. 네덜란드 에레디비시도 그랬고, K리그도…….’

이런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건 굉장히 힘들다.

21세기에서 그런 상황을 목격했던 준영은 지미 힐에게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힐 회장님은 주급 상한제를 완전 폐지하는 게 목표입니까?”

“그뿐만 아니라 이적이나 임대 규정도 손봐야죠. 많은 선수들이 구단의 지나친 간섭을 받는 게 현실이니까요.”

준영의 경우는 구단의 갑질에 휘둘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운이 좋고, 사람을 잘 만난 덕분이다.

허더스필드 타운에 있을 때, 구단 측에서 맨유가 아니라 맨시티의 손을 들어 주기로 결심했다면 이를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적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은 구단이 갖고 있으니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야. 실제로 보스만 룰 같은 것도 훨씬 나중에 나온 거니까.’

하지만 조금이라도 개선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은 본인이 원하는 팀에서 뛸 수 있고, 맨유 같은 구단도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기 한결 쉬워질 테니까.

“내가 리 선수를 찾아온 건,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기대라…….”

“언론에도 곧잘 나오더군요. 당신은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버리는 문제도 신경 써서 개선하려 든다고.”

최근에 화제가 된 건 맨유가 건설 중인 클럽 하우스였다.

더 좋은 환경에서 선수들이 실력과 컨디션을 끌어 올릴 수 있게끔 과감하게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은 흔치 않았으니까.

더구나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보면 상당히 진보적이고 체계적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별 차이도 안 나는데 돈을 쓴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지난 시즌 유러피언 컵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1958-59 시즌 유러피언 컵에는 맨유뿐만 아니라, 울버햄프턴도 참가했다.

빌리 라이트는 울버햄프턴이 새로운 유럽의 챔피언이 될 거라며 호언장담했지만, 샬케 04에게 패하면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전용기까지 대여해서 선수 컨디션을 신경 쓰고, 전력 분석관을 동원해서 상대 팀 정보를 모은 맨유와 달리 그들의 준비는 너무나 소홀했기 때문이다.

“리 선수, 나는 당신이 유나이티드뿐만 아니라 풋볼 리그 전체를 개선하는 데도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죠?”

“축구협회 쪽에 연줄이 있는 친구가 그러더군요. 올 시즌에 도핑 금지 규정이 생긴 게 당신이 루스 총무에게 건의한 덕분이라고.”

관심이 없다면 그런 건의를 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부탁한 상대는 앙숙이나 다름없는 루스가 아닌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죠. 당신은 우리와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실히 뜻은 같이하고 싶습니다. 다만…….”

“뭔가 곤란한 문제라도 있습니까?”

준영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하는 일이 좀 많아서요. 그래서 몸뚱이가 두 개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죠.”

준영은 선수 활동에 사업가를 겸하다 보니 여러모로 바빴다.

거기다 대입 공부도 하고 있고, 지역의 새로운 명사로서 사교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선수 노조의 일까지 맡는 건 무리였다.

“리 선수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우리도 많은 건 바라지 않아요. 그저 임원으로 이름을 올려 주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정말 그 정도로 충분합니까?”

“유럽 챔피언 팀의 주장이 우릴 지지하고 있다고 해 봐요. 우리 의견에 귀를 기울일 사람도 더 많아지겠죠.”

이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지미 힐은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인물.

준영은 이런 사람에게 힘을 실어 줘야 자신에게도 득이 될 거라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미력하게나마 돕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캡틴 리.”

미래에서 온 남자와 미래를 바라보는 남자.

마주 보며 미소 지은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

지미 힐을 만난 다음 날.

프레드로 저택으로 마거릿 대처가 찾아왔다.

그녀는 이번 10월 8일에 열린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을 축하하네, 대처 군.”

“감사합니다, 남작님. 남작님의 조언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알버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대처는 준영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런던에 있는 미스터리 푸드 직원들도 선거 운동을 많이 도와주셨어요. 캡틴 리에게는 정말 큰 신세를 졌습니다.”

“뭘요. 신세는 줄곧 제가 지고 있었는데요.”

그동안 대처나 그녀가 몸담은 법률 사무소는 준영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시대에서 활동할 수 있게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업에서도 법률적인 문제나 각종 세무와 관련된 업무들을 처리해 주었던 것.

대처가 알뜰하게 도와주지 않았다면 준영의 사업도 그렇게 번창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에 준영은 선거 자금과 인력을 지원하며 대처의 당선을 도왔다.

“이번 선거는 노동당이 우세할 줄 알았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그렇진 않더군요.”

대처의 말에 알버트는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노동당 대표인 휴 게이츠켈이 한 실언 덕분이지.”

“네, 그 실언은 확실히 역효과를 불렀죠.”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 후보들은 빈부 격차를 줄이고 국민의 복지와 연금을 늘리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이에 대해서 보수당에서는 ‘현실성이 없다.’라며 비판했고, 언론에서도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은 없지 않나?’라는 의문을 보였다.

이에 대해 휴 게이츠켈은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세금 인상 없이도 복지 정책 확대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유권자들에게 의심을 사고 말았다.

자신이 없으니 큰소리를 친 게 아니냐는 것.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는 점이 의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있을 수 없어. 아니, 당장은 없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큰 부담을 안게 되고 증세를 피할 수 없게 되지.”

이런 부담은 차기 정권, 다음 집권당, 다음 세대의 유권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그렇기에 알버트는 휴 게이츠켈의 발언을 무책임하다고 보았다.

“그 덕에 노동당은 100표가 넘는 격차로 패했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야. 대처 군, 자네도 항상 이 점을 주의하도록 하게.”

“명심하겠습니다, 남작님.”

“그래, 부디 초심을 잃지 않고 뜻을 펴기를 기원하겠네.”

준영도 방금 알버트의 말을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경솔한 언행으로 자신이 쌓은 업적에 먹칠한 레전드 선수들이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쌓은 공든 탑을 생각해서라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

“어이, 이드송. 오늘 스코어는 몇 대 몇인 것 같아?”

라커룸에서 출전 준비를 하던 펠레.

그는 자신에게 물음을 건넨 이를 바라보았다.

지난 시즌부터 절친한 친구이자 찰떡 콤비가 된 로저 헌트.

몹시 궁금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에게 펠레는 고개를 저었다.

“말 안 할 거야. 예상 따위 절대 하지 않을래.”

“이런, 평소 같지 않게 왜 그래?”

“평소 같은 마음가짐으로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잖아. 오늘 맞붙는 놈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번 14라운드 원정 경기의 상대다.

올 시즌 맨유는 선두 경쟁에서 약간 뒤처진 상태지만, 절대 가볍게 볼 팀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팀에는 펠레가 원수같이 여기는 놈들이 있었다.

“존 Y. 리, 바비 찰튼… 이놈들에게 제대로 복수하지 못했지. 오히려 던컨 에드워즈에게 당해 버리기나 하고 말이야.”

“어쩔 수 없잖아. 그 셋은 잉글랜드, 아니 유럽에서도 톱클래스 수준의 선수들인걸.”

라이벌 팀 선수들이라고 하지만, 로저 헌트는 그 삼총사들이 부러웠다.

풋볼 리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명성이 높은 스타플레이어들이니 말이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 반드시!’

친구 펠레 덕분에 그렇게 될 기회가 가까이 오고 있었다.

이번 시즌 우승을 하면, 다음 유러피언 컵에 출전할 수 있을 테니까.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 안 돼! 그놈들을 밟고 올라서야 정상으로 갈 수 있다고!”

“그래, 정상에 올라야지!”

“언제까지 유나이티드 놈들에 뒤처져 있을 순 없어!”

동료들 모두가 펠레에게 호응하고 나섰다.

그중에 가장 크게 목소리를 높이는 건 지난 라운드에 첫 데뷔전을 치른 17세의 애송이였다.

“이번에야말로 유나이티드 놈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 주자고요!”

“하하핫, 말 잘했다, 캘러헌!”

이안 캘러헌.

장차 리버풀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게 되는 사나이.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역대급 유망주는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거인과 싸울 각오를 다진 상태였다.

‘유나이티드의 던컨 에드워즈도, 웨스트햄의 바비 무어도 다 지금 내 나이 때 데뷔해서 스타가 되었어. 나라고 못할 거 없지!’

유럽 챔피언이라는 거인을 쓰러트리고 새로운 별로 등극하리라.

굳게 다짐한 캘러헌이 소리 높여 외쳤다.

“리버풀에 승리를! 유나이티드에 굴욕을!”

“오오, 승리를 위하여!”

붉은 제국의 기반을 다져 놓은 레전드의 외침.

리버풀 선수들은 그에 호응하며 라커룸을 나섰다.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안 캘러헌은 리버풀에서 통산 857경기를 출전하며 다섯 번의 리그 우승과 두 번의 FA컵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도 두 번 제패한 레전드 플레이어입니다.

1959-60 시즌에 첫 데뷔를 했지만, 제대로 포텐이 터진 건 2년 후부터였지요.

그는 엄청난 스태미나를 바탕으로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 줬기에 리버풀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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