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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61화 (61/284)

레벨업 머신 061화

마신의 갑주(6)

“아, 아니야. 이건, 아니야.”

티리아의 입에서 혼란에 가득 찬 중얼거림이 홀러나왔다. 그녀는 믿 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벽에 기대듯 이 눕혀져 있는 세 구의 시체를 바 라보았다. 그녀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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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없어.”

그녀는 지금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 들다는 듯이 세 구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빠직.

그녀의 손에 닿은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어린 소년의 것으로 보이 는 그 시체에는 마치 날카로운 칼에 절단되기라도 한 듯 한쪽 팔이 없었 다.

“아아, 아……

티리아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이전에 엘노트 왕국에게 받 은 협박 영상을 떠올렸다. 기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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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구슬에 담긴 그 영상에는 남동 생의 한쪽 팔이 비참하게 잘려나가 고 있었다.

그녀는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 어 남아 있는 두 구의 시체를 바라 보았다.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 어 잘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 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기 있는 두 구의 시체는 그녀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체라 고.

“아, 아아아아아!”

그 자리에 주저앉은 티리아는 어린 소년의 시체를 두 팔로 끌어안으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마치 짐승이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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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짖는 것 같은, 처절한 몸부림이었 다.

“왜, 대체 왜!”

그녀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오열했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남동생은 왕국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질이었 다.

그들이 죽기라도 한다면 왕국 입장 에서는 티리아에게 사용할 수 있는 협상 카드를 모조리 날려버리는 것 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당연히 그녀 의 가족이 살아 있을 것이라 예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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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니, 비단 그녀만이 아니라 다 른 모든 길드원들이 인질들의 생존 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를 처참하게 짓 밟듯, 인질로 잡힌 그녀의 가족은 싸늘히 식은 시체가 되어 있었다.

영식은 울부짖고 있는 티리아의 뒷 모습을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가 만히 내려다보았다.

‘왜‘?’

짧은 의문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 다.

엘노트 왕국의 입장에서 티리아의 가족을 죽일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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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들은 여전히 소환자들로 이루 어진 군대를 만들고 싶어 했고, 그 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예 소환자 들이 많은 살바토르 길드를 손에 넣 어야 했다.

비록 살바토르 길드가 멸망했다고 는 하나 티리아를 지지하는 세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아니, 지지하는 세력을 제쳐두고 남아 있는 살바토 르 길드원들만 생각하더라도 어지간 한 길드는 상대하기 힘든 강력한 전 력이 었다.

그 예로 살바토르 길드는 고작 10 명에 불과한 인원으로 라이트 실드 길드의 잔당을 모조리 쓸어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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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던가.

‘시체의 상태를 보면…… 체력이 약해져서 죽은 것 같기는 한데

티리아가 끌어안고 있는 시체를 바 라보고 있는 영식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이 체 력이 약해져서 죽는 것은 이상한 일 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 이 시대의 문명에서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 중 에 살아남는 사람이 더 드물 정도였 다.

문제는 그 약해져 죽은 대상이 왕 국의 입장에서 ‘죽으면 안 되는’ 존 재들이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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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나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닌 체 력이 떨어져서 죽었다는 것은 확보 한 인질들에 대한 기본적인 관리조 차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상했다. 마치 살바토르 길드를 손에 넣으려고 했던 계획 자 체를 포기한 것 같은 행동이지 않은 가?

‘다른 계획이…… 생겼다거나.’

영식은 그렇게 생각하며 울부짖고 있는 티리아를 내려다보았다.

만약 그가 생각한 가정이 맞는다 면, 그것은 무척이나 잔혹한 일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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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대로 이용하고, 모든 것을 앗 아갔다. 그리고 다른 계획이 생기니 헌신짝처럼 그녀를 버렸다.

거기서 그녀가 느낄 처절한 절망은 고려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단순히 이용가치가 떨어져서 버렸을 뿐이었 다.

영식은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역겨 움을 느꼈다. 머리가 뜨거워졌다.

“흐윽, 흐아아아앙!”

티리아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영 식은 그녀를 위로하는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그녀를 가만히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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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보았다.

여기서 그녀를 위로하는 것은 불가 능했다. 그녀는 위로 받기에는 너무 나 처절한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어린 소년의 시체를 부여잡은 채 울부짖고 있던 티리아가 입을 열었 다. 쥐어짜내는 듯한, 희미한 목소리 였다.

“만약, 조금 더 빨리 선택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어딘가 애원하는 듯한 목소 리로 영식에게 물었다.

여기서 그녀를 위로해 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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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했다. 너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모든 것은 엘노트 왕가의 비열한 행 동 때문이었다고 말해주면 됐다. 그 녀는 그것으로 아주 조금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예.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영식은 덤덤한 목소리로 그녀의 물 음에 대답했다. 티리아의 몸이 흠칫 떨렸다.

“모두 제가, 잘못한 걸까요?”

그녀는 끊어지려 하는 동아줄을 잡 으려는 듯이 필사적인 표정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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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돌아봤다.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 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영식은 그런 그녀의 간절한 기대를 끊어내듯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 다.

티리아의 표정이 한 층 더 깊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눈에 명 확한 분노의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 했다. 그녀에게 지독한 절망을 안겨 준 엘노트 왕가를 향한 분노가 아니 었다. 그녀의 바로 앞에 서 있는 영 식을 향한 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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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제 탓이라고요? 어떻게, 어 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 실 수 있는 거죠? 빠르게 선택해야 했다고요? 그게 말처럼 쉽게 될 것 같나요? 저도……

자리에서 일어선 티리아는 영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녀는 가 녀린 손을 뻗어 영식의 멱살을 움켜 쥐었다.

“저도, 고민했단 말이에요. 며칠 밤 을 새면서 생각했단 말이에요. 하지 만, 하지만…… 영식의 멱살을 움켜쥔 티리아의 눈 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볼을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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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 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 를 떨궜다.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게 쉬운 일 이 아니란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 다. 만약 제가 티리아 씨와 같은 상 황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쉽게 선택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깊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이어 졌다.

“하지만 그래도, 티리아 씨는 선택 해야 했습니다. 망설이면 안 됐습니 다. 지금 티리아 씨가 있는 자리는 그래야만 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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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은 눈물을 홀리고 있는 그녀를 향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울화 통이 치밀 정도로 침착한 그의 말투 에 티리아는 자기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 하하……

영식의 멱살을 잡은 그녀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그러면 이제, 전 어떻게 해야 할 까요.”

그녀는 허망함에 가득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가 소중히 여겼던 길드는 이미 몰락했고, 구해내려고 했던 가족들은 모조리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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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더 이상 선택할 것도 없잖아요. 이젠 모든 게 끝……

“아닙니다.”

영식은 그녀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엘노트 왕가는 티리아 씨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엘노트 왕가’라는 단어를 들은 티 리아의 몸이 흠칫 떨렸다. 영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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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당해놓고, 가만히 계실 생 각이십니까?”

그의 말에 티리아는 굳게 입을 다 물었다. 당연히 복수하고 싶었다. 가 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왕’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 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살 바토르 길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맞았다. 비어버린 왕성을 습격하여 모든 문을 봉쇄했고 왕성 보고에서 국가의 가보라고 할 수 있 는 물건들도 훔쳤다. 단순한 도적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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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넘어서 반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신 나간 짓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왕’을 죽이 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것 은, 지금 남아 있는 살바토르 길드 원들조차 모두 파멸로 몰아넣어 버 리는 짓이었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선택하는 것은 티리아 씨의 자유입니다. 전 티리아 씨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에 따르겠습니다.”

영식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 했다. 그의 말에 티리아는 거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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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던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 꼈다.

티리아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가족이 납치된 후, 그녀와 길드원들에게 일어났던 무수한 재앙 을 떠올렸다.

자신의 망설임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얼굴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미 늦은 일이었다.

복수를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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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죽여서 복수를 한다고 그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너덜너덜하게 찢겨져 나간 살 바토르 길드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 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차라리 지금 남은 사람들이라도 평 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전……

티리아의 입이 열렸다. 그녀의 눈 에서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이제까지 온화한 모습만 보여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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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눈빛이었 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티리아는 망설임을 떨쳐내는 듯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영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아이가 성장 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 같은 아버지 의 미소였다.

티리아는 그런 영식을 향해 살짝 다가왔다.

“영식 씨는…… 보기완 달리 참 잔 인한 사람이네요.”

그녀는 당장에라도 꺼질 것처럼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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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에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이 영식의 눈에 들어왔다.

눈물에 젖은 그녀를 본 순간. 영식 은 자기도 모르게 아름답다고 생각 했다.

“고마워요, 영식 씨.”

그녀는 영식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가슴이 찢겨나갈 듯이 잔혹 한 그의 말이 어딘가에 기대고 싶 고, 안주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을 붙잡았다.

영식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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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듬었다.

“아……

그의 손길을 느낀 티리아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손에 서 느껴지는 따듯한 기운이 몸 전체 로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영식의 몸이 혈육이 아닌 기계장치 로 되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따듯한 기운이었다.

과거 그녀의 아버지가 곧잘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기억이 떠 올랐다.

어머니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자 신을 끌어안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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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남동생이 애교를 피우며 그녀 의 옷자락을 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영식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티리아 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녀의 눈에 다시 투명한 눈물이 고였다.

“흑, 흐윽……

티리아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홀러 나왔다. 조금 전 내질렀던 짐승 같 은 울부짖음이 아닌, 마치 어린아이 가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흐어어어어어엉...

티리아는 영식의 가슴에 얼굴을 묻 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영식은 그녀 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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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앞으로 다시 이런 일 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영식의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 가에 파고들었다.

“제가 그렇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영식의 눈이 날카롭 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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