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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862화 (862/956)

추억(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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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민이 있다는 6인실 앞에 섰을 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흔하게 볼 수 있는 파마머리를 한 50대의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문을 열자마자 문 앞에 덩치 큰 사내 둘이 서 있는 모습에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매니저와 단유도 놀라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고, 그렇게 생긴 틈으로 아주머니는 무안해하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보며 자리를 떴다.

매니저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열린 문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병실 안에는 환자 뿐 아니라 보호자들까지 포함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분위기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는 것을 무시하고 서둘러 주변을 살피려는데, 단유가 먼저 성큼성큼 걸어 병실 가장 안쪽의 침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과연 그곳에 그렇게 아침부터 걱정했던 보민이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다소 창백해 보이지만 일단 외견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단지 잠을 자는 듯 보이는데도 미간에 좁혀진 주름이 펴지지 않고 있었다.

“하아.”

매니저로서는 절로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따로 보호자도 없는 듯, 홀로 누워 있는데 침대 바로 옆의 협탁 위도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바로 옆 침대의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숏컷의 아주머니가 물었다.

“그쪽, 보호자예요?”

머리숱은 별로 많지 않아 보이는데 눈썹이 두드러지게 진하고 눈 아래에 두툼한 살은 단유와 매니저를 번갈아 바라볼 때마다 흔들렸다.

“아, 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하다는 물음이 한가득이다.

“뭐하다 이제 와요? 아침에 보니까 아가씨가 아파서 엄청 힘들어 하더만.”

힘들어했다는 말을 알리기 위함이라기 보다, ‘뭐’하는 사람인지가 더 궁금하다는 눈치였는데, 눈치 없는 매니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어디가 아픈데요?”

“그건 나도 모르지.”

의사한테 물어야지, 왜 나한테 묻냐는 핀잔에 매니저는 머쓱해져 입가를 긁적였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질문 공세는 이제 시작이었다.

“그런데 무슨 관계요? 가족은 아닌 거 같은데?”

매니저는 머리를 긁적였다.

“업무상 아는 사이입니다.”

다소 딱딱한 대답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업무?”

눈초리가 가늘어지는 게 뭔가 오해를 하는 듯 해 보여 매니저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저희 회사 소속 연습생이거든요.”

“연습생? 그럼 이 아가씨, 연예인인가?”

“아, 뭐, 비슷합니다.”

“아이고, 어쩐지 얼굴이 이쁘장하다 했어. 그치?”

“언제는 얼굴 파는 직업 아니냐고 하더니?”

환의를 입은 채 앉아서 앞에 놓여 있던 1회용 접시에 놓인 사과를 집어 먹던 아주머니가 핀잔을 던지자,

“내가 언제? 못하는 소리가 없네.”

눈썹 진한 아주머니가 환자의 다리를 툭 치며 역정을 낸다.

“아까 그랬잖아. 뭐 하는 아가씨길래 가족도 없이 새벽에 혼자 병원에 올까, 하면서.”

“그건 그냥 해 본 말이지. 그게 무슨 큰 의미라고. 요새 혼자 사는 사람 많잖아? 그러니까 혼자 살면 힘들겠구나 걱정해서 한 말이었지.”

그렇게 둘러대면서도 눈으로는 ‘더 이상 씨불이면 가만 안 둬’라는 의미를 강력하게 전달하려 노력했고, 그 노력이 통했는지 아주머니의 잠시 대화를 이어나가느라 멈춰 있던 손이 다시 움직여 입속에 사과를 넣기 시작했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구시렁거리는데, 사과와 섞여 잘 들리진 않았지만 ‘자기도 그만 이야기하고 사과나 마저 깎어’라고 말한 듯 보였다. 눈썹 진한 아주머니는 매니저를 슬쩍 본 뒤, 다시 일회용 접시 위에 놓아두었던 과도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단유를 보는데 또 입이 근질거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쪽은 직원분이신가? 아니면···연예인?”

‘내가 요새 TV를 잘 안 봐서 몰라’, ‘안 보긴 뭘 안 봐, 병문안 와서도 맨, TV만 보는 주제에’, ‘아이고 그 입 좀 가만 두지 못해?’, ‘쓸 데 없는 소리 좀 그만하라니까. 민폐야, 민폐.’ ‘물어보지도 못해?’ 두 사람의 찰떡같이 호흡을 주고 받는 만담 속에 단유는 대답을 피하며 대신 보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매니저가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이에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보민을 지켜보며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우선 그녀의 침대에 걸린 병명은 ‘pneumonia’, 즉 폐렴이었다. 다만 아직은 바이러스성 폐렴인지, 아니면 세균이나 진균에 의한 폐렴인지 등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일단―단유가 아는 상식 내에서―폐렴은 현대 의학으로 불치병이 아니니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겠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왜 보호자가 곁에 없느냐는 것이다. 예전에 새벽의 입원 절차를 도우며 알게 되었던 내용이지만, 보통 입원을 할 때는 입원약정서라는 것을 쓰게 되고, 입원약정서에는 보호자의 연락처를 기입해야 한다. 즉, 보민이 여기 있다는 소리는 그녀 역시 입원약정서를 작성했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보호자의 연락처를 병원에 알려주었을 거란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여태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몇 가지 가정을 하게 된다. 병원이 태만하여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거나, 연락을 취했음에도 부득이 보호자가 연락을 받지 못했거나, 보호자가 연락을 받았음에도 오지 않았거나, 아예 병원 측에 엉뚱한 연락처를 알렸거나.

일단 그 문제는 보민이 깬 뒤에 물어보면 알 수 있겠으나, 일단은 자는 사람을 일부러 깨우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옆에서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하는 매니저의 팔을 툭툭 쳤다.

매니저가 돌아보자, 작은 목소리로 병실을 나가자는 뜻을 전했다. 의아해하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유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 뒤를 말없이 지켜보는 시선들이 줄곧 따라오는 게 느껴져, 단유는 병실을 나서자마자 문을 닫아 주었다.

“우선 의사부터 찾아서 이야기를 들어야겠어요.”

“아, 그렇죠. 자는 사람 깨우기도 뭐하니까.”

매니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병동을 지키는 간호사에게 물어 담당 의사를 알아낸 후, 그를 찾아가 보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급성 폐렴입니다.”

“중증까지는 아니지만, 환자의 몸이 약해져 있어서 입원 당시엔 환자가 많이 고통스러워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행히 큰 위험이 없을 것 같습니다.”

“원인균은 좀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일단 지금으로서는 휴양을 취하면서 항생제 치료만 제대로 받는다면 완치에 큰 무리는 없을 거란 소견입니다.”

특별히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퉁명스럽지도 않게, 정확히 필요한 정보만을 간결하게 정리해 전달한 의사에게 감사를 전한 후, 두 사람은 다시 병동으로 올라왔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일단 며칠간 입원해 있으면서 치료받으면 된다니까.”

의사를 찾아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전긍긍이던 매니저의 얼굴은 한층 이완되어 혈색이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 점에서는 단유도 동의하지만, 문제는 다음 이야기였다.

“그런데 보민 양이 여기 있는 동안 돌봐줄 사람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그거야 가족들이···.”

입을 열었던 매니저도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자신들도 나름 일찍 보민을 찾아 나서긴 했지만, 만약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았다면 이미 벌써 병실에 찾아와 보민의 곁을 지키고 있었어야 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말이다. 즉, 지금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란 뜻이고, 곧 이는 매니저의 고민을 더하는 문제가 될 수 있음이다.

“아까부터 계속 말이 없으셨던 게 그거 때문이었습니까?”

“그런 것도 없진 않습니다만, 그보다 앞서 매니저님께 여쭙고 싶었던 것은 혹시 보민 양에 대한 다른 정보가 있으신지 하는 겁니다.”

“다른 정보라면?”

“저야 실장님의 업무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보민 양이 저희 회사 연습생으로 오게 된 뒤, 혹시 그녀의 가족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그리고 이후 가족들과의 관계나 최근 보민 양의 일신에 있어 특이할 만한 부분은 없었는지 말입니다.”

“특별히···따로 케어해야 할 부분은 없었습니다. 애초에 보민 양과 계약을 할 때, 그녀는 성인이었고, 가족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진 않았습니다만 일반적인 관례에 따라 그녀의 가족들에게도 연락을 취하긴 했···을 겁니다. 그 부분은 제 업무 영역이 아니라 정확히 자신하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다들 비슷비슷하게 일을 처리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일이 터지고 나면, 관례로 처리했던 일들도 되짚어 볼 수밖에 없을 테고, 그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겠지요.”

“무, 물론입니다. 그런데 딱히 문제가 될 부분이···있을까요?”

“아직은 모르죠. 어쨌든 입사 시는 그랬다 쳐도, 이후의 관리는 실장님의 역할이죠? 혹시 최근 그녀가 회사 외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거나 하진 않았나요? 아니면 상담을 요청하거나?”

“아직까지는 특별한 문제로 상담을 하거나 한 연습생은 없었습니다. ···면피하려는 의도로 말씀드리는 건 아니지만, 사실 제 역할이란 게 연습생들이 이후 데뷔를 할 때까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케어하는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습생 개개인의 가족 문제라든가, 개인 사생활의 영역까지 깊이 파고들진 못합니다. 아니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매니저들은 그렇습니다.”

“데뷔한 연예인들의 경우에는 가족까지 케어하지 않나요?”

“그것도 극히 소수의 일입니다.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케어해주지 못하죠. 물론 큰 문제가 발생하여 그게 연예인의 활동까지 저해할 사유가 된다고 판단된다면 나서긴 하겠지만, 일단은 지금은 연습생들이니까, 그렇게까지 깊이 관여하진 못하죠.”

“그렇군요.”

“그래서 많은 기획사들이 연습생들을 합숙시키는 겁니다. 사생활을 강제로 제약함으로써 관리의 효율을 높이는 겁니다. 단순히 회사의 편의만을 위한 정책은 아닌 거죠.”

“편의를 위함도 있겠죠.”

“부정할 순 없지만, 그래도 지금 저희 회사와 같은 방식을 고수하면 언젠가는 또 이런 일로 가슴 졸이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연습생이 무단으로 결근했는데, 그게 어떤 사유로 인한 결근인지를 알지 못한 채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다가, 만약 지금 같은 경우가 아니라 정말로 큰 일이 벌어졌다면 회사는 거센 역풍에 휩싸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저도 이번 기회로 많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럼 현재로선 매니저님도 짐작 가는 바가 없다는 거네요.”

“어,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들어가죠.”

“아, 저기, 전 먼저 회사에 연락부터 넣겠습니다.”

“그럼 전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까보다는 덜 경계하는 눈빛들이 단유에게 쏠린다. 상대를 확인하고 나서는 이내 관심을 끄고 각자의 대화로 돌아간다. 일부러 목소리를 죽이고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대화 주제와 별개로 분위기 자체가 들뜨기 힘든 병실이라 그런지 다들 말들이 느릿느릿하고 강약이 없는 목소리들이었다. 듣고 있노라면 병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픔과 슬픔이 전염될 것 같다.

와중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단유는 깨어있는 보민과 눈이 마주쳤다.

“이사님.”

단유는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몸을 일으키려는 보민에게 괜찮다고 손짓한 후, 침대 옆에 있던 작은 스툴을 끌어다 앉았다.

“괜찮아요?”

“어떻게···.”

“연락이 없으니, 회사 분들이 많이 걱정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갑작스러운 일에 오히려 많이 당황하셨을 텐데. 아, 많이 아프셨다고 들었어요.”

“아, 지금은 괜찮아요.”

“조금 전에 의사 선생님 뵙고 왔는데, 좀 쉬면 괜찮대요.”

“아, 네.”

풀죽은 목소리로 고개를 떨구는 보민.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가족들한테는 연락하셨어요?”

“아, 아뇨. 아직.”

“제가 대신 연락드릴까요?”

“아, 그게···.”

역시 말 못 할 사연이 있나 보다. 어쩔 줄 몰라 입만 벙긋거리는 보민을 가만히 기다려주는 단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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