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89화 (189/400)

Round 189. 갑작스러운 방문자

“무슨 일입니까, 체트리?”

준영의 물음에 체트리는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워낙 숨이 찼기 때문이다.

“그게… 나리께서 말씀하시는데, 석유 사업에 중요한 협력자가 왔다고…….”

“그래요?”

석유라는 단어에 준영은 냉큼 저택으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자신이 항상 신경 쓰고 있는 북해 유전과 관련된 일 같았으니까.

‘중요한 협력자라……. 누구지? 석유 회사 관계자인가?’

저택에 도착하자, 고급 롤스로이스 세단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차량을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준영이 들어오자, 리즈가 와서는 부랴부랴 물수건을 건넸다.

그것으로 땀을 닦은 준영이 그녀에게 물었다.

“손님이 오셨다던데?”

“네, 할아버지랑 응접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누군지 들어 봤어?”

“그게, 거스라는 분인데, 네덜란드 사업가라고 했어요.”

“거스?”

그 이름을 들으니 준영의 머리에 곧장 떠오르는 사람은 구국의 명장 히딩크.

하지만 지난번에 봤던 거스 히딩크는 아직 초딩에 불과했다.

“나이가 드신 분이었는데, 할아버지보다 연장자로 보였어요.”

“흠… 어떤 사람인지는 직접 봐야 알겠군.”

준영은 바로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 문 앞에는 알버트의 경호를 맡고 있는 카밀과 거스라는 사업가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란히 서 있었다.

“남작님, Mr. 리가 왔습니다.”

카밀은 곧장 노크를 해서 준영이 당도했음을 알리며 문을 열었다.

응접실 안으로 들어간 준영은 알버트와 차를 마시고 있던 노인을 바라보았다.

점잖으면서 살짝 날카로운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처음 뵙습니다. 존 Y. 리라고 합니다.”

“반갑네. 자네가 소문이 자자한 잉글랜드 축구의 영웅이로군.”

자리에서 일어나 준영에게 악수를 건넨 노인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장 밥티스트 아우구스트 거스 케슬러라고 하네. 로열 더치 쉘의 회장을 맡고 있지.”

영감님 이름 참 길다 싶던 준영은 로열 더치 쉘이란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21세기에도 종종 보던 노란 가리비 엠블럼의 석유 회사.

그 유명 회사의 회장님이라니!

알버트는 준영을 자리에 앉히며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지난달 네덜란드 연안 지역에서 유전 지대가 발견되었네. 북해에 석유가 있다는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어.”

“그럼 케슬러 회장님이 오신 것도 그 때문이군요.”

준영의 말에 거스 케슬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높아졌으니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

준영은 그동안 알버트가 북해 유전과 관련해서 바쁘게 활동한 것을 알고 있었다.

영국과 미국의 토목 기술자와 석유 시추 업체들을 알아보는가 하면, 대륙붕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정계 인사들과도 만나고 있었다.

그러다 로열 더치 쉘이라는 대어를 낚아 올린 모양.

‘근데 이건 대어 수준이 아니라 고래가 아닌가?’

잘못하면 자신들까지 집어삼킬 수 있는 고래.

즉, 자신들은 증명만 하고, 북해 유전 개발 이권은 로열 더치 쉘이라는 거대 기업이 몽땅 독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냥 반길 만한 만남은 아니로군.’

자칫하면 먹힌다!

정신을 바싹 차린 준영은 케슬러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Mr. 리, 자네도 사업가라지? 유전 개발에 관심이 많다던데?”

케슬러의 물음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석유는 앞으로 100년은 인류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자원이 될 테니까요.”

“훗,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랑 똑같은 말을 하는군.”

케슬러 회장의 부친은 사업가이자 석유 탐사 전문가였다고 한다.

로열 더치 쉘의 전신인 네덜란드 왕립 석유 회사의 대표를 맡아 사업의 토대를 쌓았다고.

“거기다 축구 선수라니…….”

“예? 축구 선수가 사업하는 게 이상해 보이십니까?”

혹시 탐탁잖게 여겨지는 걸까?

현재 영국에서 축구는 서민들의 인기 스포츠였다.

그렇다 보니 일부 구시대적 사고를 가진 높으신 분들은 못 배워 먹은 놈들의 유희라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케슬러 회장도 그런 부류가 아닌가 했지만…….

“아니, 문제는 없네. 우리 형님과 동생, 사촌들이 축구 선수 출신이어서 말이야. 다들 헤이그에 있는 HVV에서 뛰었지.”

“그러셨군요. 회장님은 축구를 안 하셨습니까?”

“난 테니스를 했어. 그래도 형제와 사촌들이 다들 축구를 했으니 곧잘 즐기긴 했지.”

그렇다 보니 케슬러 입장에선 좀 묘한 인연이라 여겨진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석유 재벌 가문과 현역 축구 선수 사업가의 만남이라니.

어째 죽이 맞을 것 같지 않은가.

“아무튼 북해 유전 말인데, 마음 같아서는 곧장 탐사를 진행하고 싶지만, 내 맘대로는 할 수 없어.”

“하긴 실무자들의 생각은 다를 테니까요.”

사실 케슬러가 회장이긴 하지만, 현재 경영에 있어 완전한 권한을 가진 건 아니었다.

1949년 이후로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중재와 자문 위주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현재 회사 내부에서 찬성파와 반대파가 대립하고 있어. 찬성파에서는 영국의 대륙붕 법안이 통과되면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지.”

북해 유전은 이미 19세기부터 가능성이 점쳐지던 자원이다.

그동안 기술이 부족해서, 전쟁으로 인한 주변 국제 정세 때문에 미뤄졌다.

그런 문제들이 해결된 지금에 있어서는 불분명한 미래, 경제성의 유무가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어 보라.

다들 영국이 북해 자원에 대한 큰 기대를 품고 있으니 그런 법안을 제정해 통과시켰다고 볼 것이 아닌가.

그땐 반대파 역시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현재 열쇠는 어르신이 쥐고 있다는 거군.’

현재 대륙붕 법안 통과를 배후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알버트 J. 프레드로.

북해 유전이라는 미래의 성찬을 놓치기 싫은 케슬러나 찬성파 입장에선 법안이 통과되도록 그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권은 보장되겠군. 그게 주식이든 배당 수익이든 간에 말이야.’

준영은 알버트와 운명 공동체였다.

현재 진행하는 사업들도 그의 자문이나 소개에 힘입어 성공했다.

그에게 득이 되는 건 준영에게도 이득이었다.

‘가만히 앉아서도 떡고물이 떨어질 테지만……. 더 많이 얻을 방법은 없을까?’

잠시 궁리하던 준영은 좋은 방법을 하나 생각해 냈다.

“법안 통과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관심을 키운다? 어떻게?”

“광고를 이용하는 거죠. 예를 들자면 북해에 미래가 있다, 뭐 이런 식으로.”

준영은 여기에 A보드 광고판으로 꽤 쏠쏠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자신의 광고 회사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또한 21세기에 곧잘 이용되던 광고 트럭도 이 시대에서 좋은 홍보 수단이 될 것이다.

“확실히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지면 법안 통과에도 영향이 가겠지.”

알버트는 찬성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케슬러는 다소 탐탁잖은 기색이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 경쟁 업체들도 움직일 텐데?”

“그렇죠.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반대파를 압박할 수단이 되지 않겠습니까?”

꾸물거리다간 미래의 성찬을 다른 놈들에게 뺏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내부 여론이 들끓으면 반대파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게 준영의 생각이었다.

“거기다 관심이 커지는 만큼 투자도 많아질 거라 봅니다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군. 그래, 자네 말대로 진행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케슬러는 이후에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눈 후, 저택에서 떠났다.

다음번에 더 좋은 만남을 기약하면서.

***

케슬러 회장이 떠난 후.

알버트는 그의 앞에서 말하지 않은 사실을 준영에게 알려 주었다.

“곧 있으면 발등에 불이 떨어질걸. 미국 쪽 업체들도 움직일 테니까.”

“미국 쪽 업체면…….”

“소코니 모빌 오일(* Socony Mobil Oil Company, 현재의 엑슨 모빌)이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소코니 모빌의 전신이야.”

“와, 로열 더치 쉘 못지않은 메이저 업체군요.”

이번에 로열 더치 쉘과 접선하긴 했지만, 알버트는 그들에게 마냥 매달릴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주도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쪽에만 매달려서는 종속되고 말 테니까.

그래서 그는 고래만 낚아 올린 게 아니라, 공룡까지 끌고 오기로 했다.

“미국에도 정보를 흘리신 겁니까?”

“일부러 흘린 건 아니야. 해양 시추 기술 관련 업체들을 알아보다 보니 저쪽에서 알아서 냄새를 맡은 거지.”

“그렇군요. 그럼 우린 두 거대 기업이 자원을 두고 대치하는 과정에서 떨어지는 이권을 차지하는 겁니까?”

“그뿐만은 아니지. 두 거대 기업의 대치가 볼만할 거란 말이지. 이를 이용하면 앞서 자네가 말한 대로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켜 투자를 끌어올 수 있는 거야.”

기존의 거대 세력에 비하면 알버트의 사업체는 기술이나 자금, 인지도 모든 면에서 부족한 게 현실.

그러므로 양대 세력의 경쟁에서 얻을 수 있는 이권을 차지해 가면서, 대중의 관심과 투자를 얻어 덩치를 키워 나갈 계획이었다.

“두 기업이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텐데요?”

“물론 그렇지. 하지만 북해는 중동이나 아프리카같이 강대국의 기업들이 감히 횡포를 부릴 수 있는 지역이 아니야. 도를 넘은 견제는 불가능할 거란 얘기지.”

더구나 알버트는 영국 정계, 보수당이 뒤에 있었다.

거기다 버킹엄 궁전에 계신 귀하신 분도 북쪽 바다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무엇보다 우리의 강점은 확신이 있다는 거야. 북해 석유가 세계 3대 석유가 될 수 있다는 확신. 하지만 저들은 가능성만 보고 있을 뿐이지.”

확신을 가진 쪽과 가능성을 두고 있는 쪽은 적극성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

알버트는 그 확신이 성공의 발판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런 믿음은 준영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더 뚜렷해지는 석유 재벌 구단주의 꿈에 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이드송! 문 좀 열어 보렴, 이드송!”

브라질 상파울루주 산투스의 주택가.

돈지뉴와 그의 부인 셀레스티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아들의 방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엄청난 축구 실력으로 펠레라는 별명을 얻은 아들.

브라질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월드컵 대표로 선발된 녀석은 쥘리메컵을 갖고 돌아오겠다며 스웨덴으로 떠났다.

그러나 브라질은 결승에서 잉글랜드에게 3 대 2로 역전패.

울분이 가득한 상태로 귀국한 펠레는 한동안 필드에서 미쳐 날뛰었다.

상대 팀을 거의 학살할 기세로 골을 넣었지만…….

‘소용없어! 여기서 아무리 잘해 봤자 놈들에게 복수할 수 없잖아! 앞으로 4년이나 어떻게 기다리라고!’

그렇게 분통을 터트린 펠레는 감독과 구단주에게 해외 이적을 요청했다.

물론 산투스 FC 측은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러자 펠레는 바로 칩거에 들어가 버렸고, 최근에는 단식 투쟁까지 벌였다.

당연히 그의 부모는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흑흑, 대체 그놈의 월드컵이 뭐라고…….”

“이드송, 너 자꾸 이럴 거냐!”

아내의 눈물을 본 돈지뉴는 참다못해 발로 문을 차 부수고 아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황당해하던 부부는 책상에 남겨진 아들의 편지를 보았다.

<유럽으로 갑니다. 존 Y. 리, 바비 찰튼 그 두 놈에게 복수할 겁니다.>

“아이고, 이 녀석이 기어코!”

부부는 허둥지둥 아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두 사람이 편지를 보았을 때, 이미 펠레는 대서양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

로열 더치 쉘은 네덜란드 왕립 석유 회사와 영국의 쉘 트랜스포트 트레이딩 사가 합병해서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본문에 소개된 장 밥티스트 아우구스트 거스 케슬러는 로열 더치 쉘을 석유 화학 산업 회사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한 인물이죠.

그의 형제 돌프 케슬러, 헤르만 케슬러, 사촌인 토니 케슬러와 요한 케슬러 이 4명 모두 20세기 초에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뛰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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