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38화
소 뒷걸음치다 쥐잡기(1)
“그러니까, 이 게임에서 당신을 이 기면 제 말에 무조건 따르겠다는 거 죠?”
영식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힘든지 히죽히죽 미소를 지으며 루 크델라에게 물었다.
루크델라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용언으로 내건 맹세는 영 혼에 구속력을 갖지. 아무리 용이라 고 하더라도 스스로 내건 맹세에는 저항할 수 없다. 이건 인간들의 기 록에도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호오….”
영식은 티리아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 덕였다.
“사실이에요, 영식 씨. 천마대전의 기록에 보면 분명 용언의 맹세에 대 해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요.”
“그렇단 말이지.”
씨익. 영식의 입가가 올라갔다.
루크델라에게 어떤 명령도 내릴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그에게 협력을 구했 을 때는 할 수 없는 일을 시킬 수 도 있다는 의미였다.
‘오히려 이편이 더 좋을 수도 있겠 는데?’
루크델라의 성격상 협력을 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확률 은 극히 적었다.
그것을 강제적으로 명령할 수 있다 는 것은 영식에게 있어서 반가운 소 식이었다.
“그 제안, 받아들이죠.”
영식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을 들은 루크델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겼을 시에는 반대로 그대 가 어떤 명령에도 따른다고 생각하 면 되겠지?”
“물론입니다.”
“좋군.”
루크델라는 환호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이 게임에서 인간이 날 이길 수가 있을 리가 없지.’
그에게 블랙 보드, 바둑이라는 게 임에 대해서 알려준 소환자는 자신 이 이 게임에서 굉장히 유명한 프로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단 한 판만에 루크델라에게 패배해 버렸다.
애초에 연산력 자체가 인간과 드래 곤은 차원이 달랐다.
그들이 한 가지를 생각할 때 루크 델라는 열 가지도 넘는 생각을 하며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 가능했다.
특히 머리를 쓰는 단순 연산 능력 만큼은 드래곤들 중 루크델라가 가 장 우월했으니 인간과 싸움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이 게임을 통해 말 그대로 무한에 가까운 변수들을 만들어 내 는 것이 가능했다.
‘설마 이렇게 쉽게 제안을 받아들 일 줄이야.’
루크델라는 안도감 섞인 눈빛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힘으로는 인간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카르가스가 패배했을 정도니까 말이야.’
연산능력은 그가 더 우월했지만 무 력만 놓고 본다면 자신은 카르가스 의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고는 하나 카 르가스를 이긴 인간들의 군대를 자 신이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카르가스의 힘을 모두 취 할 수 있겠어.’
루크델라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그가 인간들에게 말한 드래곤 들만의 장례문화는 새빨간 거짓말이 었다.
드래곤 하트라는 어마어마한 마력 의 결정이 고작 3년이라는 시간 내 에 자연으로 흩어질 리가 없었다.
3년이라는 시간은 마력의 결정체가 ‘카르가스’라는 주인을 잊는 데 필 요한 시간.
즉 다른 존재가 온전히 그 마력을 이용할 수 있기까지 필요한 시간이 었다.
그 시간이 지나기 전에 드래곤 하 트를 죽은 자리에서 이동시키게 되면 대량의 마력 손실이 발생해 버렸다.
주인을 잊지 못한 드래곤 하트가
카르가스의 시체에 순식간에 퍼져나 가 본래 마력의 반절도 되지 않는 양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시체를 통째로 들어 옮긴다 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드래곤 하트 정도 되는 마력은 거 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닌 존재.
주인의 유체에 큰 이변이 생기는 순간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흩어져 버렸다.
그것이 루크델라가 카르가스의 시 체를 3년간 인간들의 손에서 떨어트 려 놓으려는 이유였다.
‘반이라도 가져가려고 했지만, 이 렇게 된 이상 그럴 필요도 없지.’
그가 영식에게 3일의 시간을 달라 고 말을 한 것도 그사이 드래곤 하 트를 가지고 도망칠 생각을 했기 때 문이었다.
아직 드래곤 하트의 마력이 주인을 잊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반절도 안 되는 양만 건질 수 있겠지만 그 것만으로도 자신의 힘을 키우는 데 는 충분할 테니까.
‘그 악마에게서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어.’
마치 신이 강림한 것처럼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은회색 악마.
그의 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 력한 힘을 갖추는 방법 이외에는 없 었다.
‘절대 카르가스나 데모스처럼은 되 지 않을 것이다.’
루크델라는 삶에 대한 욕망을 강렬 하게 불태우며 영식을 바라보았다.
‘멍청한 인간.’
그는 자신을 이길 힘을 가지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 들인 그를 마음속으로 조롱했다.
이 게임에 한해서만큼은 그에게 패 배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그러죠.”
“자, 잠깐만요. 영식 씨.”
게임을 시작하려고 하는 영식의 옆 으로 티리아가 다가왔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식 의 팔을 붙잡았다.
“영식 씨, 정말로 드래곤과 게임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저는 그 바둑… 이라는 게임에 대 해서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머리를 쓰는 게임이죠?”
“그렇지.”
“그렇다면… 아무리 영식 씨라고 해도 드래곤을 상대할 수는 없을 거 예요.”
드래곤이 얼마나 비상한 머리를 가 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기 록을 통해 검증된 사실이었다.
과장이 어느 정도 섞여 있다는 것 을 감안해도 그들의 두뇌는 감히 인 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저도 티리아 씨의 말에 동의해요. 주인님, 여기서는 그냥 힘으로 하는 편이...”
루시아 또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라이트 세이버를 들어올렸다.
영식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 만 그가 이런 머리를 쓰는 게임에서 드래곤을 이길 것이라는 생각은 들 지 않았다.
드래곤은 머리를 쓰는 것에서는 태 생부터 격이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 었으니까.
어차피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를 불 러 모으면 상대할 수 없는 적도 아 니었다.
그녀는 영식이 패배한 모습 따위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아… 그건 괜찮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런 두 사람을 말린 것은 유나와 길수였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 를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영식이에게 바둑 이라니. 좀… 그렇죠, 길수 아저씨?”
“허허…. 만약 인간과의 대결이었 으면 반칙이라고 했을 걸세.”
길수는 한때 화제가 되었던 유명한 바둑 대결을 떠올렸다.
총 다섯 번의 대국 끝에 한국인 한 명이 가까스로 한 번 승리를 취 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구에서 개발된 인 공지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영식의 존재가 지구의 기술력으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오버 테크놀로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루크델라의 제안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응…? 주인님이 이 바둑이란 게임 을 전에 하신 적이라도 있나요?”
루시아는 이해할 수 없는 둘의 반 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런 건 아닐세.”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으음. 그게 또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라서 말일세. 뭐, 그냥 보고 있 으면 루시아 양도 자연히 알게 될 걸세.”
“알X고에게 바둑으로 비비려고 하 다니... 불쌍한 도마뱀 자식.”
유나는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루크 델라를 바라보았다.
루크델라는 그녀의 눈빛에 코웃음 을 치며 영식을 바라보았다.
“네놈도 과거에 꽤나 이름을 날린 프로였던 것 같군. 뭐… 좋다. 지루 하지만 않길 기대하지.”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칼의 여인의 말로 짐작해 봤을 때 그는 인간들 사이에서는 꽤 나 뛰어난 실력을 가졌던 모양.
알X고는 그가 프로세계에서 불렸 던 별칭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인간.’
루크델라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눈앞에 있는 인간이 이 게임에 대 해서 얼마나 통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인간과 드래곤.
그 넘을 수 없는 차이만으로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_ 탁.
루크델라는 손가락을 튕겨 얼음 의 자와 테이블을 만들어내며 영식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알X고라고 했던가. 그게 이 게임 에서 네가 사용했던 이름이라면 지 금은 그렇게 부르는 게 맞겠지. 자, 어서 자리에 앉아라. 게임을 시작할 시간이다.”
“아니 저기... 그런 의미가 아닌 데….”
유나는 맹렬하게 착각하고 있는 루 크델라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 복잡 미묘한 상황에 자연스럽게 그런 웃음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영식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루크 델라가 준비한 얼음 의자를 향해 걸 어갔다.
“자네가 인간이라는 것을 고려해서 선수를 양보하도록 하지.”
루크델라는 거만한 목소리로 영식 에게 혹돌을 내밀었다.
바둑이라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선 수(先手)가 유리한 게임이었다.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선수와 후수의 차이 따위, 인간과 드래곤이 가진 격의 차이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
오히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 무 허무하게 경기가 끝나버릴 것이다.
“하하. 뭐, 그렇죠. 전 ‘인간’이니까 요.”
영식은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흑돌 을 집어 들었다. 여유를 부리는 상 대방을 배려해 줄 필요는 없었다.
‘자, 그럼.’
영식은 바둑판을 내려다보며 흑돌
을 들어올렸다.
- 찰칵.
-고속 연산을 개시합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릿속이 뜨겁다 달아올랐다.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들이 그의 눈 앞에 펼쳐졌다.
영식은 그 무한을 눈앞에 둔 채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나쁘지 않아.’
무한이라는, 터무니없는 숫자가 그 의 머릿속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억 단위 따위는 우스울 정도의 연 산이 초단위로 이루어졌다.
영식은 무한을 해석하면서 이제까 지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고양감을 느꼈다.
마치 의식이 확장되는 듯한 감각.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한까지 끌어 올리는 기분이었다.
‘그때랑 비슷해.’
에너지 제어를 통해 무수한 에너지 들의 움직임을 통제했을 때 연산 장 치가 비명을 지르는 감각과 비슷했다.
영식은 전신에 퍼져나가는 고양감
을 즐기며 입술을 핥았다.
사실 그는 바둑을 둔 적이 한 번 도 없었다. 그저 지구의 지식을 통 해 룰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_ 탁.
영식은 흑돌을 바둑판 위에 내려놓 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인간과는 격이 다른 머리로 열 가 지가 넘는 생각을 동시에 한다고?
무한에 가까운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적어도 영식에게 있어서는 그런 일
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넌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상대가 무한에 가까운 변수를 지녔 다면, 그 모든 것을 예측하면 될 문 제였다.
그는 무한조차 유한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