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26화 (126/400)

Round 126. 돌발 악재

“누가 저놈을 막아!”

“분명히 슛을 갈길 거다!”

공격수든 하프백이든, 포지션을 따질 틈도 없이 풀럼 선수들이 준영을 둘러쌌다.

지미 힐의 태클을 피해 낸 준영은 연달아 들어오는 상대의 인터셉트 시도를 절묘하게 뚫어 냈다.

“우와!”

“역시 마법사!”

준영의 개인기에 관중석에서 큰 환호성이 일어났다.

좁은 공간에서 공을 발끝으로 살짝 차올려 상대 머리 위로 넘기고, 돌아서서 상대 차징을 밀치며 포위망을 뚫어 내는 솜씨는 절로 탄성이 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풀럼 선수들도 질긴 구석이 있었다.

“그냥은 못 간다!”

“놔라, 이것들아!”

준영은 유니폼을 잡고 늘어지는 그들을 간신히 뿌리쳤다.

그러곤 심판을 째려봤지만, 그저 인플레이 하라는 눈길을 보낼 뿐.

‘이런 것도 파울 안 불다니! 확 저 면상에 슛을 갈겨 버릴까?’

그 마음을 억누르며 풀럼 페널티 박스 측면으로 들어간 준영.

그를 막기 위해 수비수들이 달려들었다.

한 차례 접어서 1차로 따돌린 그는 두 번째 접는 동작으로 뒤이어 들어온 수비수의 태클을 피해 냈다.

“좋아, 다 제쳤다!”

“이번에야말로 슛… 앗!”

슛을 할 것처럼 보이던 준영은 슬쩍 중앙에 있던 숀에게 패스를 보냈다.

준영의 슈팅 포즈에 낚여 골대 측면으로 나왔던 골키퍼는 중앙을 훤히 비워 버렸다.

당연히 가볍게 밀어 넣는 숀의 슈팅을 막아 낼 수 없었다.

“역전! 재역전 골!”

“캬아! 이렇게 또 경기를 뒤집다니!”

너 나 할 거 없이 탄성을 터트린 관중들은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준영과 숀에게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축구 황제 펠레가 가장 재밌다고 이야기하는 3 대 2의 스코어.

물론 역전하고 다시 역전당한 풀럼 선수들은 이 상황이 재밌을 리 만무했다.

“이렇게 당하고 말다니…….”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시간은 충분히 남았어!”

골을 먹은 후 풀럼은 서둘러 수습에 나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아 있는 소도 빼앗기고 말 테니까.

더구나 후반전에 남은 시간은 20분. 잘하면 소도둑놈이 훔쳐 간 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볼 배급은 제가 할게요. 로이와 지미는 최전방을 맡아 줘요.”

“걱정 마. 가루가 될 때까지 유나이티드 골대에 달려들 테니까.”

조니 헤인스가 미드필드로 내려오자, 맨유 하프백들에게 봉쇄당했던 풀럼의 패스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패스가 살아나면서 풀럼의 볼 점유율이나 공격 횟수도 높아졌고, 이로 인해 수비의 부담도 한결 줄어들었다.

“역시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니까.”

“퍼기야, 주절댈 시간 있으면 수비 좀 거들어. 멀뚱히 있지 말고 압박을 하라고!”

전방 압박.

준영이 알렉스와 같은 풋내기 공격수들에게 요구하고 강조하는 플레이 중의 하나였다.

공을 못 빼앗더라도 상대 수비수가 가진 공을 우리 지역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방해하면 그만큼 방어에 수월하니까.

전력이 예전 같지 않은 맨유 입장에서는 모두가 수비에 동참하는 플레이가 중요했다.

“이 한 골을 반드시 지킨다! 절대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마!”

“Aye Aye, Sir!”

되살아난 풀럼의 공격은 만만치 않았다.

마치 송곳처럼 찔러 주는 조니 헤인스의 패스를 받아 로이 벤틀리와 지미 힐, 아서 스티븐스가 부지런히 맨유 진영을 들쑤시며 슈팅을 만들어 냈다.

후반 29분에 아서의 슈팅이 골대 옆을 아깝게 스쳐 지나갔다.

5분 후에는 지미가 측면 돌파 후 중앙으로 꺾어 준 컷백이 로이의 발을 맞고 골대를 넘어가는 아찔한 상황이 있었다.

물론 맨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후반 36분, 어니 테일러의 중거리 슛이 골키퍼 토니 마세도의 펀칭을 맞고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코너킥에서는 숀의 헤딩슛이 아깝게 골키퍼 정면으로 날아간 일도 있었다.

“아무래도 점수는 더 이상 안 나올 것 같아.”

“그러게. 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경기도 유나이티드 쪽에서 더 주도하고 있으니 말이야.”

기자들이 보기에 경기는 맨유의 승리로 굳혀지는 듯했다.

풀럼 쪽에서 동점 골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

조니 헤인스가 분투하고 있지만, 엄청난 활동력을 가진 바비 찰튼과 철벽같은 수비력과 뛰어난 경기 조율 능력을 가진 준영을 넘지 못했다.

“젠장, 벌써 시간이…….”

“힘내! 아직 공격 찬스가 남아 있다!”

후반 45분, 헤인스의 패스를 받은 아서가 측면을 내달리다 맨유 문전을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그런 크로스로는 어림도 없어.”

그리 빠르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크로스.

풀쩍 뛰어오른 준영은 머리로 공을 걷어 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말았다.

‘아니, 이 자식, 왜 뛰지 않은 거야?’

공중전을 체념한 걸까, 아니면 점프할 타이밍을 놓친 걸까.

아무튼 로이 벤틀리는 뛰지 않았다.

공중에서 지탱할 것이 없어지자, 준영은 로이의 어깨를 넘어 거꾸로 필드에 떨어지고 말았다.

쿠웅-!

“주장!”

돌발 사태에 맨유 쪽은 물론 풀럼 선수들도 깜짝 놀랐다.

준영이 걷어 낸 공을 잡아 슈팅을 날리려던 조니 헤인스도 멈칫해서 공을 밖으로 걷어 냈을 정도.

“아우, 젠장…….”

“괜찮아, 리틀 존? 머리를 부딪치지 않았어?”

해리 그렉의 물음에 준영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살을 찢어발기는 듯한 통증이 오른쪽 어깨에서 화끈하게 일어났다.

“으으윽… 파, 팔이……!”

“팔이 안 움직여? 설마 어깨를 다친 건가?”

지면에 떨어지는 순간, 오른쪽 팔을 내민 덕에 머리는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깨에 심한 충격이 전해졌다.

어찌나 아픈지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무지막지하게 밀려왔다.

“이거 영 좋지 않구만.”

부리나케 필드로 뛰어 들어온 팀 닥터도 준영의 상태를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치료를 받는 게…….”

“크윽, 안 돼요. 경기 아직… 안 끝났…….”

우드득!

억지로 몸을 일으켰던 준영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격통.

해리가 부축해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다시 쓰러질 뻔했다.

‘으으윽! 트라우트만 그 아저씨는 대체 목뼈가 부러지고 어떻게 뛴 거야?’

괜히 레전드가 아니구나.

결국 준영은 경기장 밖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다.

관중들이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이, 기자들은 다시 경기가 재개된 필드로 카메라 렌즈를 돌렸다.

10 대 11의 상황.

종료 직전에 전력의 핵심이 이탈한 위기 상황이었지만, 맨유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똘똘 뭉쳐 무사히 경기를 마쳤다.

“이겼다! 드디어 웸블리야!”

“좋긴 한데…….”

선수도, 서포터들도 미소를 짓지 못했다.

그나마 팀을 지탱해 주던 핵심 선수가 부상당했으니까.

아직도 한참 남은 가시밭길을 어찌 헤쳐 나가야 할지 답답했던 그들은 부디 준영의 부상이 심각한 것이 아니기를 빌었다.

***

준영은 바로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의 상태가 걱정되어 따라온 머피 코치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지나치게 나쁘지 말아야 할 텐데.

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준영을 진단한 의사가 말했다.

“어깨 탈골이군요. 다행히 부분 파열 같으니, 바로 교정 치료를 하겠습니다.”

주사로 진통제를 놓은 의사는 겨드랑이에 발을 대고 준영의 팔을 바깥으로 당겼다가 어깨뼈를 원래 위치로 맞춰 넣었다.

그 과정에서 격통을 느꼈던 준영은 비 오듯이 땀을 흘렸다.

“진통제 놓은 거 맞아요? 여전히 아픈데…….”

“당연하죠. 금방 낫진 않아요. 3∼4주는 보호대를 하고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그럼 시합은…….”

“방금 못 들었습니까? 손상된 인대 조직이 아물 때까지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요.”

잘못하면 재발성 탈골로 이어짐은 물론 만성 통증과 관절염이 생길 수 있다고.

“이런 부상은 6주는 봐야 됩니다. 석 달에서 반년까지 물리치료를 해야 하고.”

“맙소사…….”

21세기에서도 이 정도의 부상은 당해 본 적이 없었다.

절로 한숨을 토하는 준영에게 머피 코치가 말했다.

“그래도 이만하니 다행이야. 난 쇄골이라도 부러진 게 아닌가 걱정했었으니까.”

“하긴 그랬으면 시즌 아웃이었겠죠.”

쓴웃음을 짓는 준영에게 의사가 보호대를 씌워 주고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명심하세요. 최소 3주는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술을 멀리하고, 토마토와 블루베리 같은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세요.”

‘3주라…….’

진료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던 준영은 앞으로의 일정을 떠올려 보았다.

3월 29일 셰필드 웬즈데이 원정 경기.

3월 31일 아스톤 빌라 원정.

여기서 3월 일정은 끝난다. 문제는 4월 일정이었다.

“4월 4일 선더랜드와 홈경기, 그다음 날에 프레스턴 노스 앤드와 경기가 있죠?”

준영의 물음에 머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틀 후인 4월 7일에 선더랜드 원정, 12일에는 토트넘 원정이지.”

거의 12월 말 크리스마스와 박싱데이에 필적하는 미친 일정이다.

그 가시밭길을 통과해야 할 상황에 부상 이탈이라니!

‘더구나 최소 3주 안정이라고 하지만, 재활이나 경기 감각 올릴 걸 생각하면 그보다 더 걸릴 수도 있어.’

괜히 의사가 6주를 봐야 한다고 말한 게 아니다.

더구나 재발 가능성도 있다고 했으니 복귀 후에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벌써부터 유리 몸이 되는 건 사양인데…….”

어쨌거나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최선을 다해 팀원들을 돕고, 빨리 회복하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존, 4월 일정에 대해서는 신경 꺼. 5월에 복귀하는 걸 생각하고 열심히 치료와 재활에 힘쓰도록 하라고.”

“리그 경기는 포기하라는 겁니까? 언론에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유감스러워하는 준영의 등을 머피 코치가 철썩 후려쳤다.

“인마, 너만 유나이티드 선수인 줄 알아? 포기할 놈은 아무도 없어.”

일정이 미쳤든 어쨌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 경기에 나갈 것이다.

“물론 이기지 못할 수도 있고, 형편없이 깨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다들 뛰면서 한 골이라도 더 넣으려 할 거다.”

“그렇군요. 끝까지 싸우는 거군요.”

“살아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거지. 끈질기게 말이다.”

끈질기게.

머피의 그 말을 준영은 마음속에 새겼다.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다.

5월에 웸블리에서 벌어지는 FA컵 결승도 있고, 유러피언 컵 준결승도 남아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회복되도록 애쓰겠습니다.”

“그래, 절대 조바심을 내거나 무리하진 마. 난 네 녀석을 우리 팀에서 오래오래 써먹고 싶으니까.”

“스탠리 매튜스 아재처럼요?”

“하하핫, 그보다 더 오래 써먹을 수 있으면 좋지.”

준영은 예전에 블랙풀과의 경기에서 스탠리 매튜스가 선수들을 독려하던 말을 떠올렸다.

‘끝날 때까지 포기해선 안 돼! 그럼 최후의 기회까지 잃게 되는 거야!’

그가 했던 말대로, 준영은 끝까지 싸워 보기로 했다.

포기하지 않고 뛰고 또 뛰다 보면, 남아 있는 기회에서 역사와 다른 결실을 거둘 수 있을 테니까.

***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 야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요기 베라의 말이지요.

살면서 축구에서 그에 걸맞은 상황을 세 번 봤습니다.

2002년 16강 이탈리아전, 2010년 런던 올림픽 8강 영국전, 그리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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