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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175화 (175/284)

레벨업 머신 175화

서부 도시 강남(2)

[네, 말씀하세요.]

이브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영식은 주머니에서 총탄을 내밀며 이브에게 물었다.

“혹시 이 총탄에 사용된 재질, 아

는 것 있어?”

[음…….]

영식에게서 총탄을 받아 든 이브는 가늘게 눈을 뜨며 손바닥을 살폈다.

이브의 덩치가 워낙 컸기 때문에 일반 총탄보다 훨씬 더 큰 크기를 가진 총탄일지라도 마치 손에 달라 붙은 먼지처럼 보였다.

영식을 살짝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창조주의 힘으로 만들어진 이브라 면 저 총탄에 대한 정체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읏...]

총탄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이브는 갑자기 머리를 움켜쥔 채 몸을 숙였 다. 그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보 였다.

[초, 촌장님!]

[이브 님!]

이브가 갑작스럽게 고통을 호소하 자 주변에 있던 기계 몬스터들이 달 려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이브는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끊어 질 듯이 희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괘, 괜찮습니다.]

영식은 그런 이브의 모습에 가늘게 눈을 떴다.

어딘가 익숙한 광경.

바로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에 대 해 떠올릴 때 보였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야?”

영식의 물음에 이브는 고개를 저으 며 대답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이 총 탄을 스캔한 순간 이상한 영상 oj ? ]

“ 영상?”

[예. 흐릿한 형체를 가진 무언가 가…… 제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습 니다.]

영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흐릿한 형체의 존재.

그가 기억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보던 그 존재들이었다.

영식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 브에게 다가갔다. 그는 몸을 숙인 이브의 팔뚝에 손을 올리며 낮은 목 소리로 물었다.

“그 밖에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

어?”

[다른 누군가가 그 흐릿한 형체의 존재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뭐라고 불렀는데?”

[…….]

이브는 얼굴을 찡그리며 머리에 손 을 올렸다. 그는 그 이름을 떠올리 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듯이 쥐어 짜 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단테리온, 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식의 몸이 흠칫 떨렸다.

단테리온.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

었다.

‘왜…… 그 이름이 여기서……?’

영식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이브 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킨 듯이 복잡했다.

단테리온은 그의 기억 속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이브의 기억 속에서 나왔다는 건 이상했다.

영식의 머릿속에 왜? 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 고 이어졌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에 영식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아무 리 고민을 이어나가도 그 의문이 해 결되지 않았다.

마치 중간 부분이 잘려 나간 수학 문제를 푸는 듯한 감각. 단순한 추 론으로 그 공백을 메우기에는 단서 가 너무 부족했다.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앙금처럼 그 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농밀한 불길함이 그의 전신에 퍼져 나갔다.

“……괜한 걸 물은 것 같네. 더 이 상 신경 쓸 필요 없어.”

영식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 를 젓곤 이브의 손에 있는 총탄을 집어 다시 그의 주머니 속으로 집어 넣었다.

[아, 영식 씨.]

“응?”

[그 기억…… 과는 별개로 그 총탄 을 이루는 재질은 뭔지 알 것 같습 니다.]

이어지는 이브의 말에 영식은 흥미 롭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이브의 말이 이어졌다.

[제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그 총탄에서는 저희들이 머문 광산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납니 다.]

“오리하르콘 광산에서?”

[예. 저희가 도착했을 당시 오리하 르콘은 이미 없었지만…… 그곳에 살면서 희미하게 느낀 감각이 여기 서 똑같이 느껴지더라고요.]

“흐...”

TZ1 ?

[아마 이런 건 밤비가 더 잘 알겁 니다.]

“밤비?”

영식은 처음 듣는 그 이름에 고개 를 갸웃거렸다. 이브는 고개를 돌려 기계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 해 소리쳤다.

[밤비! 잠깐 이쪽으로 와보렴!]

[예! 촌장님!]

그의 외침과 함께 양 이마에 안테 나를 달고 있는 미노타우르스가 그 에게 다가왔다. 예전에 공장에서 카 르가스의 출현을 감지한 기계 몬스 터였다.

‘미노타우르스의 이름이 밤비……

이브도 그랬지만 흉악하기 짝이 없 는 외형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귀여 운(?) 느낌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원래 몬스터 때부 터 가지고 있던 이름이야?”

[하하. 아뇨. 지금 제 아이들의 이 름을 지어준 것은 접니다.]

이브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 를 저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귀여운 이 름 아닙니까?]

[헤헤. 촌장님도 참…….]

영식은 오우거가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기묘한 광경에 혼란스러 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훈훈한 광경이 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당장 눈앞 에 보이는 장면이 지옥에서나 보일 법한 흉악한 장면이다 보니 혼란스 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왜 부르신 거예요?]

[여기 있는 이 물건, 뭔지 알겠 어?]

[음……. 잠시만요.]

밤비는 총탄을 받아 들고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마에 돋은 두 개의 안테나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아……. 이건 재질이 좀 변형되기 는 했지만 오리하르콘이 맞는 것 같 아요.]

“오리하르콘?”

[예. 전에 거주했던 오리하르콘 광 산에서 느꼈던 감각이 확실해요.]

“하지만 오리하르콘은 모두 사라진 것 아니었어?”

[극소량의 오리하르콘이 남아 있었 어요. 거의 가루에 가까운 양이었지 만…….]

밤비의 말을 들은 영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루까지 털어 갈 수는 없었을 테 니까.’

아무리 기술이 좋다고 하더라도 극 소량의 오리하르콘까지 모두 털어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변형되어 있다고?”

[예. 엄밀히 말하면…… 오리하르 콘은 아니에요. 오리하르콘을 사용 해서 다른 무언가를 만든 거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광물이라는 건가.’

영식의 눈이 반짝였다. 이 총탄의 재질은 티타늄과 같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광물인 것 같았다.

‘이게 그들이 오리하르콘을 모은 이유였던 건가.’

영식은 영롱한 에메랄드빛으로 빛 나는 총탄을 내려다보았다.

영식은 순간적으로 이 총탄을 추출 할까 말까를 고민했다.

상식 밖의 기술이 사용되어 만들어 진 광물이니 추출을 한다면 그만큼 높은 등급의 금속 코어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냐.’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영식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총탄은 ‘에너지 분해’ 기술을 익힐 수 있는 표본이었다. 나중에 그 기술을 익히고 난 이후에 추출해 도 늦지 않았다.

“고마워. 덕분에 도움이 좀 됐어.”

[하하. 영식 씨가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죠.]

이브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밤비 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밤비는 밝은 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애교를 피우 듯 뺨을 비볐다.

그들의 모습이 익숙해졌기 때문일 까, 아니면 이브와 밤비가 짓고 있 는 미소가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 때 문일까.

영식은 인간의 기준에서 흉악하기 그지없을 그들의 모습이 더없이 아 름답게 느껴졌다.

“다른 주민들의 이름도 네가 다 지 어준 거야?”

[그렇습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부 터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건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너밖에 없었다고?”

영식의 물음에 이브는 희미한 미소 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성이 없었던 시절에는 ‘이 름’이라는 존재의 필요성조차 몰랐 으니까요. 사실 그냥 몬스터였을 때 의 기억은 굉장히 희미합니다. 마치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

였다는 감각이죠.]

“ 흐음.”

이브의 말에 영식은 고개를 끄덕였 다. 몬스터였을 때의 기억이 희미한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 다.

드래고니안과 같은 소수의 몬스터 를 제외한 대부분의 몬스터는 짐승 보다 훨씬 더 심할 정도로 본능에 충실해서 움직인다.

보스 몬스터, 혹은 강한 개체의 정 예 몬스터를 따라 무리 중심의 생활 을 꾸려 나가며 종족을 번식시키고 사냥감을 사냥하는 것 이외에는 다 른 행동을 하지도 않는 것이 대부분 의 몬스터였다.

그나마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오크가 몬스터 중 지능이 굉장히 높 은 편에 속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본 능에 충실한 괴물들인지 쉽게 예상 할 수 있었다.

그러한 몬스터로 지내다가 갑자기 지성이라는 것이 생겼으니 이브가 과거의 기억이 희미하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브라는 이름은 어떻게 기억하게 된 거야?”

영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브에

게 물었다. 이브는 거대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눈을 떴을 때, ‘아, 내 이름은 이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그런 이름이 떠올랐다고?”

[예. 하지만…… 아주 만족하고 있 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게 이 이름을 지어준 존재에게는 감 사를 표하고 싶어요.]

이브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입술 사이로 드러난 흉악한 송곳니를 보 였다.

정말로 ‘이브’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었다.

[아, 물론 제게 이름을 지어준 존 재보다 영식 씨에 대한 감사의 마음 이 더 큽니다.] 이브는 머리를 긁던 손을 내려 밤 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 다.

[인간이 보기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제 주민들은 모두 이제 막 지성을 갖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입니다. 저는 좀 특이하 게 지성을 많이 가지게 된 케이스지 만요.] [저, 저희들은 어린애가 아니에요,

촌장님!]

‘아이’라는 표현에 밤비는 울컥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브는 그런 그 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영식 씨, 제가 이 아이들에게 가 장 먼저 가르쳐 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뭔데?”

[슬프다, 는 감정이었습니다.]

“슬프다는 감정?”

영식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

이 슬픔이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 지 않는 일이었다.

[다른 기계 몬스터들을 보시며 느끼 셨겠지만, 그들은 동족이 죽어도, 부 모가 죽어도 분노는커녕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명령에 따라서 인간을 공격하는 병기에 불과하죠.]

이브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걸……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 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브의 시선이 영식에게 향했다.

[저는 제 아이들이 그런 존재가 되 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가르쳤 다고?”

[예. 슬픔은 괴롭긴 하지만…… 아 주 소중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슬픔을 모르면 자신이 행복한지 불 행한지조차 알 수 없으니까요.]

이브는 영식에게서 몸을 돌리며 활 짝 미소를 지었다.

[영식 씨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있 습니다. 영식 씨가 아니었다면 지금 쯤 저희들은 불안에 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테니까요.]

“뭐……. 그만큼 도움도 받고 있으

니까.”

이브가 창조주에 저항할 수 있었던 힘에 대해서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 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그 는 이번 아르난 제국을 상대로 벌였 던 사기극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었다.

단순히 영식이 은혜를 베풀어주는 관계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하하. 창세교? 라고 했던가요. 그곳의 교리가 현실이 되는 날이 왔 으면 좋겠네요.]

몬스터와 인간이 어우러져 사는 낙

원.

그 허황된 꿈에 이브는 자기도 모 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네.”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 도 영식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몸을 돌려 티리아, 유나의 뒤 를 따라 마차를 탔다.

“그럼 이제 줄발하자.”

서부 도시 강남.

살바토르 길드를 태운 마차는 강남 으로 출발했다.

-철컥.

“아아?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인 방 안.

광기로 번들거리는 두 눈이 어둠속 에서 불타올랐다.

“드디어, 드디어 완성되었군.”

듣기 불쾌할 정도로 까랑까랑하게 울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마치 약에 심 취한 듯이 눈앞의 물건을 쓰다듬었 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희미한 별빛이 그가 쓰다듬고 있는 물건의 모습을 비췄다.

영롱한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있 는 금속 슈트가 별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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