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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169화 (169/284)

레벨업 머신 169화

연합 결성(2)

죽음과 같은 적막이 회의실 안에 내려앉았다.

제이슨은 두 눈을 감았다.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숨어계실

생각이십니까.

영식이 내뱉은 그 물음이 그의 머 릿속에 깊게 새겨졌다.

‘내가 숨어 있다고?’

제이슨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치열한 삶이었다.

그가 집권하고 있을 당시 모든 일 이 일어났다.

몬스터들의 침입부터 잉그리움의 제국의 붕괴, 소환자들의 출현까지.

그는 저주를 받았다고 표현해도 과 언이 아닐 정도로 격변의 시기를 보 낸 황제였다.

그는 그 어떤 위기와 역경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어깨에는 수 백만에 달하는 제국민들의 생명이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부로 침입하는 몬스터들을 몰아 냈고, 북방 경계선을 만들어냈다.

다른 국가처럼 소환자들을 배척하 지 않고 영입하여 대륙 최초로 소환 자만으로 이루어진 정규군을 만들어 냈다.

국가를 안정시켰고 국민들이 ‘인간 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재 에르노어 대륙에서 아르난 제 국만큼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제이슨은 몬스터의 침공이 시작되 고 지금까지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었다.

휴일도, 휴식도 없었다.

지금 제국이 누리고 있는 평화는 그의 그런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숨어 있다’니.

그가 지나온 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내뱉어도 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이슨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괴물들의 창조주.

그들에 대해서 생각하니 숨이 막히 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감각이었다.

‘지금의 평화는 유리잔과 같다, 라.’

영식의 말이 떠올랐다.

알고 있었다.

그가 한 평생을 바쳐서 만들어놓은 이 평화가 언제 박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평화라는 것 정도는.

그는 멍청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았

다. 하지만 그럼에도 ‘괴물들의 창 조주를 죽인다’라는 가장 궁극적인 해결책을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 았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잉그리움 제국이 무너졌을 때 를 기억했다.

경이로울 정도로 강력했던 그 국가 가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 지도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과연 그 누가 괴물들 의 창조주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쥐새끼라.”

제이슨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한 제국의 지배자다운 강렬한 카리 스마가 주변을 압도했다.

박시아와 티리아는 그 강렬한 기세 에 꿀꺽 침을 삼켰다. 마력을 사용 하여 내뿜은 기운도 아니었지만 숨 이 쉬어지지 않는 감각이었다.

“자네는 그들이 가진 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그렇게 강대했던 잉그 리움 제국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 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모릅니다. 잉그리움 제국이 무너 지는 모습도 본 적 없습니다.”

“그러면서 잘도 그런 말을 지껄이 는군.”

“아는 것은 있습니다. 이대로 가만 히 있어봤자 결국 그 끝에는 멸망만 이 남는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들의 두려움을 몰라서 할 수 있 는 말이지.”

“그렇다고 숨어 있으면 뭐가 달라 지기라도 합니까?”

영식과 제이슨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내게는 수백만 제국민의 목숨이 걸려 있네.”

“그렇다면 더더욱 창조주들이 힘을 쌓기 전에 먼저 공격해야죠.”

_쿵!

제이슨은 거칠게 테이블을 내려쳤 다.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는가! 자 네는 간단한 선택 한 번에 수백만의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기분을 알고나 있나!”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하 나 있습니다.”

영식은 막힘없이 말을 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그 수백만의 목숨 은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칼로 내려치는 듯한, 단호한 말이 었다.

“지금 바이올렛이라는 오우거 하나 로 남부의 상황이 이렇게 됐죠.”

“바이올렛은 제국군의 힘으로 충분 히 대처할 수 있다.”

제이슨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바이 올렛이 강하다고는 하나 고작 한 마 리의 몬스터.

3군 조사대 전체가 바이올렛 하나

에 패배하기는 했지만 전혀 상대할 수 없는 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 다.

그만큼 1군과 2군, 3군 사이에 존 재하는 힘의 격차는 컸으니까.

“신종 몬스터 중에 위협이 되는 존 재가 바이올렛 하나라고 생각하십니 까?”

“그건 무슨……

“신종 몬스터는 강하죠. 별것 아닌 오우거 한 마리가 창조주의 개조를 통해 조사대 하나를 궤멸시킬 정도 로 강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바이올렛의 정체는 루시아였

하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

어차피 제이슨은 바이올렛의 정체 가 루시아라는 것을 ‘모르’니까.

“그렇다면 만약 드래곤이 창조주의 힘을 받는다면 얼마나 강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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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이라고?”

영식의 말에 제이슨과 알렉은 두 눈을 부릅떴다.

드래곤이 가진 막대한 힘에 관해서

는 소환자보다 원주민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잉그리움이 제국이 만들어 지기도 전, 천사와 악마, 드래곤과 요정의 시대를 기록을 통해 보고 배 웠으니까.

드래곤은 천사, 악마와 같은 신적 인 존재에 비해서는 그 격이 몇 단 계 떨어지지만 필멸자(必滅者) 중에 서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전 해졌다.

“어째서 드래곤이……?”

제이슨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 끝을 흐렸다.

드래곤은 대륙 역사에 모습을 보이 지 않은 지 수백 년이 흘렀다.

심지어 그들은 괴물들의 창조주가 잉그리움 제국을 잿더미로 만들 때 도 나타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신화 속의 존재인 것이다.

“어디서 그런 허무맹랑한 소……

허무맹랑한 소리 하지 말라고 말하 려던 제이슨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는 처음 영식이 찾아왔을 때를 떠올렸다.

신종 몬스터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말했던 그. 그들이 가진 힘은 제국 전체의 힘을 쏟아도 상대할 수 없다 던 그의 말이 제이슨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좋아.’

영식은 고민에 잠긴 제이슨을 바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만약 영식이 평범한 방법으로 그와 접근해서 신종 몬스터 중에 드래곤 이 있다고 말해도 제이슨은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미 한 번 증거를 보여줬으니까.’

제이슨은 이미 한 번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가 후회를 한 경험이 있 었다.

‘믿을 수밖에 없겠지.’

정확히는 ‘믿을 수밖에 없도록’ 영 식이 만들었다.

괜히 위험을 감수하고 거창한 사기 극을 펼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창조주들은 이미 드 래곤을 사역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제이슨은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중 얼거렸다.

영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 졌다. 방금 이 말로 그가 자신의 말 을 믿었다는 것을 추측하기는 어렵 지 않았다.

“예. 그렇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지 나면 그들의 세력이 얼마나 더 강해 질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공격할 수 있을 때 공격해야 합니다.”

“제국과 동부 연합의 힘을 합친 것 만으로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 는가?”

“아뇨. 쉽지 않겠죠. 그렇기 때문에 서부 세력 또한 끌어들일 생각입니다.”

“……대륙 연합을 만들 생각이로군.”

“예.”

제이슨의 표정에 놀라움이 서렸다.

그는 이제까지 에르노어 대륙 역사 상 단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던 대 륙 연합을 가볍게 입에 담는 영식을 보며 짜릿한 감각까지 느꼈다.

‘타고난 지도자 스타일이군.’

제이슨은 영식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타고난 지도자. 과감한 결단력과, 목적을 위한 행동력. 주변을 끌어들 이는 카리스마까지.

영식은 자신과 같이 타고난 ‘지배

자’였다.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하군.’

영식의 말은 제이슨의 마음조차 간 단하게 뒤흔들었다. 그의 말에는 강 렬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를 믿고 따르기만 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만약 서부 세력까지 끌어들이고도 그들에게 패배한다면?”

“그땐 모두 죽는 거죠.”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볼 생각입

니다. 그래도 패배한다면 애초에 인 류는 창조주들을 이길 수 없었다는 의미가 되겠죠.”

영식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 다.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멸망을 기 다릴 건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발악 이라도 해볼 건지. 그것을 정하는 것은 폐하의 자유입니다.”

“……하.”

제이슨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 왔다.

영식의 말이 허무맹랑해서 웃음을 흘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속에 몰아치는 묘 한 감정에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놀랍군.’

광오하고, 무책임한 말이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 면 그냥 모두 죽자니?

말은 그럴싸해 보였지만 사실은 무 모하고, 멍청하기까지 한 말이었다.

하지만.

‘두근거리는군.’

대륙 연합을 만들어 창조주와 싸우 겠다는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제이슨 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 어올랐다.

평생 다시 느껴볼 일 없다고 생각 했던 두근거림. 제국에 침입한 몬스 터들을 몰아내기 위해 최전선에 섰 을 때 느꼈던 뜨거운 고양감이었다.

제이슨은 알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렉과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알렉과 제이슨은 수십 년 전부터 함께 제국을 지켜 온 사이였다. 이 제는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슨 생각 을 하는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 았다.

‘저런 알렉의 모습을 보는 것도 오 랜만이군.’

제이슨은 피식 웃음을 홀렸다.

알렉의 눈동자는 그 이상으로 강렬 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 명의 전사로서 싸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눈빛이었다.

“하아?…”

제이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이 선택을 분명 후회하겠지.’

지금까지 그가 쌓아 올린 모든 평 화를 시궁창에 집어넣을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다가 올 선택이기도 했다.

이어진 고민 끝에 제이슨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맹을 맺도록 하지.”

“그 말씀은……

“그래. 자네의 헛소리에 어울려 주 지. 대륙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북 방을 정벌하세. 이 모든 일의 원흉 을 제거하고, 잃어버린 대륙의 영토 를 우리 손으로 되찾아보세.”

제이슨은 결심이 선 듯 단호한 목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영식과 티리아, 박시아 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르난 제국이라는 대륙 최강의 세 력과 손을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고생을 한 보람이 있었군.’

영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거짓된 정보로 여론을 조성하고, 조사대를 파견하도록 의도한 후 그 조사대를 위장한 아군으로 습격하는 등의 거창한 사기극.

그 사기극은 훌륭히 성과를 내어 북방 정벌에 힘을 보태줄 수 있는 강력한 아군을 만들어주었다.

“그럼 당장 내일 동부 연합과의 동 맹을 공식 발표하겠네.”

“예. 그편이 지금 제국민들의 혼란 도 안정시켜 줄 수 있겠죠.”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 였다.

“……그대의 말이 헛소리로 끝나지 않길 기대하겠네.”

자리에서 일어선 제이슨은 영식에 게 손을 내밀었다.

영식은 그의 손을 마주 잡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때 였다.

_ 쾅!

“폐, 폐하!”

회의실 문을 박차고 다급한 표정의 기사들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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