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73화
결전 (1)
단테리온과 루시아의 치정싸움(?) 은 참다못한 루시아가 검을 들어 안 드로이드를 박살 내면서 끝나게 되 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복잡 미묘한 분 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단테리온과 루시아, 영식의 대화를
고스란히 들은 살바토르 길드원들은 복잡한 심경으로 영식을 보기 시작 했다.
“영식 오빠….”
“아니야.”
“예전에는 그쪽 취향이었구나.”
“아니라고.”
“그쪽이라뇨. 채린 씨, 그건 차별과 편견이 들어간 말입니다. 영식 씨, 당당해지세요. 전혀 부끄러울 것 없 습니다.”
영식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오해의
시선에 괴롭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영식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길드 원들을 바라보았지만 과거의 일에 대해서 정확하게 그도 모르는 이상 변명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다들 그런 시선으로 주인님을 보 지 마세요! 주인님은 그런 분이 아 니라고요! 제가 알고 있는 걸요!”
‘상황을 심각하게 만든 건 너도 마 찬가지 야.’
인류의 명운을 건 전쟁을 순식간에 치정싸움으로 만들어버린 것에는 루 시아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루시아는 영식의 두 팔을 끌어당기 며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죠, 주인님? 주인님은 사랑하 는 절 버리시고 다른 분에게 눈을 돌릴, 그런 분이 아니죠?”
‘차마 무서워서 그럴 수가 없다.’
영식은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다시 삼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채린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오빠는 인기가 많네 옴므파탈이 야 아주?”
“?조용히 해.”
“히히, 왜? 좋지 않아? 한 사람을
이 정도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드물 다고!”
‘그 사랑이 너무 과해서 문제지.’
“이렇게 생각해 보니 루시아 언니 가 두 명으로 늘어난 거나 마찬가지 네?”
‘어디서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아. 모두 여기로 모여주세요.”
영식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길드원 들을 불러 모았다.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정리해야 했다.
“다들 방금 전 대화로 생각이 복잡 해지신 건 이해하고 있습니다.”
“뭐, 아무래도 이건 좀 충격이었다 고 할까….”
“설마 단테리온이 영식 씨에게 집 착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라고는 상 상도 못 했으니까요.”
“중요한 점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웃고, 떠들고 있어도 이 한 가지는 반드시 명심하셔야 합니다.”
영식의 몸에서 흘러나온 무거운 기 운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칼을 내 려치듯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단테리온은 적입니다. 타협이 불 가능한 존재입니다. 우리들은 목숨 을 걸고 그의 군대와 싸워, 이겨내 야만 합니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마세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 싸움만 끝나면 지 구로 돌아가시는 것도, 에르노어 대 륙에서 조용히 사는 것도, 뭐든지 자유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죽는 건 아쉽잖아요?”
“그렇죠. 이제까지 어떻게 그 고난 을 넘어왔는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죠.”
한성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웃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적 어도 단테리온이 우스운 존재는 아 니라는 점을 명심해 두세요.”
“으... 네에.”
그의 말에 신나게 영식을 놀리던 채린이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식은 피식 웃음을 홀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풀 죽지 마. 이번 전투만 끝나면 채린이 네 헛소리라도 아주 기쁘게 들어줄 자신 있으니까.”
“헛소리라니 오빠….”
“응? 헛소리 맞잖아?”
“?오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 로 여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네. 역 시 옴므파탈!”
채린은 살짝 삐진 표정으로 쪼르르 유진이 있는 방향으로 도망갔다.
‘딱 이 정도가 좋겠지.’
영식은 길드원들의 표정에 다시금 서린 긴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 였다.
단테리온의 다소 엉뚱한 말로 인해 풀어질 뻔했던 긴장의 끈이 어느 정 도 다시 팽팽해진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고….’
영식은 단테리온과의 대화를 머릿 속에 떠올렸다.
‘웃고 넘길 일은 아니지.’
그에 대한 광적인 집착의 원인이 사랑이라는 점에서는 아무리 영식이 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중요 한 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당연히 창조주들의 사명이 인류를 멸망시켜 이 세계를 손에 넣는 것이 라고만 생각했다.
이제까지 행동을 보면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 았다.
‘신으로 만든다는 건 헛소리 같지만.’
그의 광기 속에 담긴 정보들을 냉 정하게 분석해 봤을 때, 인류를 멸 망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 니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진짜 목적은 뭐였을까.’
영식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생 각을 이어갔다.
이 세계에 괴물들의 창조주가, 자 신이 오게 된 진짜 목적.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 도 알 수 없었다.
‘그 프로젝트란 것에 대해서 정보 를 알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락테온은 이미 죽었고, 단테리온은 그 락테온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메모리칩을 찾는 것밖에 다른 방법은 없겠네.’
영식은 그렇게 생각하며 알렉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비 시간을 3일에서 2일로 줄이 죠.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전군 출정 준비!”
“와아아아아!”
“가자!”
“북방 놈들도 별 것 없구만!”
지난 전투의 대승으로 사기는 이미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커다란 함성 소리와 함께 대륙 연 합군은 다시 북방으로 향했다.
미로처럼 얽힌 협곡을 5만의 정예 병이 진군하는 장면은 영화의 한 장 면처럼 웅장했다.
“루시아, 네가 지냈던 그 기계의 산은 어디쯤에 있었어?”
“이 협곡을 지나면 넓은 황야가 나 와요.”
“황야? 북부 지역은 원래 거대한 협곡이 있는 장소 아니었어?”
“예, 맞아요. 하지만 창조주들이 왔 을 때의 충격으로 북부의 반 이상이 황야로 변했다고 들었어요.”
“아...”
영식은 과거 레비아탄 길드와 함께 공략했던 잊힌 자들의 무덤을 떠올 렸다.
‘그때 분명 북방에 운석이 떨어졌 다고 했지.’
그 운석에서 괴물들의 창조주가 나 타났다면, 북방의 대지의 반이 황야 가 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기계의 산.’
영식은 과거의 기억에서 희미하게 봤던 그 거대한 산을 떠올렸다.
무거운 긴장감이 그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튜토리얼 공간에서 눈을 뜬 이후, 몇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이어져 온 치열한 전투의
종착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황야가 나올 때까지 얼마 정도 걸려?”
“글쎄요. 지금 진군 상황이라면 일 주일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일주일이라.”
협곡의 지형으로 인해 진군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 것치고는 오래 걸 리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도착하는 게 마음이 편하겠네.’
이 긴장 상태가 계속해서 지속 된 다면 오히려 자신이 정신적으로 지 칠 것 같았다.
‘연합군의 사기도 어느 정도 유지 될 거고.’
그가 욕망을 자극해서 사기를 진작 시킨 것은 불타는 장작에 기름을 붙 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시간이 지나 태울 장작이 없으면 생각보다 쉽게 사기는 수그러들었다.
“모두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 두세요.”
영식은 길드원들을 향해 그렇게 말 하며 트럭에 기대 눈을 감았다.
체력이 거의 의미가 없는 신체를 얻었다고 하지만 만전을 기하기 위 해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두는 편 이 좋았다.
“여기서부터 황야가 시작되네요.”
“별다른 습격 없이 도착할 수 있어 서 다행입니다.”
협곡에서 진군하는 사이 몇몇 토종 몬스터가 습격해 오기도 했으나 안 드로이드 군단으로부터 본격적인 습 격을 받지는 않았다.
지금 연합군의 상태는 말 그대로 최상.
연합군이 가진 포텐셜을 한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협곡은 싸우기 불리한 지형이서
걱정이었는데 잘 됐군요.”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뿌연 모래먼 지로 뒤덮인 황야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에게 다가온 황현이 무거 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영식 군.”
“예, 할아버지.”
“저 먼지 너머로 뭔가 거대한 것의 실루엣이 보이네.”
“먼지 너머로요?”
“그래. 내 스킬 중에 투시 스킬이 있거든. 그걸로 보니 뭔가 있는 것 이 확실하게 보이네.”
“잠시만요.”
투시와는 다르지만 영식에게도 비 슷한 기능이 있었다.
‘ 스캔.’
영식은 모래먼지 너머에 스캔을 사 용했다. 주변의 모습이 데이터화 되 어 그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모래먼지 너머에 있는 물체를 본 영식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그 크기만 수 킬로미터.
카르가스가 작은 도마뱀으로 보일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가 모래먼지 너머에 우뚝 솟아올라 있었다.
“기계의 산….”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이 었다.
영식은 통신기를 입에 가져다 대고 소리쳤다.
“전군, 전투준비!”
그의 명령과 동시에 연합군이 분주 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탱크 부대, 시즈 모드로 사격 준 비! 원거리에서 타격 후 나오는 적 들을 일제히 섬멸한다!”
이건 공선전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목적은 적의 섬멸.
얼마나 많은 무기와 함정이 설치되 어 있을지 알 수 없는 기계 산으로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강력한 원거리 화력을 가지고 있으 니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때였다.
“영식 씨, 저희도 준비할까요?”
“이번에도 큰 거 한 방 날려줄게, 오빠!”
“아니. 소환자들은 잠시 대기.”
공성 무기와 달리 소환자들은 공격 을 할 때마다 마력을 소모한다.
‘중요한 건 저 기계의 산이 아니라 거
기서 나오는 안드로이드 군단이니까.’
지금 상황에서 기계의 산을 공격하 는 건 적들을 불러내기 위함이지 큰 의미는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없다고 생각했다.
“영식 군!”
황현의 다급한 외침이 그에게 들려 왔다.
“무슨 일이시죠?”
“우, 움직이고 있네.”
“예?”
영식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 로 황현을 바라보았다.
“저 거대한 산이 모래먼지를 뚫고 움직이고 있어!”
영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쿠구구구구구궁!
황현의 말대로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래먼지가 그 충격에 이기지 못하 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을 가진 기계의 산이 모래먼지를 뚫고 연합군 앞에 나타났다.
‘ 설마.’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산이라고 생 각하던 것.
“이런 미친….”
그 정체는 산 따위가 아니었다. 저 것은 움직이는 자연 재해였다.
그 거대한 위용을 본 소환자들은 전신에 퍼지는 전율에 차마 말을 잇 지 못하고 있었다.
우주 전함.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 병기가 연합군을 향해 그 몸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