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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272화 (272/284)

레벨업 머신 272화

북방으로 (3)

-아아. 이제 제 목소리 잘 들리나 요? 마이크가 파손되어서 잡음이 심 했던 것 같네요.

잔해에서 일어난 안드로이드의 눈 이 붉은빛으로 빛났다.

영식은 그 안드로이드를 바라보며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또 무슨 일이지.”

-하하. 딱히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안드로이드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오랜만에 대장님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했습니다.

“그것 참 감동이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궁금하네요.

“누구 덕분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 냈지.”

-하하. 성실하다는 건 좋은 일이죠.

“성실할 필요도 없는 일에 성실해 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영식은 쯧 하고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이런 쓸데없는 말이나 하자고 귀 찮게 연락한 건 아닐 테고….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사실 단테리온과 더 이상 대화를 나눌 것은 없었다.

그와의 관계는 명확했다.

단테리온은 타협이 불가능한 적이 었고, 자신은 그를 죽여야만 했다.

‘제정신이 아닌 놈이니까.’

그에 대한 얘기는 루시아를 통해 가능한 모두 들었다.

단테리온은 미쳤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미치게 만 들었는지, 아니, 처음부터 미쳐 있던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 해서는 그를 죽여야만 했다.

대륙이 어떻게 되건, 세계가 위험해 지건 영식에게는 별 상관이 없었다.

잔인한 말이지만,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살바토르 길드원 이외에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그는 별 다른 슬픔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편한 얘기가 될 리 가 없겠지.’

애초에 단테리온의 목적이 자신인 이상 대륙이 어떻게 되건 무시하고 숨어든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제안을 하나 하러 왔습니다.

“거절할게.”

- 너무하시네요.

단테리온은 정말 실망했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대장님, 정말로 저와 싸우실 생각 이십니까?

“뭐라고?”

영식은 기가 차다는 듯이 그의 목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안드로이드 를 바라보았다.

모든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신이 아닌 단테리온이었다.

이브의 주민들을 학살하고, 루시아 를 납치하여 영식을 공격하도록 만 든 장본인이 정말 자신과 싸울 생각 이라고 말하다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영식은 다소 거칠게 대답했다.

-아뇨. 과연 그게 무슨 의미가 있 는지에 대해서 여쭙는 겁니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예. 이렇게 북방으로 움직이셨다 는 건, 저를 상대하실 수 있는 가능 성을 찾으셨다는 의미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은 움직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대장님을 설득하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해 당신이 일 궈낸 군대와 싸울 것입니다. 잉그리 움 제국이 멸망했던 그 대전쟁이 다 시 한번 일어나겠죠.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이 대륙에서 살고 있는 모든 존

재가 그 전쟁에 휘말릴 겁니다. 누 가 이긴다 하더라도, 한 줌의 모래 알도 남지 않을 겁니다.

붉은빛을 뿜어내는 눈이 깜빡였다.

[그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 으십니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의미가 있고 아니고를 따지기에는 이미 늦지 않았어?”

그와 자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 이 다른 이상, 결과적으로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 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대장님, 이런 의미 없는 전투는 그만두도록 하죠. 저는 당신과 싸우 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는 놈치고는 꽤나 본 격적으로 시비를 걸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저는 그저 당신이 돌아와 주시길 바랐을 뿐입니다.

단테리온은 특유의 온화한 목소리 로 말을 이었다.

-대장님, 제 신이 되어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신이 되어, 절 사명으 로 이끌어 주실 수 없으십니까? 만 약 그래주신다면 저도 인간들과 싸 우는 것을 멈추도록 하죠.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애초에 너희의 사명은 인류를 몰살시키고 이 대륙을 지배하는 것 아니었나?”

자신의 신이 되어, 사명으로 이끌 어주면 인간들과 싸우는 것을 멈추 겠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단테리온을 비롯한 모든 괴물의 창 조주들이 벌인 일을 되짚어 봤을 때, 그들의 목적은 명확했다.

인류를 모두 죽이고, 이 대륙을 차 지하는 것.

그들은 이 대륙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의 위험이었고 타협할 수 없는 적이었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거 나 의심을 해본 적도 없었다.

다른 사명을 가지고 있다기에 그들 이 보여주는 모습은 언제나 한결 같 았으니까.

-하하하. 뭔가를 착각하고 계셨던 것 같군요. 저희들은 사명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멸망 따위, 아무 관심도 없죠.

“?뭐?”

영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인류의 멸망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자들이 그 누구보다 큰 인류의 위협 이 되다니. 애초에 말이 안 되었다.

-아, 물론 인류가 저희 사명을 달 성하는 데 방해가 되기는 했죠. 특 히 중앙에 있던 그자들…. 그자들은 좀 많이 방해가 되긴 했어요. 그렇 기 때문에 대장님께서 직접 그들을 없애버리자고 명령하신 것 아닙니 까?

기억이 나지 않는 과거.

지금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영식은 묘한 울 렁거림을 느꼈다.

몽유병 환자가 자기가 꿈을 꾸는 사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다니는 살인마라는 얘기를 들었다면 이런 기분일까.

자신의 의지대로 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일을 할 의도조차 없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한 일이 맞 았다.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영식은 속 이 뒤집어지는 듯한 불쾌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너희의 사명이라는 게 결국 뭐지?”

-너희라뇨, 대장님. ‘우리들’이죠.

“입 닥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하하하. 화 나신 대장님의 모습을 보는 건 역시 신선하네요.

그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즐겁다 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저희의 사명은 당신을 신으로 만 드는 겁니다.

“?뭐라고?”

-히히히. 그래, 맞아요. 당신을 신 으로 만드는 거였죠. 대장님, 아아, 대장님. 그런데 생각을 해봤습니다. 당신을 굳이 신으로 만들 필요가 있 을까요? 이미 당신은 저의 신입니 다. 당신만의 저의 모든 것입니다. 대장님이 있기에 제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겁니다.

‘미친놈.’

영식은 광기에 물든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그냥 미친놈이었어.’

혹시나 그 진짜 사명이란 걸 들으 면 그의 말대로 ‘싸우지 않고’ 넘어 가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다 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반응을 보면 그냥 정신 나간 사람이 중얼거리는 헛소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내게 집착하는 거지?’

단테리온이 자신에게 보이는 광적인 집착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영식은 그의 옆에 서서 단테리온을 향해 살기를 보내고 있는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지금 단테리온이 보여주는 모습은 루시아가 그에 대해서 집착하는 모 습과 비슷했다.

‘설마.’

영식은 상상하기 싫다는 듯이 고개 를 저었다.

“단테리온.”

-네, 대장님. 말씀하세요.

“대체 왜 내게 집착하는 거지?”

-대장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뭐라고요, 시바?’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그의 대답에 영식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설마 하던 일이 진짜로 눈앞에 펼 쳐진 상황에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 은 불가능했다.

“자, 잠깐. 그러니까….”

-예, 저는 대장님을 사랑합니다.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영혼이라는 것이 실제한다면 그 모든 것을 당신 에게 바쳐서라도요.

“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사랑이 란 건 말이지….”

영식은 도저히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그 단어가 내포한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 그의 헛된 기대를 한 번에 무 너뜨리듯, 단테리온이 말을 이었다.

-저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습니다. 실제 인간들 사이에서 어 떻게 사용되는지도요. 아마 그 단어 만큼 지금 제가 대장님에 대한 마음 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입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아니, 너는 내가 널 이끌어 줬으 면 좋겠다고 했잖아. 그건 사랑이라 기보단 충성심에 가까운 행동이지.”

영식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아뇨, 지금 제 마음은 충성이라는 가벼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니, 제발 그걸로 해줘.’

-저는 대장님을 사랑합니다. 그래 요. 이 벅찬 마음을, 터질 듯한 감 정을 설명하려면 그 말 이외에는 다 른 말을 상상할 수 없어요.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지금 제 앞에는 예전에 대장님이 앉아 계신 왕좌가 있습니다. 아아, 이곳에 앉아 제게 명령을 내려주던 대장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정말,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 이 짜릿해집니다.]

‘그만둬, 이 새끼야.’

-하아, 하아. 아직도 이 자리에 대 장님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 다. 어서, 조금 더 빨리 제가 있는 곳으로 와주세요, 대장님. 당신은 저 만의 대장님이어야 합니다. 저를 이 끌어주는 신이어야 합니다. 락테온 은 멍청했죠. 신이 되어야 할 대장 님을 방황하고, 망설이는 존재로 만 들어 버렸습니다. 당신은 완벽해야 합니다. 지금 모습은 당신에게 어울 리지 않아요.

영식은 광기에 물든 단테리온의 목소 리를 들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 은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에 대한 그의 집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처음부터 알고 있 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로 미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개소리 하지 마, 이 미친놈아. 무 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단테리온의 말을 듣고 있던 루시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영 식의 팔을 끌어안으며 광기에 물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인님은 내 거야. 너 같은 미친놈 에게 넘겨주지 않아. 주인님은 오로 지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바라보 며,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을 소중히 여기셔야 한다고. 지금 모습은 주인 님에게 어울리지 않다니? 지금 모습 이야말로 가장 완벽하신 모습이야.”

-그건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군요. 지금 대장님의 모습은 완전하지 않 습니다. 대장님의 진정한 모습은 이 렇지 않습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지금 주인님은 너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계신 걸? 지금 주인님이 생각하는 건 나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하,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지 금 대장님은 락테온의 말에 홀리신 것뿐입니다. 모든 진실을 깨달으 면... 그는 다시 저만의 신이 되어주 실 겁니다.

단테리온과 루시아는 서로 언성을 높이며 영식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 장했다.

영식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게 아닌데.’

그가 생각했던 최후의 결전의 모습 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얘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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