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99화
업그레이드(4)
“정말 아픈 곳은 없으신가요, 주인 님?”
루시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 식의 뺨을 쓰다듬었다.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 에 대답했다.
“업그레이드 도중엔 꽤나 고통스러 웠지만 지금은 괜찮아. 오히려 전보 다 훨씬 컨디션이 좋아.”
“후훗. 다행이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회색빛으로 변한 영식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하아……. 회색 머리도 어울리시 네요, 주인님.”
그녀는 약에 취한 듯이 몽롱한 표 정으로 영식의 머리칼을 살짝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 Q.W
M..?
영식은 그녀의 뒤에서 시퍼렇게 눈
을 뜬 채 이쪽을 바라보는 아라와 티리아의 모습을 보고는 당황스럽다 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보다 얘기 들었어요.”
“얘기?”
“그, 그러니까 영식 씨의 마음에 대한 얘기요.”
티리아는 살짝 뺨을 붉힌 채 영식 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충 눈치챈 영식은 루시아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호, 흐호. 죄송해요, 주인님. 두 사 람이 너무 끈질기게 물어봐서……
“끄응. 뭐, 언젠가는 말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세 여인이 보내주는 호의를 언제까 지고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라는 가늘게 눈을 뜨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그 말이라는 게 결국 당당 한 하렘 선언이라 이 말이지?”
아직 그의 의견에 대해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그녀는 살짝 불만 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영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 을 이었다.
“아무도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
≪ O … ”
=...?
‘놓치고 싶지 않다’라는 그의 말에 아라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 명 모두라니…… 너, 너무 욕심이 큰 거 아니야?”
“그래서, 싫어?”
영식은 살짝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읏……. 꼬,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데.”
“어디까지나 선택은 네 몫이야. 강 요할 생각은 없어.”
“저, 저는 찬성이에요!”
고민에 잠겨 있는 아라의 옆에서 티리아가 한쪽 손을 번쩍 들어 올리 며 말했다.
“헤헤……. 영식 씨가 한 명을 선 택함으로써 다른 누군가가 불행해진 다면 전 이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일단 괴로운 사람은 없게 되잖아 요?”
그녀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티리아가 할 법한 생각이었 다.
“……하아.”
너무 순수해서 눈이 부실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아라는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줘.”
“얼마든지.”
영식은 피식 웃음을 홀리며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으으, 하고 분하다는 듯이 몸을 떨면서도 그의 손길을 거부하 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사랑 얘기를 할 때도 아니고 말이야.”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루시아를 향 해 고개를 돌렸다.
“루시아, 부탁할 게 있어.”
“말씀하세요, 주인님. 어떤 명령이 라도 따르겠습니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변태처럼 머리카락 냄새를 맡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 도로 절도 있고, 공손한 태도로 허 리를 숙였다.
“잠깐 실험을 하는데 도움을 줬으 면 좋겠어.”
“실험이요?”
그의 말에 루시아는 고개를 갸웃거 리며 영식을 바라보았다.
영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 을 이었다.
“에너지 분해 기술을 시험해 봐야 하거든.”
업그레이드랑은 별개로 그는 이제 까지는 넘볼 수 없었던 새로운 힘을 하나 얻었다.
이제는 그 에너지 분해 기술이 어 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때였다.
아르난 제국 황성 연무장.
무식할 정도로 큰 크기를 자랑하는 그 연무장 안에 영식과 루시아가 들 어왔다.
?띠링.
[‘에너지 분해’ 기술을 ‘락테온 2 식’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의 오리하르콘이 필요합니다.]
“쯔 워
X.
인벤토리에서 꺼낸 락테온 2식의 장갑을 ‘에너지 분해’ 기술이 들어 간 장갑으로 바꾸려고 했던 영식은 가볍게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역시 오르하르콘이 필요하군.’
영식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락테온 2식을 바라보았다.
“음……. 그때 슈트 군단의 총탄이 랑 파편을 모두 합쳐도 택도 없겠 지.”
창세교와의 전투가 끝난 후, 영식 은 슈트 군단이 사용했던 건블레이 드에 담겨 있는 오리하르콘 총탄을 모두 수거했다.
그렇게 해서 수거된 총탄은 대략 800여 발.
슈트 전체를 덮을 장갑을 만들기에 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 흐음.”
영식은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락테 온 2식을 쓰다듬었다.
자신의 신체가 ‘업그레이드’된 것 처럼 에너지 분해 기술을 통해 락테 온 2식을 강화하고 싶었는데 생각처 럼 되지 않았다.
‘어디 오리하르콘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나?’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영식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에 와서 슈트 장갑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오리하르콘 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의 힘이 필요한 영식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영식은 오리하르콘 총탄들을 내려 다보았다.
저 오리하르콘들을 가장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
그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역시 그것밖에 없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고민에 대한 답은 정해진 것이나 다 름없었다.
-철컥.
영식은 왼쪽 손등에서 블레이드를 뽑아냈다.
30센티 정도 되는 길이를 가진 날 카로운 칼날.
영식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무기였
다.
‘총탄처럼 소모성 무기로 만드는 건 손해야.’
단순히 위력만 놓고 봤을 때 샷건 의 총탄 등에 에너지 분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작해야 한 번에 불과한 일.
보통 수십?수백 발의 총탄을 한 번에 쏘아내는 샷건의 특성상 총탄 소모가 너무 심했다.
설사 총탄을 적게 사용한다고 해도 일단 ‘소모’된다는 점 자체가 문제 였다.
결국 오리하르콘을 사용한 에너지 분해 기술을 가장 잘 사용하기 위해 서는 그의 주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블레이드의 날을 오리하르콘으로 만 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소모성 무기로 만드는 것이 손해라 는 것은 두 번째 이유였다.
그가 오리하르콘 블레이드를 만드 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 다.
“좋아. 만들어 볼까.”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창세교에게 서 수거한 총탄들을 위해 손을 올렸 다.
-우우우웅!
영식의 손에서 흘러나온 푸른빛무 리에 휩싸인 총탄들이 가루가 되기 시작했다.
빛나는 가루로 변한 오리하르콘들 이 영식의 블레이드에 달라붙었다.
[‘블레이드’의 재질을 오리하르콘으 로 변환시키겠습니까?]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에 영식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질 변환이 진행 중입니다. 잠시 만 기다려 주세요.]
“호오. 블레이드를 그때 그 단테리 온이란 놈의 슈트와 똑같은 재질로 만들고 계신 건가요?”
“맞아. 슈트 전체를 바꾸고 싶었는 데 그러기엔 오리하르콘 양이 부족 하니까.”
“후훗. 주인님은 블레이드를 잘 다 루시니까 좋은 선택이신 것 같아 요.”
루시아는 마치 어른이 아이에게 ‘장하다’라고 칭찬을 하는 것처럼 그를 칭찬했다.
영식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아직 자신이 ‘업그레이드’ 중에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해서 이 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한정된 오리하르콘으로 블 레이드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
그것은 그가 이번 업그레이드를 거 치면서 가장 크게 발전한 것이 바로 블레이드를 다루는 ‘검술’이었기 때 문이었다.
‘사기나 다른 없는 방식으로 검술 을 익혔지만.’
철저한 분석과 해석을 통해 얻은 검술.
영식은 그 검술이 과연 루시아처럼 검술의 극에 닿아있는 사람에게 어 느 정도 통하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 다.
‘그전에.’
?띠링.
[‘에너지 분해’ 기술이 적용된 오리
하르콘으로 블레이드의 재질 변환이 성공하였습니다.]
“루시아, 이 블레이드에 대고 마력 을 뿜어줘 봐.”
“예, 주인님.”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 을 따라 마력을 뿜어냈다.
블레이드에 닿자마자 마력이 공중 으로 흩어져 버렸다.
“와아……. 정말로 그 슈트처럼 마 력이 흩어지네요.”
루시아는 단테리온의 힘을 똑같이
사용하는 영식을 보고는 짧은 탄성 을 질렀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 각이 스쳐 지나갔다.
‘주인님께서…… 과거 창조주를 이 끌던 대장이라고 했지?’
그녀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영식 을 바라보았다.
박도훈이 했던, ‘너는 아무것도 모 르고 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괜한 생각하지 말자.’
루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영식의 얼 굴을 바라보았다.
쿵. 쿵.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 었도 가슴이 거칠게 뛰며 몸이 뜨거 워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그 녀의 전신에 퍼져 나갔다.
“헤헤헤.”
그녀의 입에서 행복에 찬 웃음소리 가 흘러나왔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
지금 이렇게 영식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만족했다.
“루시아, 마력을 점점 더 강하게
흘려 보내줘.”
“아, 네, 주인님.”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루시아는 마력을 조금씩 강하게 흘려보냈다.
?티잉!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마력이 강렬한 빛을 뿜었을 때, 영 식의 블레이드가 그녀의 마력을 더 이상 분해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 다.
“흠……
영식은 블레이드가 분해할 수 있는 에너지양을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단테리온의 슈트보다는 분해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적어.’
그의 기술력이 아직 단테리온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증거였다.
영식은 쯧, 하고 혀를 차면서도 납 득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업그레이드를 거쳤다고 해도 아직 단테리온의 힘에 닿기에는 부족하다 는 것은 그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 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기 적이지.’
에너지 분해 기술이 사기적인 이유 는 공격, 방어에 모두 활용할 수 있 기 때문이었다.
에너지 분해량을 뛰어넘는 공격을 순간적으로 받지 않는 이상 블레이 드는 최강의 방패이자 창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었다.
“좋아.”
영식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루시아 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제 대련을 부탁해.”
“네, 주인님.”
“이제까지처럼 적당히 봐주면서 하 지 말고 내가 적이라고 생각하고 전 력을 다해서 상대해 줘.”
“전력이요..?”
“그래.”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 했다.
그녀가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지 금 자신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루시아는 그에게 전력을 다하기 싫 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 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블레이드를 꺼내든 영식은 루시아
의 앞에 섰다.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슈트를 사용하지 않고 싸우실 생각이신가요?”
“맞아.”
“……너무 위험합니다, 주인님.”
루시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충고했다.
슈트가 없는 영식은 결코 그녀를 상대할 수 없었다.
“그건 일단 해봐야 알겠지.”
영식은 괜찮다는 듯이 자세를 취했 다. 그가 취한 자세를 본 루시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지금까지와 다른 자세야.’
이제까지 계속 봐왔던 영식의 자세 가 아니었다. 그녀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지이이잉.
라이트세이버를 꺼내든 루시아는 영식을 향해 거칠게 발을 굴렀다.
그녀의 몸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그에게 쏘아졌다.
‘일단 주인님에게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드려야지.’
그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슈트 없이 그녀와 싸우는 것이 얼마나 위 험한 일이지 경각심을 새겨둘 필요 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녀는 영식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촤악!
영식의 블레이드가 루시아의 배를 살짝 베어내며 휘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