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52화
SSS급 안드로이드의 힘 (1)
“그래서… 얘가 락테온이라고요?”
“지금 이름은 이브야.”
“어머! 너무 귀여워요!”
그날 저녁, 영식은 길드원들을 모 아 놓고 이브를 소개했다. 루시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브를 바라보고 있었고 티리아는 요정처럼 귀여운 이브의 외모에 눈을 반짝이며 다가 갔다.
“이리 오렴. 아아, 너무 귀여워요, 영식 씨. 후후후….”
“경고. 본 기체를 이렇게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은 마스터뿐이라고 알 림.”
“아?! 살짝 삐진 표정도 너무 귀 여워요! 어, 어떻게 하죠. 영식 씨?! 이, 이브를 제게 주세요!”
“본 기체의 소유주는 마스터. 타인 에게 양도는 불가하다고 알림.”
이브는 티리아가 영식에게서 자신
을 떨어뜨려 놓으려고 한다고 생각 하는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그녀는 가볍게 티리아를 밀치고는 앉아 있는 영식에게 다가와 그 무릎 위에 앉았다.
“ 엇….”
“자, 잠깐! 지금 뭐 하는 짓이 죠?!”
그런 모습을 루시아가 가만히 두고 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루시아 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브를 노 려보았다. 보랏빛 마력이 그녀의 몸 주변에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이브는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영식의 몸에 등을 기대며 더욱 밀착했다.
“본 기체의 최우선 사항은 마스터 를 지키는 것.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항시 마스터와 밀착해 있 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음.”
“이익! 이제까지는 이렇게 붙어 있 던 적 없었잖아요!”
“이전에 본 기체는 마스터의 호위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 이 좋지 않았음. 오히려 마스터의 움직임에 방해만 되었을 가능성도 작지 않았기 때문에 밀착한 호위는 효율이 좋지 않았음.”
이브는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녹 색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 본 기체는 마 스터를 호위하기에 충분한 성능을 갖춘 상태임. 마스터를 밀착하여 호 위하지 않을 이유가 없음.”
“흥! 그렇다면 주인님의 노예이자 ‘본처’인 제가 그 밀착 호위 역할에 는 더욱 어울릴 것 같네요. 어서 주 인님의 무릎 위에서 비키세요.”
“부정. 본 기체에는 사명을 수행해 야 할 의무가 있다고 알림. 그리고 루시아가 말하는 본처라는 것은 아 직 결정된 사항이 아님. 정보의 정 정을 요구함.”
이브는 루시아가 본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 는지 다소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말 했다.
그녀는 루시아 앞에서 보란 듯이 살짝 몸을 기울여 영식의 가슴에 뺨 을 가져다 대었다.
“이이익! 이 고철 덩어리가! 어서 주인님에게서 떨어지지 못해?!”
“부정. 업그레이드 이후 본 기체의 피부는 인간의 것과 99.98%의 동일 성을 가지게 되었음. 본 기체에게 고철 덩어리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음.”
“흥, 하지만 그 안은 똑같이 고철 일 것 아냐?”
“그런 논리라면 마스터 또한 내부 가 금속 재질로 되어 있다고 알림.”
“으읏….”
루시아와 이브는 서로를 노려보며 경계심을 불태웠다.
“흐음.”
영식은 자신의 옷깃을 꼭 잡고 있 는 이브를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감정표현이 전보다 확실히 더 많 아졌어.’
업그레이드의 영향일까, 아니면 여 성체가 되었기 때문일까 정확히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브는 전 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감정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그와 직접적인 신체 접 촉은 하지 않았었지만, 업그레이드 이후 적극적으로 신체 접촉을 하는 것도 그 증거 중 하나였다.
‘조금 더… 인간다워졌다고 표현해 야 하나.’
아마 지금 그녀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영식은 겉으로만 보면 완전히 인간 과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이브를 바라보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처음부터 등급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인간에 가깝게 만들어지게 되어 있던 건가.’
그렇다면 한 번에 2단계나 등급이 오른 이브가 인간과 같은 외형을 가 지게 된 이유도 설명이 되었다.
생체병기.
그것이 기계가 도달할 수 있는 가 장 궁극적인 형태라는 의미.
‘그렇다면….’
영식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영식은 거칠게 주먹을 쥐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나도… 생체병기의 일종이라는 건 가.’
-치직.
희미하게 들리는 잡음. 눈앞이 순 간적으로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새 하얀 백발을 가진 청년이 영식을 향 해서 무언가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 였다.
-이곳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습니 다.
“크읏….”
영식은 머릿속에 치밀어 오르는 두 통에 짧은 신음을 흘렸다. 기억 속 에서 지워져 있었던, 꿈속에서의 기 억이 떠올랐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프로젝트.”
자신의 이름과 같은 프로젝트명. 영식은 그 프로젝트의 내용에 대해 서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그 프로젝트에 대한 어떤 정보도, 단서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메모리칩.’
락테온이 자신에게 건넨 메모리칩. 그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 에 떠올랐다.
“하아….”
하지만 그 형태도 잘 기억나지 않 는 메모리칩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에는 의문만 또 늘어난 건가.’
그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 대해에 떨어진 것 같았던 처음과 비 교해서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앞으로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조금만 더 알아낸다면 잊고 있던 모든 기억이 떠오를 것 같은 예감.
영식은 살짝 초조해진 표정으로 마 른 침을 삼켰다. 그 진실이 무엇인 지 알고 싶다는 감정과 차라리 알고 싶지 않다는 두 가지 감정이 복잡하 게 뒤엉켰다.
“주인님…?”
“마스터, 몸 상태에 이상이 있냐고 물음.”
“아.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아니
야.”
영식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브 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는 길드원들의 얼굴을 한 번씩 둘러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조급해 할 필요는 없어.’
당장 그 기억에 대해서 찾을 방법 이 없다면 굳이 조급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과거의 진실에 대해서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북방 정벌.’
전력을 키우고, 힘을 성장시킨다.
그리고 북방에 자리 잡은 단테리온 과 그의 세력들을 상대로 싸워 이긴 후 북방 지역을 되찾는다.
그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변하지 않는 목표였다.
‘언젠간… 모든 기억이 되돌아올 날이 오겠지.’
지금 당장은 그가 할 수 있는 일 을 해나가면 될 뿐이었다.
“흥, 그렇다면 네가 주인님의 호위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내가 직접 시험해 줄게.”
“본 기체의 성능을 의심하는 거냐 고 물음.”
“의심하고 있는 것 맞아.”
‘우선 이 두 사람 싸움부터 말려볼 까.’
영식은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험 악한 분위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이 브와 루시아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 을 흘렸다.
‘잠깐만.’
그때, 영식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 각이 스쳐 지나갔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영식은 그의 품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이브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이번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정확히 어느 정도 강해졌는지 영식 은 아직 알지 못했다.
‘일단 출력만 놓고 본다면 내 위 야.’
시간당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영식보다 많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 다. 하지만 실제 전투라는 것은 뿜 어낼 수 있는 에너지의 양만으로 결 정 나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루시아만 하더라도 마력을 에 너지로 환산했을 때 영식이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보다 많은 양의 에너 지를 내뿜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루시아와 영식이 싸운 다면 그녀의 모든 전투 데이터를 파 악하고 있는 영식의 압승이었다.
‘지금 이브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야 해.’
그 시험 대상으로는 루시아만큼 적 절한 존재를 찾기 힘들 것이다.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려던 영식은 잠시 입을 다물고 둘을 지켜보기로 했다.
“주인님의 힘으로 뭐 좀 강해진 건 같지만 과연 주인님의 호위를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심스러운데 말이 야.”
“본 기체의 성능에 대해서는 얼마 든지 증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 림.”
“그럼 지금 저와 대련해 보실래요? 물론, 승자가 주인님의 무릎 위를 차지한다는 조건을 걸고.”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알림.”
이브는 영식의 무릎 위에서 내려와 작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겉모습이 귀여운 소녀의 외모였기 때문에 위압감만 놓고 본다면 로봇 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던 전과는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압감이 느껴 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귀여움에 자연스럽게 미 소가 지어질 정도.
“영식아… 말리지 않아도 괜찮아?”
그의 옆에 다가온 아라가 조심스럽 게 물었다.
“괜찮아. 어차피 이번 기회에 이브 의 힘에 대해서 측정해 볼 좋은 기 회기도 하니까.”
“음…. 그보다 우리들의 동의도 없 이 널 승부의 상품으로 거는 건 좀 마음에 들지 않는데 말이야.”
“하하. 질투하는 거야?”
영식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녀 에게 물었다. 아라는 살짝 뺨을 붉 히며 가볍게 주먹을 쥐어 영식의 머 리를 쥐어박았다.
“네 몸은 루시아의 것만이 아니라 는 소리야.”
“명심하겠습니다.”
영식은 아라의 손을 살짝 움켜잡으 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부끄러움 이 많은 그녀가 이런 식으로 질투를 하는 것을 보니 왠지 귀엽게 느껴졌 다.
“주인님….”
“마스터….”
영식이 둘에게 별 신경도 쓰지 않 고 아라와 붙어 있는 모습을 본 루 시아와 이브는 도끼눈을 뜨며 아라 를 노려보았다.
너도 여기 어울려서 한 번 붙어볼 생각인 거냐, 라는 의미가 담긴 흉 흉한 눈빛.
“미안하지만 난 기권할게. 고래 싸 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꼴이 나긴 싫거든.”
아라는 영식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영식이 잠들어 있는 시간 동안 부 단한 노력으로 인해 더욱 많은 영웅 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루시아급의 싸움에 끼어들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오래 시간을 끌 것도 없죠. 지금 바로 연무장으로 나오세요.”
“이번 기회를 통해 마스터에게 본 기체의 성능을 확인시켜주겠다고 알 림.”
이브와 루시아는 의욕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번 승부의 상품(?)이자 이브의 힘에 대해서 직접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던 영식 또한 둘의 뒤를 따라 연무장으로 향했다.
대련을 시작하기 전, 영식에게 다 가온 루시아는 그의 두 손을 붙잡으 며 물기가 가득한 촉촉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조심히 기다려 주세요 주 인님. 제가 저 도둑고양이의 손에서 주인님을 구해드릴게요.”
누가 들으면 영식이 납치라도 당한 것 같은 말투.
“이 승부에서 이긴 사람이 주인님 방에서 함께 살면서 매일 밤 밀착 경호를 할 수 있는 것 맞죠?”
‘그렇게까지 허락한 적 없어.’
지난번 사건 이후 루시아는 틈만
나면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동거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아무리 루시아에게 있어 관대한 영 식이라도 동거를 허락하지는 않았 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어.’
영식은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 대상이 루시아라면 장난으로 넘 어갈 수 없는 가능성이었다.
지금만 해도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동거를 한다면 며칠 사이 영 식은 코어가 정지할 정도로 에너지 가 말라붙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그건….”
“후후후후. 아, 하하하하하. 하아. 주인님과 같은 방을 사용하며 24시 간 밀착 경호를 하다니…. 정말, 정 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전 율이 돋을 것 같아요. 후후후. 걱정 하지 마세요, 주인님. 안전을 확실하 게 지키기 위해 한순간도 주인님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하 아, 하아, 하아.”
‘살려줘.’
“그래, 바로 이거였어. 안전, 후후 후 그래 주인님의 안전을 위해서라 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왜 그 생각 을 못 했을까. 맞아. 그런 핑기… 이유라면 주인님과 온종일 함께 있 을 수 있어. 이히히히히.”
광기를 사방에 뿌리며 비틀린 입가 로 몸을 덜덜 떨고 있는 루시아를 바라보며 영식은 꿀꺽 침을 삼켰다.
영식은 루시아의 반대편에 선 채 대련을 준비하고 있는 이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두 주먹을 쥔 채 번쩍 들어 올리며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이브 이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