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46화 (46/400)

Round 46. 대책 마련

기분 좋은 대승으로 유러피언 컵을 시작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하지만 그들에겐 쉴 틈이 없었다.

사흘 후인 9월 28일에 리그 경기 일정이 잡혀 있었으니까.

상대는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였다.

‘맨유가 뮌헨 비행기 참사로 쇠락한 이후, 1957-1958시즌에 우승을 거둔 팀이지.’

단순한 어부지리 우승도 아니다.

준영이 터너 신부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당시 이 늑대 군단은 리그 42경기에서 28승 8무 6패를 기록했다.

득점은 리그 2위인 103골이었고, 실점은 최저인 47골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최저 실점이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뛰어난 수비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영국 축구 레전드 수비수로 꼽히는 빌리 라이트.

그가 바로 이 늑대 군단의 주장이었다.

‘스탠리 매튜스 다음에 빌리 라이트라……. 레전드들이 계속 튀어나오는구나.’

준영이 흥분감에 도취된 사이, 맨유 코칭스태프는 머리를 맞대고 다음 경기 대책을 모색했다.

“체력 회복이 관건입니다. 다들 내색은 안 하지만, 연이은 강행군으로 많이 지쳤어요.”

머피 코치의 지적에 버스비는 전적으로 동감했다.

이쪽은 사흘밖에 못 쉬는 것과 달리, 울버햄프턴은 닷새의 시간이 있었다.

더구나 맨유는 원정 경기를 치러야 하다 보니 불리한 점이 많았다.

“빌에게 듣자니, 존이 체력 회복에 탁월한 음식과 훈련법을 알고 있다고 하더군.”

“섕클리 감독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그래. 존이 축구를 배운 곳에선 그런 비법도 상식인 모양이라 하더군.”

머피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버스비는 준영을 불러 체력 회복을 위한 비결들을 물었다.

“빠른 체력 회복이요? 일단 땀으로 손실된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해 주는 게 중요하죠.”

“전해질?”

“예. 오렌지, 레몬 같은 과일을 섭취하는 게 좋아요. 먹기도 좋고 흡수하기도 좋게 주스로 만들어서요.”

“과일 주스라……. 저 녀석들은 술을 마시려고 할 텐데 말이지.”

안 그래도 데니스 바이올렛을 위시한 선수들은 맨체스터로 돌아가면 한잔하자고 떠드는 중이었다.

사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평소에도 경기나 훈련이 끝나면 클럽을 들락거리곤 했다.

친목을 다지기 위해 준영도 끼긴 했지만, 술은 가급적 입에 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솔직히 경기 후에 음주는 안 좋아요. 알코올은 근육 회복을 더디게 만들거든요.”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가면 이뇨 작용을 해서 탈수를 부추긴다.

더구나 피로 물질 분해에 힘써야 할 간이 엉뚱하게 알코올 분해에 열중하게 되어 피로가 풀리지 않게 된다.

“음, 그래서 옛날에 허버트 채프먼 감독은 선수들에게 금주령을 내린 거로군.”

“그런 겁니다. 아무튼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하고, 빵과 감자, 고기와 우유, 소금도 두루두루 섭취하면 도움이 됩니다.”

고탄수화물과 단백질, 칼슘은 경기를 뛰고 난 뒤에 빠진 체중을 회복하는 데 필요했다.

“음식은 그렇다 치고, 훈련은?”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러닝 같은 유산소 운동이 좋죠. 몸에 부담이 적은 간단한 레크리에이션 같은 것도 괜찮고요.”

“그럼 훈련이 아니잖아. 그냥 가만히 쉬는 게 더 낫지 않아?”

“아뇨. 적당히 활동을 해 주는 게 체내 노폐물과 피로 물질을 빼는 데 도움이 돼요.”

머피 코치는 여전히 확신이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준영의 이야기는 생소했으므로.

그러나 절친한 섕클리 감독의 증언을 들었던 버스비는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 밖에 도움이 될 만한 건?”

“하체 마사지나 얼음 족욕 같은 것도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신체를 자극해서 몸에 산소를 공급하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거든요.”

“그렇단 말이지.”

버스비는 준영의 설명을 수첩에 꼼꼼하게 적어 놓았다.

“돌아가면 시도해 봐야겠구만.”

“그보다 예비 자원을 활용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아무리 좋은 칼도 자주 쓰면 닳아 버리니까 말입니다.”

준영의 표정은 진지했다.

선수 혹사는 남의 일이 아니니까.

더구나 과거 한국 축구에 툭하면 나왔던 게 선수 혹사였다.

어린 유망주가 연령별 대표팀 경기 다 뛰고, A대표팀에 차출되어 또 뛰고.

소속 팀에 돌아가서 또 뛰고 하니 무릎이 온전할 리 없다.

‘해외파 선수는 A매치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를 왔다 갔다 하다가 몸이 망가지는 일도 비일비재하지.’

더구나 이렇게 혹사로 폼이 떨어져 부진해지면 팬들에게 질타당하고 심리적으로도 위축된다.

이렇다 보니, 역대급이라 찬사를 받던 유망주도 그저 그런 선수가 돼 버리거나 일찍 은퇴하는 일도 많다.

“경기를 뛰다 보면 부상을 당할 때가 있어요. 근데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당한 부상은 더 치명적이죠.”

준영의 말에 머피 코치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변화를 줘야 합니다. 얼마나 빨리 회복될지 알 수도 없거니와, 상대는 우리 주전들에게 대응할 방법을 세워 두었을 테니까요.”

“그렇군. 그럼 누가 적당하겠나?”

“프레디 굿윈, 윌프 맥기네스, 존 도허티, 토마스 숀 코네리가 훈련에서 꽤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하지만 최고는 바비 찰튼이죠.”

“음, 그러고 보니 바비는 올 시즌에 아직 기회가 없었군.”

기량은 충분히 주전급.

하지만 바비 찰튼이 주전으로 올라서지 못한 건 현재 선발 멤버들의 활약이 좋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직 병역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고.

“바비에게 연락해 놓게. 토요일 경기에 뛸 거니까 준비하라고.”

다른 대체 멤버들은 좀 더 두고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을 내렸을 때, 공항 방송이 울렸다.

「맨체스터행 여객기를 이용하실 손님들은 지금 탑승해 주십시오.」

선수들이 움직이고, 준영도 캐리어를 챙겨 활주로에 있는 비행기로 향했다.

“돌아갈 때도 고물 비행기구만.”

더블린에 올 때와 다를 바 없는 프로펠러 비행기.

제트 여객기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시끄러운 프로펠러 비행기들이 더 많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전쟁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설마 진짜 2차 대전 때 쓰던 비행기 아닐까?’

아무튼 골동품 비행기를 보고 있자니 뮌헨 비행기 참사에 대한 걱정이 다시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그 끔찍한 참사를 피할 수 있을지?

맨체스터로 돌아가는 내내 준영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

“비행기 사고를 피할 방법이라…….”

프레드로 저택으로 돌아온 후.

준영은 자신의 고민에 대해 알버트 남작에게 이야기했다.

혼자 끙끙대기보다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게 나을 거라 여겼기 때문.

“기권은 불가능하겠지?”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는 그리 바라는 모양이지만, 버스비 감독님은 절대 안 할 겁니다.”

그동안 준영이 살펴본 바에 따르면 버스비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는 걸 원치 않았다.

세계 무대에서 쟁쟁한 팀들과 겨뤄 봐야 계속 발전이 가능하다 여기고 있었으므로.

“선수들도 마찬가지죠. 순수하게 도전 의식을 가진 친구도 있지만, 대전료가 목적인 이들도 많아요.”

“그럴 테지. 장래를 생각해서도 자금을 모아 두고 싶을 테니.”

프로 선수 생활은 짧다.

아무리 일반 직장인보다 2~3배 많은 주급을 받는다 해도 은퇴 후를 대비하지 못하면 허사.

그러므로 보다 많은 경기에 나가서 대전료와 보너스를 얻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럼 귀국을 앞당기거나 미루는 건 어떨까?”

“일정이 빽빽해서 힘들 겁니다. 협회에서 도와주지도 않을 거고요.”

“그럼 리그 경기를 기권하는 건? 아니면 2군 선수들을 리그 경기에 투입해도 되지 않나?”

“그것도 어려울걸요.”

리그 제패와 유러피언 컵 우승.

버스비 감독과 선수들은 2마리 토끼를 잡는 걸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 일개 선수일 뿐입니다. 버스비 감독님이 신뢰해 주고 있어도 구단 운영엔 끼어들 수 없어요.”

“하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알버트가 준영에게 물음을 건넸다.

“근데 사고 원인이 뭔가? 비행기에 문제가 있었나? 그럼 점검을 받게 하면 간단할 텐데?”

“아뇨. 제가 기억하기로 당시 기상 상태 때문에 공항 활주로에 문제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상 문제라면 더 골치 아프겠군. 사람이 날씨를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니…….”

준영이 한창 알버트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체트리가 봉투 하나를 들고 두 사람이 있는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우편물인가?”

“예, 미스터 리 앞으로 온 겁니다.”

체트리가 나간 후, 준영은 누가 보냈는지 살펴보았다.

아는 사람에게서 왔음을 확인한 후, 그는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우와!”

봉투 안에서 나온 서류의 내용을 본 그의 눈과 입이 사이좋게 동그랗게 변했다.

“무슨 일인가?”

“아, 보딩톤의 찰리 사장이 보낸 겁니다. 알루미늄 캔 특허랑 A보드 광고 수익과 관련한 내역인데…….”

예상했던 수익보다 훨씬 금액이 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받는 급료는 비교도 안 될 정도.

“후후후, 그렇지 않아도 알려 주려 했던 참이었어. 두 사업 다 잘나가고 있는 중이지.”

알루미늄 캔을 쓰고 나서 보딩톤 맥주는 단어 그대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고 있었다.

그레이터맨체스터나 웨스트요크셔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도 판로가 계속 확장되는 중이라고.

“하지만 광고 사업은 그보다 더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

성장에 추진력을 준 사람은 애S턴 마틴의 데이비드 브라운이었다.

그가 가세하면서 A보드 광고판은 축구장뿐만 아니라 럭비, 크리켓, 테니스, 경마 등등 여러 경기장에 설치되었다.

더구나 설치도 쉽고 광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다른 지역에도 금방 퍼져 나갔다.

광고 문의가 쇄도하고, 입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광고료도 더 올라갔다고.

“듣자 하니 런던의 경기장에도 세워졌다고 하더군. 뭐, 안 좋은 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안 좋은 소리요?”

“미관상 좋지 않다나? 너무 상업주의적이라고 그러기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 투덜대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선전을 하는 거지, 구매를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더구나 프로 스포츠는 자금이 오가면서 운영되는데, 거기에 광고 선전 좀 한다고 비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아무튼 계속 꾸준히 수입이 들어올 테니, 백만장자도 금방이겠군.”

“하하하, 다 어르신 덕분이죠.”

“내 덕이랄 게 뭐 있나. 자네가 미래에서 가져온 아이디어가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했을 텐데.”

준영과 덕담을 주고받은 알버트는 살짝 주제를 바꾸었다.

“어느 정도 자본이 생겼으니 다른 사업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

“예, 안 그래도 경공업 쪽으로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이억관이 한창 개발하고 있을 라면, 그리고 일전에 만났던 제프리&조셉 형제와 진행할 의류 브랜드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번엔 석유 개발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예, 그게 궁극적인 목표이긴 합니다만, 아직 바로 뛰어들기는 무리잖아요.”

“하긴 좀 더 밑천을 마련해 둔 다음에 하는 게 좋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어지는 알버트의 이야기에 준영은 귀를 쫑긋 세웠다.

***

예전엔 연령별 대표팀이나 성인 대표팀에 중복으로 차출되어 혹사당한 선수가 많았죠. 남아공 월드컵 때 미드필더 김정우처럼 원래 자기 포지션도 아닌데 뛰었다가 폼을 잃어버린 선수도 있고요.

요즘은 팬들부터 먼저 선수 보호를 외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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