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11화 (811/956)

Fall off(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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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구, 요 며칠 얌전히 있는다 했더니 그새 나가서 사고를 치니?”

“엄마!”

지아의 어머니는 캐스트를 하고 목발을 짚은 채인 딸을 보며 혀를 찼다.

“정말 내 딸이지만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안 그러더니 왜 애가 점점 클수록 모자라게 구는 거지?”

“엄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엄마는 한 번도 다친 적 없어?”

울컥한 지아의 항변에 어머니는 더욱 딱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딸을 응시했다.

“얘는 걸핏하면 엄마를 걸고 넘어지네. 그러면 네가 하고 다니는 짓이 좀 낫기라도 하니?”

지아는 꽥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최근엔 대화를 하다보면 꼭 이런 식으로 흐르고, 그러다 보면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 정말 사춘기 때, 반항기 때나 할 법한 대화들이 이 나이 먹도록 하고 있다는 게 창피하고 부끄럽고 화가 났다. TV에서는 엄마랑 죽고 못 살 정도로 붙어 다니는 딸들의 이야기가 그리 흔하게 나오던데, 왜 자신은 매일 매일 불편한 시선과 악담을 견디며 살아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자존감이 낮다고?’

단유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

가장 가까운 편이어야 할 엄마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데 매일 일조를 하니.

이럴 바에야 차라리···.

집에 돌아온 지아는 외발로 바닥을 쿵쿵 찧으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쟤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얘, 너 그러면 밑의 집에 민폐잖아! 밑의 집 사람들이 올라와서 한소리해야 정신 차릴래? 응?”

“아, 몰라!”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 지아는 그대로 침대 위에 엎어졌다.

의지니 뭐니, 하며 뭐라도 있는 것처럼 젠체하며 떠들어댔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만약 그 사내가 지금 이 모습을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주제에 사내의 충고 혹은 조언에 대해 반감을 가지다니. 자신은 그런 반감을 가질 주제도 못 된다.

“밥 먹어!”

밖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지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리 없이 흘린 눈물로 베개가 흠뻑 젖어 들었다.

****

4일간의 영국 체류를 마치고 돌아오니 기다렸다는 듯 대훈에게서 연락이 왔다.

“공개 오디션으로 새 연습생들을 모집해 볼 예정입니다.”

“그런 건 일일이 보고하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나중에는 간략하게 보고를 올리겠지만, 적어도 사업 초기에는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이사님께서 지시하셔서요.”

회사에 고문 이사로 택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대훈에게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는 이야기였다. 택윤이 이사로 등재된 데에는 단유의 자금 관리를 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유를 대리하여 사업상의 문제가 없는지를 한동안 감독하기 위함이었다. 경영 일체에 개입하지 않되, 제대로 운영이 되는지에 대해서 감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단유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단유는 아직 시차가 적응되지 않아 피곤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대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런데 새 회사라 공개 오디션을 해도 올 사람이 없지 않을까요?”

“물론이죠. 하지만 요즘은 신생기획사라도 공개 오디션을 열면 오는 사람이 적진 않습니다. 제가 이전 회사에 있는 동안 쌓은 인맥도 있고 각종 학원들에서 학생들을 경험 차원에서 보내기도 하거든요.”

“학원들에서 학생들을 많이 보내나요?”

“오디션이라는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니까요. 솔직히 오디션에 붙어도 오지 않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의 목표는 저희같은 신생 기획사가 아니라 중대형의, 네임 밸류가 있는 회사들이니까요.”

“그럼 의미가 없지 않나요?”

“확률이죠. 개중에 쓸만한 연습생들을 구할 수도 있으니까요. 스스로도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그런 진흙 속 진주들을 찾는 게 바로 공개 오디션의 묘미거든요.”

요컨대 나름 실력도 있고 스스로도 그 재능을 개화해 나가는 연습생들은 신생 기획사에 오질 않지만, 아주 희박한 확률로 신생 기획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연습생이나 아직 자신의 재능을 깨닫지 못한 채인 연습생들을 발굴해내는 것이 신생 기획사의 오디션이라는 말이었다.

“어차피 이 바닥은 로또나 마찬가지예요. 어디서 어떻게 보물 같은 재능을 가진 이들을 찾을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설령 지금 당장은 재능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도 시간이 흐르면 더 높은 경지로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퇴출당하는 연습생들도 있고, 반대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연습생이었는데 뒤늦게 재능이 드러나면서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런 경우는 찾기 힘들겠죠.”

“네. 하지만 그 희박한 확률을 뚫고 옥석을 가리기 위해 지금까지 준비한 것 아니겠습니까?”

대훈이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이 바로 인재 발굴 시스템을 위한 인력 고용이었고, 나름 실력 좋은 트레이너들과 A/R팀을 구성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게다가 다다음 주부터는 중대형 기획사들의 오디션들이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에 지금을 놓치면 공으로 몇 달을 날려야 하거든요. 시기상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알겠어요. 그럼 잘 추진해 주세요.”

“네. 오디션이 끝나면 다시 보고를 드리죠.”

“그거 말인데요, 그냥 공이사님께 하면 안 될까요?”

“공이사님은 단유 씨한테 꼭 보고를 하라던 데요?”

첫 투자―하은의 학원 사업에도 투자를 했지만, 법적인 의미로서 투자였고 실질적으로는 증여에 가까운 개념이라 수익이란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때문에 지금 엔터테인먼트 투자가 진정한 의미에서 첫 투자라고 할 수 있다―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사업이 운영되고 어떻게 수익이 나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택윤이 조언한 탓이었다.

“알겠어요.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 주세요.”

단유는 그쯤에서 신경을 끊어내고 싶었지만, 공 이사는 단유를 그렇게 놔두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전 그냥 투자만 하면 되는 것 아니었나요?”

“투자라는 게 강아지 먹이 주듯 하는 게 아닙니다. 투자하고 나 몰라라 있다간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실패합니다.”

“왜요?”

“하다못해 강아지 먹이를 주더라도 강아지가 그 먹이를 잘 먹는지 못 먹는지를 지켜보는 법입니다. 만약 먹이를 던져줬는데 강아지가 먹이를 먹지 않는다거나 먹이에 문제가 있어 강아지에게 탈이 나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는 강아지의 잘못이 아니라, 먹이를 던져준 이의 잘못이겠지요?”

“꽤 저렴한 비유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요.”

“잘 먹기를 바라기보다는 잘 먹는 모습을 관찰해야 이후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 투자란 그런 거죠. 자신이 투자한 돈이 어떤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이익을 내는지를 지켜봐야만 실패가 없는 법입니다.”

“조언은 감사히 생각하겠습니다.”

“단유 씨의 자산관리를 맡은 이로써 해야 할 말이었습니다. 엔젤투자자가 진짜 천사일 필요는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

“기억해두죠.”

택윤의 저렴한 투자 철학 강의를 새겨들은 단유는 이후로 대훈의 보고를 충실하게 받았다.

****

“세션이요?”

“지난 번에 너 알바 자리 찾는다며? 원래 세션을 맡기로 한 키보디스트가 불가피하게 빠지게 돼서 말이야. 수당은 충분히 챙겨줄 거야.”

지아는 발목을 가리켰다.

“발을 다친 거지, 손을 다친 건 아니잖아? 왜 걷기 힘들 정도야?”

“아뇨, 그렇진 않은데.”

“난 그래도 너 생각해서 먼저 이야기한 거야. 재우한테 물어볼까 하다가 전에 네가 먼저 이야기했던 게 생각나서. 그런데 정 힘들면 관두고.”

“아뇨, 제가 할게요.”

“괜찮아?”

“네. 어디로 가면 돼요?”

어제 저녁 나눈 대화를 떠올리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직도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지 확신할 수 없었고, 그래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어영부영 선택을 미룬 채로 지내다간 정말 헛되이 시간만 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과, 그럼에도 어떤 길이 자신의 길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하루하루가 지옥인 이때, 아르바이트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하지만 선배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혹시라도 자신이 전공을 살리는 길을 선택했을 때, 선배라는 인맥이 중요해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애초에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네, 어떻게 오셨어요?”

“저기 세션 때문에 왔는데요.”

머뭇거리는 지아를 쓱 훑어보던 여인의 눈빛에 지아는 괜히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아, 김지아씨?”

“이지아···인데요.”

“···네. 근데요, 그 다리, 괜찮아요?”

지아의 다리를 가리키는 짧고 두꺼운 손가락을 보며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은 많이 나아서, 며칠 지나면 풀 거예요.”

“아니, 그 말이 아니고요, 연주 하시는데 문제 없으시겠냐고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채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괜찮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사무적인 태도의 여인은 곧 스튜디오 안쪽으로 지아를 안내했다.

“키보드 왔는데요?”

“어, 그래?”

안쪽에서 기타를 조율하는 중년 사내를 바라보던, 그와 비슷한 나잇대의 사내가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지아는 고개를 조아리며 손을 맞잡았다.

“난 여기 스튜디오 실장. 지아씨 맞죠?”

“네.”

“흥원이가 실력 괜찮다고 보장한 데서 허락했는데, 괜찮죠?”

“네, 네.”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우선 여기 태원이랑 맞춰볼래요? 태원아, 사람이 왔으면 인사를 해라.”

“장태원이요.”

“안녕하세요, 이지아라고 합니다.”

“악보는 봤어요?”

“네.”

“VSTi는 앨리샤로 하고 한번 맞춰보죠.”

녹음실 한쪽 구석에 놓인 키보드를 가리킨 뒤 다시 기타 조율에 들어가는 태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지아는 얼른 키보드로 향했다.

건반을 툭툭 두드려 소리를 확인한 뒤, 가방에서 악보를 꺼내 키보드 위에 올렸다.

두어 번 맞춰본 후 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심드렁한 말투였지만 경험 많은 선배의 칭찬이라 지아는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드럼은 따로 입힐 거니까 우선 이렇게 맞춰서 녹음해 보죠.”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태원은 손을 한 번 내젓고는 실장을 바라보며 준비하라고 일렀다.

실장이 녹음실을 나간 후, 지아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때 이펙터를 점검하던 태원이 무심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요즘 생각이 많나 봐요?”

“네?”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소리가 단순해지거든.”

지아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을 지켰다.

“어차피 이번 건 가녹음이니까 문제는 없는데, 만약 앞으로도 그렇게 연주하면 세션으로 쓰기도 힘들거요.”

지아는 속이 들킨 기분이라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희고 검은 건반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다시 등 뒤에서 태원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스튜디오 녹음은 처음인가?”

“···네.”

“조금 전에 한 것처럼만 해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네.”

“시간이 길어지면 스튜디오 사용비만 올라가니까 되도록 한 번에 끝낼 수 있게.”

“네.”

“클래식 전공?”

“네? 네.”

전문가란 사람들은 연주 한 두 번만 듣고도 다 알아내는 수준인가보다.

“학생? 아니면 졸업했나?”

평범한 질문인데 평범하게 들리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연주가 학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혹은 졸업 후의 미래는 없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내년에 졸업이요.”

말끝이 절로 흐려져서 지아 본인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별 신경을 안 쓰는 것인지, 달리 대꾸가 없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혹은 자신이 어떤 직업을 선택할 거 같냐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마침 컨트롤룸에서 엔지니어가 녹음을 시작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통에 지아는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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